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8

2017.03.08

최성자의 문화유산 산책

신라 이야기의 보물창고

경주 대릉원

  • 문화재청 문화재위원 sjchoi5402@naver.com

    입력2017-03-03 15:41: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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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주 대릉원에는 곡선으로 이뤄진 고분이 첩첩이 연이어 있다. 푸른 하늘 아래 연둣빛 잔디가 검푸른 나무 잎사귀 때문에 명확하게 드러난다. 대릉원 사진은 아름다움을 잘 보여준다. 둥글게 올라간 고분 구릉이 원초적이고 아늑한 풍경을 이루면서 생명을 배태하는 모체로서 땅의 실체를 실감케 한다. 대릉원을 통해 경주를 새롭게 보게 만든 사람은 벨기에 사진작가 마크 드 프라이에(Mark De Fraeye)다. 1990년 프라이에가 펴낸 사진집 ‘한국 그 내면과 외면(KOREA Inside,  Outside)’(행림출판)에는 소나무 검은 줄기가 굴곡지게 뻗어나간 대릉원 사진들이 실려 있다. 한국미의 내적 아름다움을 이 사진으로 더 가까이 볼 수 있게 됐다.

    필자는 1998년 중국 베이징대 연수 시절 중국 석학 지셴린(季羨林·1911~2009)과 인터뷰하며 한국의 미를 설명한 적이 있다. 인도와 중국 문화의 거장인 그에게 한국 문화를 보여주는 시각 자료로 프라이에의 사진집을 선물했다. 대릉원은 타지마할이나 후마윤 묘지 같은 인도 왕릉과 다르고, 중국 명13릉이나 청동릉과도 다르다. 또 일본 오사카 사카이에 있는 인덕릉과도 크게 다르다. 왕릉 규모 면에서 백성에게 큰 부담을 주지 않고 독특한 아름다움을 가진, 문화 비교의 좋은 사례가 대릉원이었다.

    대릉원은 ‘미추왕이 대릉에 묻혔다’는 기록에 따라 1973년 경북 경주시가 붙인 이름이다. 이 대릉원은 신라 문화를 전해주는 커다란 전시장이다. 대릉원에서는 신라인의 이야기가 끊임없이 흘러나온다. 하늘에서 보면 대릉원은 도심 남쪽에 있다. 멀리 토함산이 동쪽에서 감싸주고 서쪽에선 단석산이 감싸고 있다. 불국사와 석굴암, 분황사와 황룡사에서 불공을 드리고 첨성대를 만들어 별을 관측하면서 동궁과 월지, 포석정에서 연회를 즐기던 신라의 왕과 왕비가 대릉원의 주인공이었다. 그래서 대릉원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기록되지 않은 이야기를 줄줄이 풀어낼 수 있는 보물창고다.

    대릉원에서 가장 큰 황남대총은 7층 건물 높이로, 표주박 모양의 쌍분이다. 북쪽 고분에 묻힌 사람은 여성인데 여기서 금관이 출토돼 남성만 금관을 쓴다는 통념이 깨졌다. 60세 전후의 남성이 주인공인 남쪽 고분에서는 국보 제193호인 ‘경주 98호 남분 유리병 및 잔’이 출토됐다. 이 유리병은 미추왕릉지구에서 나온 황금보검처럼 유럽과 인도, 그리고 동남아와 통하는 바닷길로 들어온 것으로 신라가 당시 서역이나 아라비아 등과 교류한 사실을 보여준다.

    지난해 경주를 찾은 관광객은 1095만 명이었다. 경주시는 역사관광자원인 대릉원을 세계적 고분공원으로 만드는 작업을 추진하고 있다. 이미 유네스코는 2000년 12월 신라 고분군이 밀집한 사적 제512호 ‘경주 대릉원 일원’과 남산, 월성, 황룡사터, 명활산성터를 묶어 세계문화유산 ‘경주 역사유적지구’로 지정했다. 경주시는 2021년까지 이 도심 고분들을 정비할 예정이다. 고분 속을 전시관으로 꾸민 천마총은 40여 년 만에 40억 원을 투입해 4월부터 리모델링에 들어간다. 국립중앙박물관이 재발굴한 금관총도 전시시설로 만들 계획이다. 쪽샘지구 제44호 고분에는 돔을 씌워 발굴체험관을 설치했다. 서봉총도 4월 재발굴에 들어간다.



    최양식 경주시장은 “대릉원을 중심으로 고분들이 도심 한가운데 집중적으로 위치해 이색적인 역사문화관광자원이 되고 있다”며 “이 지역을 고분공원으로 조성해 시민의 쉼터, 관광객의 체험관광명소로 만들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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