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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재봉이 만난 영화, 영화인|‘내 사랑’의 최강희

독특한 정신세계 엉뚱녀 役 “제 실제 모습과 닮았대요”

독특한 정신세계 엉뚱녀 役 “제 실제 모습과 닮았대요”

독특한 정신세계 엉뚱녀 役 “제 실제 모습과 닮았대요”
‘달콤, 살벌한 연인’은 저예산 영화의 가능성을 최초로 확인해준 작품이었다. 영화라는 매체에 반드시 거대 제작비가 투입될 때만 수익이 나는 것은 아니라는 사실을 ‘달콤, 살벌한 연인’은 증명해줬다. 10년 전 한국형 블록버스터라는 수식어를 달고 등장한 ‘쉬리’의 제작비는 23억원. 당시 한국영화 평균 제작비가 12억원 정도였다.

현재 한국영화의 평균 제작비는 50억원 내외로 급상승했다. 1000만명 넘는 관객을 기록한 영화도 ‘태극기 휘날리며’ ‘실미도’ ‘왕의 남자’ ‘괴물’ 4편에 이르지만, 전체적인 수익구조는 나빠지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달콤, 살벌한 연인’은 평균 제작비의 5분의 1도 안 되는 8억원을 투입해 100만 넘는 관객을 동원하며 저예산 영화의 새 모델을 제시했다.

‘달콤, 살벌한 연인’의 성공요인은 여러 가지가 있지만 여주인공 최강희의 역할이 매우 컸다. 최강희는 작품 전체를 끌고 가는 핵심이었다. 겉으로는 참하게 보이지만 연쇄살인을 불사하는 모습은 지금까지 한국영화에 등장하지 않은 새로운 캐릭터였다. 같은 아파트에 사는 순진한 청년 박용우가 작업을 걸어오면 내숭 100단의 그녀는 못 이기는 척 이끌려가면서도 실은 남자를 조종하는 엄청난 내공의 소유자였다.

최강희의 별명은 많지만 보통 ‘4차원의 천사’로 불린다. 남과 다른 정신세계를 가졌고 골수 기증 등 선행을 많이 하기 때문이다. 최강희는 아직도 ‘삐삐’를 사용한다. 휴대전화가 없는 그와 연락하려면 매니저들도 ‘삐삐’를 쳐야만 한다. 하지만 최강희는 자신이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졌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95년 미스 레모나로 데뷔 … 남모르게 선행 많이 해



“실제로 난 엉뚱하지 않다. 그렇게 착하지도 않다. 연애할 때는 애교도 떨지 못하고 소위 센 척할 줄도 모른다.”

최강희는 또 연예계 최고의 동안으로 꼽힌다. 청소년 드라마를 많이 하기도 했지만 피부가 맑고 깨끗해 나이보다 어려 보인다. 1977년생이지만 영화 ‘내 사랑’에서 대학생 역을 맡아도 전혀 어색하지 않았다. 95년 미스 레모나로 연예계에 발을 들여놓은 뒤 KBS 드라마 ‘학교’ 시리즈로 알려지기 시작했고, 드라마 ‘단팥빵’을 통해 연기자로 인정받았다.

영화의 경우 ‘여고괴담’ ‘와니와 준하’ 등에 출연했지만 스크린에서 인정받은 작품은 ‘달콤, 살벌한 연인’이다. ‘내 사랑’은 최강희의 독특한 캐릭터를 다시 한 번 확인해준 작품이다. 재미있는 것은 4차원의 정신세계를 가진 주원이라는 캐릭터가 실제 최강희와 비슷하다는 것이다.

“매니저가 시나리오를 가지고 왔을 때 어떤 인물이냐고 물었더니 첫마디가 ‘딱 누나예요’였다. 그런데 시나리오를 읽어보니 내가 생각하는 나와 여주인공은 조금 거리가 있었다. 하지만 주변 사람들이 ‘내 사랑’의 주원이를 나와 비슷하게 생각한다면, 내가 그렇게 비쳐졌다는 뜻이다. 그래서 ‘아, 사람들이 나를 이렇게 보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독특한 정신세계 엉뚱녀 役 “제 실제 모습과 닮았대요”
‘내 사랑’은 다중 플롯의 영화다. 3년 전 크리스마스 시즌에 크게 흥행한 ‘러브 액추얼리’처럼 여러 가지 사연을 지닌 다양한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동시진행형으로 펼쳐진다. ‘러브 액추얼리’ 이후 국내에서도 ‘새드 무비’ ‘내 생애 가장 아름다운 일주일’ 등 아류 영화가 제작됐다. ‘내 사랑’도 그와 비슷한 성격의 영화다. 모두 네 커플의 사랑 이야기가 등장한다.

