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6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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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MF가 낳은 옥동자 ‘STX’의 신화

조선·엔진·해운 등에 역량 집중 폭발적 성장 … 6년 새 수출 78배, 매출 34배 늘어

  • 정호재 기자 demian@donga.com

    입력2007-11-07 12:0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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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IMF가 낳은 옥동자 ‘STX’의 신화

    STX 진해조선소 전경.

    10월30일, 서울역 앞 STX 남산빌딩. 첨단 인텔리전트빌딩 구석구석에서 정장을 차려입은 젊은이들이 바삐 움직인다. 가슴에 붙은 수험표가 신입사원 면접일임을 짐작게 한다. STX는 ‘조선 및 중공업’이라는 ‘남성적’ 사업군에 속한 회사지만, 면접장에는 여성도 적지 않았다. 올해 하반기 STX 신입사원 모집 인원은 650여 명. 상반기까지 합하면 한 해 1200여 명에 이르는 대규모 충원이다. STX의 이번 입사시험은 지원자가 5만명에 이를 정도로 호응이 컸다. 회사 로비에서 만난 한 여성은 “취업시장에서 STX의 인기는 웬만한 대기업 못지않다”고 귀띔했다.

    하지만 30대 이상 기성세대의 반응은 아직 무덤덤한 편이다. 커다란 쇄빙선이 등장하는 TV 광고를 보고서야 ‘배 만드는’ 기업임을, 프로야구단 ‘현대 유니콘스’ 인수 가능성 기사를 접하고서야 속칭 ‘잘나가는’ 기업임을 알게 됐다고 말하는 이들이 상당수다. 그럼에도 붉은색 STX 로고를 접하면 여전히 고개를 갸우뚱한다.

    “도대체 어느 재벌과 관련된 회사야?”

    한국 사람이라면 자연스럽게 나올 법한 질문이다. 경쟁사인 현대중공업 대우조선 삼성중공업 한진중공업 등이 모두 설명이 필요 없는 쟁쟁한 회사들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난데없는 STX라니, 게다가 세계 5대 조선소와 해운회사를 갖춘 매출 10조원대의 중견 그룹이라니 호기심이 더 커질 수밖에 없다.

    3년간 STX엔진 주가 40배 폭등



    “역사가 일천한 것 아니냐”는 물음에 그룹 관계자는 “STX팬오션, STX조선, STX엔진 등 주력 계열사들은 30, 40년 넘게 업계를 이끌어온 역사와 전통을 갖춘 회사들로, 이들이 모여 한국을 대표하는 중공업 그룹으로 성장했다”고 말했다. 실제 STX의 역사를 따라가보면 외환위기(IMF) 이전 시절의 재벌 ‘쌍용그룹’이 등장하고, 한국 최대의 벌크(Bulk)선사인 ‘범양상선’과 한국 최초로 컨테이너 전용선을 건조했던 ‘대동조선’까지 줄줄이 따라나온다.

    현대중공업의 폭발적인 성장세에 가려졌지만, STX는 올해 증시의 신데렐라 가운데 하나다. 지주회사인 ㈜STX 주가는 올해만 10배가량 상승했다. STX엔진은 3년 전에 비해 40배나 폭등했다. STX팬오션(구 범양상선)의 주가 역시 비슷한 양상. “조선업계가 워낙 호황이어서 덩달아 뛴 것 아니냐”고 의심할 수도 있지만 STX의 실적은 ‘수주규모 17조원, 매출 10조원’을 바라볼 만큼 탄탄하다. STX는 2001년에 비해 수출규모는 78배, 매출은 34배, 자산규모는 16배로 수직 성장했다.

    경제전문가들은 STX에 대해 ‘외환위기가 낳은 옥동자’라는 평가를 내놓는다.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조선기자재·엔진 제조→선박건조→해상운송’으로 이어지는 사업 포트폴리오도 매력적이지만, 더 흥미로운 것은 한국의 기존 재벌시스템과는 전혀 다른 방식으로 성공신화를 일궈왔다는 점이다.

    먼저 STX라는 그룹 브랜드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System Technology eXcellence’의 머리글자를 딴 영문 로고는 2001년 5월 ‘쌍용중공업’이라는 이름을 탈피하고자 시도한 CI(기업이미지통합) 작업을 거쳐 탄생했다. 주인이 바뀌면서 이름에서부터 국내 시장에 안주해오던 대기업의 틀을 깨겠다는 의지를 담았다.

    IMF가 낳은 옥동자 ‘STX’의 신화
    STX는 외환위기와 떼어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10년 전 외환위기로 쌍용그룹이 부실해지면서 계열사였던 쌍용중공업도 퇴출 위기에 내몰렸다. 이때 조선업계는 재벌 2세가 경영 전면에 나선 여타 업종과 달리 완벽하게 전문경영인 체제로 탈바꿈했다. 그리고 이들 간의 선의의 경쟁이 대한민국을 ‘조선(造船)공화국’으로 탈바꿈시키는 결정적 구실을 했다.

