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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정원의 위험한 짜깁기

정수장학회 조사 과정서 ‘강제 헌납’으로 결론 내리고 증거 꿰맞추기 ‘역력’

  •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국정원의 위험한 짜깁기

국정원의 위험한 짜깁기
국가기관의 ‘과거사 바로잡기’는 불편부당(不偏不黨)해야 한다. 자료가 턱없이 부족하고 관련자 진술이 어긋날 때는 더욱 그렇다. 국가기관의 발표가 후세에 ‘검증된 역사’로 고스란히 기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과거사를 바로 세운다’면서 ‘사실과 다른’ 역사를 만들어내서는 안 되는 것이다.

국가정보원(이하 국정원) 과거사건진실규명을통한발전위원회(위원장 오충일·이하 진실위)가 7월22일 발표한 ‘부일장학회 헌납 및 경향신문 매각에 따른 의혹 조사결과’가 그렇다. 조사결과 중 부일장학회 부분은, ‘추정’과 ‘판단’이 결론을 뒷받침하고 있어, 국정원 진실위의 ‘위험한 짜깁기’로까지 보인다. 이에 대해 진실위는 “이 사건을 적극적으로 해석했다”(한홍구 위원·성공회대 교수)는 변명 아닌 변명을 내놓고 있다.

진실위는 ‘부일장학회 등 헌납에 따른 의혹 사건’을 “62년 고 김지태(부일장학회 설립자) 씨가 석방의 대가로 본인 소유의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과 부일장학회 장학사업을 위해 준비해둔 토지 10만147평을 ‘강압적으로’ 국가에 기부토록 한 사건”이라고 규정했다.

“자료 적고 관련자 진술 엇갈려 애로”

논란의 핵심은 재산 헌납 과정에서의 강제성 여부였다. 또 국정원의 전신인 중앙정보부(이하 중정)가 헌납 과정에 개입했는지를 밝혀내는 것도 중요했다. 진실위는 부일장학회 헌납은 강압에 의한 것으로 결론지으면서, “당시 중정은 헌납의 계기가 된 수사를 담당한 것은 물론이고 헌납된 재산 중 특히 토지의 처리 과정에 주도적으로 개입했다”고 지적했다.



그런데 진실위의 조사는 결론을 내려놓고 증거를 맞춰 갔다는 비판을 들을 만큼 허술하다. 판단과 추정에 근거한 ‘위험한 짜깁기’라는 말도 그래서 나온다. 부일장학회 재산 헌납 사건이 국가가 법적인 근거 없이 개인의 재산을 ‘강탈하거나 헌납받고’ 죄를 용서해준 자유민주주의의 기본 질서를 해친 사건이라는 데 이의를 제기하기는 어려우나, 추정과 판단에 근거한 조사결과 발표는 문제가 있다.

진실위는 “부일장학회 사건이 40여년 전에 발생한 오래된 사건으로 당시 정황을 명확히 확인할 수 있는 자료가 부족하고 더욱이 관련자 진술도 서로 엇갈리는 등 진실 규명에 어려움이 많았다”고 토로하면서도 ‘추정’과 ‘판단’에 근거한 주장을 쏟아내며 기자회견까지 했다.

진실위 보고서는 기존 언론 보도 내용과 관련자 진술을 토대로 해 강탈에 무게를 두고 적극적으로 해석한 수준이다. 진실위가 밝혀낸 ‘새로운 팩트’는 찾아보기 힘들다. 국정원이 보관 중인 관련 문서와 박용기 당시 중정 부산지부장을 비롯한 중정 관계자와의 면담 내용 등이 추가됐지만, 새롭게 눈에 띄는 내용은 거의 없다.

국정원의 위험한 짜깁기

국정원 진실위는 “기부승낙서의 ‘六月 二十日(유월 이십 일)’에 한 획이 가필돼 ‘六月 三十日(삼십 일)’로 변조됐다”고 밝혔다(맨 오른쪽). 그러나 정수장학회가 보관하고 있는 문서들엔 二十日(원 안)로 기록돼 있다.