‘연애소설’ ‘청춘만화’ 등을 만든 이한 감독의 세 번째 작품인 ‘내 사랑’에는 지하철에서 만나 사랑을 시작했지만 결국 지하철 사고로 헤어지게 되는 주원(최강희 분)과 세진(감우성 분), 아이가 있지만 혼자 사는 카피라이터 정석(류승룡 분)과 직장 동료에게 자신의 감정을 드러내지만 늘 무시당하는 수정(임정은 분), 복학한 과 선배를 짝사랑하지만 마음을 표현하지 못하는 대학생 소현(이연희 분)과 다른 여자를 사랑했지만 소현의 마음을 뒤늦게 알아채는 지우(정일우 분), 헤어진 연인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해 6년 만에 고국으로 돌아온 프리허그 운동가 진만(엄태웅 분) 등 네 커플의 이야기가 펼쳐진다.

병렬로 구성되는 네 커플 중 유일하게 교차되는 진만과 수정의 만남을 제외하면, 이들의 이야기는 서로 무관하게 동시다발로 진행된다. 일목요연하게 선형적으로 전개되는 구조를 선호하는 대중에게 이런 이야기 방식은 낯설고 비상업적인 것이었다. 하지만 ‘러브 액추얼리’의 성공으로 수평적 다중 플롯 전개에 대한 거부감이 희석됐고, 오히려 새로운 이야기 형식을 받아들이는 수용의식이 진전되고 있다.

‘러브 액추얼리’에서 크리스마스가 이야기의 중심이었다면 ‘내 사랑’에서 중심 구실을 하는 것은 개기일식이다. 3년 주기로 찾아오는 개기월식과는 달리, 태양이 달 그림자에 가려 보이지 않는 개기일식은 일정한 주기가 없다. 태양과 달이 만나는 개기일식은 ‘내 사랑’에서 헤어진 또는 갈등을 빚었던 남녀가 진정한 사랑으로 다시 만나는 상징이다.

“주원은 세진과 데이트한 지 1년이 지났지만 아직도 그를 남자친구로 인정하지 않고 엉뚱한 말을 하면서 그의 속을 태운다. 하지만 알고 보면 주원은 다정하고 속 깊은 여자다. 촬영하면서 내가 내 속의 주원에게 한 말은 ‘곱게 미쳤어’였다. 귀엽고 사랑스러우면서도 좀 황당하다.”

옷과 소품 직접 구입하고 의상 콘셉트 선정에도 참여

독특한 정신세계 엉뚱녀 役 “제 실제 모습과 닮았대요”
주원과 세진 커플의 이야기는 주로 지하철을 매개로 전개된다. 최강희가 나오는 장면은 엉뚱하고 유쾌하며 발랄하다. 주원은 세진의 생일날 지하철 사고로 그의 곁을 떠나지만, 세진은 그녀를 잊지 못해 지하철 기관사로 취직한다. 그리고 그들이 늘 데이트했던 차량을 운전하며 주원을 추억한다.

“감우성 선배가 너무 좋아서 촬영할 때 ‘감님’이라고 불렀다. 그는 사람을 참 편하게 해준다. 먼저 말 걸지도, 밥 먹자고 하지도 않는다.”

최강희가 주원 캐릭터와 비슷하다는 말이 나오는 것은 그만의 독특한 삶의 방식 때문이다. 감우성과 호흡이 잘 맞는 이유만 봐도 알 수 있다. 보통사람 같았으면 오히려 불편해했을 행동들이 그에게는 자연스러운 것이다.

‘내 사랑’ 촬영 현장에서 최강희의 또 다른 이름은 최 코디였다. 트렌트 세터답게 그는 영화 속 캐릭터를 연구하고 그에 맞는 의상 선정에도 참여했다, 인터넷 쇼핑몰을 운영하고 있는 그는 눈에 띄는 옷과 소품을 구입해 주원이라는 독특한 캐릭터를 연출했다.

자신이 기르는 고양이처럼 타인에게 의존하지 않으며, 내면의 방을 넓혀나가고 있는 최강희는 대중의 일시적인 관심을 받는 스타가 아니라 진정한 연기자로 성장하고 있다. 그는 이제 소녀 이미지에서 벗어나 엉뚱하면서도 신선한 상상력으로 자신의 캐릭터를 창조하고 작품에 생기를 불어넣는 것이다.



주간동아 617호 (p86~8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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