주간동아 7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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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끈한 한류 열풍 젊은 인재들이 이어간다

  •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입력2009-08-19 15: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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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화끈한 한류 열풍 젊은 인재들이 이어간다
    주변에서 “일본 회사에 취업했다”는 얘기를 듣기는 쉽지 않다. 가뭄에 콩 나듯 일본에 취업한 사람이 있다 해도 한국 회사의 일본지사 아니면 영세 제조업, 유흥업 등에 종사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사실 한국 젊은이들의 해외 취업에서 일본은 사각지대나 다름없다. 한국은 전자, 자동차, 건설 등 여러 산업분야에서 일본과 대등하게 경쟁을 벌이고 있지만, 몇 년 전까지만 해도 거의 모든 업종에서 생산력과 기술 수준이 크게 뒤떨어졌다. 그러다 보니 한국 인력에 대한 수요는 제한될 수밖에 없었다.

    일본 기업들이 굳이 높은 위험 부담과 교육 및 회사 적응 비용을 감수하고 한국인을 데려다 쓸 이유가 없었던 것이다. 더구나 한일 양국은 역사적, 문화적으로 미묘한 대립관계에 있다. 그러나 최근 들어 한국의 높아진 경제 수준과 국제적 지위, 일본 젊은이들의 지적 능력 하향 평준화, 그리고 이에 따른 취업 환경요인의 변화는 일본 기업들의 시선을 한국으로 향하게 한다.

    일본 최대 취업·이직 알선 서비스 기업인 리크루트 에이전트(Recruit Agent)의 에비하라 즈구오 상담역은 이러한 시기를 ‘스위트 스폿(sweet spot)’이라고 표현했다. ‘스위트 스폿’은 테니스 라켓, 야구 배트, 골프 클럽에 공이 이상적으로 맞는 지점을 뜻한다. 공이 이곳에 맞아야 가장 좋은 타구가 나오는데, 이 상황을 여러 분야에 확장시켜 ‘충격 중심’이라는 뜻으로 쓴다. 에비하라 상담역의 말은 바로 지금이 한국 인재들이 일본으로 밀려드는 ‘충격’의 시발점이 될 수 있다는 뜻이다.

    “일본 기업들은 그간 등잔 밑이 어두웠다는 생각을 하고 있다. 미국이나 중국만을 주요 비즈니스 파트너로 인식하고 한국에 대해서는 관심을 두지 않았기에 한국 인재들의 매력을 경험할 기회가 없었다. 그러나 최근 기존의 글로벌 공략 전략을 재편하고, 범세계적인 인재 등용의 중요성을 실감하면서 거리도 가깝고, 교육 수준이 높은 데다 국제감각까지 갖춘 한국 젊은이들을 주목하고 있다. 터닝 포인트를 맞은 것이다. 과거 한국인들은 일본에 취업할 때 한국인이라는 사실을 감췄다. 하지만 이제는 입사지원서에 한국 이름을 써도 일본 기업들은 쇼크를 받지 않는다. 정말 중요한 변화다.”



    또한 에비하라 상담역은 일본 젊은이들의 학력 수준 하향세가 두드러져 앞으로 한국 인재들이 일본에서 계속 반사이익을 얻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일본 젊은이 중 상당수가 도요토미 히데요시 같은 역사적 인물을 모르고 이탈리아가 유럽에 있는지도 모른다”며 “기본 학력 수준이 높은 한국 젊은이들은 이들과 비교되기에 일본 기업들이 주시하고 있다”고 했다.

    이런 맥락에서 항공, 조선, 기계, 토목산업을 망라하는 일본의 2~3위권 중공업 회사인 IHI(이시가와 지마하리마)그룹이 지난해와 올해 2년 연속으로 한국의 7개 대학에서 일본 기업으로는 처음 취업박람회를 열고 신입사원을 선발한 것은 그냥 지나쳐볼 일이 아니다. 이 회사의 경우 지난해 선발한 신입사원들의 회사 내 평가가 매우 우수하게 나타나고 있어 앞으로 또 다른 일본 기업들이 한국 인재 발굴에 나설 가능성도 높게 점쳐지고 있다. 특히 종합상사, 제조업, 전기, 전자 부문 등의 회사에서 한국 인재에 대한 선호도가 높은 것으로 알려졌다.

    또한 출산율 저하로 인구가 줄어 이민 정책까지 고려하고 있는 일본의 현실이 상층 블루칼라 직종의 진입장벽을 낮추게 할 가능성도 크다. 노무, 생산관리, 판매관리 업종 등에서의 일본인 점유율이 떨어지면서 외부 인력의 수요가 절실하게 된 것. 일본 취업을 위해서는 일본어 구사 능력이 필수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건 자신이 희망하는 일자리가 ‘천직’이 되리라는 믿음을 보여줘야 한다는 것이다.