진실위의 발표 이후 주요 언론은 “1962년 부일장학회 헌납은 최고 권력자이던 박정희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언론 장악 의도와 중앙정보부의 강압에 의한 것으로 조사됐다”고 보도했다. 진실위의 조사결과가 역사적 사실로 자리매김해가고 있는 것이다. 진실위가 과거사를 바로 세운다며 ‘사실과 다를 수도 있는’ 발표를 했기 때문이다.

진실위가 제시한 ‘몇 안 되는’ 논거를 검증해보자. 진실위는 “김지태 수사는 박정희 당시 국가재건최고회의 의장의 지시가 있었다고 보는 게 타당하다”고 밝혔다. △당시 중정 부산지부장 박용기 씨가 박정희 의장의 지시를 받았다고 주장했고 △박 의장의 지시가 있기 전에 박 씨가 작성한 부산지부 실태보고서에선 김 사장을 긍정적으로 평가했다는 게 이 같은 판단의 정황 증거다.

그러나 박 씨는 자신이 수사한 김 씨를 풀어주는 것에 반발했다가 박 전 대통령에게 ‘찍혀’ 요직에서 밀려난 인사다. 박 씨는 2000년 4월 ‘진주지’에 기고한 글에서 “62년 정초 연휴간 부산을 방문한 박 의장을 독대한 자리에서 김지태 구속 수사 지시를 받았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박 씨는 진실위가 진주지 기고문을 문자 그대로 해석했다고 주장한다.

“독자적인 수사였다. 박 전 대통령이 수사를 잘하라고 지시한 일은 있다. 박 전 대통령은 부산에서 군수기지사령관을 할 때 김 씨에 대한 안 좋은 소문, 즉 비위에 대한 평판을 들은 것으로 보인다.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당연히 해야 할 수사를 잘하라고 챙기는 수준이었다.”

진실위는 4월8일 면담에서 박 씨가 “62년 1월 박 의장 독대 시 김 씨에 대한 특별한 수사 지시는 없었으나, 알아보라는 언질을 받았다”고 진술했다고 밝혔다. 박 씨는 김 씨의 부정부패는 반드시 짚었어야 했다고 주장한다. 그는 지난해 9월 ‘주간동아’와 한 유일한 인터뷰에서도 박 전 대통령의 지시는 “김지태에 대해 잘 알아보라”는 수준이었다고 밝힌 바 있다. 그러나 진실위 관계자는 “박 씨가 말을 바꾼 것”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기부승낙서 날짜 변조가 유일한 강탈 물증

진실위의 조사결과 보고서에는 박 씨가 김 씨를 조사하게 된 경위에 대해선 자세히 나와 있지 않다. 박 씨는 당시 김 씨를 구속 수사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진실위에 밝혔다고 한다.

“김 씨가 재산을 왜 내놓았겠는가. 김 씨는 부산·경남 지역에서 부정축재 혐의자 순번을 매긴다면 단연 1위였다. 그의 혐의는 막중했다. 특히 그는 가난한 농민들의 전답을 국회 국방위원이라는 신분을 이용해 치부하기까지 했다. 부일장학회도 재산의 탈세 수단으로 세운 것이었다.”

김 씨의 유족들은 당시 중정 수사는 터무니없는 혐의를 덮어 씌운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부일장학회가 탈세 수단이라는 박 씨의 주장에 대해선 언급할 가치도 없다고 했다.

국정원의 위험한 짜깁기

군수기지사령부가 자리한 부산 대연동 일대. 김지태 씨가 강탈 혹은 헌납한 토지가 이곳이다. 김 씨에게 교묘하게 땅을 빼앗겼다고 주장하는 농민들이 만든 비상대책위원회 명단.

