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8

2002.01.17

전 세계 젊은이들 “우리는 친구”

유럽 ‘테제’ 모임 7만명 참석 우정 나눠 … 인생 의미 성찰, 사랑과 화해도 다짐

  • < 안윤기/ 슈투트가르트 통신원 > friedenssifter@hanmail.net

    입력2004-11-05 14:5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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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전 세계 젊은이들 “우리는 친구”
    해마다 연말이면 유럽에서는 수만명의 젊은이들이 모여드는 큰 대회가 열린다. 바로 ‘테제 유럽 젊은이 모임’(Taize European Youth Meeting)이다. 이 대회는 프랑스 중부 부르고뉴 지방에 위치한 ‘테제 공동체’라는 작은 기독교 단체의 주관으로 열리는 젊은이들의 잔치다. 24회를 맞은 올해의 테제 모임은 헝가리의 수도 부다페스트에서 지난해 12월28일부터 1월1일까지 4박5일간 열렸다. 이 기간 동안 세계 각국에서 몰려든 7만여명의 젊은이들이 대회 장소인 헝가리 엑스포 대회장과 부다페스트 시내를 누비며 인생의 의미를 성찰하는 시간을 가졌다.

    매일 세 차례 경건한 기도회

    동유럽 한구석에 위치한 부다페스트의 지리적 여건 때문인지 올해는 8만명이 참석한 지난해 바르셀로나 대회보다 참석 인원이 다소 줄었다. 대신 참가자들의 국적은 지난해보다 훨씬 다양해졌는데 그것은 체코, 슬로바키아, 루마니아, 크로아티아, 세르비아 등 헝가리와 인접한 동유럽 국가의 젊은이들이 부다페스트를 찾았기 때문이다. 폴란드는 지난해에 이어 올해도 가장 많은 젊은이들을 참석시켜 현직 교황을 배출한 국가의 자존심을 유감없이 보여주었다.

    테제 유럽 젊은이 모임은 기본적으로 기독교 행사적인 성격을 갖는다. 매일 3회의 기도회가 열리고 7만명이 넘는 외국인 손님의 숙소를 제공한 곳이 부다페스트의 교회들이라는 점이 모임의 성격을 단적으로 말해준다. 그러나 테제 젊은이 모임이 참가자들에게 주는 의미는 단지 종교적인 영역에 제한되지 않는다. 테제 공동체라는 단체 자체가 기독교 교파간의 대립을 지양하고 화해를 도모할 뿐만 아니라, 나아가 비종교인들도 포용·관용하는 성격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주최측은 “이 모임의 목적은 자신의 인생을 어떻게 살아야 할지 성찰하며 인류간의 화해에 기여하는 데 있다. 어느 특정 종교나 사상에 매달리는 것은 아니다”고 설명한다. 실제로 이번 대회에 참석한 이들에게 부다페스트에 온 이유를 물어보자 참가자들은 주로 외국 친구들을 사귈 수 있는 기회라고 생각해서, 동유럽에 한번 와보고 싶어서, 조용한 명상의 시간을 갖고 싶어서 등등으로 대답했다.

    테제 젊은이 모임의 일정은 단순하다. 오전 기도회가 끝나면 그룹 토론이 있다. 토론 주제는 로제 수사의 글이다. 테제 공동체의 창설자이자 원장인 로제 수사는 이 모임을 앞두고 매년 짧고도 교훈적인 편지를 쓰며 이 편지는 곧 토론의 화두가 된다. 2002년 편지의 제목은 “사랑하십시오. 그리고 그것을 당신의 삶으로써 증언하십시오!”였다.



    그러나 토론이 이 편지에 얽매이는 법은 거의 없다. 대신 “무엇을 위해 이 곳에 왔습니까?” “인류의 화해를 위해 당신의 삶 속에서 어떤 작은 실천을 하시겠습니까?” 등의 질문에 대해 나름대로의 생각을 이야기하면서 젊은이들은 서로 다른 문화와 역사, 나아가 인류 모두에게 공통된 관심사들을 깊이 이해하려 애쓴다.

    오후 시간에는 주제별 모임이 열렸다. 신앙, 인류애, 세계 평화, 고통, 세계 경제의 남북 불균형 문제, 또 주최도시인 헝가리의 문화와 역사 등에 관한 다양한 모임들이 부다페스트 시내 곳곳에서 열렸다. 7만여명의 참가자들이 이곳저곳으로 이동하는 바람에 부다페스트 시내는 오후마다 거대한 교통체증으로 몸살을 앓았다.

    저녁 전체 기도회 시간은 하루의 일정중 가장 중요한 시간이다. 휘장과 촛불, 그리고 성상으로 장식된 홀 안에 참가자들은 출신 나라별로 자리잡고 앉는다. 흰옷을 입은 수사들이 중앙의 자리에 무릎 꿇고, 그레고리안풍의 테제 노래들이 흘러나오면 기도회가 시작된다. 프랑스의 한 작은 마을에 위치한 공동체가 오늘날 이처럼 세계적으로 잘 알려지게 된 데는 테제의 노래들이 기여한 바가 크다. 라틴어, 영어, 프랑스어 등 세계 각국의 언어로 쓰인 테제의 노래들은 간단한 가사와 단순하면서도 명상적인 멜로디로 구성되어 있어 반복할수록 자신의 내면세계에 집중하는 효과가 있다.

    노래가 끝나면 로제 수사의 강론이 시작된다. 1940년 25세의 나이로 테제 공동체를 창시한 로제 수사는 87세의 노령으로 거동이 편치 못하지만 이번 대회중 열린 네 번의 저녁 전체 기도회 때 모두 직접 강론하는 정성을 보였다. 강론은 로제 수사가 프랑스어로 말하면, 50여개국 언어로 동시 통역하는 식으로 진행되었다. 강론이 끝나고, 다시 테제의 노래들이 울려 퍼지다 잠시 침묵이 흐른다. 테제 공동체에서는 침묵 역시 기도회의 중요한 한 요소다. 이윽고 세계 각국 언어로 이웃을 위한 기도를 올리고 젊은이들이 가운데 놓인 십자가 성상에 무릎으로 나아가 입맞추고 기도하는 것으로 기도회는 끝난다. 신비스럽고 환상적인 분위기의 기도회가 아닐 수 없다. 2001년 마지막 날인 12월31일 밤에는 젊은이들이 어우러진 흥겨운 파티가 열렸지만 대체적으로 테제 모임은 놀라울 정도로 경건하고 엄숙하며 자신의 내면에 집중하는 시간이다.

    테제 모임에 참석한 젊은이들은 언어와 인종, 나라에 상관없이 친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확인하며 일종의 환희를 느낀다. 또한 이 모임을 통해 인생의 참의미를 다시금 생각해 보고 사랑과 화해의 삶을 다짐하기도 한다. 테제 모임을 끝내고 맞은 새해 첫날, 여전히 부다페스트의 날씨는 춥고 매서웠다. 그러나 젊은이들의 열기는 얼어붙은 도나우 강물마저도 녹일 듯 뜨겁게 느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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