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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PECIAL EDITION|흑피옥 조각상의 진실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

중국 고대 유물 ‘흑피옥 조각상’ 진위 논란 가열… 네이멍구 고분군에서 출토…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

김희용 씨가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들과 조각상을 발견했다는 중국 네이멍구 자치구의 위치.

‘미지(未知)의 수수께끼 유물.’ 최근 한국인 고대 유물 수집가 김희용(58·광주시 북구 매곡동) 씨가 중국 네이멍구(內蒙古)를 중심으로 한 동북지역 일대에서 16년간 모은 700여 점의 ‘흑피옥(黑皮玉) 조각상’이 한국과 중국의 고고학자, 고대 역사학자들 사이에서 초미의 관심사로 떠오르고 있다.

그동안 단 한 번도 발견된 적도, 연구된 적도 없을 뿐 아니라 수집된 유물이 일반인은 물론 고고학자 등 전문가의 상상을 뛰어넘는 것들이어서, 일반적 사고방식으로는 이것이 과연 진짜 유물일까라는 의심이 들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이에 따라 한·중 고고학자와 유물 수집가들 사이에서는 “인류사의 대발견일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와 함께 “김씨가 중국과 동남아에 널리 퍼진 ‘가짜 유물 사기단’에 속았을 가능성이 높다”는 상반된 분석이 나오고 있다.

한국과 중국에서 흑피옥 논란이 가열되고 있는 와중에 최근 김씨가 자신이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을 중국 측에 기증하겠다고 밝히자, 중국 정부는 유물의 진위와 출토지 확인 작업에 직접 나서기로 했다. 이에 따라 지난해 말 김씨가 흑피옥 조각상 수집과 발굴 사실을 처음 공개한 이후 끊임없이 가짜 유물 논란에 휩싸여온 이 조각상의 정체가 조만간 드러날 것으로 보인다.

16년간 중국 전역 샅샅이 뒤져

김씨가 ‘흑피옥 조각상’으로 불리는 중국 고대 유물을 찾아나선 것은 1991년 1월부터다. 평소 일본을 드나들며 일제강점기 일본인이 반출해간 한국 고대 유물을 수집해온 그는 1990년 초 우연히 일본의 한 고고학자에게서 “중국 만주지역에 고대 유물이 널려 있으며, 그중에는 신비한 검은색 조각상도 있다”는 말을 전해들었다.

이 고고학자는 자신의 이름을 밝히진 않았다. 1990년 당시 74세였던 이 학자는 1940년대 초 도쿄제국대를 나온 뒤 곧바로 만주에 주둔하던 일본군 사령관의 초청을 받아 만주 고대 역사를 연구하기 위해 만주에 갔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인류사 대발견이냐, 희대의 사기극이냐
그는 “나는 당시 만주에서 이 검은색 조각상을 연구했지만 출토지를 발견하지 못했고, 그 와중에 일본이 갑자기 패전하는 바람에 연구를 중단하고 귀국할 수밖에 없었다”면서 “이것의 출토지를 발견하면 엄청난 고고학적 가치가 있을 것”이라 말했다고 한다.

이 말은 들은 김씨는 곧장 중국으로 건너가 만주지역을 중심으로 중국 전역을 뒤지기 시작했다. 흑피옥 조각상 추적에 나선 그가 조각상을 처음 접한 것은 만주지역을 7개월째 뒤졌을 무렵인 1991년 8월 린둥(林東)이라고도 불리는 네이멍구의 바린쭤이치(巴林左翼旗)에서였다. 31cm 길이의 여인상 두 점이었다. 겉은 모두 흑색이었지만, 일부 표피를 벗겨 확인해보니 돌이 아니라 옥을 재료로 한 조각상이었다.

그는 즉각 여인상을 들고 일본으로 날아가 “당신이 말한 검은색 조각상이 바로 이것이냐”라고 물었다. 일본 고고학자는 “맞다”고 확인해줬다.

김씨는 그때부터 흑피옥 조각상과 출토지를 찾는 데 집중했다. 하지만 작업은 쉽지 않았다. 흑피옥 조각상을 갖고 있는 사람을 찾기도, 이를 수집한 골동품 중개업자나 도굴업자를 만나기도 어려웠다.