    STX 강덕수(57) 회장은 이 같은 전문경영인 체제의 최대 수혜자로 꼽힌다. 1997년 쌍용중공업 전무이자 재무담당최고책임자(CFO)로 외환위기를 맞은 강 회장은 2000년 말 외국자본에 의해 이 회사의 최고경영자(CEO)로 발탁됐다. 이 같은 배경 때문인지 강 회장은 앞으로도 전문경영인이 STX를 이끌어야 한다는 신념을 갖고 있다.

    부드러운 노사관계 역시 주목할 대목이다. STX는 여느 조선사들과 비슷하게 2000년 이후 ‘무분규 사업장’이란 명예를 이어가고 있다. 극단적인 노사대립이 양측에 이로울 게 없다는 ‘학습효과’의 영향이 크겠지만, 상당 기간 ‘2류 회사’라는 외부 시선을 받아온 피(被)인수 회사 직원을 최고로 대접해준 STX의 노력도 간과할 수 없다. 강 회장은 평소 “회사가 잘되려면 가장 먼저 직원들이 만족해야 한다”는 경영철학을 강조해왔다. ‘직원 만족 없이 고객 만족 없고, 고객 만족 없이 주주 만족도 불가능하다’는 선진국형 기업경영인 셈이다.

    마지막으로 빼놓을 수 없는 점이 ‘수직계열화’. 기존 재벌체제가 문어발식이라고 비판받는 ‘수평계열화’를 택했다면, STX는 한 우물을 파면서 성장한 경우다. STX는 배를 만들기 위해 엔진 및 기자재를 외부에서 사올 필요가 없다. 완성한 배를 운송할 선주(STX팬오션)도 갖고 있고, 이를 운송할 화물주(에너지회사)도 계열사로 끌어안았다. 이 밖에도 매출의 70%를 수출로 달성하는 글로벌 기업을 지향한다는 점, 중국 시장의 급부상을 예측해 발빠르게 대비해왔다는 점 등도 외환위기 이후 한국 기업의 미래지향적인 모습이라는 긍정적 평가를 받는 대목이다.

    전문경영인 강덕수 회장, ‘미다스의 손’으로 불려

    조선 경기가 회복된 2003년 이전, 세간에는 STX가 실체 없이 인수합병(M·A)만으로 급성장한 회사라는 따가운 시선이 없지 않았다. 최근 STX가 세계 2위의 크루즈선(초호화 유람선) 제조업체인 노르웨이 ‘아커야즈(AKER YARDS ASA)’를 전격 인수한 일에 대해서도 ‘미래를 대비한 포석’이라는 평가와 ‘배 만들 돈으로 지나친 욕심을 부렸다’는 평가가 엇갈린다. 강 회장에 대해서도 ‘미다스의 손’ ‘강태공’이라는 별명이 따라붙는다.

    하지만 이제 그런 평가는 쑥 들어갔다. 인수 회사들이 기존 계열사와 시너지 효과를 내면서 승승장구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쯤에서 STX의 역사를 되짚어보자. 2000년 초 선박용 엔진을 제작하던 쌍용중공업은 그룹에서 분리돼 외국계 컨소시엄에 넘어갔다. 경영권 장악보다 차익 실현에 관심이 있던 외국계 자본은 당시 강덕수 전무를 신임 사장으로 임명했으며, 그는 회사에서 받은 스톡옵션 150만 주와 사재를 털어 쌍용중공업을 사들였다. 그 후 강 회장은 주인이 다섯 번이나 바뀌며 아무도 관심을 보이지 않던 대동조선에 주목했다. 이 회사는 남들 보기엔 신통치 않은 존재였지만, 선박엔진을 만들던 쌍용중공업으로선 최고 고객사였다. 수직계열화의 중요성을 간파한 강 대표는 대동조선을 시세보다 비싸게 구매하는 용단을 내렸다. 당시 1000억원에 산 대동조선(현 STX조선)은 현재 시가총액 5조원이 넘는 알토란이 됐다. 이른바 가치투자의 원조격인 셈이다.

    강 회장이 주장하는 ‘속도경영’도 이때부터 빛을 발했다. ‘시너지가 큰 연관 산업 진출을 통해 조선·해운·에너지 전문기업으로 도약한다’는 기업 인수의 원칙과 기준을 적용해, 2004년 11월에는 그룹 전체 규모와 맞먹는 4151억원짜리 범양상선을 인수하는 모험을 단행했다.

    그렇다고 그가 쌍용중공업, 대동조선, 산업단지관리공단, 범양상선 등 부실기업만 사들여 대박의 꿈을 이룬 것은 아니다. 시너지 효과의 극대화를 위해 STX엔파코(선박부품), STX중공업, ㈜STX(무역·에너지), STX건설을 차례로 설립해나갔다.

