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6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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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산은 맥주회사가 아닙니다”

한국중공업 인수로 그룹 색깔 교체 시도 … 이질적 기업문화 조화가 관건

  • 입력2005-06-13 10:2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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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두산은 맥주회사가 아닙니다”
    ‘그룹 번영을 약속할 진주를 얻었는가, 아니면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였는가.’ 두산그룹이 경쟁입찰을 통해 공기업 한국중공업의 새 주인으로 결정됨으로써 말 많았던 한중 민영화 작업이 일단 막을 내렸다. 그러나 재계와 시장 관계자들은 ‘두산-한중’의 앞날에 대해 엇갈린 반응을 보이고 있다.

    두산측은 이번 한중 인수를 재도약의 기틀을 거머쥔 쾌거로 받아들이고 있다. 그룹 관계자들은 발전설비사업 신규 진출에 대해 “두산이 창업 100년을 맞은 시점에서 향후 새로운 100년을 열어가는 데 필요한 성장 엔진을 마련했다”고 의미를 부여하고 있다.

    이번 한중 인수가 실제 그룹 재도약과 기업 변신을 위한 선택인 것만큼은 분명하다. 두산은 IMF 외환위기 훨씬 전인 지난 95년부터 강도 높은 구조조정을 벌여왔다. 당시 최대 현안이었던 외자유치를 위해 ‘몸통’에 해당하는 OB맥주 사업까지도 과감히 처분했다. 군살을 지나치게 도려낸 탓이었을까. 구조조정 이후 두산그룹은 재계 랭킹 12위(자산순위·99년 기준)가 무색할 정도로 이렇다할 간판사업 하나 없는 처지가 됐다.

    이와 관련해 인수 프로젝트를 총괄 지휘한 전략기획본부 박용만 사장은 “슬림화 위주의 구조조정을 일단락하고 신수종 미래사업을 검토하던 차에 발전사업(한중)을 마땅한 대상으로 꼽게 됐다”고 설명한다. 식품과 주류 유통 중심의 사업 포트폴리오를 원전과 수-화력 발전설비 중심의 산업재로 재편함으로써 그룹의 컬러를 근본부터 바꿔가겠다는 구상이다.

    “두산은 맥주회사가 아닙니다”
    이런 구상이 계획대로 실현된다면 두산은 SK그룹이 유공을 인수하면서 승승장구했던 것처럼 그룹의 미래를 하루아침에 탄탄한 반석 위에 올려놓을 수도 있다. 당장 한화와 금호 등 선발 그룹을 제치고 10위권(자산기준) 안에 진입, 재계 판도에도 적지 않은 변화를 몰고올 것으로 전망된다.



    공기업으로 운영돼온 한중 경영에 민간기법에 의한 선진 경영기법이 주입되면 영업이익 등이 크게 개선되면서 일약 황금알을 낳는 거위로 탈바꿈할 수 있다는 게 두산측 계산이다. 두산의 핵심 관계자는 “구조조정 과정에서 시행해온 혁신 경영기법을 한중에 적용하면 낙후된 비(非) 발전분야의 수지를 대폭 개선, 회사 전체 영업이익을 획기적으로 늘릴 수 있다”고 장담했다.

    두산은 한중의 실제 가치도 인수가보다 훨씬 높게 평가하는 분위기다. 경쟁입찰을 통해 주당 8150원(총 3057억원)에 인수했지만 순자산가치로 보면 주당 1만6900원은 족히 나간다는 게 두산의 계산이다. 두산 재무담당 임원은 세계적 컨설팅업체 AT커니의 미래 현금흐름(DCF) 방식에 의한 평가를 인용, “한중의 기업가치가 주당 2만1200원이나 된다”고 밝히고 있다. 두산이 장고 끝에 한중 인수 결심을 굳히고 전격 인수에 나서게 된 배경을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하지만 두산-한중의 앞날을 마냥 장밋빛으로 점치는 데 대해 아직 시기상조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한중 프로젝트’가 차질을 빚을 경우 트로이의 목마를 끌어들인 꼴이 될 수도 있다. 괜한 화근을 자초해 상당기간 그룹 발전에 발목을 잡힐 수도 있다는 뜻이다. 재계 관계자는 이를 두고 “두산이 사운을 건 베팅을 했다”고 말한다. 경기침체로 가뜩이나 경제 전반에 걸쳐 체력이 약화된 상황에서 좀 무리한 결단이 아니었느냐는 우려의 목소리다.

