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07

2005.10.25

‘선행주자’ 잡으려고 송구

  • 입력2005-10-19 17:0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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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준혁이 순자를 처음 만난 건 프로야구 2005년 시즌이 끝난 10월 말이었다. 6개월여에 걸친 장기간의 페넌트레이스를 마치고 모처럼 시간을 내서 라이온즈팀 동료 선수 몇 명과 가진 그룹 미팅에서였다. 2명의 여성을 눈여겨본 준혁은 현대무용을 전공하는 이지적인 분위기의 소연을 제쳐놓고, 한국무용을 전공하는 순자를 택했다.

    “순자 씨, 혹시 82년 서울에서 벌어진 세계야구선수권대회 아세요?” “그때 저는 태어나지도 않았는데, 아무튼 김재박의 개구리 번트와 한대화의 결승 3점 홈런으로 승리를 따낸 것으로 알고 있어요.” “우리가 승리를 따 낸 게 아니라 일본이 우리에게 승리를 헌납한 거예요.” “일본이 우리에게 승리를 내주었다고요?”

    순자가 눈이 휘둥그레지며 의아한 표정으로 되물었다. “그날 게임의 분수령은 8회말 한국 공격이었어요. 원 아웃에 2대 2 동점 상황에서 장효조가 타석에 들어섰을 때 주자가 1·3루에 있었는데, 3루 주자는 개구리 번트를 댔던 김재박이었고 1루 주자는 이해창이었어요. 장효조는 2루 앞쪽으로 강한 땅볼을 쳤죠. 그때 일본의 2루수 하야시는 3루 주자 김재박을 잡으려고 홈으로 공을 던져서 아웃시켰습니다.”

    “그래서 투 아웃에 1·2루가 되었겠네요.”

    “그게 문제였단 말입니다.”



    “왜요?”

    “그러니까 그때 하야시 선수의 플레이가 보이지 않는 실책, 즉 야수선택이었단 말입니다. 야구전문 용어로 본 헤드(Bone-head)라고도 하지요. 만약 하야시가 홈으로 뛰어들던 김재박을 놔두고 2루로 달리던 이해창과 타자 주자 장효조를 잡는 더블플레이를 시도했다면 어쩌면 한대화의 3점 홈런은 없었을 겁니다.”

    준혁은 폼을 잡으며 야구 규칙을 설명했다. “아무튼 야수선택은 준혁 씨도 했어요. 준혁 씨가 택했어야 할 사람은 우리 친구들 중에 소연이어야 했어요. 지금 소연이가 얼마나 실망하고 있는 줄 아세요?”

    “쳇, 야구장 밖에서도 본 헤드 플레이를 했군.”

    준혁은 암팡지게 토라져 앉은 순자의 콧잔등에 대고 혼자서 중얼거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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