중국 고대 유물을 수집하면서 알게 된 골동품 중개업자와 현지 주민 20여 명에게 몇 년치 월급에 달하는 거금을 쥐어주고 흑피옥 조각상을 보이는 대로 구입해달라고 부탁했다.

이렇게 해서 김씨는 흑피옥 조각상을 하나하나 수집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연간 모이는 흑피옥은 20~30개에 불과했다. 그는 흑피옥 조각상을 자신에게 팔기 위해 가져오는 사람들에게 출토 지점을 알려달라고 부탁했지만, 그들도 모르긴 마찬가지였다.

그러다 2002년 8월 아내가 직장암으로 세상을 떠났다. 이후 그는 중국에 살다시피 하면서 흑피옥 조각상에 매달렸다. 그가 100~200위안(약 1만2000~2만4000원)에 사던 흑피옥 조각상 값을 500~1000위안으로 올리자 골동품 중개업자와 도굴업자들은 더욱 열심히 흑피옥 조각상을 찾아다녔다.

이처럼 김씨를 돕는 사람들이 많아지면서 수집되는 흑피옥 조각상의 수도 기하급수적으로 늘었다. 2003년 이후 매년 100여 개씩 모으면서 지난해 8월까지 700~800개의 흑피옥 조각상을 수집할 수 있었다.

1991년 1월 그가 흑피옥 조각상을 찾아나서기 시작한 때부터 흑피옥 출토지를 확인한 지난해 8월까지 16년간 그가 밟지 않은 중국 땅이 없을 정도다. 네이멍구 자치구에서 랴오닝(遼寧) 지린(吉林) 헤이룽장(黑龍江) 허베이(河北) 산시(山西) 산시(陝西) 성 등 중국 북동부 지역은 물론, 쓰촨(四川) 윈난(雲南) 하이난(海南) 성까지 중국 31개 성·자치구·직할시를 모두 누볐다. 그가 흑피옥 조각상을 추적하기 위해 중국과 한국을 오가며 이용한 국제항공만 600여 편에 이른다. 조각상 수집에 쓴 돈만도 40억원.

수집 당시 처음엔 100~200위안, 나중에도 1만 위안을 넘어선 조각상이 별로 없었다는 김씨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왜 그토록 많은 돈이 들어갔을까. 그는 “사실 흑피옥 조각상 매입 가격은 수집 비용의 20%에도 못 미친다. 이보다 훨씬 많이 드는 비용은 바로 흑피옥 조각상을 한국으로 들여오는 데 드는 운반비다”라고 말했다. 은밀히 해야 하는 작업인 만큼 가외비용이 많이 든다는 것이다. 그는 “교통비와 숙박비 등도 무시할 수 없을 만큼 많이 든다”고 덧붙였다.

이렇게 많은 돈을 조달하기 위해 그는 평생 수집한 값비싼 골동품도 대부분 내다 팔았다. 심지어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 가운데 200~300개는 원옥 가격만 받고 팔아치워야 했다. 흑피옥 수집과 연구를 위한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는 선택이었다.

그는 “이 흑피옥 조각상이 고대 유물로 확인된다면 흑피옥 조각상 1개 가격이 최소한 수억원을 호가할 것”이라면서 “나에게서 흑피옥을 미리 사간 사람은 떼돈을 번 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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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지를 찾아라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이 수백여 점에 이르자 김씨가 가장 하고 싶었던 일은 유물의 출토지를 확인하는 것이었다. 가짜 유물이 수두룩한 골동품 시장에서 출토지가 확인되지 않는 유물은 가짜로 취급받기 일쑤다. 그만큼 진짜 같은 가짜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출토지를 찾으려는 그의 노력은 번번이 무산됐다. 중개업자에게 거액을 쥐어주며 도굴업자를 소개해 달라고도 해봤지만, 그들은 쉽게 나서지 않았다.

3~4단계를 거치면서 극비리에 매매되는 도굴품의 생리를 잘 아는 만큼 그는 조급해하지 않았다. 차츰 중개업자와 친해지면서 한 단계 한 단계 도굴업자를 추적해나갔다. 이렇게 해서 흑피옥 조각상의 최초 도굴업자를 찾아낸 것이 지난해 8월. 김씨가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은 거의 모두 이들 2명이 도굴한 것이었다.

