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드컵 16강 진출의 가장 큰 공은 ‘압박수비’였다. 6월14일 한국팀은 2002 한·일 월드컵의 강력한 우승후보이자 넘을 수 없는 벽으로 여겼던 포르투갈을 1대 0으로 제압했다. ‘날다람쥐‘ 박지성(21·교토 퍼플상가)의 그림 같은 발리슛이 승리의 완성품이었다면 그 토대는 세계 최고 수준의 수비였다.
허정무 KBS 축구 해설위원의 말처럼 이날 한국팀은 “32개 참가국 중 압박에 관한 한 최고”인 경기를 보여줬다. 조영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전 청소년대표팀 감독)도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압박능력을 보여준 경기”라면서 “선수들의 능력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고조에 이른 만큼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흔히 축구경기에 대해 얘기할 때는 누가 골을 넣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그러나 3선 수비수들의 부지런한 움직임, 미드필드에서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치지 않고 골이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점을 유심히 본다면 축구의 묘미는 몇 배 커질 것이다.
14일 포르투갈전에서 한국 축구는 스피드와 투지, 골 결정력을 갖춘 ‘강한 압박축구’를 보여주면서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막을 수 있는 대인마크 능력이 부족한 것을 협력수비로 보충했고, 조직적인 패스로 상대 진영을 조여가는 공격력을 키워왔다. 그것이 적중한 경기였다.
히딩크는 이날 김태영(32·전남 드래곤스)에게 핀투를 전담 마크하도록 하는 변칙 수비전술을 구사했다. 수비 전문 선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것이 맞아떨어졌다. 전반 27분 주앙 핀투가 박지성을 백태클해 퇴장당한 것도 김태영의 철벽수비에 따른 신경전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33·포항 스틸러스) 최진철(31·전북현대) 김태영의 스리백에 송종국(23·부산 아이콘스)과 이영표(25·안양 LG)가 가세해 사실상 4, 5명의 수비수가 뛰는 것처럼 보인 변칙수비 형태도 돋보였다. 핀투가 퇴장당한 뒤엔 스리백으로 바뀌었고 김태영은 왼쪽 사이드백으로 전환해 안정된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이 같은 변칙 포맷은 포르투갈 공격진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로이터통신 월드컵 취재진이 조별리그 48경기를 종합 분석해 16일 발표한 포지션별 ‘월드 베스트11’에는 김태영이 당당히 왼쪽 수비수로 꼽혔다.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의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며 단 한 골만 실점케 한 공로였다.
한국 선수들은 6월14일 경기 초반부터 노련한 포르투갈 선수들을 지역방어, 개인 밀착방어, 협공으로 무력화했다. 반면 포르투갈은 한국을 이겨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강박감 때문에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드필드에서는 한국의 강한 압박에 1진1퇴를 거듭했다.
포르투갈의 특기는 좌우측으로 빠르게 패스한 뒤 정확한 센터링으로 골을 연결하는 것. 그러나 한국팀 문전에서의 공중볼은 키가 큰 최진철(187cm)에 의해 대부분 차단됐다. 최진철은 전반 18분 피구가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제치며 돌파할 때 노련하게 볼을 가로채는 등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반 30분에는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가 골이나 다름없는 헤딩슛을 날렸으나 골키퍼 차징으로 판정나고 말았다. 후반 41분 다친 뒤에는 팀닥터로부터 교체 결정까지 받았으나 끝까지 뛰겠다는 투혼도 발휘했다.
