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96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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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혁신 안 하고 버틴다면 국민이 정치인도 수입할 것”

복거일 새누리당 혁신위원

  • 배수강 기자 bsk@donga.com

    입력2014-11-24 09: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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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혁신 안 하고 버틴다면 국민이 정치인도 수입할 것”
    새누리당이 혁신을 기치로 야심 차게 내놓은 ‘의원 특권 내려놓기’ 혁신안이 의원들의 반발에 부딪혀 표류하고 있다. ‘보수혁신’을 기치로 내걸고 당대표에 당선된 김무성 대표는 잠재적 대통령선거(대선) 경쟁자인 김문수 전 경기도지사를 위원장으로 선임하며 혁신에 대한 국민 기대치를 높였지만, ‘문무합작품 1호’는 이제 고차방정식 문제가 된 느낌이다. 김 대표는 “일부 보완하겠다”지만, 혁신안을 수정한다면 혁신안이 후퇴했다는 비판에 직면할 수밖에 없다. 김 위원장 역시 ‘혁신 아이콘’으로 자리매김해 대선 고지로 향한다는 전략을 포기할 뜻이 없어 보인다.

    이에 새누리당 보수혁신특별위원회(혁신위) 외부위원인 복거일 작가(68·문화미래포럼 대표·사진)는 11월 18일 ‘주간동아’와 인터뷰에서 “보수가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혁명이 터진다. 혁신위원은 혁명을 막는 전사들”이라며 “정치인을 수입하자는 판에 국회의원들이 혁신위 안건을 끝까지 비토할 순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암 투병 중 혁신위원을 맡은 복 작가는 이날 서울 중구의 한 호텔에서 인터뷰를 갖고 “결국은 민심이 결정할 것”이라며 혁신안 원안 통과에 자신감을 보였다.

    “보수가 혁신 안 하면 혁명 터져”

    ▼ 암 투병 중인데, 혁신위원 활동에 지장은 없나.

    “간암 말기인데 현재는 손을 써볼 수가 없다. 3년 전 암이 온몸에 퍼졌다는 것을 알았다. 몇 년을 항암치료에 매달리면 글을 쓸 수가 없다. 다행히 치료 결과가 좋더라도 70대 중반인데, 그때는 기력도 쇠잔하고 작가로서도 끝이다. 작가가 글을 안 쓰고 살면 의미가 없다. 내가 존경하는 분들 중에는 항암치료를 받다 고생은 고생대로 하고 글도 못 쓴 분이 꽤 있다. 나는 ‘얕게 놀자’고 생각했다(웃음). 벌써 3년인데, 올해도 잘 넘겼으니 한 해 더 사는 거지. 지인이 보내준 비타민과 브라질 자생 버섯을 먹어서인지 요즘은 피로가 덜하다.”



    ▼ 혁신위원을 맡아달라고 누가 요청했나.

    “김문수 위원장이 전화해서 도와달라고 했다. 고(故) 조창호 중위(육군 소위로 6·25전쟁에 참전했다가 포로가 돼 43년 만에 북한을 탈출한 인물) 이야기를 다룬 악극 ‘아 나의 조국’을 연출한 적이 있다. 그때 유일하게 김 전 지사가 ‘나라가 할 일인데 큰일 하셨다’며 공연을 지원해준 게 인연이 됐다. 내가 아쉬울 때 도와달라고 했는데 이제는 김 전 지사가 도와달라니 어쩌겠나. 남의 당에 들어가 혁신한다고 하면 미움만 받을 건 알고 있었다. 처음엔 하기 싫었다.”

    ▼ 11월 12일 김 위원장이 새누리당 의원총회(의총)에서 활동 결과를 발표했다.