    재일교포 3세로 IHI그룹의 한국인 취업 홍보업무를 맡고 있는 ‘글로벌터치’의 권원호 대표이사는 “일본 사람들은 대개 ‘천 리 길도 한 걸음부터’ 스타일”이라며 “그처럼 여유를 갖고 한국 취업자들의 적응력을 검증하는 마당에 일본에서 경험을 쌓아 한국 기업으로 이직하려는 자세를 보인다면 일본 취업을 위해 노력하는 후배들에게 마이너스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런 책임감을 안고 일본으로 뛰어든 두 젊은이가 있다. 깐깐한 일본 기업에서 한국 인재의 우수성을 알리고 있는 그들의 일본 공략법을 듣기 위해 현해탄을 건넜다.

    “입사 열망, 자기계발 열정,진심은 통했다” IHI그룹 해외영업전략본부 이송현

    화끈한 한류 열풍 젊은 인재들이 이어간다
    “도쿄 도요슈(豊洲)역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지상으로 올라오는 순간 대학입시에 합격했을 때처럼 가슴이 벅차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어요.”

    IHI그룹 해외영업전략본부에서 근무하는 이송현(25) 씨는 2009년 4월1일을 잊지 못한다. 말로만 듣던 IHI그룹 도요슈 본사에 최초의 한국인 대졸 신입사원으로 첫 출근한 날이기 때문이다. IHI는 세계적 거대기업 미쓰비시와 중공업 분야에서 선두경쟁을 벌이는 유수의 기업. 마침 만우절이라 이씨는 자신의 볼을 꼬집어보기까지 했다.

    서울대 인류학과를 졸업한 이씨는 꽤 오랫동안 일본 문화와 친숙해진 뒤 일본 기업들의 취업 소식에 발 빠르게 대응해 ‘대어’를 낚은 경우. 고교생 때부터 일본어를 공부했고, 대학 3학년 때 게이오대 교환학생으로 1년간 유학해 적응력을 높였다. 졸업을 앞두고는 일본 기업들의 홈페이지를 드나들며 꿈을 키웠다. 이런 노력이 기회의 문을 열어줬다.

    2008년 9월 IHI그룹은 일본 기업 중에서는 처음으로 고려대, 건국대, 성균관대, 연세대 등 한국 대학에서 취업박람회를 열고 한국 학생들을 공채로 모집했다. 연구개발, 개발설계, 품질관리에서 인사, 총무까지 전 분야에 걸쳐 모집했는데, 직접 부스를 찾거나 인터넷으로 지원한 학생이 약 2000여 명에 이를 만큼 관심이 높았다.

    당시 언어능력 점수 기준이 주목을 끌었다. 일본어능력점수 JLPT 2급, JPT 600점 이상 혹은 TOEIC 700점 이상이 기준으로 예상보다 높지 않았다. 회사 측은 ‘응모 시 일본어가 능숙하지 않을 경우 입사 때까지 JLPT 2급, JPT 600점에 준하는 수준을 갖춰야 한다’고 명시했다. 입사 전까지 한국 학생들의 언어 부담을 덜어주는 배려를 하면서, 일본어 실력보다는 인성과 전공지식 등을 우선시해 채용하겠다는 의미였다. 이씨는 1차 서류심사와 면접을 거쳐 선발된 40명에 포함됐다. 일본에서 치른 최종 부서책임자들과의 매칭 면담도 통과했다.

    “면접 준비를 충분히 하지 않아 걱정을 많이 했습니다. 1차 면접 때는 지원자가 3명씩 들어갔는데, 제겐 유로화 강세에 대한 전망을 물어보더군요. 시사와 관련된 질문이라 좀 당황했지만, ‘시간을 조금 달라’고 하고 생각을 정리한 다음 차근차근 대답했죠. 다행히 무사통과했습니다.”

    2차 면접 때는 면접관이 건네준 질문지 내용 중 어려운 한자를 읽지 못해 질문지를 돌려줄 뻔했으나 재치 있게 위기를 넘겼다.

    “그 한자 아래에 제가 아는 문장이 있기에 제 마음대로 읽어버렸어요. 그러면서 개인적인 얘기도 곁들이고요. 그랬더니 인사담당자가 웃더군요. 제가 정말 간절히 입사를 희망하는 것처럼 보였나 봐요.”