도굴업자가 흑피옥 조각상을 처음 발견한 것은 1989년 자신이 살던 지역에 산사태가 났을 때다. 목동이었던 이들은 우연히 발견한 조각상을 골동품업자들이 반달치 월급에 이르는 100위안에 사가자, 혹시 더 있을까 싶어 찾아다녔던 것.

하지만 이들은 마지막까지도 여러 차례 출토지를 숨기며 김씨를 속였다. 김씨는 결국 1000달러씩의 거액을 이들의 호주머니에 찔러준 뒤 “같이 한탕 해먹자”고 꼬드겼고, 결국 위치를 알아낼 수 있었다.

지난해 8월22일 김씨와 도굴업자가 도착한 곳은 네이멍구 자치구의 성도 후허하오터(呼和浩特)에서 동쪽으로 150km가량 떨어진 우란차푸(烏蘭察布) 시 외곽. 민가에서도 20~30km 떨어진, 풀이 무성한 산기슭이었다.

김씨와 도굴범들은 겉으로 봐도 돌이 정렬돼 있어 흑피옥 조각상이 있을 가능성이 높은 무덤을 택한 뒤 밤을 기다렸다. 밤 11시, 그들은 무덤을 파기 시작했다. 지하로 2m 정도 파들어가니 가로 2m 세로 3~4m 크기의 석실 비슷한 곳에 전신 인골이 누워 있었다. 주변엔 마치 시체를 호위하듯 15개의 인물상을 비롯해 동물상, 반인반수(半人半獸)상 등 31개의 조각상이 정렬해 있었다. 인골의 다리 아랫부분에서는 62cm 길이의 태양신 조각상도 발견됐다.

김씨는 지금까지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이 고대 분묘에서 출토된 유물이라는 확신이 서자, 도굴범들에게 더 이상 도굴하지 말 것을 부탁했다. 그리고 나중에 필요할 때 출토하면 거액을 주고 살 테니 걱정 말라고 안심시켰다. 하지만 지난 1년간 그들이 얼마나 더 도굴했는지 김씨는 모른다. 이후 현장을 가보지 않았기 때문이다.

한결같이 무릎 굽은 조각상-반(半)직립인의 유물?

김씨가 중국에서 16년간 수집한 옥 조각상은 표면이 모두 검다는 점이 가장 큰 특징이다. 중국 고대 문명 가운데 랴오허(遼河) 강 유역을 중심으로 한 홍산(紅山) 문화와 창장(長江) 강 하류를 중심으로 한 양저(良渚) 문화에서 출토된 옥기들이 모두 청옥과 홍옥을 그대로 사용한 데 반해, 흑피옥 조각상은 청옥과 홍옥의 재료 외부에 검은색 칠이 돼 있다(표 참조).

따라서 홍산 문화와 양저 문화 유적지에서 발견된 옥기들은 출토 지역의 토양에 따라 색깔이 다양하다. 옥돌이 땅속에 장기간 묻혀 있으면서 주위 토양의 영향을 받았기 때문이다. 하지만 김씨가 수집한 조각상은 모두 검은색이어서 표면을 벗겨보지 않는 한 옥인지조차도 알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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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를 우연히 발견하거나 도굴한 사람들이 처음엔 100~200위안의 싼 가격에 김씨에게 흑피옥 조각상을 넘긴 이유도 이것의 재료가 흑피옥이라는 사실을 몰랐기 때문이다. 이들은 조각상의 재료가 흑피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된 다음부터는 5000~2만 위안의 높은 가격을 불렀다고 김씨는 전한다.

그런데 김씨가 수집한 옥 조각상이 모두 검은색인 이유는 무엇일까. 김씨의 의뢰로 이를 연구한 정건재(54) 전남과학대 교수는 “조각상의 주인공들이 조각상을 매장할 당시 먼저 흑칠을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 도료가 무엇인지는 아직 알지 못한다”고 말했다. 정 교수에 따르면 당초 옥돌을 매장하면 시간이 흐르면서 옥돌 주변 토양의 영향을 받을 수밖에 없는데, 이 조각상들은 미리 흑칠을 했기 때문에 영향을 받지 않았다는 것.

