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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1세기 젊은 ‘마에스트로’가 온다

불멸의 클래식 이끌 유망 지휘자들… 상업주의 딛고 음악에 몰입, 거장 꿈 쑥쑥 큰다

21세기 젊은 ‘마에스트로’가 온다

21세기 젊은 ‘마에스트로’가 온다
위대한 지휘자’의 시대는 갔다. 번스타인의 명성, 카라얀의 부(富)는 두 번 다시 재현되지 못할 것이다. 쉽게 뜨고 쉽게 지는, 이름뿐인 ‘마에스트로’(Maestro·거장)들은 앞다퉈 번스타인을, 또 카라얀을 좇았지만 권력과 부에 대한 조급하고 과도한 욕망으로 그들의 세계를 둘러싼 신비와 권위를 스스로 파괴해 버렸다. 이들은 여전히 권력과 부의 신기루를 좇아 오늘은 유럽의 지휘대에, 내일은 미국의 지휘대에 선다.

영국의 저명한 음악 저널리스트 노먼 레브레히트는 10년 전 출간된 ‘거장의 신화’(The Maestro Myth)라는 책에서, “더이상 거장은 없다”고 선언했다. 그것은 상업주의에 함몰된 클래식음악과 지휘자들에 대한 조사(弔詞)이기도 했다. 10년이 지난 지금, 그는 자신의 개탄 섞인 선언이 일정 부분 어긋난 것을 즐거워한다. 그는 클래식넷(www.culturekiosque.com/klassik/index.htm)에 기고한 칼럼을 통해 “10여 명의 젊은 지휘자들이 도저한 상업주의에도 불구하고 음악에 대한 헌신과 이상주의를 견지하고 있다”고 칭찬했다.

▶사이먼 래틀경(卿), 마리스 얀손스, 발레리 게르기예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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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럽의 명문 오케스트라 단원들이 이구동성으로 꼽는 명지휘자들이다. 래틀경(46)은 무려 18년 동안이나 버밍엄 시립 심포니와 동고동락하며 이 무명의 오케스트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키웠고, 그 덕택에 쇠락하는 산업도시로만 인식되던 버밍엄도 일약 문화도시로 탈바꿈했다. 클라우디오 아바도의 뒤를 이어 베를린 필하모닉의 지휘봉을 잡게 된 것은 이러한 래틀의 남다른 공헌이 뒤늦게 빛을 발휘한 덕택인지도 모른다.



카리스마 가득한 게르기예프(47)는 일주일 이상 한 곳에 머무는 경우가 드물지만 그의 확고부동한 근거지는 1988년부터 맡고 있는 키로프 오페라다. 키로프 오페라는 그의 헌신 덕택에 러시아를 대표하는 문화 상품이 되었다. 한편 마리스 얀손스(56)는 노르웨이의 오슬로 필하모닉과 미국의 피츠버그 심포니에 그만의 독특한 사운드를 성공적으로 이식했다는 평가를 받는다.

▶리카르도 샤이, 에사-페카 살로넨로열 콘체르트 헤보 오케스트라는 네덜란드 최고의 음악 상품이다. 이탈리아인인 샤이(46)는 마치 뇌수술 전문의와도 같은 날카로움과 정교함으로 이 오케스트라의 명성을 한층 더 확고하게 다졌다. 단원들과의 화학적 융합도 매우 성공적이어서 그의 장수(長壽)가 예견된다(상임지휘자의 임기가 평균 25년이나 될 만큼 지휘자와의 긴밀하고 끈끈한 유대 관계가 로열 콘체르트 헤보의 특징이자 자랑거리이기도 하다).

로스앤젤레스(LA) 필하모닉을 이끌고 있는 살로넨(42)은 미국의 이른바 ‘빅5’ 오케스트라들(보스턴 심포니, 뉴욕 필하모닉,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시카고 심포니를 가리킨다)로부터의 구애도 거절할 만큼 LA필에 몰두하고 있다. LA 콘서트홀 신축에 10만달러의 사재를 털었을 정도다. 지휘자로, 또 작곡가로 왕성한 활동을 펼치는 살로넨의 앞길은 탄탄대로다.

▶독일의 지휘자들

함부르크 필하모닉 스테이트 오케스트라와 오페라를 동시에 이끌고 있는 잉고 메츠마허(42), ‘젊은 카라얀’으로 불리는 크리스티안 틸레만(41), 미국 클리블랜드 오케스트라의 신임 지휘자로 내정된 프란츠 벨저-뫼스트(40) 등이 21세기를 빛낼 지휘자로 꼽힌다.

