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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VER STORY | 반쪽짜리 ‘IT강국’ 내일이 두렵다 03

‘녹색’에 밀려 IT는 찬밥 신세?

MB정부 “디지털은 일자리 창출 못해” 왜곡된 시각에 정책 표류

‘녹색’에 밀려 IT는 찬밥 신세?

‘녹색’에 밀려 IT는 찬밥 신세?

지난해 9월22일 대전에서 열린 신성장동력 보고대회. 이 자리에서 이명박 대통령은 IT보다 굴뚝산업 지원에 초점을 맞췄다.

4월22일 청와대 오찬. 이명박 대통령의 초청으로 IT(정보기술) 업계 관계자 25명이 자리를 함께했다. 한 솔루션 개발업체 대표가 자리에서 일어나 마이크를 잡았다.

“새로운 비즈니스 모델을 만들어도 갈 곳이 없다. 한 벤처업체가 솔루션을 개발해서 행정안전부로 갔더니 국토해양부로 가야 한다고 하고, 국토해양부로 갔더니 방송통신위원회 소관이라 하고, 그곳에서는 자신들도 잘 모르니 지식경제부로 가라 했다고 하더라. 정부 부처가 IT 산업을 지원해주기는커녕 서로에게 떠넘기는 실정이다.”

부처간 업무조정 없고 턱없이 줄어든 IT 예산

이날 오찬에서는 현 정부의 IT 정책에 대한 업계 관계자들의 비판이 쏟아져 나왔다. 이들에 따르면 이명박 정부 출범 이후 IT 산업은 크게 위축됐다. IT 강국으로 자리매김하면서 훌륭한 인프라를 깔아놓았으나 새로운 사업영역으로 확장하기 위한 제도적, 정책적 지원이 뒷받침되지 못하기 때문이라는 것.

이전 정부까지 IT 산업을 총괄하던 정보통신부가 사라진 것도 그 이유 중 하나라는 지적이다. 이 대통령이 이날 비서실에 ‘IT 특보’ 신설을 검토하라고 지시한 것도 이 같은 지적과 무관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현 정부는 집권 초 정보통신부를 해체해 통신 및 규제 정책 기능은 방송통신위원회, IT 산업 진흥 정책 기능은 지식경제부, 디지털콘텐츠 정책 기능은 문화체육관광부, 전자정부와 정보보호 기능은 행정안전부 등 4개 부처로 흡수 통합시켰다(그림 참조). 우리나라 IT가 일정 수준 이상 도달했으므로 이제는 다른 기술이나 산업과 연계, 융합해야 한다는 이유에서다.

‘녹색’에 밀려 IT는 찬밥 신세?
업계 관계자들이나 전문가들은 이 같은 정부의 정책 방향성에 대해서는 긍정적으로 평가한다. 4월22일 오찬에서 비판적 발언을 한 업계 대표는 “기술융합이나 산업 간 컨버전스는 기술이 발전하면서 당연히 나타날 수밖에 없는 것이고, 또 그 방향으로 가는 게 맞다”고 말했다.

정보통신부 마지막 장관으로 정보통신부 해체를 반대한 유영환 전 장관조차 “최근 통신회사와 자동차회사 간에 기술제휴를 맺은 것처럼 IT의 경쟁력을 다른 산업으로 전이시킨다는 측면에서 현 정부의 정책은 일리가 있다”고 평가했다.

문제는 얼마나 현실적이고 실현 가능성이 있느냐다. 유 전 장관의 이야기다.

“IT는 다른 기술이나 산업과 갑자기 섞어버릴 수 있는 게 아니다. 장기적인 계획을 갖고 추진해야 한다. 정보통신부가 여러 부처로 떨어져 나가면서 IT 정책을 얼마만큼 일관성을 갖고 통합 조정할 수 있느냐도 관건이다. 정보통신부가 있던 노무현 정부 때도 부처 간 조정이 쉽지 않았다. 정보통신부와 과학기술부 간 업무조정을 대통령이 직접 나서 해결한 적도 있다. 과연 현 정부에 부처 간 업무조정 기능이 있는지 모르겠다.”

일각에서는 IT 산업에 대한 이 대통령과 정부 당국자의 왜곡된 평가와 시각이 문제라고 지적한다. 이 대통령은 지난해 말 정부부처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디지털 정보화 시대에 묶이다 보면 빈부 격차를 줄일 수도, 일자리를 만들 수도 없다. 녹색 시대를 열어야 일자리 창출이 가능하다”고 말한 바 있다.

그런가 하면 곽승준 대통령 직속 미래기획위원장은 3월31일 정보통신정책연구원(KISDI) 주최 심포지엄 기조연설자로 나서 “방송통신위원회를 출범시킨 이명박 정부에서 IT가 죽었다는 말을 많이 한다. 옛 정통부를 그리워하는 그룹은 과거 정통부로부터 보조금을 받았거나 독점사업권을 받아 무한경쟁 시대에 편하게 지냈던 그룹”이라고 비판해 논란을 빚었다.