    두산측이 그룹 우산 밑에 들어온 ‘두산-한중’을 미래의 성장 동인으로 여기고 있는 것과는 달리 관련 업계와 시장은 선뜻 두터운 신뢰를 보이지 않고 있다. 인수 직후 두산과 한중 주가가 일시 상승세를 보였음에도 불구하고 재계 일각에서는 자금력과 영업환경 변화, 경영 능력 여부를 이유로 ‘두산-한중’의 앞날에 적지 않은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일부 신용평가사들은 한중이 종전에 영업이나 자금조달 측면에서 누려오던 이점을 민영화로 상당부분 잃게 될 것이라며 신용등급 하향조정을 검토하고 있는 것으로 전해졌다. 이들은 한중이 민간기업이 되면 회사채 발행 등을 통한 자금조달이 전보다는 훨씬 어려워질 것이라고 주장한다.

    또 정부의 발전설비 개방조치와 주요 발주처인 한국전력 분할 매각으로 국내 발전설비 시장에서 행사해온 독점적 지위도 상당 폭 약화되지 않겠냐는 관측도 나오고 있다. 한편에선 두산이 경험이 많지 않은 발전 및 산업설비 사업을 제대로 경영해 나갈 수 있을지에 대해서도 의문을 제기한다.

    중공업계의 한 관계자는 “산업 경쟁력과 국가이익을 고려했다면 애당초 철저한 시장원리에 입각해 자금과 경영능력 등 모든 면에서 경쟁력 있는 기업이 참여해야 했다”고 주장했다. 정부가 주요 기간산업을 민영화하는 과정에서 4대 그룹을 배제한 것부터가 온당한 조치가 아니었다는 지적이다.

    특히 발전설비의 경우 국제 경쟁이 갈수록 격화하고 있어 시장이 완전 개방되고 독점 메리트가 사라지면 선진 경쟁업체들의 장벽을 넘기가 그리 쉽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문가들은 주장한다. 이질적인 기업문화 통일화 작업과 노사문제 또한 두산이 넘어야 할 높은 장벽이다.

    “두산은 맥주회사가 아닙니다”
    박용만 사장은 인수 직후 소감을 묻자 “이제부터 할 일이 태산”이라고 말했다. 경영권을 무사히 접수해 우량 민간기업으로 탈바꿈해 나가는 작업이 결코 쉽지 않음을 알고 있다는 얘기로 들렸다.

    다행히 두산은 당초 응찰 계획에서도 밝혔듯 인수에 필요한 자금조달 및 단기 자금 운영 계획에 대해 비교적 구체적인 대안을 갖고 있는 것으로 보인다. 최종 잔금을 치러야 하는 내년 3월까지 두산의 자금소요는 만기도래 차입금을 포함, 대략 6000억원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된다. 만기도래하는 차입금을 연장 없이 모두 상환한다는 가정에서 나온 계산이다.

    두산은 이를 위해 유가증권과 부동자산 등으로 모두 5000억원 가량을 조달한다는 계획을 마련해놓고 있다. 우선 두산 CPK지분 일부와 보유 은행 주식을 팔아 1800억원을 조달하고 KFC매장 인수보증금 등 유동화 자산으로 자산유동화증권(ABS)을 발행, 2000억원을 조성할 방침이다. 또 반도체 장비사업인 CMP 매각으로 800억원, 기타 부동산과 유가증권 매각으로 1600억원을 모으기로 했다. 여기에다 내년 3월까지의 영업 이익과 자금잉여 2100억원을 합칠 경우 두산의 총 자금조달 규모는 약 7000억원을 웃돌 것으로 예상된다. 한마디로 자금조달에는 전혀 문제가 없다는 주장이다.

    한중 인수에 대해 시장의 평가는 다양하지만 두산은 별로 개의치 않는 눈치다. 경영능력 운운하는 대목에 대해서도 작년 기준 영업이익률이 11.5%로 삼성(13.7%)다음으로 높다는 점을 내세워 인수 후 영업 및 수익구조 개선에 자신감을 보이고 있다. 두산측은 발전사업 경영에 대한 경험 부족도 오랫동안 협력관계를 맺어온 GE 등 선진업체와의 제휴를 강화함으로써 충분히 보강할 수 있다고 밝히고 있다.

    두산으로서는 일단 이번 한중 인수로 보수적 정서의 이미지를 씻어내고 도전적 기업이미지를 심는 데 어느 정도 성공을 거뒀다. 한중 경영에서는 향후 경제상황이 어떻게 전개되는지가 중요한 변수가 될 것이다. 현재로선 한중이 두산의 100년 미래를 밝힐 진주가 될지, 트로이 목마와 같은 화근이 될지 예측하기 어렵다.

    두산-한중을 전도양양한 미래 기업으로 키워가는 것은 순전히 최고 경영자의 몫이다. 두산은 12월19일 정식 인수계약을 맺고 내년 3월까지 인수 대금을 모두 치르고 나면 지배주주로서의 권리를 획득, 한중 경영에 본격적으로 발을 들여놓게 된다. 박용만 사장을 비롯한 두산의 최고 경영진들이 한중 경영에서 어떤 수완을 발휘할지 벌써부터 재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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