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9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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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재정 前 장관, 도 넘은 문중 사랑

2008년 경주이씨 익재 이제현 선생 묘소 참배 … 통일부 직원 동원, 본인도 개인 참관 의혹

  • 이정훈 동아일보 출판국 전문기자 hoon@donga.com

    입력2009-06-17 09:5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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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재정 前 장관, 도 넘은 문중 사랑

    개성시 장풍군 십탄리 서원동에 있는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해 제를 올리는 경주이씨 익재공파 문중 인사들.

    노무현 정부 말기인 2007년 11월29일 대남사업을 총괄하는 북한의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이 한국을 방문했을 때, 이재정 당시 통일부 장관은 지나치다 싶을 정도로 김 통일전선부장을 환대해 보수진영으로부터 거센 비난을 받았다. 당시 이 전 장관이 남파 간첩조직의 총책이기도 한 김 통일전선부장을 ‘필요 이상’으로 환대한 이유는 뭘까.

    이 전 장관은 진보노선을 견지한 성공회 신부로 오랫동안 활동해오다 통일부 장관에 발탁됐다. 그래서 보수진영은 그가 유지해온 노선 때문에 김 통일전선부장을 환대한 것으로 봤다. 그런데 이 전 장관의 환대에는 다른 요인이 작용했을 수도 있다는 단서가 발견됐다. 새로운 단서란 이 전 장관의 ‘본(本)’이다. 이 전 장관은 박혁거세를 세워 신라를 연 여섯 부족장의 일원인 ‘알평공’을 시조로 하는 경주이씨의 76세 손이다.

    이러한 경주이씨 문중에서 배출한 고려 말의 대학자가 52세 손인 익재 이제현(李齊賢·1287~1367) 선생인데, 그의 후손들은 경주이씨 내에서 익재공파로 불린다. 이 전 장관도 익재공파. 이제현 선생의 생가는 개성시 선죽동, 묘소는 개성시 장풍군 십탄리 서원동에 있다.

    이 장관 시절 통일부에 근무한 인사는 “2007년 이 장관은 경주이씨 익재공파 문중으로부터 이제현 선생 생가와 묘소를 참관하게 도와달라는 부탁을 받은 뒤 직원들에게 ‘북측과 접촉해 가능한지 알아보라. 여의치 않으면 이제현 선생 묘소 사진이라도 구하라’고 지시했다. 이에 따라 2007년 여름 개성공단관리위원회 간부가 북측의 도움을 받아 이제현 선생 묘소를 방문해 사진을 찍고 이 장관을 통해 경주이씨 문중에 ‘비밀리’에 전달했다”고 말했다.

    몇 달 후 김 통일전선부장은 이 장관의 환대를 받으며 한국을 방문해 노무현 당시 대통령을 면담하고 돌아갔다. 그리고 두 달 뒤인 2008년 1월24일 이 장관이 이끄는 통일부는 6명의 장관이 포함된 장·차관단의 개성공단 견학행사를 가졌다. 이 행사 도중 이 장관은 ‘개인행동’을 했다는 의혹이 제기됐다. 장·차관단에서 빠져나와 북한 모 기관 소속의 고위인사와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했다는 것. 그리고 보름여가 지난 2월12일 익재공파 대종회 인사 200여 명이 1박2일로 개성을 방문해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할 수 있도록 했다. 이때 이 장관은 개성에 가지 않았지만 통일부 직원을 동원해 문중 사람들을 도운 것으로 알려졌다.



    이 전 장관 “비밀로 해달라” 부탁

    문중 인사들이 방북했을 때 개성에서는 제1차 남북 도로분과위원회 회담이 열렸다. 이 회담에 참석하기 위해 개성에 간 통일부 간부 모씨는 회담장을 빠져나와 문중 사람들과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했다. 한 소식통은 “그 통일부 간부는 이 전 장관의 지시로 문중 사람들의 개성 방문은 물론, 이제현 선생 묘소 참관까지 도왔다”고 말했다.

    200여 명에 이르는 익재공파 문중 사람들의 이제현 선생 묘소 참관은 통일부의 힘만으로는 불가능하다. 북측의 협조가 있어야 한다. 한 소식통은 “익재공파 문중 사람들이 개성을 방문했을 때 북한 모 기관 소속 간부 10여 명이 평양에서 내려와 이제현 선생 묘소 참배는 물론, 문중 사람들의 북한 입경(入境)과 출경(出境)과정을 도왔다. 이 전 장관은 북측의 협조로 성사된 문중 인사들의 이제현 선생 묘소 참배를 비밀에 부치게 했다”고 전했다.

    익재공파 대종회의 관계자는 이 전 장관의 도움으로 현대아산을 통해 개성을 방문,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관한 것을 시인하면서 도움을 준 북한 기관은 ‘민협’이라고 밝혔다. 이 전 장관이 통일부 직원을 동원하고 북한 기관의 협조를 받아 자신과 익재공파 문중 인사들이 이제현 선생의 묘소를 참관하게 해준 것은 직권남용으로 볼 소지가 있다. 특히 이 전 장관이 장·차관단 방북 때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한 것은 오해를 일으킬 소지가 크다.

    이 전 장관은 측근을 통해 “문중 인사들의 부탁이 있어 통일부를 통해 북측의 초청장을 받아 문중 인사들이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관하게 해준 적이 있다”며 이를 시인했으나 장·차관단의 개성공단 방북 때 혼자 빠져나와 이제현 선생 묘소를 참배한 의혹에 대해서는 “그런 사실이 없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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