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커버스토리|‘철도 르네상스’ 오는가

빠르게 거침없이 ‘꿈의 열차’ 달린다

올 9월 경의선 복원, 2004년 고속철도 개통… 21세기형 교통수단 각광, 투자 미비가 걸림돌

빠르게 거침없이 ‘꿈의 열차’ 달린다

빠르게 거침없이 ‘꿈의 열차’ 달린다
2004년 가을. 서울에서 직장생활을 하는 김광명씨(40·가명)는 추석이 다가오면서 일이 손에 잡히지 않고 마음은 벌써 고향에 가 있다. 올 추석 귀향부터는 지긋지긋한 ‘귀성전쟁’을 치르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 승용차를 이용해 고향인 대구 부근까지 가는 데 10시간이나 걸렸던 2월 설 때의 일은 생각만 해도 끔찍했다. 올 4월 개통된 고속열차로 귀성하기 위해 미리 예매해놓은 것도 이 때문이다.

고속열차 시각에 맞춰 서울역에 도착한 김씨는 믿기지 않는 광경을 목격했다. 아직도 고속열차 표를 구입하는 사람들이 많을 뿐 아니라 고속열차가 5분마다 출발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씨가 더 놀란 것은 서울역을 출발해 2시간 만에 고향에 도착할 수 있다는 사실. 도심에서 공항까지 가는 시간까지 고려하면 오히려 비행기보다 더 빨리 도착하는 셈이다.

김씨는 기차 여행이 편리하다는 점을 새삼 깨닫고 가족과 상의 끝에 내년 여름 휴가 때는 지난해에 연결된 경원선을 거쳐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타고 유럽까지 여행하기로 결정했다. 그동안 화물 열차만 통과시키던 북한 당국이 올 여름부터 여객 열차도 통과하도록 한 이후 여행사들이 시베리아 횡단열차를 이용한 관광상품을 많이 개발했기 때문이다.

2004년 4월 고속철도 개통 이후 벌어질 변화상을 그려본 것이다. 김씨가 2004년 가을에 고속열차를 이용해 귀성할 수 있다는 사실은 확실하다. 그러나 열차를 이용해 유럽까지 여행할 수 있을지는 좀더 두고봐야 할 듯싶다. 남북관계 변화에 따라 실현 여부가 결정되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 전문가들은 남북 철도 연결이 북한 김일성 주석의 유훈사업인 것을 감안하면(김일성 주석은 94년 벨기에 노동당 중앙위원회 의장과 회견하면서 남북한 철도 연결에 긍정적 입장을 표명함) 김씨의 꿈은 현실화할 가능성이 높다고 말한다.

그래서일까. 요즘 국내 철도 전문가들은 우리나라에서도 ‘철도 르네상스’의 여건이 성숙된 만큼 이에 대한 준비를 서둘러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인다. 자동차 교통이 발전하지 못해 철도가 가장 중요한 교통수단이었던 19세기처럼 철도의 중요성이 새삼 부각되고 있다는 얘기다. 60년대 이후 ‘압축성장’을 하면서 고속도로 건설이 근대화의 상징인 것처럼 인식하고 있는 우리로서는 쉽게 납득되지 않는 일이다.



빠르게 거침없이 ‘꿈의 열차’ 달린다
그러나 전문가들은 ‘철도 르네상스’가 고속철도 개통과 함께 다시 시작될 것이라고 예측한다. 도로의 경우 고속도로가 등장하면서 시속 100km 이상 주행이 가능해진 반면 그동안 철도의 평균 속도는 특정 구간을 제외하고 시속 100km를 넘지 못했다. 그러나 시속 300km를 넘나드는 고속철도가 개통되면서 다시 철도 교통에 대한 관심과 수요가 늘게 될 것이라는 설명이다.

