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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작가의 음담악담(音談樂談)

한쪽 귀가 고장 나고 보니

음악의 소중함

  •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한쪽 귀가 고장 나고 보니

중세 의학자들에겐 정자와 난자 개념이 없었다. 이미 정액 속에 완전한 형태의 사람이 들어 있다고 여겼다. 섹스를 통해 이 작은 사람이 여성의 자궁 속에 들어가 10개월간 성장한 후 태어나는 게 임신과 출산이라고 생각했다. 정액 속에 들어 있는 존재를 호먼큘러스(homunculus), ‘작은 사람’이라 불렀다. 지금 보기에는 황당하기 짝이 없지만, 이 흥미진진한 아이디어를 현대 과학자들이 응용했다. 대뇌피질에서 신체기관을 담당하는 비율에 따라 그림을 그려본 것이다. 선거 결과를 그래픽으로 만들 때 단순히 지역 구분으로 표시하지 않고 투표소 수를 반영하는 것과 같다고 생각하면 된다.

신경해부학 개념에 의해 그려진 호먼큘러스를 보면 흡사 외계인처럼 보인다(그림 참조). 손과 머리가 압도적으로 크고 다른 부위는 상대적으로 작다. 얼굴 감각기관의 크기는 눈→혀·입술→코→귀 순서다. 시각→미각→후각→청각 순으로 뇌의 영역을 차지한다는 얘기다. 진화심리학자들은 이를 직립보행의 산물로 여긴다. 동일한 체구의 동물에 비해 체고가 높아지면서 시각이 발달하고 청력은 진화를 멈췄다는 것이다. 이 학설이 옳건 그르건, 인간이 청력에 의존하는 정보가 다른 감각에 비해 적다는 건 분명하다.

하지만 양이 적다 하여 질이 떨어지는 것은 아니다. 태아가 외부와 소통하는 최초이자 유일한 수단은 듣기다. 태아는 달팽이관이 형성되는 4개월 반이 되기 전부터 들을 수 있다고 한다. 양수의 진동을 통해서 말이다. 자궁에 빛이 없으므로 10개월 내내 보지 못한다. 탯줄로 영양을 공급받기에 먹지 못한다. 태아가 만질 수 있는 건 고작 태반의 벽뿐이다. 오직 듣는다. 그래서 옛 아메리칸 원주민 임신부들은 자연의 소리를 끊임없이 태아에게 들려주고 부족 안에서 전래돼오는 이야기를 노랫가락으로 불러줬다. 그들의 아이는 소리로 상상하며 새로운 세상을 꿈꿨다. 그렇게 10개월 동안 소리로 태교를 받은 아이는 태어나서도 칭얼대는 법이 없었다고 한다. 굳이 아메리칸 원주민까지 가지 않아도, 우리 엄마들 역시 태교를 위해 클래식을 듣는다. 청각 정보의 힘을 인류가 본능적으로 알고 있다는 얘기 아닐까.

얼마 전 급환으로 수술을 받았다. 그 결과 한쪽 청력이 급격히 떨어졌다. 다행히 일시적인 현상이긴 해도 귀가 온전히 들리지 않는다는 게 이토록 곤란한 일인 줄 몰랐다. 한쪽 눈을 감고 세상을 보면 평소와 초점이 달라질 뿐이지만, 한쪽 귀가 막히는 건 그에 비할 바가 아니다. 상대의 말이 뭉툭하게 들리는 데다 여럿이 있는 자리에선 들리지 않는 쪽과의 대화를 포기해야 한다.

음악 듣기를 업으로 삼고 있으니 곤란함은 더하다. 한쪽 귀로만 들리는 음악은 양쪽으로 들을 때에 비해 선명도가 확 떨어진다. 피아노나 첼로 독주처럼 비교적 균등한 진폭의 단순한 소리는 그나마 낫다. 록이나 힙합, 일렉트로닉 등 대중음악 영역으로 가면 문제는 심각하다. 현대 대중음악은 리코딩 과정에서부터 양쪽 귀로 듣는다는 걸 전제로 하는 스테레오 사운드로 녹음되기 때문이다.



한쪽 귀가 고장 나고 보니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가 인체 각 부분을 대뇌피질에서 차지하는 비율에 따라 그린 호먼큘러스 그림.

스테레오를 강제로 모노로 듣는다는 건 소리의 입체감을 희생한다는 의미다. 요컨대 모든 음악이 평평하게 들린다. 음식으로 치자면 첫맛과 끝 맛이 구분 없이 한꺼번에 느껴진달까.

양쪽 귀로 온전히 음악을 들을 수 있다는 게 얼마나 일상을 풍부하게 만드는지 새삼 깨닫는다. 물속에 들어가 산소의 소중함을 알고, 사막 한복판에서 물이 귀한 걸 아는 격이다. 다시 음악을 온전히 들을 수 있게 될 날을 학수고대한다. 물 밖에 나왔을 때 큰 호흡을 달게 쉬고 오아시스에 당도하여 물을 값지게 들이켜듯, 처음 음악에 빠져들 때의 기쁨을 온몸으로 느낄 수 있을 테니.







주간동아 2016.05.11 1037호 (p77~77)

대중음악평론가 noisepop@daum.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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