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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제

유대인과 교황 ‘껄끄러운 인연’

‘예수를 죽인 민족’ 오명 숱한 고통과 핍박 … 새 교황 선출 이스라엘 국가 차원서 관심

유대인과 교황 ‘껄끄러운 인연’

4월2일 선종한 교황 요한 바오로 2세의 뒤를 이어 독일 출신의 베네딕토 16세가 전 세계 11억 가톨릭교도들을 이끄는 새로운 수장이 되었다. 교황은 전 세계 기독교도들을 대표하는 상징적 존재인 만큼 새 교황을 선출하는 콘클라베(conclave·추기경단 비밀회의)에 전 세계인의 관심이 집중된 것은 당연한 일이라 하겠다.

그중에서도 이스라엘의 관심은 남달랐다. 이스라엘에서는 전임 교황의 선종 소식과 새 교황으로 선출될 가능성이 있는 추기경들의 이력 소개, 콘클라베 전모 등을 상세하게 보도하는 등 새 교황이 선출되는 모든 과정이 국가적 차원의 관심사로 다루어졌다.

구약 성경 공유 … 유대교는 폐기된 종교로 여겨온 바티칸

이스라엘은 유대교의 나라다. 때문에 이스라엘 내 소수 아랍인을 제외하면 기독교인은 찾아보기 어려울 정도로 그 수가 미미하다. 그런데 그런 이스라엘에서 ‘이교도의 지도자’인 교황 선출에 남다른 관심을 쏟은 이유는 무엇일까.

바티칸은 이스라엘을 국가로 보지 않는다. 종교적 개념의 성지로만 이스라엘을 일컫는다. 잘 알려진 대로 이스라엘에서는 기독교인들의 성지순례가 끊이지 않는다. 하지만 바티칸의 역대 교황들은 이스라엘을 찾지 않았다. 1948년 이스라엘 건국 이후 교황 신분으로 이스라엘을 찾은 이는 단 두 명에 지나지 않았다. 64년 바오로 6세와 2000년 바오로 2세의 방문이 그것이다.



바티칸과 이스라엘의 외교관계 수립은 전임 교황 시절인 93년에야 이루어졌다. 여기에는 유대교와 기독교 간의 역사적 갈등관계가 숨어 있다.

기독교의 4대 복음서 중 첫 번째 복음서인 마태복음에는 당시 로마에서 파견된 유대 총독 본디오 빌라도가 심판대에 오른 예수에게서 별다른 죄를 발견하지 못하자 놓아주려는 대목이 기록되어 있다. 그러나 유대인들은 이를 반대하며 예수를 십자가에 처형할 것을 강력히 요구한다.

“빌라도가 아무 효험도 없이 도리어 민란이 나려는 것을 보고 물을 가져다가 무리 앞에서 손을 씻으며 가로되, 이 사람의 피에 대하여 나는 무죄하니 너희가 당하라. 백성이 다 대답하여 가로되 그 피를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돌릴지어다 하거늘.”(마 27:24-25)

이후 로마 가톨릭은 이 구절을 유대인에게 예수 죽음에 대한 책임이 있다는 명백한 증거로 이용해왔다. 이 때문에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란 오명을 쓰고 숱한 고통을 겪어왔다.

기독교 역사와 궤를 같이하는 반(反)유대주의의 표면적 이유가 여기서 기원한다. 히틀러가 600만 유대인을 학살(홀로코스트)할 때 내세운 명분 또한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것이었다. 반유대주의는 오늘날까지도 유럽을 중심으로 거의 전 세계에 퍼져 유대인과 유대인 관련 시설에 대한 공격으로 이어지고 있다.

바티칸은 전통적으로 유대교를 기독교의 대체, 즉 폐기된 종교로 여겨왔다. 유대교와 기독교가 여호와 신앙을 기초로 하여 구약성경을 공유하고 있지만, 유대교는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기 때문에 신약성경을 인정하지 않는다. 이렇다 보니 바티칸 쪽에서는 예수와 신약성경으로 대표되는 기독교의 정체성을 부인하는 유대교를 인정할 수 없게 된 것이다.