홍명보는 상대가 그림 같은 전진 패스로 좌우측에서 기회를 만들 때 오프사이드 트랩을 지휘하는 데 주력했다. 후배 수비수들을 잘 독려했고, 상대팀 2명이 퇴장당한 뒤에도 안정된 수비를 이끌다가 종종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날 미드필드에서의 압박도 상대를 압도했다.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양대 미드필더로 꼽히는 루이스 피구는 미드필드에서부터 송종국과 이영표에게 꽁꽁 묶였다. 피구를 제압한 게 이날 승리의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가 풀리지 않자 피구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을 당시 분석한 결과 루이스 피구의 천적은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다. 송종국은 이날 카를루스 못지않게 피구를 몰아붙였다. 송종국은 경기가 끝나고 “녹화 비디오를 돌려보며 피구가 어디로 공을 찰지, 발놀림은 어떻게 할지 다 예측했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하게 마크했다. ‘생각하는 축구’의 승리였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연수를 한 성남 일화의 김학범 코치는 피구에 대해 “한국 선수 역량으로는 솔직히 피구를 1대 1로 막기는 힘들다. 그러나 피구에게도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움직이면서 공을 받는 게 아니라 뻣뻣이 서서 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구는 일단 공을 잡으면 원터치 패스보다 자신이 드리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강력한 프레싱을 펼치는 데 틈을 준다는 얘기다. 더구나 왼발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송종국은 이를 철저히 이용했고, 결과는 완승이었다.
유상철(31·가시와 레이솔)은 미드필드 주도권 싸움의 숨은 공로자였다. 상대가 공을 갖고 돌아서기 전에 미리 예측하고 차단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다 상대 수비에 허점이 보이면 날카로운 공격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체력과 조직력이 돋보이는 한국팀이지만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대 1로 돌파하는 개인기 부족, 수비와 공격라인 간 간격 유지의 일관성 부족, 집중력 부족 등은 보완해야 할 점들.
14일 경기에서는 전반 16분 한국팀이 공격할 때 공격수와 미드필드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져 뒤에 받쳐주는 선수가 없었다. 결국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볼은 다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넘어가 위기를 맞았다. 전반 33분에는 미드필드의 집중력이 한순간에 떨어지면서 볼을 빼앗겼다. 한국 선수들이 5명이나 버티고 있었는데, 포르투갈은 논스톱 패스로 최전방의 파울레타에게 정확하게 연결했다.
10일 미국전에서는 너무 일찍 실점한 탓에 선수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으며, 결국 균형감을 잃고 수비와 공격라인이 벌어졌다. 당연히 경기 운영 자체가 허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수비, 미드필드, 공격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각 라인의 선수들이 모두 제 몫 이상을 해야 한다. 특히 히딩크는 공격수들에게 수비가담 능력을 키우라고 주문해 왔다. 그래야만 압박축구가 가능하다는 것. 포르투갈전에서 한국의 공격수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많이 놓쳤지만 수비가담 능력에서는 만족할 만했다.
조영증 위원은 한국 축구가 진일보한 점이 바로 이 점이라고 지적했다. “볼을 빼앗아나갈 때보다 공격하다가 볼을 빼앗겼을 때 곧바로 수비에 가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히딩크 이전의 한국 축구는 그것을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대표선수들은 반복훈련을 통해 볼을 빼앗겼을 때 적극적으로 압박해 들어가고 도전적으로 덤벼든다. 상대편이 볼을 잡으면 두세 명이 에워싸고 꽁꽁 묶어둔다.”
이제 한국팀은 ‘멀티플레이어들이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압박을 가하는’ 팀컬러를 갖게 됐다. 브루스 어리나 미국 대표팀 감독이나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감독 모두 이 점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압박축구(토털사커)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팀에 유용한 전술이 될 것인가. 먼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축구양식과 이번 월드컵의 흐름을 보자.