    마지막 면접 후 회사 측은 이씨에게 입사 의사를 타진했다. 이는 일본 기업의 취업 담당자들이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부분이다. IHI그룹 인사담당자도 ‘일본에 와서 일할 수 있는가’ ‘일본 사람들 속에서 일할 마음가짐이 돼 있는가’를 거듭 확인했다.

    최종적으로 이씨를 포함해 8명을 선발한 IHI그룹은 지난해 11월 초부터 지난 3월 말까지 이들을 한국무역협회에 파견해 필요한 업무지식과 영어회화를 익히게 했다. 첫 출근 후 3~4주 동안은 공장에서 용접, 파이프 절단 등의 현장실습을 받으면서 IHI그룹 사원으로 새 삶을 시작했다. 현재는 해외영업 전략부문 파트에서 해외 지점 및 사무소 관리, 해외 업계의 동향, 자사 공사 진척도를 파악하는 게 이씨의 주업무다.

    항공우주, 조선, 환경, 에너지 플랜트 등 사업 영역이 방대하다 보니 이런 분야의 공부도 게을리해선 안 된다. 일본어를 곧잘 구사하지만, 아직 업무 전화의 내용을 잘못 이해한 나머지 실수하는 경우가 있어 어학 공부도 일과에 포함시킨다. 잔업은 많지 않지만 업무시간의 업무 강도는 세다. 사적인 전화도 허용되지 않는다.

    대기업이다 보니 대우도 좋은 편. 대졸자는 월 20만엔 정도의 초봉에 시간외근무, 교통수당이 추가된다. 휴가 등 복지 수준도 만족스러울 뿐 아니라 회사에선 장기취업비자 취득을 위해 적극 협조해준다. 그러나 이씨는 이런 외형적 대우만 좇는 것은 위험하다며 일본 취업 희망자들에게 몇 가지 조언을 했다.

    “단기간에 돈을 벌겠다는 생각이면 오지 않는 게 낫습니다.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 부서에 배속되고 일을 하다 보니 그런 생각이 자연스럽게 없어졌어요. 2~3년 근무해 돈을 모은 뒤 한국 기업으로 갈 요량이라면 회사는 물론 개인적으로도 손해이고, 한국 인재에 대한 좋지 않은 이미지를 심게 됩니다. 일본에서 회사를 다니려면 얻는 것뿐 아니라 잃을 수 있는 게 뭔지도 생각해서 결정해야 해요.”

    이제 IHI그룹을 평생직장으로 여긴다는 이씨는 결혼한 뒤에도 일본에서 살 계획을 갖고 있을 만큼 이 회사의 첫 한국인 공채직원이라는 점을 의미 있게 받아들이고 있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준비된 ‘무한도전’이 일본 연착륙 원동력”‘니혼 폴’ 마케팅팀 아시아마케팅 담당 허여주

    화끈한 한류 열풍 젊은 인재들이 이어간다
    “어릴 때 아버지가 차만 타면 일본어 테이프를 틀어놓으셨어요. 지겹게 일본어를 들었는데 결국 일본에서 살게 됐네요.”

    지난해 12월 여과·분리·정화·정제시스템 기술 분야의 세계적 기업 ‘폴 코퍼레이션(Pall Corporation)’의 일본 현지 법인 ‘니혼 폴(Nihon Pall)’에 입사한 허여주(27) 씨는 일본과 뗄 수 없는 인연을 갖고 있다. 대학(숭실대)에서도 일본어를 전공하고, 대학 재학시절과 졸업 후에도 일본을 수시로 드나들더니 직장까지 그곳에서 구했다.

    “일본을 좋아하신 아버지가 늘 ‘이제는 글로벌 시대이니 외국에서 사는 것도 좋겠다’고 하셨는데, 전 ‘외국’이라고 하면 당연히 일본인 줄 알았죠.”

    부친의 영향 때문인지 허씨는 일찌감치 일본 진출을 위한 자기계발 프로젝트를 구체적으로 실천했다. 대학에 입학하자마자 일본을 제대로 알고 실전회화를 익히기 위해 주한 일본대사관에서 주관하는 일본 워킹홀리데이 비자를 신청, 서너 차례 낙방한 끝에 따냈다. 다시 얻기 힘든 소중한 기회라는 생각에 하루에 라면 가게, 패스트푸드점에서 ‘두 탕’의 아르바이트를 하며 일본 속으로 스며들었고, 일을 하면서 익힌 생활일어 실력 덕에 일본어능력시험 1급 자격까지 땄다.

    졸업 후엔 한국무역협회의 청년무역인 현지 인턴십 프로그램 참가자로 선정돼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에서 6개월간 무역 실무와 일본 비즈니스 언어를 익혔다. 이는 그에게 더할 나위 없는 취업 준비가 됐다.

