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0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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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호의 시네+아트

타고난 우울함에 대한 찬사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

  • 영화평론가 hans427@daum.net

    입력2016-05-23 11:34: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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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쳇 베이커는 한때 ‘재즈계의 제임스 딘’으로 불렸다. 재즈계에선 드문 백인, 잘생긴 외모, 그리고 노래할 때 개성이 그런 명성을 만드는 데 한몫했다. 미국 뉴욕 중심의 재즈계에서 그는 서부를 대표하며 20대 때 이미 ‘전설들’과 경쟁했다. 당대 트럼펫의 전설 마일스 데이비스, 디지 길레스피의 스타덤을 위협하는 새로운 트럼펫 연주자로 부상했다. 특히 베이커의 최고 히트곡인 ‘마이 퍼니 밸런타인’을 연주할 때면 특유의 멜랑콜리한 분위기가 무대와 객석을 압도했다. 그는 ‘우울함(Blue)’을 타고난 음악인으로 보였다.

    로버트 뷔드로 감독의 ‘본 투 비 블루’는 바로 그에 대한 전기 영화다. 그런데 베이커의 빛나던 시절이 아니라, 제목처럼 ‘우울함을 타고난’ 시기의 추락에 주목했다. 20대 풋풋한 청년의 모습은 온데간데없고, 마약에 찌든 중년 남자의 모습부터 보여준다. 베이커는 평생 마약 때문에 온갖 오명을 남겼는데, ‘본 투 비 블루’는 그가 이탈리아 루카 감옥에 갇혀 있는 장면에서부터 시작한다. 베이커는 유럽을 사랑했고 유럽 투어를 즐겨 했지만, 그곳에서도 늘 마약으로 문제를 일으켰다. 급기야 영국과 당시 서독에서 마약 때문에 추방되기도 했다. 마약사범으로 루카 감옥에 1년 이상 갇혀 있었고, 베이커를 아끼던 사람들도 슬슬 포기하고 멀리할 때, 그는 영화 출연 기회를 잡아 가까스로 감옥에서 풀려나 미국으로 돌아온다.

    ‘본 투 비 블루’는 지금은 망가졌지만 한때 전설이던 베이커(이선 호크 분)가 다시 일어설 수 있을지에 초점을 맞춘다. 추락을 맛봤으니 이제 일어서는 과정만 남은 셈이고, 또 그의 곁에는 그런 고통을 분담할 사랑하는 여성(카먼 이조고 분)까지 있다. ‘본 투 비 블루’는 베이커가 소위 ‘웨스트 코스트 재즈(West Coast Jazz)’의 대표주자임을 보여주고자 자주 바다를 등장시킨다. 캘리포니아 해변을 배경으로 베이커가 연습할 때면 그의 음악에선 아득한 바다 냄새가 난다는 찬사가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베이커 특유의 단순하고 감성적인 음악이 회색 하늘과 잔잔한 파도, 그리고 편안한 모래밭에 비유돼 있어서다.

    마일스 데이비스와 디지 길레스피의 명성에 도전하다 추락을 맛본 베이커는 10년도 더 지나 다시 그들과 경쟁하는 뉴욕 무대에 선다. 문제는 그가 여전히 마약의 유혹을 극복하지 못했다는 점이다. 하지만 ‘본 투 비 블루’는 베이커가 당시 앞니가 다 부러지는 큰 사고를 당한 뒤 연주 생명이 끝났다는 진단을 받고도 마침내 무대에 다시 섰다는 점을 평가하고 있다. 비록 약물로 몸은 엉망진창이 되고,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둘 떠나갔지만 말이다. 로버트 뷔드로는 예술가의 삶이란 결국 예술만으로 평가된다는 생각을 갖고 있는 것 같다. 베이커의 매력은 오직 음악만을 위해 다른 모든 것을 희생하는 순수함이라고 표현하고 있어서다. 그것이 베이커를 전설로 만든 덕목이란 것이다. 그런 표현에 담긴 감정이 시종일관 ‘블루’한 것은 물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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