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허문명 기자의 禪 이야기

‘아웃사이더’ 혜능의 佛法 전수

  • 동아일보 문화부 기자

‘아웃사이더’ 혜능의 佛法 전수

선종은 인도의 마하가섭 이래 28대조 제자인 달마(達磨, ?∼534) 스님이 붓다의 의발(衣鉢·가사와 발우, 즉 스님의 옷과 밥그릇으로 법을 전함을 뜻하는 상징물)을 전수받아 중국에 세운 종파다. 그의 법통은 제6조 혜능에게까지 전수돼 이들을 합쳐 33조사(祖師)라 부른다.

중국 선종은 6조 혜능에 이르러 인도로부터 건너온 외래사상이 아닌, 중국적 혁신 이념으로 꽃핀다. 혜능은 논리의 늪에 빠진 이론 불교, 지식 불교를 건져내기 위해 아예 논리를 뛰어넘은 초(超)논리, 탈(脫)논리를 시도하여 기존의 통념과 가치관을 일거에 바꾼 일종의 개신교주(改新敎主), 종교 개혁가에 비유된다.

사상이란 것도 생명이어서 그 이론 체계가 아무리 정밀하고 엄정하다 해도 오랜 세월을 지나다 보면 말이 말을 낳고 글이 글을 낳는 자체 논리의 늪에 빠질 수 있다. 여기서 벗어나려면 다시 처음으로 돌아가는 길밖에 없다. 사람도 그렇지만, 사상도 처음으로 돌아가는 일만큼 어려운 것이 없다.

일자무식 나무꾼 혜능은 시조 달마로부터 내려온 ‘관념’의 불교를 ‘실천’의 불교로 돌려놓았다. 혜능은 ‘사람에게는 남북의 구별이 있지만, 불성에는 남북의 구별이 없다(人卽有南北 佛性無南北)’, ‘수행은 집에서도 가능하다. 굳이 수행을 위해 절에 가야 할 이유는 없다(若欲修行 在家亦得 不由在寺)’, ‘중생이 곧 부처(衆生是佛)’ 같은 어록에서도 알 수 있듯, 깨달음으로 향하는 길이 따로 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혜능이 중국 선종사에서 차지하는 위치가 중요한 이유가 그것이다.

그가 중국 선종의 6조가 되는 과정 역시 드라마틱하다. 그는 철저히 아웃사이더였다. 길 가다 금강경 구절에 반해 5조 홍인대사를 찾아 출가했지만, 글을 읽지 못해 경전 공부도 하지 못했으며 선방에도 들어가지 못하고 절의 허드렛일이나 하는 노역꾼으로 살았다. 그런 그가 법을 전해 받았으니 당연히 반발이 거셌다.



듣도 보도 못한 오랑캐에게 법을 빼앗겼다며 산중이 들끓자 혜능은 몸을 숨겨야 할 지경에까지 놓인다. 이를 예상한 스승 홍인대사는 “너에게 법을 전한 것으로 인해 다툼이 생길 것이니 앞으로 너의 뒤로는 전하지 않아도 좋다”고까지 이야기했다.

혜능은 스승에게 법을 전해 받자마자 깊은 산골짜기로 피해 그곳에서 사냥꾼들과 뒤섞여 장장 15년을 보냈다. 그러다 서기 676년 이제 비로소 자신의 뜻을 펼 날이 왔다고 느끼고 남해(南海)로 떠났다. 그의 나이 마흔이었다. 혜능은 이후 소주의 조계로 가서 40여년 동안 교화를 폈다. 그의 문하에는 사람들이 구름같이 모여들었다. 자비로우며 쉬운 그의 불법은 제자 43명과 수천여 명에 이르는 신도들을 낳았다. 혜능은 생전에 사람들이 “누가 다음 법을 이어나갈 것이냐”고 물어오면 “앞일은 묻지 않는 게 좋다. 내가 죽고 20년 뒤에나 일이다”라고 답했다. 76세이던 어느 날, 대사는 별안간 제자들에게 “이젠 작별이구먼” 한마디를 남기고 마침내 앉은 채로 열반했다.



주간동아 2005.11.22 511호 (p8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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