    “가장 보람이 큰 시기였죠. 무역상사들에게 법률자문을 해주면서 상식도 늘고, 그 내용을 일본어로 써주다 보니 일본어 실력도 부쩍 늘게 되더라고요.”

    자신감이 충만해진 허씨는 일본 취업 전선을 자유자재로 누비고 다녔다. 국내 대기업에서도 취업 제의가 들어왔지만 안중에 없었다. 일본의 여러 리크루트 회사와 대기업에 우편이나 인터넷으로 이력서를 ‘무차별 살포’했다. 이력서를 보낼 때는 한국무역협회 도쿄지부장을 집요하게 졸라 받아낸 추천서를 첨부해 다른 구직자들과 차별화를 시도했다.

    “지망 동기에서부터 논문, 세미나·과외활동까지 자세히 기록했어요. 특히 자기 PR 대목에선 일본에서 홀로 지낸 경험을 부각했죠. 혼자 아르바이트하며 지내면서도 일본 기업 입사의 꿈을 버리지 않고 도전을 계속해온 점을 일본 기업들이나 취업 관계자들이 높이 평가했습니다.”

    외국인을 대상으로 한 각종 취업박람회도 빼놓지 않고 찾아가 자신을 알렸다. 이러한 노력이 결실로 이어져 현지 에이전트사의 추천과 면접을 통해 지금의 회사에 입사했다. 허씨는 면접에서 ‘왜 일본에서 일하고 싶냐’는 원론적인 질문에 “내가 몰랐던 생존능력을 발견하게 해준 일본에서 일하고 싶다”고 말해 기선을 제압했다고 한다. 다른 부서장이 “내가 아주 꼼꼼한 사람인데 견뎌낼 수 있겠냐”고 묻자 “그건 오히려 고마운 일”이라고 답해 웃음을 이끌어냈다.

    그는 현재 아시아마케팅 업무를 맡고 있다. 제품 홍보와 시장 분석에서 파트너 선정, 브랜드 관리 등에 이르기까지 업무 폭이 넓다. 이제 업무의 흐름은 거의 완벽하게 파악했지만 자신의 전공 분야와 무관한 반도체 및 각종 화학제품과 장치, 실험법 등과 관련된 지식은 낯설어 틈만 나면 공부를 한다.

    이제 입사 8개월째. 조금 느슨해질 때도 됐고 외롭기도 하지만 유일한 한국인 직원이라는 자부심과 책임감에 긴장의 끈을 놓지 않는다고 한다. 그래서 매일 1등으로 출근하고, 영어 실력도 사내 최고 수준이다.

    끊임없는 도전. 허씨는 자신의 경험이 다른 취업 희망자에게 동기를 부여할 수 있기 바란다. “지피지기면 백전백승이고, 집요한 사람에겐 당해낼 자 없어요. 일본을 구석구석 알겠다는 마음가짐으로 ‘무한도전’하면 반드시 길이 열립니다.”

    도쿄=유재영 기자 elegant@donga.com

    일본 취업비자 안내
    일본에 취업했다고 해서 곧바로 비자가 발급되는 것은 아니다. 먼저 일본 회사를 통해 재류(在留)자격인정증명서를 받아야 한다. 국비유학생이나 일본 국립기관에 연구 목적으로 가는 사람에겐 대사관에서 곧장 장기 체류 목적의 비자를 발급할 수도 있다.
    증명서의 유효기간은 3개월이다. 회사에서 신청한 증명서가 발급되면 취업자가 증명서를 첨부해 주한 일본대사관 영사부에 신청, 비자(기간은 1~3년. 회사 규모에 따라 비자 유효기간에 차이가 있음)를 발급받고, 유효기간 내에 일본에 입국해야 한다. 그러나 요즘엔 일본 출입국 관리소에서도 비자 발급이 가능해져 중간에 한국에 돌아오지 않아도 된다.
    일본 취업을 위해 현지에서 학업을 하거나 단기 경험을 쌓기 원하는 취업 예정자들은 워킹홀리데이 비자(관광취업비자)를 활용할 필요가 있다. 1999년 시작된 한일 워킹홀리데이 프로그램이 올해부터 대폭 확대됐다. 지난해까지는 매년 3600명이었으나 올해엔 7200명으로 2배 늘었고, 2012년부터는 1만명으로 확대된다. 18~25세(부득이한 경우엔 30세까지 허용)에게 1년간의 체류가 허가된다. 사단법인 일본 워킹홀리데이협회(www.jawhm.or.jp)에서 자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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