    “9개 혁신안 가운데 의원들은 국회의원 불체포특권과 관련해 불만이 많았다. ‘우리를 범죄자 취급하냐’고 반발하던데, 우리가 일일이 붙잡고 설명하기는 현실적으로 불가능하다. 체포동의안이 국회 본회의에 회부돼 72시간 경과하면 체포동의로 간주하자는 내용이다. 혁신위 회의를 할 때 김회선 의원이 제안했다. 체포동의안이 회부되면 국회의원들이 동의를 잘 안 하니 ‘제 식구 감싸기’라는 비판을 받는 거 아닌가. 물론 위헌 여지도 있다는데, 법리상 문제가 있더라도 밀고 나가야 한다. 법리 어쩌고 하면서 제도를 개선하지 않으면 국민이 진정성을 믿겠나. 고육지책(苦肉之策)이다. 김 위원장이 그동안 의원들에게 설명할 기회를 달라고 여러 차례 요청했는데, 그게 안 됐으니 그날 의총에서 의원들이 반발한 거 같다.”

    ▼ 의원들의 반발에 활동이 위축되지 않나.

    “혁신하려면 혁신 주체가 도덕적 권위를 세워야 하고, 그 첩경이 특권 내려놓기다. 최소한의 도덕적 입지를 마련해야 한다. 보수는 현 체제를 지키는 세력이다. 끊임없이 혁신하지 않으면 혁명이 터진다. 우리(혁신위원)는 혁명을 막는 세력, 전사다.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 이념을 바탕으로 한 새누리당이 자유민주주의와 시장경제의 대척점에 있는 세력에게 선거에서 지는 것도 혁신이 부족하기 때문이다. 혁신위는 6개월 활동이 종료되더라도 임시기구로 남겨 혁신 논의를 계속해야 한다.”

    혁신위가 이날 내놓은 9개 혁신안은 △2015년 국회의원 세비 동결 △체포동의안 관련 국회법 개정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 △출석률에 따른 세비 혁신 △독립 세비조정위원회 설치 △국회의원 겸직 금지 △외부인사로 구성된 윤리심사자문위원회 결정을 국회 윤리특별위원회가 따르도록 기능 강화 △중앙선거관리위원회 산하 선거구획정위원회가 선거구 획정 △국회 윤리특위 강화가 주요 내용이다.

    ▼ 회의 과정에서 반대의견은 없었나.

    “국회에 대한 국민의 절망, 분노, 답답함 이런 걸 조금이라도 해소하려면 제도를 개선해야 한다고 위원들 의견이 모아졌다. 원희룡 제주도지사도 ‘이거 정말 만들면 안 되는 안이지만 지금 상황에선 이렇게 할 수밖에 없다’고 했다. 출판기념회 전면 금지도 마찬가지였다.”

    홍준표 지사 비판은 적절치 않아

    ▼ 출판기념회 금지안 역시 반발이 컸다.

    “현실적으로 국회의원은 돈이 많이 필요한데, 출판기념회를 금지하면 돈 많은 사람만 정치하기 좋아지는 측면은 있다. 논의 과정에서는 ‘정가제로 받자’는 의견도 나왔다. 기념회장에선 봉투에 돈을 담아 건네는데, 그렇다면 봉투를 열어보고 책값 외에 남는 돈은 돌려줄 수 있을까. 국민은 출판기념회를 음성적인 특권으로 인식한다. 우리가 ‘정가제로 받기로 했다’고 발표하면 국민 눈에는 ‘혁신 생색내기’ 정도로 비쳤을 거다. 이참에 아예 없애는 거지. 이런 혁신을 안 하면 당장 피해볼 사람은 현역 국회의원들이다. 다음 선거에서 직접적 피해자가 된다. 이참에 어느 정도 도덕적 권위를 확보해야 한다. 공무원연금 개혁도 의원들의 도덕적 권위가 서야 성공한다. 나는 혁신위가 한 건 했다고 생각한다.”

    ▼ 한 건 했다?

