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71

2017.01.11

커버스토리

차병원 제대혈 시술 뒤엔 특혜 있다?

영리업체와 기증제대혈은행 다 운영한 차병원그룹…공공 제대혈은행 애꿎은 피해

  • 송화선 기자 spring@donga.com

    입력2017-01-06 16:26: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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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차의과대학교 분당차병원은 ‘국가 지정 제대혈 이식 및 세계 최초 글로벌 줄기세포 임상시험 센터’를 보유하고 있습니다. (중략) 또한 보건복지부의 공식 기증제대혈 은행으로 지정되어, 제대혈 공공의료 인프라 형성에 기여하고 있습니다.’

    차병원그룹이 운영하는 가족제대혈은행 ‘아이코드’ 인터넷 홈페이지 소개 글의 일부다. 아이코드는 제대혈 보관 위탁자로부터 99만~380만 원을 받고 최대 100년까지 제대혈을 보관해주는 업체다. 현재 국내에는 보건복지부 허가를 받고 이런 식으로 영업하는 회사가 8곳 있다. 하지만 이 가운데 홈페이지에 ‘보건복지부의 공식 기증제대혈 은행으로 지정’ 같은 문구를 쓸 수 있는 곳은 아이코드뿐이다. 가족제대혈은행과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을 동시에 운영하는 곳은 차병원그룹이 유일하다. 



    부당한 특혜, 예정된 사고

    2000년대 초반부터 우리나라에 제대혈 보관 열풍이 불면서 가족제대혈은행이 성업했다. 이 과정에서 갖가지 문제가 발생하자 정부는 2011년 제대혈법을 만들고 제대혈 관련 사업 규제에 나섰다(20쪽 기사 참조). 이와 동시에 몇몇 기증제대혈은행에 국고를 지원해 장기적으로 제대혈을 공공재로 만들려는 노력도 시작했다. 서울대병원 서울시보라매병원이 운영하는 서울시 제대혈은행, 대구파티마병원 제대혈은행, 가톨릭대 가톨릭조혈모세포은행제대혈은행 등 3곳이 이때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으로 선정됐다.

    차병원은 2014년 여기에 추가됐다. 동아대병원이 운영하는 부산·경남지역 제대혈은행과 함께였다. 제대혈은행 업계 관계자는 “현재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 운영 병원 5곳 가운데 가족제대혈은행 사업까지 하는 곳은 차병원그룹뿐이다. 이 때문에 지정 당시에도 영리 목적의 제대혈은행을 운영하는 회사가 국고 지원을 받아 기증제대혈은행 사업까지 하는 것이 적절한가 하는 의문이 일었다”고 전했다.  



    차병원그룹은 박근혜 정부에서 ‘의료·바이오산업’ 선두주자로 꼽히며 승승장구했다. 지난해 1월 대통령이 주재한 미래창조과학부 등 6개 부처 업무보고가 경기 성남시 차병원그룹 산하 차바이오컴플렉스에서 열렸다. 대통령 업무보고를 행정기관이 아닌 민간기업 건물에서 진행한 건 매우 이례적이다. 이 일은 차병원그룹의 위상을 보여주는 단면으로 꼽혔다.

    지난해 7월 차병원그룹에 속한 차움병원 줄기세포연구팀이 ‘체세포복제 배아줄기세포연구’에 대한 조건부 승인을 받은 것도 눈길을 끌었다. 이른바 ‘황우석 사태’ 이후 국내 연구진이 국내에서 난자를 사용해 배아줄기세포 관련 연구를 진행한 건 단 한 번뿐이었다. 해당 연구가 실패한 뒤 7년간 중단됐던 난자 이용 연구 승인을 둘러싸고 사회적 논란이 일었고, 논의 진행 과정에서 반대 의견을 밝힌 보건복지부 담당과장이 교체되기도 했다. 하지만 해당 연구 계획은 끝내 정부 승인을 받았다. 역시 ‘차병원의 힘’이 인구에 회자된 사건이다.

