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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축물과 함께하는 파리 여행④

‘철학’이 숨쉬는 라 빌레트 공원

  • 류혜숙/ 건축전문 자유기고가 archigoom@naver.com

‘철학’이 숨쉬는 라 빌레트 공원

‘철학’이 숨쉬는 라 빌레트 공원
파리 북동쪽에 자리한 라 빌레트 공원은 비도시적인 고립된 전통 공원과는 다르다. 원래 운하와 가축 도살장이었던 이곳은 현대 첨단 과학기술의 발전상을 집약해놓은 과학 단지이며, 3차원의 동선으로 계획된 움직임이 있는 현대식 공원이다. 또한 1979년 미래형 도시를 만들기 위한 파리시의 거대한 연구과제 가운데 대통령이 직접 주관한 건축 계획의 하나이자, 20세기 최고의 철학인 해체주의를 접목시킨 공간이다.

건축가 베르나르 추미의 라 빌레트 공원 계획이 국제현상설계 공모전에서 1등으로 당선되었을 때 프랑스 건축계는 신선한 충격을 받았다. 직접 설계한 건축물도 많지 않고, 그리 잘 알려지지도 않은 채 이론에 빠져 있던 서른아홉 젊은 건축가의 설계는 단일 건물 계획이 아닌 도시 속에 도심공원과 음악대학, 무용학교, 과학관 등을 수용하는 작은 도시를 건설하는 것이었다. 그래서 라 빌레트를 방문할 때는 안내소를 먼저 찾기를 권한다. 그곳에는 공원으로서는 결코 작지 않고, 도시로서는 작다고 할 수 있는 30ha의 라 빌레트를 한눈에 파악할 수 있는 모형이 마련되어 있다.

점, 선, 면 연속과 중첩 3차원 동선

라 빌레트 공원의 컨셉트는 점, 선, 면의 연속과 중첩에 있다. 점은 가장 먼저 방문객들의 눈길을 끄는 폴리(Folies)라는 10m 높이의 붉은색 건물로 설명된다. 전체 대지를 분할하는, 120m 간격으로 설치된 그리드 위에 25개의 폴리가 엄격하고 반복적으로 놓여져 있다. 에나멜 칠이 된 철제의 붉은 폴리는 거대한 대지 내에서 위치 인식 수단으로도 작용하며, 일부분은 문화적 공간이나 맥도널드 같은 상업적 공간으로 쓰이고 있다. 그러나 대부분의 폴리들은 그 자체가 아무런 기능적 요구도, 의미도 없다. 그것은 사용자에 의해 수많은 의미를 가질 수 있는 건축적 의미론의 해체를 상징한다.

주 동선으로 대지를 동서로 가로지르는 수로를 따라 놓인 다리와 남북으로 놓인 물결 모양의 캐노피 보행로는 선의 요소다. 다리와 보행로는 각 폴리들을 통과하며 중첩되어 있고 크리스티앙 포잠박이 설계한 음악 도시, 19세기에 메론돌이 설계한 철조 건물인 그랑 홀, 그리고 주 기능을 가진 폴리들로 동선을 유도한다.



‘철학’이 숨쉬는 라 빌레트 공원

사람들에게 이벤트로 제공되는 ‘폴리’ 구조물. 푸른 잔디광장에 있는 ‘땅에 묻힌 자전거’.
산책로의 음향 시설 (왼쪽부터).

또 하나의 선적 요소인 산책로는 드라마틱한 곡선이다. 베르나르 추미 자신이 ‘시네마적 유보로’라고 부르는 산책로는 폴리와 각각의 주제를 가진 60개의 작은 공원을 이어준다. 그중에서 알렉상드르 슈메토프가 디자인한 대나무 정원은 이국적인 휴식공간이다. 우거진 대나무 숲길을 걷다 보면 콘크리트 벽으로 둘러싸인 원형 공간이 나온다. 극도로 정적이고 정신적인 그 공간에서 울리는 음향 효과는 완벽한 동양적 감성으로 이끈다. 그외에도 안개정원, 드래건 정원, 거울정원, 바람과 모래언덕의 정원 등이 존 헤이덕, 장 누벨, 다니엘 뷔랑 등의 후기 모더니스트들에 의해 특색 있게 디자인되어 있다.

마지막으로 면적인 요소는 공원 내 넓게 펼쳐져 있는 푸른 잔디광장이다. 7ha에 이르는 원형과 삼각형의 잔디밭에는 청동 주조물이나 ‘땅에 파묻힌 자전거’와 같은 즐거운 조형물들이 즐비하다. 또한 라 빌레트의 중추라 할 수 있는 과학관은 아드리엥 페인실버가 설계한 3만m 규모의 전시장으로, 원래 도살장으로 계획되어 골조까지 공사가 된 상태에서 시민을 위한 과학관으로 용도 변경된 전시장이다.
‘철학’이 숨쉬는 라 빌레트 공원

라 빌레트 공원의 대표적인 건물인 과학관과 기하학적인 구 형태의 영화관 ‘제오드’.

외부환경과의 교감을 위해 남쪽 전면을 유리로 마감했는데 이는 구조 건축가 피터 라이스의 정확한 계산에 의한 것이었다. 과학관 내에 만일의 사태를 대비한 소방차 도로가 있을 만큼 그들의 설계는 치밀하다. 발 디딜 틈 없이 사람들로 북적대는 그곳에서 직접 체험을 통해 과학을 하나의 놀이로 향유하고 있는 아이들의 모습은 부럽기 그지없다.

과학관 앞의 제오드는 순수한 기하학적인 구(球) 형태로 거대한 360도 스크린이 있는 영화관이며, 중앙 광장을 가로질러 동쪽에 위치한 문화공연장 제니스는 가운데를 지지하는 기둥이 없이 틀에 천을 씌운 구조물로 이동식 좌석 배치가 돋보이는 공간이다.

베르나르 추미는 라 빌레트에서 영화적 상상력을 이야기한다. 점·선·면의 연속성은 시퀀스(장면)라는 영화 언어로 설명되고, 방문객들은 시간에 따른 이동 속에서 그러한 공간적인 변화를 체험한다. 숲이 우거진 산책로에서 울리는 음향들, 폴리에 올라 저마다의 이벤트를 가지는 사람들, 영화를 보고 연주회를 즐기고 과학을 배우는 라 빌레트는 자연과 기술, 그리고 철학이 만난 기념비적인 건축물이다.



주간동아 2005.08.09 497호 (p68~69)

류혜숙/ 건축전문 자유기고가 archigoom@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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