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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식의 아프리카 문화기행 | 마다가스카르 ①

지구상의 마지막 에덴동산

지구상의 마지막 에덴동산

지구상의 마지막 에덴동산
지구상에 존재하는 수많은 종(種)은 아프리카에서 탄생하여 그곳에서 여러 종으로 나뉘고 진화를 거듭하여 현재에 이르렀다. 인류 역사 역시 아프리카를 빼고는 이야기할 수 없다. 인류고고학자나 생물학자들은 아프리카 곳곳에서 먼지 속에 묻힌 과거의 기억들을 찾아내려 애쓰고 동식물 보호에 힘을 쏟는다.

그 가운데서도 지금은 사라진 희귀한 동식물의 보금자리로 손꼽히는, 그러나 보통의 사람들에게는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신비한 나라가 바로 마다가스카르(Madagascar)이다. 마다가스카르는 위치상 아프리카 영역에 있으면서도 인종, 자연 환경 면에서 아프리카 대륙과 큰 차이를 가지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마다가스카르는 아프리카의 남동부 해안 앞바다에 있는 인도양 남서부의 섬나라로 한반도의 약 2.7배에 해당하는, 세계에서 네번째로 큰 섬으로 주민들 대부분이 인도네시아계로 불리는 아시아계 인종이다.이곳이 유럽에 알려지기 시작한 때는 1500년이다. 포르투갈의 항해가 디오고 디아스가 유럽인으로는 최초로 이 섬을 찾아온 이후 유럽 제국과 무기 노예 소 등을 거래하게 된다. 19세기초 안드리아남포이니메리나 대왕은 메리나족을 통합하여 강력한 왕국을 만들고 유럽에서 무기를 구입하여 국력을 키웠다.

프랑스와 밀접한 관계를 유지하던 메리나 왕국은 1868년에 북서부 해안 통치를 프랑스에 넘겼다. 프랑스의 영향력에 들어가게 된 메리나 왕국은 결국 1895년 멸망하게 되고, 이후 마다가스카르는 프랑스 보호령이 되었다.

1960년 정식 독립을 하면서 초대 대통령인 치라나나 대통령은 프랑스와 협조 정책을 추구하고 재정 및 기술 지원을 받아들이는 등 여러 활동을 했지만 경제 정책 운영의 실패로 1972년에 학생폭동이 일어나 정권이 바뀌었다. 그후 잦은 정권교체는 폭동과 경제난 등으로 이어져 국민들은 가난과 불안에 힘겨워 했다. 이런 불우한 마다카스카르의 현대사는 1993년 사회주의의 종말과 함께 이제야 겨우 제자리를 잡아가고 있다.



남아프리카공화국의 요하네스버그를 떠나 마다가스카르 안타나나리보를 향하는 비행기에 올랐다. 얼마 지나지 않아 파란 잉크를 풀어놓은 듯한 푸른 빛의 모잠비크 해협이 나타났고 그 푸른 인도양 상공을

두 시간 정도 비행하자 안타나나리보가 시야에 들어왔다. 또다른 아프리카를 상상하며 고도를 낮춘 비행기 창 밖을 보자 참으로 뜻밖의 풍경이 시야에 들어왔다. 지평선 가득 물결치는 벼와 부드러운 곡선을 이루는 논두렁, 그 가운데 물소를 몰며 밀짚모자를 쓴 농부의 모습이 아프리카가 아니라 동남아시아 어느 한 나라의 전원 풍경을 보는 듯했다. 검은 대륙 아프리카라고는 좀처럼 생각하기 힘들었다. 아시아의 한 나라이기나 한 듯 일인당 쌀 소비량이 세계에서 두번째로, 한 사람이 하루 평균 1파운드의 쌀을 먹는 곳이기도 하다.

지구상의 마지막 에덴동산
안타나나리보 시내는 사람들 피부만 다를 뿐, 50년 전 흑백 사진에서 보는 서울 청계천 거리와 흡사하다는 것이 솔직한 첫인상이다. 세계 최빈국 중 하나라는 선입견 때문이 아니라 시내 한 복판을 흐르는 실개천이며 도시 외관이 50년 전 한국의 경제 수준이라는 느낌이다.

이곳의 경제 수준을 실감할 수 있는 일이 다시 한 번 더 발생했는데 여우원숭이와 동물들의 사진을 찍고 다시 안타나나리보 공항에 도착해 보니 콜레라가 발생한 것이다. 공항 관리인은 겁먹은 기색도 없이 천연덕스럽게 우리 돈으로 2000원 하는 몇 알의 예방약을 나누어주었다. 아직도 이곳에서는 말라리아나 콜레라 등이 만연해 있고 얼마간의 돈이 없어 치료도 못하고 죽는 이들이 흔하다.

마다가스카르에서는 관혼상제나 ‘할례‘ 등 의 의식을 치를 때 친척이나 가까운 사람들이 무리를 지어 화려하게 행사를 한다. 먼저 ‘죽은 사람의 부활’이라고 하여 죽어서 매장한 지 몇 년이 지난 후에 묘지에서 다시 사체를 꺼내어 본가로 옮기고 사체를 싸고 있던 천을 다른 천으로 바꾸어 주는 의식을 할 때 마을에서는 친척은 물론이고 이웃들을 초대하여 음주가무로, 죽은 사람을 위로한다. 또한 2∼4세의 유아를 대상으로 음경의 표피를 조금 잘라내는 풍습인 ‘할례’는 건기인 6∼9월에 실시한다. 친척과 이웃들이 꽹과리와 북을 치고 국기를 장대에 매달아 거리를 누비는 광경을 볼 수 있다.

IMF 이후 한국인 150명 정도가 마다가스카르로 왔다는 것은 놀라운 사실이었다. 한국인들은 대개 중고차 판매를 하거나 필름 현상소, 옷가게를 하고 있었다. 옷가게를 경영하는 한 한국 아주머니는 멀거니 하늘을 쳐다보며 “한국과 분위기가 같겠나, 많이 다르다”고 말했다. 타지에서 외롭게 있는 그녀가 측은한 마음이 들기도 했지만 긍정적으로 바라보고 싶었다.

나라의 운이 따르지 못하여 전화위복을 꿈꾸며 타의에 의해 전세계로 흩어진 화교가 이제는 전세계의 작은 상권을 장악하고 무시 못하는 배경을 만들었듯 우리도 그렇게 긍정적인 시선으로 한국을 떠난 이들을 보아야 할 것이다.

사회주의에서 자본주의 체제로 변한 지 얼마 되지 않았고 아직도 관광객으로 여행하기에는 불편한 점이 많은 마다가스카르이지만, 아프리카 어느 곳에서도 볼 수 없는 자연미와 그 자연에 영향을 받은 순박한 사람들이 있는 이곳이 내게는 좋은 느낌으로 남아 있다. 자연이 인간을 얼마나 풍요롭게 할 수 있는지 알 수 있는 여행이었다. 그래서일까. 소란스러움과 자동차 매연에 찌든 공기, 신경질적인 얼굴들이 넘쳐나는 서울 거리를 거닐다 지칠 때면 지구 저 반대편에 있는 마지막 에덴의 동산마다가스카르를 떠올리며 가끔 행복해지기도 한다.



주간동아 2000.09.14 251호 (p182~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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