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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보험사가 혈당 측정해 보험료 깎아주려 해도…

의료법상 위법 가능성 … ‘걸음 수’ 외 건강정보 활용 길 막혀

보험사가 혈당 측정해 보험료 깎아주려 해도…

[shutterstock]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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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많이 걸으면 보험료가 저렴해진다!’ 

최근 보험업계에서는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 이슈다. 보험사마다 가입자가 자신의 건강을 증진하는 활동을 할 경우 보험료를 깎아주거나 자체 쇼핑몰에서 사용할 수 있는 포인트와 각종 쿠폰을 지급한다. 

AIA생명이 9월 초 출시한 ‘100세 시대 걸작건강보험’은 ‘걸’으면 보험료가 ‘작’아진다는 뜻으로 작명한 상품. 이 보험상품 가입자는 하루 걸음 수 7500보당 50포인트, 1만2000보당 100포인트를 지급받는다. 누적 포인트에 따라 연간 ‘바이탤리티’(Vitality·활력) 등급이 정해지고, 이 등급에 따라 연 단위 보험료 할인율이 변동된다. 최대 10%까지 보험료를 할인받을 수 있다. 기초건강검진, 금연 선언 등에 참여하면 포인트가 추가로 주어진다. 

이러한 건강증진 활동은 AIA생명이 SK C&C, SK텔레콤과 함께 출시한 모바일 애플리케이션(앱) ‘AIA Vitality×T건강걷기’(AIA Vitality 앱)와 연계돼 진행, 관리된다. 앱이 제시하는 ‘주간 미션’을 달성하면 SK텔레콤 이동통신요금 할인, 스타벅스 커피 쿠폰, 영풍문고 상품권 등을 받을 수 있다. AIA생명 관계자는 “걸작건강보험에 가입하지 않은 기존 고객도 AIA Vitality 앱 회원이 되면 주간 미션 달성에 따른 혜택을 받을 수 있다”며 “앱을 출시하고 한 달 조금 지난 10월 초 현재 누적 가입자가 14만 명에 달할 정도로 호응이 좋다”고 전했다.


인슈어테크 첫발, ‘건강증진형 보험’

최근 출시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인 AIA생명의 ‘100세 시대 걸작건강보험’과(위) 한화손해보험의 ‘무배당 참편한 당뇨케어보험’.

최근 출시된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인 AIA생명의 ‘100세 시대 걸작건강보험’과(위) 한화손해보험의 ‘무배당 참편한 당뇨케어보험’.

오렌지라이프(옛 ING생명)의 ‘건강증진형 CI(Critical Illness)종신보험’은 하루 평균 1만 보를 달성한 개월 수와 국민체육진흥공단 체력인증 등급에 따라 최대 50만 원까지 보험료 일부를 환급해준다. 국민체육진흥공단은 근력, 민첩성, 체질량지수(BMI) 등을 종합해 인증하는 체력인증 프로그램 ‘국민체력100’을 무료로 운영하고 있는데, 그것과 연계한 상품이다. 한화손해보험은 5월 ‘무배당 참편한 당뇨케어보험’을 출시했다. 당뇨 환자만 가입할 수 있는 상품으로, 혈당 체크나 걷기 등 미션을 달성하면 포인트를 제공한다. 30일간 20만 보 이상 걸으면 1000포인트, 30일간 15일 이상 혈당을 체크하면 1500포인트, 매일 혈당·혈압·식사 등 건강관리 정보를 앱에 입력하면 5~15포인트를 제공하는 식이다. 이렇게 모은 포인트로는 앱 쇼핑몰에서 건강관리용품이나 건강식품 등을 구매할 수 있다. 

인슈어테크(InsurTech)가 세계 보험업계의 화두다. 보험연구원에 따르면 지난해 480억 달러(약 54조 원) 규모의 전 세계 보험사 인수합병(M&A) 거래가 인슈어테크 중심으로 일어났다. 기존에는 사업 포트폴리오를 최적화하는 것이 보험업계 M&A의 주요 목적이었지만, 최근에는 인슈어테크 기업과 파트너십 구축으로 변화하고 있는 것이다. 