‘유대인은 예수를 죽인 민족’이라는 로마 가톨릭의 규정은 대대로 반(反)유대주의자 교황들을 탄생시켰다. 이는 ‘인류가 저지른 가장 극악한 범죄’라는 나치의 유대인 학살을 묵인하는 결과로까지 이어졌다. 여러 역사적 증거물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교황이었던 비오 12세가 홀로코스트를 묵인했을 뿐 아니라 오히려 동조, 조장했다는 사실을 뒷받침한다. 물론 바티칸은 이에 대해 시인하지 않으며 사죄 요구에도 늘 침묵으로 일관해왔다. 기독교에 대한 유대인들의 감정이 어떠할지 짐작되는 대목이다.

이 같은 바티칸의 관행을 바꾼 이가 바로 얼마 전 선종한 요한 바오로 2세다. 그는 역대 교황 중에서 ‘유대인을 위한 최고의 교황’으로 불린다. 그는 바티칸 역사상 최초로 아우슈비츠 강제수용소를 방문하여 ‘우리는 기억한다’고 말함으로써 홀로코스트 당시 바티칸 구실에 대해 사죄의 뜻을 밝혔다. 이스라엘의 홀로코스트 기념관 ‘야드 바쉠’ 또한 방문했다. 이스라엘과의 공식 외교관계를 수립한 것도 요한 바오로 2세 때의 일이다.

무엇보다도 그는 유대민족을 ‘우리의 형들’이라고 호칭함으로써 유대교를 정통성 있는 종교로 인정했다. 유대교를 정통 종교로 인정하는 일환으로 바오로 2세는 유대교 최대의 성지인 ‘통곡의 벽’에서 기도를 했다. 또 로마에 있는 유대교 대회당을 방문했으며, 많은 가톨릭대학에 유대학 과정을 설치하기도 했다.

이 모두가 바티칸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었다. 이미 60년대 제2차 바티칸공의회에서 공포했으나 문서상의 문구일 뿐이었던 “유대교는 기독교에 의해 대체된 종교가 아니라 기독교와 공존하는 정통성 있는 종교”라는 결정을, 요한 바오로 2세는 실제로 적용하는 업적을 이룬 것이다.

여러 차례 연설 통해 우호 증진 피력

전 세계 기독교인을 대표하는 교황이 유대인과 유대교, 그리고 이스라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고 말하느냐는 일반 기독교인들에게 무시할 수 없는 영향력을 미칠 수밖에 없다. 이스라엘이 새 교황 선출에 남다른 관심을 가진 이유가 여기에 있었다. 이스라엘은 각 교황 후보의 유대인, 유대교, 이스라엘에 대한 생각과 과거 행적을 조사했다.

일단 이스라엘은 요제프 라칭거 추기경의 교황 선출에 대해 안도하는 분위기다. 바오로 2세의 유대인, 유대교, 이스라엘과의 관계 설정에 대해 신학적 뒷받침을 주도한 인물이 라칭거 추기경으로 알려졌기 때문이다. 라칭거는 바티칸의 성서학 연구기관인 ‘교황 성서 연구 위원회’에서 발간한 문서에서 유대인이 예수를 메시아로 인정하지 않는 것에 대해 “유대교가 하나님을 부정하는 행위로 인식되어져야 할 게 아니라, 아직 모든 인류에게 평화와 구원이 도래한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상기시키기 위한 하나님 계획의 일부”라고 설명한 바 있다. 이는 실로 놀라운 사상의 전환이다. 유대교가 예수를 ‘부정’한다는 부정적 이미지를 하나님의 ‘계획’이라는 긍정적 이미지로 일거에 바꿔놓았기 때문이다. 또한 라칭거 추기경은 여러 차례 가톨릭 교회와 이스라엘 간의 우호 증진에 대해 의견을 피력한 바 있다.

바티칸과 이스라엘의 관계에 비춰보면 역설적이지만, 사실 교황의 시초는 유대인에게서 비롯되었다. 예수와 동역한 열두 제자 중 한 사람으로 초대 교황으로 추앙된 베드로가 바로 유대인인 것이다.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는 예수의 말이 언급된 요한복음 21장 15절 이하 말씀은 통상적으로 예수가 제자들 중 베드로를 가장 사랑했다는 증거이자, 교황이 모든 신도들의 으뜸이라는 수위권(首位權)을 뒷받침하는 증거로 이용된다.

새 교황 베네딕토 16세의 즉위를 계기로 ‘화해와 용서’라는 기독교 본연의 가르침이 온 땅에 실현되기를 기대한다.



주간동아 2005.05.17 485호 (p58~59)

  • 예루살렘=남성준 통신원 darom21@hanmail.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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