국제적인 여건도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무엇보다 남북관계의 진전으로 올 9월이면 남북철도가 연결된다. 교통개발연구원 전일수 부원장은 “지난 50년간 우리는 단절된 국토에 의해 대륙으로의 접근이 차단된, 실질적인 섬 국가였다”면서 “그러나 한반도 철도 연결은 한반도가 환태평양과 유라시아 대륙을 연결하는 관문이 돼 지역 내 중심성과 연계성을 확보할 수 있도록 하는 지리-경제적으로 매우 중요한 사건”이라고 평가했다.

남북철도 연결이 시베리아 횡단철도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는 러시아의 관심을 끄는 것은 당연하다. 지난 2월26일 한국을 방문한 러시아 푸틴 대통령은 다음날 김대중 대통령과 정상회담을 갖는 자리에서 한반도종단철도(TKR)와 시베리아횡단철도(TSR) 연결이 두 나라의 이해를 증진하는 데 도움이 된다는 점을 역설한 것으로 알려졌다. 현재 연결 공사가 진행중인 경의선 철도는 중국횡단철도(TCR)와 연결된다는 점에서 푸틴의 주장에는 우리 정부가 경원선 연결에도 나서달라는 의미가 포함돼 있는 셈이다.

TKR와 TSR를 연결하려는 러시아 정부의 노력은 집요하게 계속돼 왔다. 지난해 10월31일 민주당이 개최한 남북 철도연결 기념 정책 세미나 ‘철의 실크로드, 그 정치-경제적 의의와 전망’에 참석한 푸틴 대통령의 측근이자 고려인 3세인 텐 유리 연방 하원의원도 “TSR는 95% 이상 복선화돼 있는 반면 TCR 복선화율은 25% 정도에 불과하고, 속도도 TSR는 전구간 평균 시속 60km가 보장되는 반면 TCR는 20∼30km에 불과하므로 TKR를 TSR에 연결하는 게 훨씬 유리하다”고 강조했다.

국내의 한 철도 전문가도 “러시아 측은 그동안 TSR 이용시 최대 문제로 지적됐던 러시아 국경수비대의 공공연한 금품 요구 사실에 대해 솔직히 인정하고, 지금은 모두 없앴다고 말할 정도로 TSR 활성화에 적극적이다”고 전했다.

이 밖에 에너지 효율이나 온실가스 감축 문제 등에서 철도만한 교통수단이 없다는 점도 철도 르네상스 개막에 유리하게 작용하고 있다. 한국철도대학 최연혜 교수는 “현재의 수송 분담 구조가 그대로 유지된다면 2020년에는 교통사고 사망자, 에너지 소모, 도로 혼잡 등이 현재의 두 배 이상 증가될 것으로 예측되는 만큼 철도 교통의 중요성이 한층 부각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빠르게 거침없이 ‘꿈의 열차’ 달린다
그렇다면 과연 우리는 ‘철도 르네상스’를 맞이할 준비가 돼 있는가. 70년대 이후 도로에 비해 철도에 대한 투자를 소홀히 함으로써 전혀 준비가 돼 있지 않다는 게 전문가들의 진단. 교통개발연구원 서광석 철도연구팀장은 “70년 이후 기존 노선의 복선화 및 전철화는 있었지만 지역간 철도는 1km도 건설되지 않았다”면서 “외국의 전문가들은 경부선 용량이 하루 139회인데 138회가 운행되고 있다고 말하면 깜짝 놀란다”고 전했다. 외국의 경우 철도 노선 용량의 60%만 돼도 신설 노선을 건설하거나 전철화를 추진하기 때문이라는 것.

그뿐만이 아니다. 철도에 대한 투자가 미흡하다 보니 철도 운행과 관련한 안전도 위협받고 있다는 게 전문가들의 우려다. 철도청 자료에 따르면 최근에는 줄어들긴 했지만 90년대 중반까지만 해도 철도차량 중 내구 연한이 지난 차량이 22%가 넘었다.

