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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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화보다 지역화가 더 좋다

  • < 김현미 기자 > khmzip@donga.com

    입력2004-12-01 16:4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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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계화보다 지역화가 더 좋다
    히말라야 라다크 지방 사람들에게서 거주를 허락받은 최초의 외국인이며 ‘아주 오래된 미래’의 저자인 스웨덴 철학자 헬레나 노르베리 호지. 그가 1975년 헤미스 슈크파찬이라는 마을을 둘러볼 때의 일이다. 크고 아름다운 집들을 보면서 헬레나는 안내를 맡은 젊은 라다크인 체왕에게 가난한 사람들이 사는 집을 보여달라고 했다. 체왕은 당황한 표정으로 “여긴 가난한 사람들이 없어요”라고 했다. 8년 뒤 헬레나는 체왕이 관광객을 상대로 이런 말을 하는 것을 들었다. “당신들이 우리 라다크 사람들을 도와줄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우린 너무 가난합니다.” 라다크에 근대화의 물결이 일기 시작한 지 겨우 10년이 지났지만 라다크 사람들의 자부심은 어느새 문화적 열등감으로 바뀌어 있었다. 그것이 세계화가 라다크에 안겨준 선물이었다.

    ‘위대한 전환’은 헬레나처럼 신자유주의적 세계화를 비판하는 40명의 지식인들이 쓴 43편의 논문을 엮은 방대한 분량의 책이다. 이 프로젝트에 참여한 40명의 대안사상가들 혹은 경제학자들 중에는 랠프 네이더나 제러미 리프킨, 반다나 시바, 월든 벨로, 제리 맨더, 에드워드 골드스미스 등 낯익은 이름들도 눈에 띈다. 특히 리프킨이 쓴 ‘신기술과 직업의 종말’은 그가 이미 95년에 쓴 책 ‘노동의 종말’을 요약한 것이어서 전혀 새로운 이야기는 아니지만 미처 책을 읽지 못한 사람에게는 유용한 글이다.

    이 책은 지구 생태자원 보호운동을 벌이고 있는 ‘시에라 클럽’(Sierra Club)의 후원 아래 96년 출간되었다. 전 세계 지식인들이 모여 “세계화를 향한 질주가 우리 삶에 어떤 영향을 미치는지 우려하고, 세계화 과정을 가능한 한 빨리 멈추게 해서 역전시켜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일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는지 생각해 보자. 이 책의 추천사를 쓴 문순홍씨(바람과물연구소 연구위원)는 93년 김영삼 정권이 국정목표로 세계화를 부르짖던 시절로 거슬러 올라간다. 당장이라도 국민소득 1만 달러 시대와 일등시민의 자리가 눈에 아른거리던 시절. 수년간의 노력 끝에 96년 드디어 한국은 OECD(경제협력개발기구) 가입에 성공하고 세계화의 원년을 맞았다. 그러나 꼭 1년 뒤 닥친 IMF 위기상황에서 우리는 세계시민의 자부심 대신 ‘스스로 삶을 영위할 수 있는 능력’을 박탈당한 무기력한 자신을 돌아보게 되었다. 우리는 어느새 가난한 라다크인이 되어 있었던 것이다.

    세계화, 신자유주의에 대한 비판은 귀에 못이 박히도록 충분히 들었기 때문에 새로울 것도 없다. 세계화는 결코 선진국 진입이나 일등시민과 같은 수사가 아니며, 실업과 파산, 빈곤과 소외라는 현실임을 깨달은 지 오래다. 그럼에도 40편의 논문으로 이루어진 ‘위대한 전환’은 우리에게 각별한 의미가 있다.

    이 책은 크게 4부로 나뉜다. 1부 ‘세계화의 충격’에서 말 그대로 지구 곳곳에서 세계화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 보여준다. 현대화와 세계화의 압박을 받고 있는 라다크라든지 환경과 전통적인 생산기반을 잃고 있는 제3세계의 문제, 교육와 문화의 획일화, 자원을 고갈시키는 수출 위주의 산업정책 등 그야말로 세계화의 부정적 측면들을 담고 있다.



    2부 ‘실패한 만병통치약’편은 세계화의 허상을 벗겨내서 조금씩 대안으로 접근해 가는 과정이다. 현재 대안적인 구호로 자리잡은 ‘지속 가능한 성장’은 과연 가능한가. 저자 허먼 E. 댈리는 성장과 발전은 다른 개념임을 분명히 하고 ‘성장 없는 발전’을 주장했다. 특히 2부는 세계 자본이 만병통치약처럼 떠받드는 자유무역과 구조조정을 철저하게 비판하는 데 많은 지면을 할애했다. 3부 ‘세계화의 엔진’편은 제너럴 일렉트릭, 월마트 혹은 전자화폐나 카지노 경제와 같이 국경을 모르는 지배자들에 눈을 돌렸다. 이에 대한 이론적 분석은 ‘주간동아’ 지난 호에 소개한 안토니오 네그리와 마이클 하트 공저 ‘제국’에서 심층적으로 다룬 바 있다.

    이 책의 4부 ‘다시 지역화로 향하고 있는 새로운 발걸음들’에서 우리는 비록 추상적인 원칙이나마 세계화에 대한 대안을 찾을 수 있다. 공동체의 보존, 생물지역주의, 새로운 보호주의, 국경을 가로지른 조직화, 공동체의 지원을 받는 농업 등 ‘다시 지역화’라는 목표를 향해 세계 각국이 어떤 변화의 노력을 하고 있는지 살펴볼 수 있다.

    이 책의 집필에 참여한 40명의 저자들이 내린 결론은 어찌 보면 간단하다. 현재의 비인간적인 경제 세계화 체제에서 지역 중심의 체제로 방향을 전환하는 것. 이미 희망의 싹은 자라고 있다.

    위대한 전환/ 제리 맨더, 에드워드 골드스미스 엮음/ 윤길순, 김승욱 옮김/ 동아일보사 펴냄/ 662쪽/ 1만500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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