김씨 역시 “지난해 8월 도굴범들이 말해준 곳을 발굴한 결과 주변 흙은 모두 밤색이었으며, 출토된 조각상의 흑색과는 차이가 컸다”고 말했다. 또 하나 대표적인 특징은 인물상들의 무릎이 모두 90도로 굽었다는 점이다. 직립보행을 하는 현대인의 입장에서 보면 이는 엉거주춤한 자세로, 10분을 채 서 있기가 불가능할 정도로 불편하다.

이에 대해 정 교수는 “현장에서 출토되는 인골을 봐야 알겠지만, 일반적으로 매장 유물은 당시 사람들의 모습과 생활상을 그대로 반영한다는 점을 감안할 때 흑피옥 조각상의 주인공들은 반(半)직립인이었을 가능성이 크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해 김씨는 “지난해 8월 발굴 당시 중앙에 있던 시체의 다리는 굽은 상태였다”면서 “이는 흑피옥 조각상의 주인공들이 바로 반직립인이었다는 사실을 말해주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김씨가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 중엔 다리가 일직선에 가깝게 펴진 것도 있다. 특히 성교 장면을 묘사한 인물상 중에는 다리가 상당 부분 펴진 것들도 존재한다. 이에 대해 한 매장문화 전문가는 “직립인이 굴신장(屈身葬)을 했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고 말했다. 중국은 물론 한반도에서도 굴신장한 인골이 발굴된 적이 있다는 것이다.

김씨가 수집한 700여 점의 흑피옥 조각상 가운데 가장 많은 것은 인물상이다. 전체 수집 조각상의 60%가 인물상이고, 나머지 30%가량은 반인반수(半人半獸)상, 10%가량은 동물상이다.

인물상은 거의 대부분 얼굴 표정이 없으며, 그중엔 토기를 머리에 이고 있는 것들도 있다. 적어도 토기가 발명된 신석기 이후의 문명일 가능성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특이한 것은 당시의 성생활 모습을 보여주는 조각상이다. 현대인이 보더라도 성생활의 교본이라 할 만큼 다양한 체위가 표현돼 있다. 심지어 남성 성기를 두 손으로 받쳐든 가슴이 풍만한 여인 조각상도 있다. 남성 성기는 매우 크게 과장돼 있으며, 여성의 유방과 엉덩이가 무척 돋보이는 점으로 봐서 생명에 대한 신비감을 표현하고 다산(多産)을 기원한 듯하다.

조각상의 무게는 보통 2~6kg이며, 무거운 것은 50~80kg이다. 작은 것은 몇백g짜리도 있다. 높이는 10~60cm이며, 25cm가 가장 많다. 하지만 180cm에 이르는 대형도 있다.

조각상 재료는 모두 옥이다. 운반 도중 잘못 취급해 깨진 조각상을 확인해본 결과 속이 청옥이거나 황옥으로 돼 있었다는 것. 김씨는 “흑피옥의 강도는 4.5~5.5도의 연옥인 홍산 문화의 옥기와 달리 5.5~6.0도의 경옥이다. 그리고 출토 장소는 홍산 문화의 유적지와 적어도 500km 이상 떨어진 곳이다”라고 말했다.

여전히 남는 의문들

김씨가 흑피옥 조각상의 도굴범을 추적해 확인하고, 이들과 함께 흑피옥 조각상을 도굴한 현장을 확인한 뒤 실제로 이들의 주장이 맞는지 알아보기 위해 시범적으로 발굴까지 했다고 하지만, 여전히 의문은 남는다.

먼저 많은 전문가들의 주장처럼 혹시 김씨가 가짜 유물을 제작해 미리 묻어놓은 도굴범들에게 속지 않았을까 하는 점이다. 실제로 유물 사기꾼들이 가짜 유물을 땅속에 미리 묻어두고 현장에서 바로 출토한 것처럼 속여 사기를 치는 경우가 허다하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주장이다. 특히 이들 사기꾼의 유물 제조 수법이 갈수록 정교해져, 요즘은 출토 현장을 확인하지 않는 한 가짜인지 여부도 말하기 어려울 정도라고 한다.