인슈어테크란 보험(Insurance)과 기술(Technology)을 결합한 용어. 인공지능, 빅데이터, 블록체인, 사물인터넷 등 4차 산업혁명 기술을 적극 활용한 보험 관련 핀테크(금융+기술)를 뜻한다. 박소정 서울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 보험사들은 보험 가입자의 건강 상태나 건강관리 수준을 알 수 없었지만, 최근 4차 산업혁명 기술이 발전하면서 저렴한 비용으로도 세세한 정보를 획득할 수 있게 됐다”며 “종합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해 보험 가입자의 건강을 관리하면 보험료 지급을 줄일 수 있기 때문에 보험사를 중심으로 인슈어테크를 시도하는 움직임이 활발하다”고 전했다.


기술 발전으로 의료 행위 경계 모호

지난해 12월 금융위원회(금융위) 및 금융감독원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 개발·판매 가이드라인’을 발표하면서 한국도 인슈어테크 분야에 첫발을 내디뎠다. 과거 국내 보험사는 걸음 수나 건강검진을 달성할 경우 보험료의 1% 내외에서 연간 3만 원 이내를 할인해주는 상품만 출시할 수 있었으나, 가이드라인 제정으로 보험료를 △최대 10% 할인 △최대 50만 원까지 환급할 수 있게 됐다. 이 가이드라인에 따라 4월 이후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 속속 출시되고 있다. 금융위가 6월 발표한 바에 따르면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은 4월 이후 두 달 동안 약 6만 건이 판매됐다. 금융위 관계자는 “1월부터 유병력자가 가입할 수 있는 실손보험이 새롭게 출시됐는데, 4월 한 달간 판매된 유병력자 실손보험이 4만9000여 건”이라며 “크게 이슈가 된 유병력자 실손보험 못지않게 건강증진형 보험상품도 많이 판매된 점으로 볼 때 인기가 상당한 것같다”고 말했다. 

하지만 현재까지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이 활용하는 건강 관련 정보는 대부분 ‘걸음 수’에 불과하다. 일부 상품이 가입자 스스로 자신의 혈당 수치나 건강검진 여부 등을 입력하도록 권장할 뿐이다. 간수치, 혈당 심박수, BMI 등 다양한 건강정보를 활용한 상품은 아직 없다. 그 이유는 애매모호한 의료법에 있다. 의료법 제27조는 ‘의료인이 아니면 누구든지 의료 행위를 할 수 없다’고 규정한다. 의료인이란 ‘보건복지부 장관의 면허를 받은 의사·치과의사·한의사·조산사 및 간호사’다. 

문제는 무엇이 의료 행위인지 명확지 않다는 점이다. 양승현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법 조항이나 대법원 판례 등을 통틀어 어디까지를 의료 행위에 해당하지 않는 건강관리 행위로 볼 수 있는지 등에 대해 판단 잣대로 삼을 만한 것이 아직 없어 보험업계로서는 구체적인 사업에 나설 확신이 없는 상태”라고 전했다. 한 보험업계 관계자는 “웨어러블(Wearable) 디바이스로 채혈하지 않고 혈당을 측정하는 기술이 개발되고 있는데, 보험사가 이를 활용해 가입자의 혈당을 측정해 보험료 할인 등에 활용한다면 의료 행위에 해당돼 의료법 위반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법상으로 의료 행위를 폭넓게 정의하는 것은 비단 한국만은 아니다. 의료기술이 빠르게 발전하고 있기 때문에 의료 행위를 세분화해 정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운 일이다. 정성희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이에 일본은 2014년 그레이존 해소 제도를 도입했다”고 전했다. 그레이존 해소 제도란 산업 간 장벽이 허물어지면서 회색지대가 넓어지는 산업환경에 발맞춰 기업의 유권해석 요청에 정부가 빠르게 피드백해주는 프로그램이다. 정 연구위원은 “일본은 기업의 요청에 대해 정부가 며칠 안에 답변해야 하는지 규정해두고 산업의 지형 변화와 기업의 요구에 발 빠르게 대처하고 있다”고 말했다. 

