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2016.05.25

책 읽기 만보

어리석음의 비축과 공포의 균형

  • 김현미 기자 khmzip@donga.com

    입력2016-05-23 13:37: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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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2개의 원자폭탄은 작은 태양처럼 사나웠고, 신(神)의 지위에서 추락한 천황은 항복할 수밖에 없는 구실을 찾아냈다. 전쟁은 끝났다. 전쟁이 다시 일어날 거라고 상상하기는 힘들었다.” 그러나 ‘수소폭탄 만들기’의 저자 리처드 로즈는 이 서문의 제목을 ‘끝의 시작’이라고 달았다.  

    미국 실험 물리학자 루이스 월터 앨버레즈(1911~88)는 ‘리틀 보이’라는 이름의 원자폭탄이 일본 히로시마에 투하될 때 지원 폭격기 B-29에 탑승해 그 위력을 눈으로 확인한 뒤 귀환 도중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아빠는 오늘 아침 일본의 민간인 수천 명이 죽고, 불구가 되는 작전에 참가한 것이 무척 후회스럽구나. 하지만 우리가 만든 이 끔찍한 무기가 세계를 단결시켜, 더 이상의 전쟁을 막아줄 거라는 희망도 가져본단다. 알프레드 베른하르드 노벨은 자신이 만든 고성능 폭약이 그런 역할을 해주기를 기대했지. 전쟁이 너무 끔찍해지면 사람들이 생각을 고쳐먹을 수도 있다고 본 거야. 하지만 불행하게도 정반대의 일이 일어나고 말았단다. 우리가 새로 개발한 이 파괴적 폭탄은 그 위력이 수천 배 더 대단하다. 노벨의 꿈이 실현될 수도 있다고 보는 근거야.”

    커티스 에머슨 르메이(1906~90) 소장 같은 군인은 태평양전쟁 초기 미국이 얼마나 준비가 안 돼 있었는지 생생하게 경험했고, 그 전쟁에서 얻은 가장 중요한 교훈이 철저한 준비 태세다. 그는 간부후보생들에게 이렇게 말했다. “살면서 알게 된 것인데, 준비가 미비하거나 전혀 안 된 상황에서 전쟁을 하는 것보다 더 나쁜 일도 없습니다.”

    1945년 제2차 세계대전은 끝났다. 그러나 과학자, 군인, 정치가들은 또 다른 전쟁 준비에 돌입했다. 정치인과 군인들은 선제공격에 대비한다는 명분 아래, 과학자들은 자신의 과학적 능력을 증명하겠다는 욕심에 신무기 개발에 뛰어들었다. 그들을 추동한 것은 애국심과 공포였다. 미국과 소련의 핵무기 개발 경쟁 과정에서 수소폭탄이라는 가공할 무기가 탄생했다. 52년 11월 1일 07시 14분 59.4±0.2초 ‘마이크’가 터졌다. 미국은 태평양 마셜 군도의 에니웨톡이라는 산호초에서 수소폭탄 시험에 성공했다. 마이크 출력은 10.4Mt(메가톤)으로 히로시마에서 터진 원자폭탄 출력의 1000배였다. 53년 1월 미국 국무부 장관의 군축자문위원회 보고서에는 이런 말이 나온다. ‘핵에너지가 해방되면서 야기된 문제는 결국 근본적인 차원에서 인류가 전쟁을 하지 않고 스스로를 다스릴 수 있느냐는 것이다.’



    리처드 로즈는 ‘원자폭탄 만들기’(1986)에 이어 ‘수소폭탄 만들기’(1995), ‘어리석음의 비축’(2007), ‘핵폭탄의 황혼’(2010) 4부작에서 ‘공포의 균형’이 인류를 지배하게 된 기원을 찾고자 했다. 중요한 것은 ‘수소폭탄 만들기’가 출간된 지 20년이 넘었지만 그가 말한 ‘20세기를 지배한 암흑의 태양(수소폭탄)’은 여전히 우리 머리 위에 떠 있다는 사실이다.



    메타 이노베이션
    이상문·임성배 지음/ 한국경제신문/ 232쪽/ 1만4000원


    융합, 컨버전스 등 다양한 혁신 방법 가운데 저자들이 주장하는 ‘공동혁신’은 내외부의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에게서 나온 아이디어나 방법을 창조적으로 적용해 새로운 가치 또는 경험을 제공하는 플랫폼을 의미한다. 공동혁신의 목표는 고객, 공급업자, 구매업자, 정부, 협력업체, 지역사회, 시민이 유기적으로 협력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것이다. 저자들은 이를 위해 공동혁신 생태계 모델을 제안했다.




    1995년 서울, 삼풍
    서울문화재단 기획/ 메모리(人)서울프로젝트 기억수집가 지음/ 동아시아/ 280쪽/ 1만6000원


    1995년 6월 29일 직원들끼리 “백화점 무너지는 거 아냐”라는 농담을 주고받던 날 오후 5시 57분, 백화점이 정말 무너졌다. 6·25전쟁 이후 단일 사건으로는 최대 사상자를 기록한 이 참사로 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쳤다. 그로부터 20년 후 김정영, 류진아, 박현숙, 최은영, 홍세미 등 ‘기억수집가’    5명이 유가족, 생존자, 봉사자, 구조대 등 참사 당사자 59명의 구술을 기록했다.




