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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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진흙탕 개싸움도 정치판보단 나을 것”

박관용 전 국회의장, 후배 정치인들에게 쓴소리

  • 정리 : 엄상현 기자 gangpen@donga.com

    입력2007-11-07 15:1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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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진흙탕 개싸움도 정치판보단 나을 것”
    17대 총선에서 국회에 진입한 정치인 가운데 62%가 신인이었다. 전후(戰後)세대, 진보적 사고를 가진 젊은 세대가 국회를 장악했다고 볼 수 있다. 그래서 나는 의장직을 그만두면서 ‘새로운 의회문화, 토론문화, 타협문화가 생겨나겠구나’라고 기대했다. 국회 운영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대화, 토론, 타협이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전혀 달라지지 않았다. 오히려 ‘과거의 잘못된 정치문화를 더 충실히 답습하는 게 아닌가’라는 생각을 떨칠 수 없다. 실망스럽다. 특히 대선을 앞두고 예산심의와 국정감사장에서 보여준 그들의 모습은 정말 이해하기 어렵다. 국회의원 본연의 의무를 망각하고 있는 게 아닌가 싶을 정도다.

    “여야 모두 상대방 헐뜯기에만 열중”

    과거에는 없었던 심한 욕설까지 오가는 모습을 보면서는 할 말을 잃었다. ‘이 ·#52059;·#52059;’ ‘저 △△’라는 욕을 보통으로 한다. 군사정권과 싸울 때도 그러진 않았다. 과거엔 상대당 의원이 질의를 하면 “야, 치워”라거나 의원들이 단체로 “우~” 하면서 야유를 보내는 정도였다.

    국회의원이 욕을 한다는 것은 스스로에 대한 명예의식이 없는 것이다. 요즘 젊은이들의 경향인지는 모르겠지만, 그런 자질 없는 국회의원이 왜 그렇게 많은지 걱정이다.



    정치인이 욕을 한다는 것은 국회기본법은 물론 국회의 기본정신도 저버리는 행위다. 최소한 국회라는 레일 위에서 벗어나지는 말아야 하는 것 아닌가. 요즘 정치판을 보면 ‘진흙판의 개싸움도 이렇지 않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내가 만일 정치를 그만두지 않고 지금 저 정치판에 몸담고 있다고 상상하면 정신이 아찔해진다.

    이렇게 된 것은 국회의원 충원 과정에 문제가 있었기 때문이다. 17대 공천을 보면 여야를 막론하고 세대교체만이 정치를 바꾸는 최선의 방법이라고 생각했던 것 같다.

    또 다른 문제는 과거 군사독재 시절을 너무 오래 겪으면서 국회는 으레 싸우는 곳이라는 타성에 젖었기 때문은 아닌가 싶다. 과거 민주 대 반(反)민주 시대의 국회 모습을 상황이 전혀 다른 요즘에도 여전히 답습하고 있는 것이다. 이에 대한 인식의 정리가 필요하다.

    국회의원 개개인이 갖고 있는 국회의원직에 대한 잘못된 선입관도 문제다. 국회의원이 되면 피감기관들로부터 대접받고 그들에게 큰소리치는 것이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것 같다. 이는 착각이다. 국민이 정치인에게 지나치게 실망하거나 좌절하면 아노미 현상이 나타난다. 정치를 불신하고 정치에 무관심한, 민주정치에서 가장 위험한 상황이 초래되는 것이다. 우리 정치는 이미 그런 상황에 도달해 있다. 이는 입법 기능의 상실을 의미한다.

    지금은 독립운동 시절도 아니고, 정통성 없는 권위주의 정권과 싸우는 시대도 아니다. 적어도 절차적 민주주의는 실현된 단계다. 이제는 정책적 논리와 비전으로 싸우고 이해하는 정치를 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정치가 발전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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