정부도 이러한 일본 사례를 참고해 5월 ‘민관합동 법령해석위원회’(위원회)를 출범했다. 기획재정부와 보건복지부가 주관하는 위원회는 헬스케어산업 활성화를 위해 의료법상 의료 행위에 대한 유권해석을 맡는다. 위원회는 보험사 등 비(非)의료인이 고객의 건강정보를 어디까지 수집하고, 어느 수준으로 건강관리를 도와주는 서비스를 제공할 수 있는지 판단을 내려 이를 의료법 유권해석 당사자인 보건복지부에 권고하는 역할을 한다. 

그러나 위원회가 출범한 지 5개월이 됐지만 10월 초 현재 아직 구체적인 결과물은 나오지 않은 상태다. 정부 관계자는 “보험사, IT기업 등으로부터 5~6건의 유권해석 질의가 접수됐지만, 지금까지는 위원회 운영 절차 위주로 논의하고 있어 아직 위원회가 결론을 내린 사례는 없다”고 전했다.


“꽉 막힌 길 터줘야”

보험사의 헬스케어 시작점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의 ‘바이탤리티’ 프로그램(왼쪽)과 아마존에 인수된 온라인 약국 필팩. [디스커버리 홈페이지, 필팩 홈페이지]

보험사의 헬스케어 시작점으로 불리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의 ‘바이탤리티’ 프로그램(왼쪽)과 아마존에 인수된 온라인 약국 필팩. [디스커버리 홈페이지, 필팩 홈페이지]

국내 보험업계가 이제 막 ‘걷기’ 위주의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을 개시한 것과 달리, 해외에서는 보험 가입자에게 종합적인 헬스케어 서비스를 제공하려는 움직임이 활발하게 진행되고 있다. 보험사 헬스케어 서비스의 시작점으로 간주되는 남아프리카공화국 보험사 디스커버리가 1997년 출시한 웰니스 프로그램 ‘바이탤리티(Vitality)’는 미국, 중국, 영국, 일본, 호주 등 세계 각국에 진출해 800만 명의 회원을 보유한다. 이 프로그램은 보험 가입자가 매주 정해진 운동량을 달성하면 보험료 할인, 무료 쿠폰 등 각종 혜택을 제공하고 건강에 좋은 식품을 구매할 때 할인해주는 등의 내용으로 구성된다. AIA생명이 최근 선보인 AIA Vitality 앱 또한 디스커버리의 바이탤리티 프로그램을 국내로 들여온 것이다. 

미국 등에서는 보험사와 병원, 약국 등 의료서비스가 융합하는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미국에 전국적인 체인망을 가진 약국 CVS는 지난해 미국 3대 건강보험사 에트나(Aetna)를 인수했다. 세계 최대 온라인 유통업체 아마존도 온라인 약국 필팩(PillPack)을 인수하며 헬스케어 사업에 뛰어들었다. 보험업계의 경우 몸이 아픈 보험 가입자에게 의료 상담 서비스를 제공하고, 피트니스센터를 운영하거나 건강식을 배달하는 서비스를 출시하려는 움직임도 있다. 

황인창 보험연구원 연구위원은 “금융위가 건강증진형 보험상품의 보험료 최대 할인율을 확대한 것은 바람직하지만, 다른 측면에서는 새로운 규제를 씌운 것”이라며 “부작용을 사전에 최소화하려고 보수적인 가이드라인을 제시하는 것보다, 업계의 자율성을 보장하면서 부작용이 생기면 바로 대응하는 것이 인슈어테크 산업을 키우는 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박소정 교수는 “국내는 의료 행위 규제 등으로 의료 및 건강관리 서비스를 종합적으로 제공하는 헬스케어 산업이 발전하는 길이 원천적으로 막혀 있다”며 “종합적인 헬스케어가 국민에게 가져다주는 효용이 큰 만큼 기존 보험사가 아니더라도 누구든 이 분야에서 성장할 수 있도록 길을 터줄 필요가 있다”고 조언했다.




주간동아 2018.10.05 1158호 (p40~42)

  • | 강지남 기자 layra@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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