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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국립중앙박물관 ‘용산 시대’

‘배우는 곳’에서 ‘체험 공간’으로

해외 국립박물관 운영 살펴보니 … 전시 위주 벗어나 엔터테인먼트 공간 지향 ‘뚜렷’

  •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배우는 곳’에서 ‘체험 공간’으로

‘배우는 곳’에서 ‘체험 공간’으로

과거와 현대의 결합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건축물로 손꼽히는 파리 루브르박물관. 뉴욕 메르로폴리탄 뮤지엄과 영국박물관, 바티칸박물관(왼쪽부터).

박물관을 뜻하는 영어 ‘뮤지엄(museum)’과 프랑스어 ‘뮤제(musee)’의 어원을 따라 올라가면 학문과 예술의 여신 ‘뮤즈(muse)’를 만나게 된다. 박물관이 연극과 문학, 철학 등 당대의 문화적 성과를 모두 모아 신에게 바치는 공간에서 비롯되었다는 것이다. 즉 박물관은 탄생에서 포스트모던한 현재까지 서구 문명 그 자체와 기원을 함께한다.

유물을 수집하고 보존하며 연구하는 기관으로서 세계 최초의 박물관은 기원전 3세기 이집트 프톨레미 소테르가 알렉산드리아에 세운 ‘뮤제이옹’인 것으로 알려진다.

세계 최초의 공공 박물관은 흔히 ‘대영박물관’이라 불리는 영국박물관으로 슬론 경의 소장품을 기초로 1753년 문을 열었고, 1793년에는 파리 루브르박물관이 개관했다. 근대 박물관의 시대가 시작된 것이다. 소장품들이 보여주듯 영국과 프랑스의 국립박물관은 제국주의 국가들이 개척한 식민지에서 마구잡이로 가져온 전리품들의 전시관이었다. 이로써 이들은 강력한 국력을 과시했고, 예술가들은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는 영감을 얻었다.

19~20세기에 제국주의 열강으로부터 독립한 국가들 역시 국립박물관 건립으로 민족의 정체성 세우기에 나섰다. 미국은 1855년 최초의 국립박물관으로 스미소니언 재단과 박물관을 설치하여 민주주의라는 국가 이념을 드높인다. 서구의 대형 박물관들은 막대한 유물을 소장했다는 이유 하나로 존재할 수 있었지만 국가나 민족의 프로파간다 수단으로서 박물관의 매력은 사라졌다. 국가의 힘을 과시하는 것은 외국 관광객들의 반발을 살 뿐이다.

한 박물관 관계자는 “박물관은 ‘배우는 곳’에서 ‘체험의 공간’으로 바뀌었다. 90년대까지 유물의 가치와 화려한 아우라를 강조하는 방식으로 전시실을 꾸몄다면, 지금은 가족들과 관광객들이 쾌적하고 편안하게 즐길 수 있는 엔터테인먼트 공간을 지향하는 경향이 뚜렷하다”고 말한다. 영국박물관은 무료 입장으로 ‘침탈의 역사’에 대한 명분을 얻고 있는데, 실제로 이곳을 찾는 관광객들이 먹고 쓰는 돈이 영국 전체 관광 수입의 10%에 이른다.



대개 기부로 설립 운영 … 건물 신축·시설 교체 등 어려워

대형 박물관들이 체험 프로그램 개발에 집중하게 된 계기는 70년대 프랑스에서 시작된 ‘에코뮤지엄(eco-museum)’ 개념 덕분이라고 할 수 있다. 에코뮤지엄은 국가와 민족 같은 거대 담론 대신 ‘내’가 살고 있는 곳, 나와 내 이웃의 일상을 기록하는 일종의 ‘풀뿌리’ 박물관을 지향한다. 에코뮤지엄은 전시 방식에서도 이전 박물관의 주입식, 연대기순 전시 대신 결혼, 음식, 공예 같은 흥미로운 주제에 관람객들이 직접 참여할 수 있는 ‘인터랙티브(interactive)’ 방식을 도입했다.

‘배우는 곳’에서 ‘체험 공간’으로

루브르박물관의 ‘모나리자’. 이탈리아에 반환할 것을 주장하는 도둑에 의해 도난당하는 사건이 벌어지기도 했다.
영국박물관의 유명한 ‘엘긴 마블’.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내부(왼쪽 부터).

‘박물관이 나에게 말을 걸었다’의 저자 성혜영 씨는 “박물관의 존재 의미는 훌륭한 것을 보여주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삶에 대해 성찰할 기회를 준다는 데 있다”고 설명한다.

또한 서구 박물관들은 대개 기부로 설립되고, 운영되기 때문에 현실적으로 건물을 신축한다든가 최첨단 시설 같은 하드웨어를 바꾼다는 것은 매우 어렵다.