이에 대해 김씨는 “만약 이게 가짜라면 옥돌 값만도 수백 위안이 넘는 이 조각상을, 중간상을 한 단계 거칠 때마다 몇 배씩 뛰는 이런 유물을 100~200위안에 팔 수 있겠느냐? 그럴 가능성은 없다”고 주장했다. 중국의 한 전문가도 “나도 흑피옥 조각상을 200~300위안에 몇 점 산 적이 있다”면서 “당시 옥 가격을 감안할 때 만일 옥을 사서 조각한 뒤 이를 그대로 판다 해도 적어도 한 점당 1000위안 이상 받아야지, 200~300위안씩 받아서는 수지타산이 맞지 않는다”고 말했다.

둘째, 과연 반직립하던 시기의 고대 인류가 이처럼 정교한 옥 조각 문화를 남길 수 있었을까 하는 점이다. 인류가 직립하기 시작한 것은 무려 100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직립원인(直立猿人)의 대표라 할 수 있는 자바원인도 50만년 전의 인류다.

성관계를 표현한 일부를 제외하고는 흑피옥 인물상은 모두 무릎이 굽어 있지만, 조각의 정교함과 섬세함은 5000~6000년 전 유물로서 신석기시대 최고의 북방문화로 평가받는 랴오닝성 홍산 문화의 옥기 유물을 훨씬 능가한다. 따라서 만일 반직립인이 이 조각상을 만들었다면 반직립인이 무려 몇천 년 전까지 지구상에 존재했다는 의미가 된다. 지금까지 밝혀진 인류 역사의 발전 단계에 비춰볼 때 도저히 양립하기 어려운 모순이다.

흑피옥 조각상 가운데 현재 인류가 가축으로 기르는 소 돼지 말 양 개가 나오고, 심지어 인어와 성경에 나오는 아담과 이브, 그리고 뱀의 이야기를 표현한 듯한 조각상이 나온 것도 의문이다. 인류가 소 돼지 말 양 개를 모두 기르기 시작한 것은 아무리 길게 잡아도 몇천 년 전에 불과하다. 인어 전설은 역사시대 이후의 얘기다. 적어도 100만 년 이전에 살았던 반직립인과는 거리가 먼 증거들이다.

일부 고고학자들은 김씨가 수집한 흑피옥 조각상이 단 하나의 예외도 없이 머리부터 발끝까지 흑색인 점이 되레 이상하다고 지적한다. 설령 옥의 표면을 흑색으로 칠해 매장했다 해도 주위 토양에 따라 약간씩 색깔이 달라지는 게 옥의 특징이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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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전문가들의 반응

고고학자나 고대 역사학자 등 중국 전문가들은 한마디로 “직접 발굴해보기 전에는 알 수 없다”는 반응이다. 지금으로서는 이 유물이 어느 시대의 것인지,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알 수 없다는 것. 이들은 먼저 현장에서 과연 그런 유물이 발굴되고 있는지를 확인해봐야 한다는 입장이다. 김씨가 흑피옥 조각상 5개를 중국으로 가져오긴 했지만 이것만 가지고 전체를 판단할 수는 없으며, 특히 흑피옥이 C14를 함유하고 있지 않아 ‘방사성 탄소연대 측정법’에 따른 연대 측정도 불가능하다는 것.

50년 넘게 중국 고대 유물을 연구해온 전(前) 중국사회과학원 고고연구소 부소장 왕스민(王世民·70) 박사는 “현장에서 직접 출토되는 유물을 분석해보지 않고는 뭐라 평가하기 어렵다. 따라서 현재로서는 가치평가는 물론 진위 여부도 알 수 없다”고 말했다. 왕 전 부소장은 “설령 진짜라 할지라도 1만 년 전 이전의 것이라고 말하기는 어렵다”면서 “기원전 3000년 전부터 번성했던 마야문명의 조각 형식과 닮은 데가 많다”고 말했다.

장닝(張寧) 전 수도박물관 상임 부관장은 “흑피옥 조각상을 실제로 출토한 뒤 주변 토양과 비교해 분석해보기 전까지는 뭐라 말할 수 없다. 이것이 정말 고대 유물로 확인된다면 인류 역사를 새로 써야 할 정도로 역사적 의미가 큰 만큼, 앞으로 연구 분석이 필요한 것만은 분명하다”고 밝혔다.