    “김무성 대표가 공무원 노동조합 대표들과 면담했을 때 거친 대화가 오갔지만 ‘의원들, 너나 잘하세요’ 이 소리는 안 나왔다. 혁신위가 의원들 특권도 내려놓겠다고 나오니까. 개혁을 주도하는 새누리당이 개혁 대상 사람들로부터 ‘당신은 뭘 희생했느냐’는 소리를 들으면 ‘할 만큼 했다’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개혁드라이브를 거는 현재 상황에서 혁신위가 내놓은 안을 비토할 수 있을까. 혁신위 활동은 성공할 수밖에 없다. 민심은 무섭다.”

    그는 테이블 위에 놓인 자몽주스를 조금씩 마시더니 뭔가 생각났다는 듯 급히 잔을 내려놓았다.

    “며칠 전 새누리당 당사 앞에서 1인 시위를 하더라. 피켓 문구를 보니 ‘히딩크 전 축구대표팀 감독 본받아 국회의원을 수입하자’였다. 정치 지도자 수입하자, 이건 나도 20년 전 이미 주장했다. 소비자인 유권자 이익이 최대화하도록 괜찮은 정치인을 수입하는 거다. 새정치민주연합 원혜영 의원이 말한 것처럼 국회의원은 고시 출신이 대부분이라 동종교배와 비슷하다. 그런데 혁신까지 안 한다면 정말 국민이 정치인 수입하자고 나올 거다.”

    “혁신 안 하고 버틴다면 국민이 정치인도 수입할 것”

    11월 17일 서울 여의도 새누리당사에서 열린 보수혁신특별위원회 11차 전체회의에서 김문수 혁신위원장(왼쪽)과 복거일 혁신위원이 인사를 나누고 있다.

    ▼ ‘혁신안 수정’ 문제를 두고 원안을 고수하는 김 위원장과 김 대표의 관계가 삐걱댄다는 지적도 나온다. 김 위원장이 “당이 개인 팬클럽 비슷하게 사당화됐다”며 김 대표를 겨냥한 발언도 했는데.

    “생각이 다를 수 있다. 김 대표는 의원들 항의가 들어오니 ‘보완할 수 없나’ 생각하고, 김 위원장은 여기서 물러나더라도 야당이 혁신을 앞세워 추월하면 우리는 수구 기득권 세력이 된다고 생각한다. 삐걱대는 건 아니다. 김 위원장을 발탁한 사람이 김 대표고, 지금 혁신이 안 되면 김 대표도 내상을 크게 입는다. 김 위원장 역시 정치 커리어가 끝난다. 김 대표가 당대표 된 것도 ‘보수혁신’ ‘친박(친박근혜)에 대한 반감’ 덕이 컸고, 완전히 당대표로서 뿌리를 내린 것도 아니다. 그런 상황에서 원군이 되는 김 위원장과 다투겠나. 김 대표도 참 고단한 사람이다. 사당화 발언도 대권주자가 당대표 겸직하면 사당화 경향이 있다고 설명하는 거였지, 김 대표를 겨눈 발언은 아니었다. 해프닝이다.”

    ▼ 홍준표 경남도지사는 “제일 먼저 국회의원에게 칼을 들이댄 건 미스였다” “2006년 당 혁신위원장을 할 때 당시 김무성 사무총장이 총대 메고 반대했다”고 비판했다. 홍 지사는 혁신위 자문위원이기도 한데.

    “그분 성격이 뭐랄까, 굉장히 정치적인 스타일이다. 아무리 홍 지사가 차기 대권주자라고 해도 혁신하기 위해선 당대표 권한을 빌려야 하는데, 그런 발언은 적절치 않다. 혁신위원 20명이 9번 회의할 때는 한 번도 참석 안 하다가 11월 12일 처음 참석해 ‘국회의원 특권 내려놓기가 쩨쩨하다’고 해서야…. 그땐 부글부글 끓었지만 웃고 넘어갔다. 김 위원장도 계속 웃기만 하더라.”