    제대혈업계 관계자들은 2014년 차병원이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 사업자로 선정됐을 때도 관련 업계에서는 비슷한 의미에서 화제가 됐다고 귀띔했다. 한 업계 관계자는 “과거엔 정부가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을 유치하려면 가족제대혈은행 사업을 중단해야 한다고 요구한 것으로 안다. 이 때문에 대구파티마병원은 2011년 이전에 위탁 보관 중인 가족제대혈을 관리할 뿐 이후 고객을 추가 모집하지 않았다. 그런데 차병원그룹은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은 것”이라고 밝혔다.

    서류상으로 볼 때 아이코드 운영사는 ‘차바이오텍’이다.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을 운영하는 차병원과는 법인이 다른 셈이다. 하지만 업계 관계자들은 “차병원그룹에 속한 두 회사가 아무 관계가 없다고 누가 말할 수 있나. 게다가 두 제대혈은행이 같은 건물에서 같은 설비를 공유하고 있다. 이 때문에 지정 과정에서부터 특혜 시비가 인 것”이라고 설명한다. 특히 아이코드가 홈페이지 등에서 차병원그룹의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 운영 사실을 홍보하며 이를 신규 고객 유치 수단 등으로 활용하자 논란은 더욱 거세졌다. 업계에선 “결과적으로 정부가 국가 예산을 들여 사기업 영업을 도와준 셈 아니냐”는 비판이 나왔다.  



    차병원 때문에 공공 제대혈은행 피해

    최근 차병원그룹은 바로 이 기증제대혈은행에 들어온 제대혈 일부를 오너 일가에게 불법시술한 것으로 확인됐다. 이에 대해 제대혈업계 관계자들은 “부당한 특혜에 예정됐던 사고”라고 입을 모은다. 일각에서는 이제라도 정부가 차병원에 지원했던 예산을 환수해 다른 국가 지정 기증제대혈은행에 나눠줘야 한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정부의 기증제대혈은행 관련 예산이 매년 20억 원 안팎으로 한정된 상황에서 차병원이 예산 일부를 잠식해 다른 기증제대혈은행들 은 사업에 차질이 생겼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서울시 제대혈은행은 2014년 14억2100만 원이던 국고 지원이 이듬해 10억9500만 원으로 줄었다. 지난해 지원액도 11억 원에 그쳤다. 이 2년 동안 차병원은 각각 2억5000만 원과 2억6800만 원의 나랏돈을 받았다. 서울시 제대혈은행은 2014년부터 3년간 국내 치료용 이식 제대혈을 각각 84%, 79%, 93% 공급할 정도로 규모와 운영 관리 면에서 압도적인 위상을 가진 기관이다. 평소 매년 2000유닛 이상 기증제대혈을 신규 유치해온 이 기관은 예산이 갑자기 축소돼 2015년 1625유닛, 2016년에는 1639유닛 분량의 예산밖에 받지 못했다. 그러나 사전에 기증을 약속한 산모들의 뜻을 저버릴 수 없어 자체예산을 들여 2015년 기증제대혈 1902유닛을 신규로 받았다. 서울시 제대혈은행 관계자는 “산부인과병원에 나가 제대혈을 채취하는 것부터 보관까지 다 돈이 든다. 지난 2년간 예산이 줄면서 산모로부터 제대혈 기증 제안이 와도 ‘죄송한데 지금은 받을 수 없다’고 말한 경우도 적잖았다. 그때마다 안타까웠는데, 파이(예산)를 나눠간 업체에서 큰 사고가 나 당황스럽다”고 밝혔다.

    이정림 대구파티마병원 기증제대혈은행 은행장(혈액종양내과 전문의)은 “일본은 동일본 대지진 여파로 원자력발전소 사고가 났을 때 피폭자를 도쿄로 긴급 이송해 제대혈 이식치료를 했고, 그 덕에 일부 피해자가 목숨을 건졌다. 국가에서 믿을 수 있는 제대혈은행을 운영하고 잘 관리하는 건 국민 안전 확보를 위해 반드시 필요한 일”이라며 “이번 사고를 계기로 기증제대혈 관리와 공공 제대혈은행 운영 등에 대한 정책이 개선되길 기대한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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