관창(關强) 국가문물국 문물보호사 부사장은 “사례가 드물긴 하지만 현재도 골동품 시장에서 이 흑피옥 조각상이 판매되고 있다. 학계에서 진위 논란이 많은 만큼 앞으로 연구해볼 대상이다”라고 말했다.

김씨와 함께 중국인 전문가들에게 평가와 분석을 의뢰하러 다녔던 화둥(華東)사범대학 꾸이준이(桂遵義) 교수는 “현재 중국에 흑피옥 전문가가 없어서 고고학자 사이에서도 의견이 분분해 논쟁이 한창”이라면서 “직접 유물을 발굴해보기 전에는 어느 것도 분명하게 말하기 어렵다”고 했다. 그는 또 반직립 인류가 이를 만들었을 가능성에 대해 “당(唐) 왕조의 유물에도 이런 조각상이 나온다. 반직립상이 나왔다고 해서 반드시 반직립인이 만들었다고 보긴 어렵다”는 의견을 제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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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희용 씨가 스스로 작성한 흑피옥 조각상 현장발굴기록.

중국 정부의 반응과 계획

올해 3월 흑피옥 조각상의 수집과 출토 사실을 알리려 중국에 온 김씨는 현재 중국 문화부와 국가문물국에 소장 중인 흑피옥 조각상 520여 점을 중국 정부에 모두 기증하겠다고 밝힌 상태다. 김씨는 기증 조건으로, 유물과 유적지에 관한 내용을 책으로 출간할 권리를 자신에게 줄 것과 전 세계 고고학자 100인 이상으로 구성된 현지 발굴단을 구성해 언론매체가 취재하는 가운데 공개적인 발굴을 해줄 것을 요구하고 있다.

이에 따라 중국 문화부는 김씨가 말하는 흑피옥 조각상이 과연 진짜 유물인지 직접 확인한 뒤 발굴 작업에 나서기로 했다. 문화부 문화시장사 판공실 왕훙(王宏) 주임은 “다음 주 중에 문화부 관리와 전문가를 김씨 집에 보내 유물이 진짜인지를 먼저 가린 뒤 발굴에 나설 방침”이라면서 “유물이 진짜로 판명날 경우 김씨의 요구처럼 관련 분야의 전문가, 학자 등으로 발굴단을 구성해 조사에 나설 계획”이라고 말했다. 그는 또 “김씨가 520점의 흑피옥 조각상을 정말 소장하고 있는지 여부가 확인돼야 현장 발굴이 필요한지 판단할 수 있는 만큼, 먼저 김씨와 협의를 해야 한다”고 덧붙였다.

중국 문화부는 또 네이멍구 문물국에 지시해 김씨가 유물의 출토지점이라고 말한 지역을 광범위하게 뒤지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하지만 김씨는 중국 정부가 대규모 발굴단을 조직해 김씨와 함께 현장 발굴에 나설 경우에만 정확한 출토지점을 알려주겠다며 정확한 지점은 말하지 않고 있다. 이에 따라 네이멍구 문물국은 아직까지 정확한 지점을 포착하지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한편 중국 관영 CCTV는 중국 문화부가 발굴 작업에 나설 경우 동행 취재해 현장에서 곧바로 보도할 계획이라고 한다.

▼ 중국의 대표적 옥 문화와 흑피옥 조각상 비교
구분 흑피옥 홍산(紅山) 문화 양저(良渚) 문화
지역 네이멍구 남부 네이멍구 동부, 랴오닝성 창장(長江) 강 하류 일대
연대 8000년 이상(?) 5000~6000년 전 2200~3300년 전
인류 반(半)직립인(?) 직립 직립
용도 매장용 장식용, 제기(祭器), 패용 예기(禮器)
규모 다양(대·중·소형) 중·소형 중·소형
색채 흑칠 주변 토양 영향 다양 주변 토양 영향 다양
형상 인물, 동물, 신(神)(?) 동물, 천·지신(天·地神) 동물, 천·지신(天·地神)
의의 새로운 문명(?) 고조선 문명·요하 문명 창장 강 하류 문명
*자료 : 정건재 전남과학대 교수 겸 동북아문화연구소 소장 제공


입력 2007-09-19 16:32:00

  • 하종대 동아일보 베이징 특파원 orionh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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