    미친 교수의 헬수업
    박성태 지음/ 가디언/ 248쪽/ 1만3000원


    Picture, Pray, Practice는 자신의 특별함을 가지고 성공하는 데 필요한 3P다. “그림을 그리고, 간절히 기도하라. 그리고 희망과 간절함이 이뤄지도록 훈련하라.” 한국대학신문 대표인 저자가 300회 넘는 대중강연과 특강을 하면서 정리한 인생 노하우로 ‘나의 특별함을 발견하는 16주간의 스페셜 트레이닝’을 제안했다. ‘평범함’에 멈추는 청춘과 ‘특별함’으로 성장하는 청춘의 차이는 어디서 오는가.




    진중권이 사랑한 호모 무지쿠스
    진중권 지음/ 창비/ 356쪽/ 1만6500원


    윤종신, 신해철, 장일범, 신대철, 손열음, 이자람, 고건혁. 창비 팟캐스트 ‘진중권의 문화다방’에 출연한 아티스트 7명과 나눈 이야기다. 특히 고인이 된 ‘마왕’ 신해철 편은 7년 만에 발표한 앨범 ‘Reboot Myself Part 1’을 시작으로 데뷔부터 2014년까지 작업을 되돌아보며 자신의 음악관과 인생관을 밝힌 마지막 육성 기록이 됐다. 창작자, 연주자, 기획자, 제작자, 해설자, 그래서 ‘호모 무지쿠스’인 그들의 다양한 음악 이야기.




    배드 걸 굿 걸
    수전 J. 더글러스 지음/ 이은경 옮김/ 글항아리/ 580쪽/ 2만3000원


    걸그룹 ‘스파이스 걸스’는 영국 ‘가디언’과 인터뷰에서 이렇게 말했다. “페미니즘은 이제 식상한 말이에요. 1990년대라면 ‘걸 파워’라는 말을 써야죠.” 하지만 오늘날 여자들은 “예쁘고 섹시하되 헤퍼 보여선 안 되고, 유능하지만 남자에게 위협적이어서도 안 되며, 현명하지만 설치고 떠들어서는 안 되고, 남자를 잘 이해해야 하지만 남자를 많이 알아선 안 된다”는 ‘진화된 성차별주의’에 사로잡혀 있다. 왜 다시 페미니즘이 필요한지를 역설한 책. 




    산골로 간 예술가들
    박원식 지음/ 주민욱 사진/ 창해/ 368쪽/ 1만6000원


    충남 공주에 사는 ‘풀꽃 시인’ 나태주는 43년간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다 퇴직했지만 평생 자동차를 가져본 적이 없다. 낡은 자전거의 페달을 밟으며 세상의 모든 시간과 풍경을 통과해 지금까지 시집 서른여섯 권을 냈다. 함양 백암산의 작가 자야, 괴산 군자산의 가수 사이, 장수 신무산의 시인 유용주 등 25명의 ‘산촌 생활자’가 자유롭게 살아가는 모습을 담았다.




    백년의 마라톤
    마이클 필스버리 지음/ 한정은 옮김/ 영림카디널/ 384쪽/ 1만7000원


    미국 허드슨연구소 산하 중국전략센터 소장인 저자가 ‘슈퍼 차이나’를 꿈꾸는 세계 패권 전략을 파헤쳤다. 마오쩌둥과 덩샤오핑을 거쳐 시진핑 시대에 이르기까지 중국 강경파들은 치욕의 역사를 설욕하고 경제·군사·정치적으로 미국을 추월해 글로벌 리더가 되고자 열망해왔다. 저자는 이를 ‘백년의 마라톤’이라고 명명하고 그 핵심 전략을 인(忍), 세(勢), 패(覇)로 요약했다.




    이스트를 넣은 빵
    장정일 지음/ 김영훈 엮음/ 마티/ 400쪽/ 1만2000원


    1994년 처음 나온 ‘장정일의 독서일기’는 2007년까지 7권이 출간돼 90년대 초 신세대로 불리던 ‘장정일 키드’에겐 필독서가 됐다. 그 ‘장정일 키드’를 자처한 김영훈이 절판된 7권을 재가공해 한 권으로 엮고, 일기에서 언급된 책 목록과 장정일 작품 출간 목록을 붙였다. 장정일의 시 ‘삼중당 문고’에서 따온 ‘이스트를 넣은 빵’이라는 책 제목은 탁월한 선택이다. 보고 또 보고, 또 너무 오래돼 곰팡내를 풍기는 삼중당 문고가 눈앞에 어른거린다.


    만보에는 책 속에 ‘만 가지 보물(萬寶)’이 있다는 뜻과 ‘한가롭게 슬슬 걷는 것(漫步)’처럼 책을 읽는다는 의미가 담겨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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