    외국계 자본에 넘어갔던 쌍용중공업이 그룹 모태

    IMF가 낳은 옥동자 ‘STX’의 신화

    말단 사원에서 시작해 최고경영자를 거쳐 오너에 이른 STX 강덕수 회장은 ‘샐러리맨의 신화’로 불린다.

    STX조선은 재무구조 개선, 혁신적 생산시스템 구축, 전략적 영업수주 활동 강화, 상생과 협력의 노사문화 정착 등을 통해 수주금액, 건조능력, 매출규모를 매년 30% 이상 높여왔다. 특히 세계 조선업의 호황을 예측하고 과감한 사전 투자에 나선 것이 주효했다. 2002년 이후 진해조선소의 설비투자 확대와 기술경영 선도를 위해 5000억원 이상 신규 투자를 단행한 것이 단적인 예. 이를 통해 STX는 일본과의 ‘치킨게임(겁쟁이 게임)’에서 승기를 잡았다고 한다.

    강 회장은 1970년대 율산의 신선호 회장이나 80년대 대우 김우중 회장과 종종 비교된다. 그들과 달리 독특한 면이라면 73년 쌍용양회로 입사해 ㈜쌍용에서 기획, 자금영업, 생산 등 전 분야를 두루 거친 ‘30년 상사맨’이라는 점이다.

    그는 여느 재벌 회장처럼 학맥이나 인맥을 드러내기보다 오히려 뼛속까지 상사맨인 점을 자랑스러워한다. 그만큼 시장을 보는 눈이 밝고, 새 사업에 대한 의욕과 적극적인 도전정신을 가졌다는 평가다. 특히 사람에 대한 욕심은 누구에게도 뒤지지 않는다고 한다. 초고속 성장 과정에서 인재의 중요성을 절감한 강 회장은 기회 있을 때마다 “좋은 인재는 잘못된 전략조차도 좋은 효력을 발휘하게 만든다”며 맨 파워의 중요성을 강조해왔다.

    일반 소비자와 무관한 자본재 회사들은 대부분 홍보활동에 소홀한 편이다. 그러나 STX는 그동안 e스포츠단을 운영하는 등 홍보활동에도 심혈을 기울였다. 회사의 높은 인지도가 최고 인재를 끌어들이는 데 효과적이라는 판단에서다.

    강 회장이 1970년대 후반 ㈜쌍용 기획조정실에서 근무하던 때의 일화 하나. 당시 쌍용은 삼성과 현대조차 부러워할 만큼 자동차, 중공업, 정유사 등 광범위한 사업영역을 자랑했다. 그러나 기업문화가 보수적이고 소비재 산업이 적어 광고를 거의 하지 않았다.

    당시 과장이었던 그는 우수한 인재를 확보하기 위해 사원모집 광고를 제안했지만, 경영진은 계속 결정을 미뤘다. 기다리다 못한 그가 ‘독단으로’ 신문 1면에 신입사원 모집 공고를 내는 ‘사고’를 쳤다. 불같이 화를 내는 사장에게 그는 사표까지 제출해야 했지만, 곧 반전이 찾아왔다. 그해 입사경쟁률이 30대 1에 달했을 정도로 인재들이 쌍용에 몰려든 것. 당연히 사표는 반려됐다.

    이 같은 강 회장의 이력은 현재 진행 중인 프로야구단 인수 논란에도 적잖은 시사점을 준다. 매년 200억원 이상 적자를 내는 현대 유니콘스는 현재 프로야구계의 뜨거운 감자다. 농협이 인수를 포기한 뒤 실제 구매자가 나타나기까지 적잖은 난관이 기다리고 있지만, 야구계에서는 “STX가 야구단을 인수해 우량기업으로 변신시킬 것”이란 전망이 조심스럽게 흘러나오고 있다. 한국 사회에서 프로야구단이 갖는 의미를 볼 때 STX가 인재 영입을 위해서라도 이 기회를 놓치지 않을 것이라는 기대다.

    현재 STX는 해운·물류, 조선·기계, 에너지·건설 등 3대 전략사업의 성공을 위해 ‘해외개발형 사업(Overseas Developing Biz)’에 역점을 두고 글로벌 경영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현재 구축돼 있는 48개 글로벌 네트워크에 2010년까지 최소 30개 이상을 추가해 글로벌 브랜드 이미지를 견고히 하겠다는 것.

    STX는 현재 카스피해 연안 이남(Inam) 해상광구를 비롯, 동남아 아프리카 등에서 원유 및 가스광물 자원 확보를 위한 해외 자원개발 사업에 적극 나서고 있다. 태양광이나 풍력 같은 에너지 분야로의 진출도 빠르게 진행 중이다.

    지난 7년간 STX는 거칠 것 없이 승승장구해 국내 10대 그룹의 반열에 근접했다. 그런 STX가 한국 사회에 반드시 필요한, 지속 가능한 기업으로 확실하게 자리매김할 수 있을까? STX가 이 숙제를 어떻게 풀어나갈지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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