국립중앙박물관 함순섭 전시팀장은 “대영박물관이나 빅토리아 앨버트 박물관 등에는 1910년대부터 2000년대의 쇼케이스가 함께 있다. 특별한 기부가 없으면 시설 교체 등을 생각하지 않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서울 용산 국립중앙박물관의 시설은 세계 최첨단이다. 선진 박물관들에서 우리가 배울 것은 콘텐츠, 즉 전시와 운영이라고 할 수 있다”고 말한다.

문화 체험 프로그램을 가장 활발히 시행하는 기관으로 미국 근대미술관(MOMA), 뉴욕 메트로폴리탄 뮤지엄, 몬트레이 수중생물 박물관 같은 자연사 박물관 등이 꼽힌다. 이들 박물관들은 어린이는 물론, 장애인 등 사회적 소수자들을 위한 프로그램들을 활발히 운영한다. 예를 들어 복제품 미술품을 직접 만질 수 있게 한다든가, 예술품을 직접 만드는 기회를 제공하는 것이다. 함 전시팀장은 “자원봉사자 등을 활용해 ‘문화재 읽어주는 사람’ 같은 프로그램을 운영해볼 계획”이라고 밝혔다.

그러나 우리나라 박물관 연구자들 사이에서 ‘체험 프로그램’의 강조에 우려를 보내는 이들도 적지 않다. 서구 박물관들이 오랜 시간 동안 경험적으로 변화해온 개념이 우리나라에 동시적으로 유입됐기 때문에 체험적, 문화 교육적인 박물관 기능이 민족이나 국가 이념을 교육하는 것으로 오해될 수 있기 때문이다.

전태일 교수(국민대 박물관학)는 “최근 박물관들은 어린이 체험 교육에 집중하고 있다. 그런데 유달리 높은 우리의 교육열 때문에 또 다른 과외 공부가 되는 게 아닌지 걱정”이라고 말했다. 그는 “외국 대형 박물관의 경우 80개 직종의 전문 인력들이 인적 자원을 구성하는 데 비해, 우리나라 박물관 인력은 아직도 전문화와 거리가 멀다”고 덧붙였다.

“학예사보다 전시 다자이너 할 일 점점 많아져”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에서 일했던 또 다른 박물관학 교수는 “박물관의 교육 기능은 일차적으로 전시를 통해 이뤄진다. 외국 박물관들의 경우 연구기관이 새로운 유물을 발견하면 학예사들이 컨셉트를 잡고, 전문적인 전시 디자이너들이 관람객들이 최대의 경험을 얻을 수 있도록 전시를 구성한다. 학예사들보다 전시 디자이너들의 할 일이 점점 많아지고 있다”고 말한다. 특히 박물관들이 미술관과 경쟁하게 되면서 ‘전시 기획’의 중요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박물관이 소장하거나 전시 가능한 유물들을 이용하여 어떤 이야기를 풀어내고, 어떻게 배치하여 관객들의 오감과 상상력을 자극하는지가 문제인 것이다.

결국 박물관에도 마케팅이 중요한 시대다. 이런 이유로 대부분 대형 박물관들이 별도의 재단을 설치하여 전문가들을 활용하며 다양한 프로그램을 개발하고, 문화상품을 만들어 전 세계에 판매한다. 더욱 많은 기업과 사람들이 미술관의 후원자가 되도록 하는 것도 재단의 구실이다. 메트로폴리탄 뮤지엄의 경우 후원금이 예산의 3분의 1에 이른다. 특이하게도 이 박물관은 입장료조차 ‘기부금’으로 간주하여 관람객들의 형편에 따라 받는다. 관람객들이 예술의 후원자가 됐다는 자부심을 느낄 수 있도록 한 마케팅이다.

어느 분야든 마케팅은 관람객이 직접 느끼는 사소한 부분에서 시작하여 그곳에서 끝이 난다. 박물관 연구자들은 선진 박물관들에서 볼 수 있는 ‘탈권위주의’의 감동을 이야기한다. 도쿄국립박물관의 경우 학예사들이 전시장에 교대로 머물면서 관람객들과 이야기를 나눈다. 이는 일정한 시간에 관람객들을 모아놓고 전시 설명을 하는 것과는 아주 다른 체험을 준다. 한 박물관 연구자는 “박물관의 학예사들은 연구자들이기도 하지만, 관람객들과 소통해야 할 책임도 있다. 우리나라 국립박물관 몇 곳과 사립박물관에 e메일을 보냈는데, 계속 전시 소식을 보내주는 곳은 사립박물관뿐이었다”고 말한다.

‘관람객이 O.K.할 때까지’, ‘관객 감동’의 슬로건은 새로운 시대의 박물관에도 필요하다.



주간동아 2005.08.02 496호 (p20~21)

김민경 기자 holden@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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