진실위는 보고서에서 “김 씨가 탈세를 목적으로 ‘부일장학회를 설립했고 부정축재를 했다’는 비난 여론도 상존했다”고 가볍게 언급했으나 무게를 두지는 않으면서 “부산 지역 내에서 김지태에 대한 비난 여론 등 부정적 평판이 계기가 된 것으로 보이기는 하나 정황을 볼 때 특정한 지시에 따라 수립된 계획 아래 수사가 이뤄졌을 가능성도 있는 것으로 ‘추정’된다”고 밝혔다. 이 같은 추정은 전체 결론의 주요 논거가 된다.

박 씨는 “재산을 받고 죄를 용서해준 건, 다시 말해 범법자가 재산을 내고 죗값을 치르지 않은 건 자본주의 국가에서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말했다. 김 씨 석방에 반발하다 권력에서 멀어진, 박 씨의 “독자적인 수사였다”는 증언을 뒤집을 또렷한 증거를 진실위는 갖고 있지 못하다. 추정과 판단이 있을 뿐. 그럼에도 진실위는 박 씨 발언의 전후 맥락을 강탈에 무게를 두고 제멋대로 해석했다.

진실위는 또 김 씨가 구속 상태에서 작성한 기부승낙서 등 문건 7건에 대한 국립과학수사연구소의 문서감정 결과 기부승낙서의 서명은 김 사장 본인을 포함해 3명이 한 것으로 나타났다고 밝혔다. 특히 기부승낙서 날짜가 ‘이십일(二十日)’에 한 획을 가필해 ‘三十日’로 변조한 것으로 드러났다고 밝혔다. 서명은 다를 수 있더라도 날짜 변조 의혹은 진실위가 거의 유일하게 제시한 강탈의 물증이다. 이 역시 월간 ‘신동아’가 최초 보도한 내용으로 새로운 사실은 아니다.

기부승낙서의 날짜는 매우 중요하다. 김 씨가 6월22일 석방됐기 때문에 6월20일이라면 김지태 씨가 구속되어 있는 상태에서 기부가 이뤄진 것이고 6월30일이라면 석방된 다음 기부한 것이 되어 재산 헌납의 자발성 문제를 판단하는 데 중요한 변수가 된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정수장학회가 보유하고 있는 문건엔 6월20일이라고 되어 있다는 점이다. 진실위는 정수장학회에서 6월20일이라고 쓰여 있는 문서를 확인하고 사진까지 찍어갔다. 그러나 진실위는 결정적 증거에 결함이 발견됐는데도, 기자회견문에서 이를 밝히지 않았다. 다만 보고서엔 “정수장학회가 자신들이 보유하고 있는 기부승낙서엔 6월20일로 되어 있다며 자신들이 변조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고 가볍게 언급했다.

진실위는 “기부승낙서는 5·16 장학회가 설립 당시 제출해 감독관청인 서울시교육청이 보관하고 있는 정본으로 보관 과정에서 변조될 가능성은 전무하다”고 단정하면서 정수장학회가 보관 중인 문서를 무시했다. 그러나 二자가 三자로 바뀐 것은 약탈 근거로 제시키 위해 가필됐다는 역추정도 가능하다. 물론 정수장학회의 문서는 엄격하게 따지면 사문서에 가깝고, 진실위가 감정을 의뢰한 기부승낙서는 공문서다. 그러나 같은 내용의 문서인 만큼 진실위는 유일한 증거의 결함을 밝혔어야 했다.

진실위는 김 씨가 부산일보·한국문화방송·부산문화방송의 주식과 토지 10만147평을 강압에 의해 기부했다고 발표했다. 그러나 토지 10만147평은 정수장학회의 전신인 5·16장학회가 ‘빼앗거나 기부받았는지’조차 명확치 않다. 또 장학 사업을 위해 준비한 토지라는 발표도 확인되지 않은 것이다.