‘축구 전쟁의 역사’를 쓴 사이먼 쿠퍼는 오늘날 지배적인 축구양식을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긴 패스 위주의 경기 △네덜란드가 바르셀로나와 AC밀라노 같은 팀들에 전파한 토털사커(total football) △기교와 극적인 묘기를 추구하는 브라질팀의 ‘해피 고 럭키 스타일’(happy-go-lucky style) △이탈리아의 수비축구(catenaccio·원래 ‘맹꽁이 자물쇠’란 뜻이지만 주로 빗장수비의 뜻으로 쓰임) 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
물론 이 가운데 순수하게 하나의 방식만 고집하는 팀은 없다. 각기 다른 스타일에서 여러 요소를 빌려와 결합한 축구를 하고 있지만 근간은 위 네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 조 예선에서 눈에 띈 것은 아트사커 스타일이 패배하고,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수비축구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기술축구를 선보이던 아르헨티나 프랑스 포르투갈 등이 줄줄이 조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덴마크 아일랜드 스웨덴 등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북유럽팀들은 16강에 진출했다. 물론 2회전에서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등이 잇따라 탈락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체력적으로 우수하고 수비가 튼튼한 팀들이 강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16강에 오른 팀들은 조 예선 경기에서 평균 1.2골을 실점했다. 그만큼 ‘짠돌이’축구를 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명감독 엘레니오 에레라가 “아무리 훌륭한 전술이라도 골을 먹는다면 그것은 전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듯이 수비 위주의 압박축구가 다시 한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허정무 해설위원은 “특히 한국팀에게 토털사커는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주류를 이룰 것”이라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토털사커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허정무 KBS 축구 해설위원의 말처럼 이날 한국팀은 “32개 참가국 중 압박에 관한 한 최고”인 경기를 보여줬다. 조영증 대한축구협회 기술위원(전 청소년대표팀 감독)도 “세계 톱클래스 수준의 압박능력을 보여준 경기”라면서 “선수들의 능력이 체력적으로나 정신적으로 최고조에 이른 만큼 남은 경기에서도 좋은 경기 내용을 보여줄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흔히 축구경기에 대해 얘기할 때는 누가 골을 넣었는지가 가장 큰 관심사다. 그러나 3선 수비수들의 부지런한 움직임, 미드필드에서의 치열한 공방전을 거치지 않고 골이 터지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이 점을 유심히 본다면 축구의 묘미는 몇 배 커질 것이다.
14일 포르투갈전에서 한국 축구는 스피드와 투지, 골 결정력을 갖춘 ‘강한 압박축구’를 보여주면서 전 세계에 강한 인상을 남겼다. 거스 히딩크 감독은 우리 선수들이 세계적인 스타플레이어들을 막을 수 있는 대인마크 능력이 부족한 것을 협력수비로 보충했고, 조직적인 패스로 상대 진영을 조여가는 공격력을 키워왔다. 그것이 적중한 경기였다.
히딩크는 이날 김태영(32·전남 드래곤스)에게 핀투를 전담 마크하도록 하는 변칙 수비전술을 구사했다. 수비 전문 선수를 수비형 미드필더로 배치한 것이 맞아떨어졌다. 전반 27분 주앙 핀투가 박지성을 백태클해 퇴장당한 것도 김태영의 철벽수비에 따른 신경전의 결과로 볼 수 있다.
또한 홍명보(33·포항 스틸러스) 최진철(31·전북현대) 김태영의 스리백에 송종국(23·부산 아이콘스)과 이영표(25·안양 LG)가 가세해 사실상 4, 5명의 수비수가 뛰는 것처럼 보인 변칙수비 형태도 돋보였다. 핀투가 퇴장당한 뒤엔 스리백으로 바뀌었고 김태영은 왼쪽 사이드백으로 전환해 안정된 수비라인을 구축했다. 이 같은 변칙 포맷은 포르투갈 공격진을 당황케 하기에 충분했다.
로이터통신 월드컵 취재진이 조별리그 48경기를 종합 분석해 16일 발표한 포지션별 ‘월드 베스트11’에는 김태영이 당당히 왼쪽 수비수로 꼽혔다. 폴란드 미국 포르투갈과의 세 경기에 모두 선발 출전해 한 번도 교체되지 않고 전 경기를 풀타임으로 뛰며 단 한 골만 실점케 한 공로였다.
한국 선수들은 6월14일 경기 초반부터 노련한 포르투갈 선수들을 지역방어, 개인 밀착방어, 협공으로 무력화했다. 반면 포르투갈은 한국을 이겨야 16강에 진출할 수 있다는 강박감 때문에 서두르는 기색이 역력했다. 미드필드에서는 한국의 강한 압박에 1진1퇴를 거듭했다.
