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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혼의 소리로 잠든 시대 깨워라

  • < 강헌/ 대중음악 평론가 > authodox@orgio.net

    입력2004-12-01 16:33: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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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혼의 소리로 잠든 시대 깨워라
    지난 여름에 발표한 안치환의 일곱 번째 앨범 ‘Good luck!’를 새삼스레 이야기하고자 하는 것은 현재 한국 대중음악이 봉착한 위기와 거의 가물가물해 가는 기회를 짚어보기 위해서다. 폭풍과 같았던 1980년대 노래운동이 급격히 퇴조하는 가운데서도 안치환은 386세대의 문제의식을 곁눈 주지 않고 일관되게 가슴에 품고 온, 어쩌면 저 90년대 부유하는 이윤 동기의 거품 속에서 외딴 섬과 같은 존재다.

    그는 이른바 문민정부가 들어선 직후인 1993년 ‘자유’와 ‘고백’을 담은 걸작 앨범을 발표하면서 비판적 서정을 훌륭하게 토로했고, 뒤이은 흥행작인 4집을 통해서도 ‘내가 만일’의 대중성을 만회하는 ‘당당하게’와 ‘수풀을 헤치고’ 같은 폭발력을 탑재했다. 다섯 번째 앨범에 이르러 90년대의 명곡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를 선사함으로써 실의에 빠진(?) 진보진영 대중에게 지극한 공감을 불러일으켰다. 비록 여섯 번째 앨범에 이르러 약간의 답보 기미를 보였지만 그의 정제되지 않은 노래혼의 기백은 여전히 뜨거웠고, 올해의 일곱 번째 앨범은 어느덧 30대 중반을 넘어선 그의 이력을 무색하게 만드는 놀라운 집중력을 구현한다.

    ‘사람이 꽃보다 아름다워’ 때의 짝인 시인 정지원과 함께 한 머릿곡 ‘내 꿈의 방향을 묻는다’부터 무너져내리는 386세대 초상의 내면을 관통하는 ‘위하여!!’를 지나 김민기의 ‘철망 앞에서’를 리메이크한 트랙에 이르기까지, 그의 질주와 여백은 이 텅 빈 중심 세계의 뒤통수를 가격하며 잠들어 있는 우리의 시대를 깨운다.

    그러나 그의 노래에 귀기울여야 할 두 사람이 이해가 저물도록 보이지 않는다. 한 사람은 안치환이 그토록 ‘동행’하고자 하는 80년대 세대이며, 또 한 사람은 대안적 문화의 전통적 아성이었던 대학 대중이다. 이미 이 앨범은 그 불행한 징후를 예감한 듯 그의 목소리는 더욱 성마르고 선율은 분노로 이글거린다. 어쩌면 우리는 9·11 미국 테러사태 여파보다 더욱 심층적인 문제에 직면해 있는지도 모른다. 정치적 무관심, 대안적 발언에 대한 냉소 또는 외면, 진지함에 대한 피곤한 회피-세상은 다시 보수 회귀의 음험한 꿈을 꾸고, 우리는 다시 왜소하고 무력한 소시민으로 돌아가야 한다.

    조성모의 몰락이 상징하는 주류음악 진영의 비틀거림은 전반적인 불황을 불러왔고, 출구를 찾지 못한 음반산업은 출시를 무기한 연기하거나 막대한 제작비용을 들인 뮤직비디오에 자신의 운명을 의탁한다. 이 위기는 분명 기회의 다른 이름이다. 지금 우리에게 필요한 것은 새로운 밀리언셀러의 신인이 아니라, 다양한 공동체적 참호를 밑변으로 하는 세대와 계층과 진영의 각개약진이다. 그러나 그 소중한 참호 하나가 거의 붕괴 직전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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