김 씨 유족이 강탈당했다고 주장하는 부산 시내 땅은 현 시가로 1조원이 넘는다. 토지 옛 주인 후손들은 “김 씨가 군에 징발당한 땅이라는 점을 악용해 교묘한 방법으로 인수해갔다”고 주장한다. 10만147평의 상당 부분은 소유주가 농민-부산일보 등 관계자-5·16장학회-정부(국방부) 등의 순서로 복잡한 과정을 거쳤다.

10만여평 땅은 자발적 기부 가능성

부산 땅은 김 씨가 국방부에 기부 혹은 빼앗긴 땅이 다른 재산(부산일보 주식 등)이 5·16장학회로 인계되는 과정에서 5·16장학회로 잘못 이전됐다가 국방부로 옮겨졌을 가능성이 높다. 부산일보가 넘어오면서 함께 넘어왔을 뿐 정수장학회와는 무관한 땅일 가능성이 높은 것이다.

따라서 진실위는 부산 땅 문제를 별도로 다루거나, 정수장학회와의 관련 여부를 세밀하게 조사했어야 한다. 조사결과대로라면 이 땅은 김 씨의 유족들이 소유권을 강하게 주장할 수 있게 된다. 유족들은 “사실과 다르다”고 설명하지만, 농민들의 주장대로라면 김 씨가 지위를 이용해 편법으로 인수해간 땅을 그의 유족들이 되찾게 되는 것이다. 10만147평의 땅은 농지개혁법 위반 혐의를 받았던 김 씨가 사면을 받기 위해 자발적으로 기부했을 가능성도 없지 않다.

진실위 보고서의 ‘몇 안 되는’ 근거는 이렇듯 허술하다. “적극적으로 해석했다”는 진실위 관계자의 설명대로 진실위 보고서엔 ‘판단’과 ‘추정’이라는 단어가 쏟아진다. 언론에 보도되지 않은 일부 관계자의 추가 증언과 국정원 자료 등이 첨가됐으나, 기존 언론 보도 내용 혹은 알려진 사실을 토대로 ‘해석’을 했다는 비판을 피하기 어렵다. 또 강제적으로 재산을 빼앗겼다는 김 씨 유족의 증언을 일부 배제하기는 했으나 유족들의 주장과 엇갈리는 관계자들의 의견엔 대체로 무게를 두지 않고 강탈 쪽에 근거를 둔 증언이나 증거를 적극적으로 추정하거나 확대했다.

강탈과 헌납의 구분은 무의미한 것인지도 모른다. ‘강도’가 협박해 돈을 내준 것과 ‘강도’가 무서워 자발적으로 돈을 낸 건 별반 차이가 없다. 또 짚고 넘어갈 건, 정수장학회가 공익재단임에도 사실상 사유화돼 운영돼왔다는 것이다. 정수장학회는 박 전 대통령의 친인척 및 측근들이 이사회에 참여한 가운데 박 전 대통령의 영향 아래 있었다. 한나라당 박근혜 대표는 단 1원의 재산도 출연한 바 없음에도 95년 9월부터 2005년 2월까지 이사장을 맡았다.

헌납이건 강탈이건 정권이 재산을 넘겨받고 중죄(박용기 씨 주장) 혹은 작은 실수(유족들의 주장)를 사해준 건 사유재산권 침해를 넘어 민주국가에선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일이다. 그럼에도 진실위의 조사결과 발표는 씁쓸하다. 언급했듯, 새로운 내용이 거의 없는 데다 결론을 정해놓고 해석과 추정을 지나치게 했다는 비판에서 자유로울 수 없기 때문이다. 진실위는 경향신문 매각 의혹에 대해선 ‘새로운 팩트’를 발견해가며 가시적인 성과를 거뒀다. 그러나 정수장학회 조사결과 발표는 안 하는 게 더 나았다. 강제 헌납이라고 발표키 위해 헛심을 쓴 격이다.



주간동아 2005.08.09 497호 (p26~28)

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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