포르투갈의 특기는 좌우측으로 빠르게 패스한 뒤 정확한 센터링으로 골을 연결하는 것. 그러나 한국팀 문전에서의 공중볼은 키가 큰 최진철(187cm)에 의해 대부분 차단됐다. 최진철은 전반 18분 피구가 현란한 드리블로 수비수들을 제치며 돌파할 때 노련하게 볼을 가로채는 등 제 역할을 톡톡히 했다. 전반 30분에는 상대 진영 깊숙이 들어가 골이나 다름없는 헤딩슛을 날렸으나 골키퍼 차징으로 판정나고 말았다. 후반 41분 다친 뒤에는 팀닥터로부터 교체 결정까지 받았으나 끝까지 뛰겠다는 투혼도 발휘했다.
홍명보는 상대가 그림 같은 전진 패스로 좌우측에서 기회를 만들 때 오프사이드 트랩을 지휘하는 데 주력했다. 후배 수비수들을 잘 독려했고, 상대팀 2명이 퇴장당한 뒤에도 안정된 수비를 이끌다가 종종 공격에 가담하기도 했다.
이날 미드필드에서의 압박도 상대를 압도했다. 지네딘 지단과 함께 세계 양대 미드필더로 꼽히는 루이스 피구는 미드필드에서부터 송종국과 이영표에게 꽁꽁 묶였다. 피구를 제압한 게 이날 승리의 실질적인 원동력이었다. 시간이 지날수록 경기가 풀리지 않자 피구는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 시작했다.
히딩크 감독이 레알 마드리드 감독으로 있을 당시 분석한 결과 루이스 피구의 천적은 브라질의 호베르투 카를루스다. 송종국은 이날 카를루스 못지않게 피구를 몰아붙였다. 송종국은 경기가 끝나고 “녹화 비디오를 돌려보며 피구가 어디로 공을 찰지, 발놀림은 어떻게 할지 다 예측했다”고 말할 정도로 철저하게 마크했다. ‘생각하는 축구’의 승리였다.
스페인 레알 마드리드에서 연수를 한 성남 일화의 김학범 코치는 피구에 대해 “한국 선수 역량으로는 솔직히 피구를 1대 1로 막기는 힘들다. 그러나 피구에게도 안 좋은 버릇이 있다. 움직이면서 공을 받는 게 아니라 뻣뻣이 서서 공을 받는 경우가 많다. 또한 피구는 일단 공을 잡으면 원터치 패스보다 자신이 드리블하려는 경향이 있다. 이것은 강력한 프레싱을 펼치는 데 틈을 준다는 얘기다. 더구나 왼발은 거의 쓰지 않는다”고 분석했다. 송종국은 이를 철저히 이용했고, 결과는 완승이었다.
유상철(31·가시와 레이솔)은 미드필드 주도권 싸움의 숨은 공로자였다. 상대가 공을 갖고 돌아서기 전에 미리 예측하고 차단하는 능력이 돋보였다. 그러다 상대 수비에 허점이 보이면 날카로운 공격수 역할도 마다하지 않았다.
이처럼 체력과 조직력이 돋보이는 한국팀이지만 허점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다. 1대 1로 돌파하는 개인기 부족, 수비와 공격라인 간 간격 유지의 일관성 부족, 집중력 부족 등은 보완해야 할 점들.
14일 경기에서는 전반 16분 한국팀이 공격할 때 공격수와 미드필드의 간격이 지나치게 벌어져 뒤에 받쳐주는 선수가 없었다. 결국 기회를 살리지 못하고 볼은 다시 포르투갈 선수들에게 넘어가 위기를 맞았다. 전반 33분에는 미드필드의 집중력이 한순간에 떨어지면서 볼을 빼앗겼다. 한국 선수들이 5명이나 버티고 있었는데, 포르투갈은 논스톱 패스로 최전방의 파울레타에게 정확하게 연결했다.
10일 미국전에서는 너무 일찍 실점한 탓에 선수들이 심리적 압박감을 느꼈으며, 결국 균형감을 잃고 수비와 공격라인이 벌어졌다. 당연히 경기 운영 자체가 허술하게 느껴질 수밖에 없었다.