메츠마허는 동시대 작곡가들의 실험적 오페라를 과감하게 무대에 올리는가 하면 은빛 번쩍이는 갑옷 미늘 복장으로 무대에 나서기도 하는 등 젊은이다운 파격을 선보이고 있다. 런던 필하모닉, 필라델피아 오케스트라 등이 그에게 정기적인 지휘를 제안할 만큼 남다른 실력과 열정도 인정받았다.

틸레만은 지난해 열린 바이로이트 페스티벌의 최대 화제였다. 그의 탁월한 음악적 해석과 지휘력은 팬들은 물론 페스티벌 주최자인 바그너 일가를 사로잡았고 차기 ‘링’(Ring) 시리즈의 음악감독으로 발탁되는 성과를 올렸다. 또 벨저-뫼스트는 런던 필하모닉과 취리히 오페라를 거쳐 클리블랜드에 안착, 음악성과 행정력 모두를 인정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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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탈리아의 지휘자들

다니엘레 가티(39)와 안토니오 파파노(41)가 아바도, 무티, 샤이 등으로 다져진 이탈리아 지휘 계보를 이어간다. 볼로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를 이끄는 가티는 침착하면서도 학구적인 기질로 많은 음악팬을 끌어들이고 있다. 이는 토스카니니와 무티가 보여준 것과 같은 이탈리아인 특유의 기질―저돌성과 카리스마―과는 대조적인 것이지만 그렇다고 그에게 음악적 열정이나 정확성이 부족하다는 뜻은 결코 아니다. 그는 앞으로도 오랫동안 볼로냐 오페라와 오케스트라에 헌신할 것이라고 공언했다. 한편 오페라의 프리마돈나를 잘 다루기로 유명한 파파노는 그 명성에 걸맞게 영국 코벤트 가든의 음악감독이 되어 큰 기대를 모으고 있다.

21세기 젊은 ‘마에스트로’가 온다
살로넨이나 유카-페카 사라스테(토론토 심포니)를 빼더라도 핀란드, 특히 시벨리우스 아카데미는 신예 유망 지휘자들의 산실이라고 해도 지나치지 않다. 래틀의 뒤를 이어 버밍엄 시립 심포니를 이끌게 된 사카리 오라모(35)가 그렇고, 18세 때 스톡홀름 오케스트라를 지휘해 단원들로부터 “원숙한 거장의 지휘”라는 평가를 들었던 핀 미코 프랑크(21)가 그렇다. 아직 들쭉날쭉한 성격이 문제지만 프랑크의 템포 제어력이나 곡 해석력은 발군이다. 프랑크보다 더 일찍 이름을 알린 천재형 지휘자로 영국인 다니엘 하딩(25)도 빼놓을 수 없다.

▶발트해 영안국의 지휘자들

영국 본머스 심포니를 이끌다 미국 입성에 성공한 야코프 크라이츠베르크(41), 에스토니아의 음악 명문가 출신인 파보 예르비(38)와 크리스티안 예르비(28) 등은 충분히 주목해볼 만한 유망 지휘자들이다. 특히 네메 예르비의 두 아들인 파보와 크리스티안은 각각 신시내티 심포니의 상임지휘자로, 또 앱솔루트 앙상블의 창단 멤버로 미국 언론의 문화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다.

그에 견주면 순수 미국인 지휘자들의 행보는 차라리 초라할 지경이다. 프랑스 리옹 오페라를 세계적 수준으로 일군 일본계 미국인 지휘자 켄트 나가노(39)와 애틀랜타 심포니의 신임 지휘자인 로버트 스파노 정도가 눈에 띈다. 여성 지휘자는 더욱 찾아보기 어려워서, 호주 오페라의 음악감독인 시모네 영(39)의 존재가 더욱 크게 보인다.

이들 지휘자는 크게 보아 ‘미완’이다. 21세기의 번스타인이나 카라얀, 혹은 솔티가 될지 알 수 없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이들 자신이 ‘마에스트로’라는 칭호를 달갑잖아 한다는 사실이다. 10년 전만 해도 지휘자들이 ‘마에스트로’라는 호칭을 즐겼다는 점을 고려하면 여간 큰 변화가 아니다. 요컨대 이들은 지휘계, 더 나아가 클래식음악계의 문화적 지형이 크게 바뀌었음을, 또 바뀌고 있음을 직접 체현해 주고 있는 셈이다.



주간동아 2001.01.25 269호 (p82~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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