    ▼ 김 위원장도 차기 대권후보이니 홍 지사가 견제구를 날렸다고 보는 시각도 있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 활동이 논란이 되는 게 더 낫다고 생각한다. ‘뭔가 하는구나’ 하고 국민이 알게 되니까. 그러니 홍 지사 발언에도 웃는 거다. 김 위원장이 대범해서가 아니라 ‘약은’ 거다. 김 위원장은 혁신위원장을 성공적으로 마쳐야 대권으로 갈 수 있다는 걸 안다.”

    그는 이 대목에서 김 위원장이 2003년 17대 총선에서 한나라당 공천심사위원장이던 시절 일화를 들려줬다. 이문열 작가가 공천심사위원회 인사로 있을 때 이 작가는 “김문수 위원장은 자신을 임명한 최병렬 대표의 청탁도 안 들어주고 ‘물갈이 원칙’만 내세운다”고 말했다고 한다.

    “당시 공천심사위원장으로서 공천을 잘해 가장 큰 이득을 본 사람이 김 위원장 자신이었다. 혁신위 활동도 적당히 타협하면 망치고, 밀고 나가 성공하면 자산이 된다는 걸 잘 안다. 그러니 밀어붙이는 거다. 약은 거고, 현명한 거고.”

    ▼ 혁신안 ‘시즌2’는 언제 나오나.

    “지금까지 한 것은 전체 어젠다의 5분의 1 정도밖에 안 된다. 일주일에 2번 회의를 하는데, 앞으론 정당 개혁, 입법 과정 투명화, 선거 개혁, 민생정책 등 다양하다.”

    국민참여경선해야 ‘줄서기’사라져

    ▼ 현행 소선거구제 개편, 정당명부식 비례대표 도입, 국민참여경선(오픈프라이머리·open primary·대통령 등의 공직 후보를 선발할 때 일반 국민이 직접 참여하는 예비 선거) 등이 논의될 걸로 안다. 혁신위가 내놓을 민생정책은 뭔가.

    “조선시대에는 한문을 아는 사람이 부와 경제력을 세습했는데, 요즘은 한문 대신 영어라고 한다. 자녀 영어 수준은 부모 소득과 정비례한다. 자녀 영어교육을 나라가 책임지는 거다. 정부가 영어 TV 채널을 확보해 0~2세, 3~4세, 5~6세 등 연령별로 콘텐츠를 보급하는 식이다. 구체적으로 따져봐야겠지만 수십억 원 정도 예산이면 가능하다고 한다. 인문학을 전공하는 대학생의 취직을 돕기 위해 ‘국가 사이버대’를 만들어 최고 강사들의 강의 프로그램을 개설하는 일도 논의할 거다. 인문학도들도 기업 재무제표나 경제 기본 이론, 컴퓨터 언어, 통계학 같은 기초 소양을 익힐 수 있게 하려는 취지다.”

    그는 미국 인터넷교육 업체 유다시티의 나노디그리 과정을 벤치마킹할 필요가 있다고 부연했다. 구글, AT·T 등 실리콘밸리의 유명 IT(정보기술) 기업에서 쓰는 기술을 가르치는 코스로, 수료하면 작은 학위(나노디그리)를 주는데 이를 벤치마킹하자는 주장이다.

    ▼ 외부인사로 봤을 때 국회의원들이 가장 민감하게 반응하는 분야는 무엇이었나.

    “당연히 공천이다. 그래서 오픈프라이머리 도입 문제에 민감하다. 사실 이 제도는 시급히 도입해야 한다. 도입하면 ‘공천 줄서기’도 사라질 테고, 지금보다 넓은 스펙트럼에서 좀 더 중도적으로 작동할 거다. 극단적 분열 양상을 보이는 우리 정치 현실에선 필요하다. (일반 국민이) 상대적으로 약체 후보를 지지한다고 걱정하는데, 그런 분이 얼마나 있겠나. 기우를 가지고 대강을 흐려선 안 된다. 부작용이 나오면 문제점을 고쳐가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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