수비, 미드필드, 공격수가 유기적으로 움직일 수 있도록 하려면 각 라인의 선수들이 모두 제 몫 이상을 해야 한다. 특히 히딩크는 공격수들에게 수비가담 능력을 키우라고 주문해 왔다. 그래야만 압박축구가 가능하다는 것. 포르투갈전에서 한국의 공격수들은 결정적인 기회를 많이 놓쳤지만 수비가담 능력에서는 만족할 만했다.
조영증 위원은 한국 축구가 진일보한 점이 바로 이 점이라고 지적했다. “볼을 빼앗아나갈 때보다 공격하다가 볼을 빼앗겼을 때 곧바로 수비에 가담하는 능력이 중요하다. 히딩크 이전의 한국 축구는 그것을 잘하지 못했다. 그러나 지금 대표선수들은 반복훈련을 통해 볼을 빼앗겼을 때 적극적으로 압박해 들어가고 도전적으로 덤벼든다. 상대편이 볼을 잡으면 두세 명이 에워싸고 꽁꽁 묶어둔다.”
이제 한국팀은 ‘멀티플레이어들이 강한 체력을 바탕으로 끊임없는 압박을 가하는’ 팀컬러를 갖게 됐다. 브루스 어리나 미국 대표팀 감독이나 올리베이라 포르투갈 감독 모두 이 점을 인정했다.
그렇다면 압박축구(토털사커)는 앞으로도 계속 한국팀에 유용한 전술이 될 것인가. 먼저 오늘날 널리 쓰이는 축구양식과 이번 월드컵의 흐름을 보자.
‘축구 전쟁의 역사’를 쓴 사이먼 쿠퍼는 오늘날 지배적인 축구양식을 △영국인들이 선호하는 긴 패스 위주의 경기 △네덜란드가 바르셀로나와 AC밀라노 같은 팀들에 전파한 토털사커(total football) △기교와 극적인 묘기를 추구하는 브라질팀의 ‘해피 고 럭키 스타일’(happy-go-lucky style) △이탈리아의 수비축구(catenaccio·원래 ‘맹꽁이 자물쇠’란 뜻이지만 주로 빗장수비의 뜻으로 쓰임) 등 네 가지로 구분한다.
물론 이 가운데 순수하게 하나의 방식만 고집하는 팀은 없다. 각기 다른 스타일에서 여러 요소를 빌려와 결합한 축구를 하고 있지만 근간은 위 네 가지 방식 가운데 하나를 취한다는 것이다.
실제로 이번 월드컵 조 예선에서 눈에 띈 것은 아트사커 스타일이 패배하고, 강한 압박을 바탕으로 한 수비축구가 상승세를 타고 있다는 점이다. 화려한 기술축구를 선보이던 아르헨티나 프랑스 포르투갈 등이 줄줄이 조 예선에서 탈락했지만 덴마크 아일랜드 스웨덴 등 강력한 체력을 바탕으로 수비 위주의 경기를 펼치는 북유럽팀들은 16강에 진출했다. 물론 2회전에서 스웨덴 덴마크 아일랜드 등이 잇따라 탈락했지만 한 가지 분명한 사실은 체력적으로 우수하고 수비가 튼튼한 팀들이 강세인 것만은 분명하다.
16강에 오른 팀들은 조 예선 경기에서 평균 1.2골을 실점했다. 그만큼 ‘짠돌이’축구를 했다는 것이다. 이탈리아의 전설적인 명감독 엘레니오 에레라가 “아무리 훌륭한 전술이라도 골을 먹는다면 그것은 전술이라고 할 수 없다”고 했듯이 수비 위주의 압박축구가 다시 한번 위세를 떨치고 있다.
허정무 해설위원은 “특히 한국팀에게 토털사커는 여전히 유효하고 앞으로도 당분간 주류를 이룰 것”이라면서 “이번 월드컵에서 한국이 선전하고 있는 것은 이런 토털사커에 대한 준비가 철저했기 때문”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