실제로 지난 3월 말 정부가 확정한 28조9000억원대의 추가경정예산안 중에 IT와 소프트웨어 융합상용화, 국가 DB 구축 등 IT 기반 디지털뉴딜 예산은 3360억원밖에 책정되지 않았다. 전체 추경의 1%가 조금 넘는 미미한 수준이다. 지식경제부의 IT 관련 올해 예산도 4600억원으로 지난해보다 14.2%나 줄었다. 한양대 장석권 교수(경영학부·디지털융합연구원장)는 “우리의 IT 산업은 수출을 중심으로 그나마 국제경쟁력을 지닌 분야다. 1인당 매출액이 가장 큰 고부가가치 산업이기도 하다. 이런 산업이 고용을 잡아먹는 산업으로 매도되고 있다. 정부가 경쟁력 있는 IT를 제쳐두고 산업 간 빈부격차 해소를 이유로 ‘약한 산업’을 지원하는 쪽으로 가는 느낌”이라고 지적했다.

세계의 IT 산업은 하드웨어에 서비스가 결합하는 추세다. 제품의 서비스화가 화두다. 그런데 정부의 조직 구조는 이런 추세와 방향이 맞지 않다. 지식경제부는 하드웨어적인 시각에 머물러 있고, 방송통신위원회는 방송통신 융합에 치여 제품의 서비스화에 해당하는 영역을 담당할 총괄부서가 없다. 대통령비서실에 IT 특보 자리 하나 신설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서승모 벤처기업협회 회장은 정부가 국내 IT 산업계에 청사진을 제시하지 않은 채, 시장원리에만 맡겨두는 것이 문제라고 지적했다.

“과거 정보통신부는 통신산업 발전을 위해 고민했는데, 방송통신위원회는 제재에만 관심 있을 뿐이다. 지식경제부가 하면 되지 않느냐고들 하는데, 모든 산업을 총괄하는 지식경제부는 IT를 디테일하게 다루지 못한다”며 “IT 특보에게 기대를 해봐야겠지만 단 한 사람이 얼마나 역할할 수 있을지 걱정이 크다.”

우리나라 IT 산업 기반에도 근본적인 문제가 있다. 소프트웨어 분야가 붕괴되면서 IT의 경쟁력 자체가 위협받는 상태다. 불법 다운로드를 방치하고 소프트웨어 산업을 건설업처럼 하도급 구조로 만들어버린 기존 정부의 책임이 크다. 방송·통신 사업자의 마인드와 산업구조가 개방형이 아니라 수직적 체제라는 점도 문제로 지적된다. 모(母)기업과 계열사 간에만 일을 주고받는 폐쇄적인 구조로는 세계시장과 기술의 변화를 따라잡기 어렵다는 것.

장석권 교수는 “현 정부의 정책 방향은 옳을지 모르지만 실행 전략은 전무하다. IT 산업을 범산업적 차원에서 종합적으로 짜야 하는데 그러지 못했다. 촛불집회로 정치적으로 힘을 얻지 못한 데다 금융위기로 ‘실탄’이 떨어진 상태에서 전략을 짜는 방법마저 구태에서 벗어나지 못했다”고 분석했다.

정통부 산하조직 개편 여전히 ‘미완성’

IT 업계는 이미 위기를 실감하고 있다. 벤처기업협회 관계자는 “세계경제포럼에서 발표한 글로벌 IT 보고서를 보면 2008년 한국의 ‘국가네트워크지수’는 11위로 전년 대비 2단계 하락했다”면서 “현 정부의 기술융합 정책이 먹을거리를 만들어내기까지는 많은 시일이 걸리기에 성장 잠재력이 있는 IT 분야에 대한 지원을 확대하는 긴급 처방이 절실하다”고 말했다.

IT 분야의 정부부처 산하조직 개편은 아직도 현재진행형이다. 구 정보통신부에서 행정안전부 소속으로 옮겨간 정보사회진흥원은 최근 정보화진흥원으로 간판을 바꿔달았고, 전파진흥원은 방송통신위원회와 지식경제부 사이에 업무조정이 안 돼 방치되다시피 있다가 정보통신방송산업진흥원으로 이름만 바꿔놓았다. 지난 5월7일 여러 개의 ‘진흥원’이 합쳐져 설립된 콘텐츠진흥원은 아직도 조직 재정비가 마무리되지 않은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출범 1년 반이 지난 지금까지 ‘일할 수 있는’ 체제조차 제대로 갖추지 못한 것이다. 관계자들은 일손을 놓은 채 깊은 한숨만 내쉬고 있다.



주간동아 2009.06.23 691호 (p22~23)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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