그런 점에서 김대중 정부 들어 철도교통의 중요성을 깨달은 것은 때늦은 감이 없지 않지만 다행스런 일이다. 현 정부는 98년 3월 장기적인 국가기간 교통망 계획 수립을 국정 과제로 선정하고, 98년 4월부터 10월에 걸쳐 계획 시안을 작성했다. 이어 98년 말까지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치면서 계획안을 보완했고, 99년 2월에는 근거법인 교통체계 효율화법을 제정했다. 이후 관계 부처 협의 등을 거쳐 99년 말, 20년에 걸친 장기 구상인 국가기간 교통망 계획을 완성하기에 이르렀다.

이 계획에 따르면 2019년 철도의 수송분담률은 97년 현재의 2배 수준으로 향상된다. 97년 현재 철도교통의 여객 및 화물 수송 분담률은 각각 7.6, 10.5%. 2019년에는 각각 18.6, 20.3%로 늘어나게 된다는 얘기다. 반면 같은 기간 도로교통의 수송 분담률은 여객이 88.2%에서 74.8%로, 화물은 56.6%에서 41.2%로 축소한다는 계획이다.

계획 자체만 본다면 긍정적으로 평가할 만하다. 정부가 뒤늦게 철도교통에 대한 투자를 늘리기로 한 것으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철도 전문가들은 정부의 이런 계획에도 불구하고 철도에 대한 투자는 여전히 우선순위에서 뒤로 밀리고 있다고 주장한다. 한 철도 전문가는 “도로 우선의 기존 관념, 철도는 비효율적이라는 기존 철도에 대한 고정관념 등이 여전히 철도 발전을 가로막고 있다”고 진단했다. 건교부 관계자도 철도 발전을 위한 ‘주체세력’이 없다는 점을 아쉬워했다. 다음은 이 관계자의 솔직한 토로.

“국회의원들의 최대 관심 가운데 하나는 자신의 지역구 내 도로 신설입니다. 도로의 경우 각 지방별로 국토관리청이 있어 여기에서 발주한 도로 유지 및 보수공사는 지역경제에 상당한 도움이 되고 있는 실정입니다. 국회의원 입장에서는 자신의 업적 과시용으로라도 도로 건설 및 유지-보수 공사 발주에 관심이 많을 수밖에 없습니다. 또 도로의 경우 건교부 본부 내에 육상교통국이 있는 반면 철도정책을 담당하는 곳은 1개 과에 불과한 실정이어서 기획예산처를 상대로 한 ‘예산 따내기’ 로비 측면에서도 상대가 안 됩니다. 철도가 21세기형 교통수단이라는 당위에도 불구하고 철도교통을 둘러싼 이해관계자들이 결집되지 못해 한정된 예산을 집행해야 하는 예산 당국의 우선순위에서 밀릴 수밖에 없는 것이죠.”

이런 점에서 유럽의 ‘철도 르네상스’는 훌륭한 벤치마킹 대상이라고 할 만하다. 유럽연합(EU) 집행위원회는 21세기에 환경 보전과 삶의 질 향상을 위해 철도의 역할 증대가 불가피하다는 기본 원칙을 갖고 있다. 무엇보다 동구 유럽과 동남부 유럽의 역 내 편입이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EU가 유럽의 거대화에 알맞는 새로운 교통정책으로 철도 중심 교통정책을 천명한 셈이다. “독일과 프랑스에서는 철도에 대한 투자가 도로에 대한 투자를 능가하고 있을”(정종환 철도청장) 정도다.

유럽은 철도교통 중심 정책을 통해 유럽 통합을 가속화하고, 유럽 통합은 또 철도교통에 대한 수요를 증가시키는 ‘선순환’ 구조를 갖게 됐다. 한반도의 ‘철도 르네상스’가 남북 교류를 촉진하고, 역으로 활발한 남북 교류가 철도교통에 대한 중요성을 새롭게 인식시킬 것이라는 철도 전문가들의 기대가 ‘그들만의 꿈’으로 끝나지 않기를 바랄 뿐이다.





주간동아 2001.03.22 276호 (p20~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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