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강인 파리 생제르맹 입지 흔들린다

[위클리 해축] 최근 선발 출전 4경기 불과… 선수단 변화로 주전 경쟁 치열해져

  • 박찬하 스포티비·KBS 축구 해설위원

    입력2025-03-15 09:00:02

  • 글자크기 설정 닫기
    프랑스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PSG)의 이강인. [GettyImages]

    프랑스 리그앙 파리 생제르맹(PSG)의 이강인. [GettyImages]

    2025년 파리 생제르맹(PSG)에서 이강인의 출전 입지가 심상치 않다. 스타드 브레스투아 29와 가진 유럽축구연맹(UEFA) 챔피언스리그 16강 플레이오프 두 경기에서 선발 기회를 놓치더니 리버풀과 16강 1차전에선 아예 출전 기회를 잡지 못했다. 겨울 이적시장이 끝나고 PSG 선수단에 변화가 생기며 중요 경기 우선순위에서 점차 멀어지는 모양새다. 이강인이 2023년 여름 PSG로 이적한 후 우려됐던 주전 경쟁 불안감이 피부로 느껴지는 순간이다. PSG의 어떤 변화가 이강인 입지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일까.

    10세 때 스페인 발렌시아 CF 메스타야로 건너가 프로선수가 된 이강인은 발렌시아가 자랑하는 ‘초(超)유망주’였다. 단순히 팀에서만 애지중지한 선수가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남다른 재능이라는 소문이 자자했다. 2019년 U-20 월드컵에서 MVP 격인 ‘골든볼’을 수상한 이강인은 세간의 평가가 정확했음을 증명했다. 심지어 1999년생까지 출전하는 당시 대회에서 한 대회를 월반한 2001년생이 역대급 활약을 펼쳤으니 보통 기량이 아니었다. 이때 이강인으로선 소속 팀 발렌시아로 돌아가 프로선수로 탄탄대로를 걸으면 되는 일이었다.

    챔스 16강 플레이오프 두 경기 모두 선발 기회 놓쳐

    프로 무대 성공은 시간문제였지만 소속 팀 발렌시아 내부 사정이 이강인의 성장을 가로막았다. 그에게 출전 기회가 쉽게 주어지지 않은 것이다. 나중에 구단 내부 알력 다툼으로 이강인이 공정한 대우를 받지 못한 사실이 알려졌다. 그렇게 엉망진창으로 구단을 운영하던 발렌시아는 급기야 자기네가 키운 선수를 이적료도 받지 않고 ‘공짜’로 풀어주는 어이없는 결정을 내렸다. 물론 결과적으로 이 선택이 이강인에겐 자신의 진가를 본격적으로 드러낼 절호의 기회가 됐지만 말이다.

    그렇게 RCD 마요르카로 이적한 뒤 보낸 2년은 이강인을 한 단계 성장시켰다. 어떤 의미에선 자신이 프로 무대에서 분명히 통하는 선수임을 스스로 증명한 시기였다. 2021∼2022시즌 종료 후 수많은 팀이 이강인에게 영입 의사를 보냈다. 2022∼2023시즌이 끝나고는 UEFA 챔피언스리그에 나가는 팀들이 이강인을 서로 데려가려고 경쟁했을 정도다. 그 가운데 스페인 아틀레티코 마드리드도 있었다. 선택의 폭이 넓었던 이강인은 당시 자신에게 가장 적극적이고 구체적으로 다가온 팀인 PSG를 새 행선지로 택했다. 널리 알려진 것처럼 PSG는 프랑스 리그앙에서 가장 강한 슈퍼 클럽이다. 리그 우승뿐 아니라 UEFA 챔피언스리그 우승에 도전하는 팀이다. 그런 팀의 구애를 거절할 선수는 그리 많지 않을 것이다.

    루이스 엔리케 PSG 감독. [뉴시스]

    루이스 엔리케 PSG 감독. [뉴시스]

    ‌다만 이강인의 PSG 이적을 놓고 우려의 목소리도 나왔다. 그간 익숙해진 스페인을 떠나 낯선 리그로 향하는 데다, 팀 내 주전 경쟁이 매우 치열할 것이라는 전망이었다. 어느 곳이나 일정 수준 이상의 팀에서는 주전 경쟁이 불가피하다. 이강인의 능력을 의심하는 게 아니라, 단독 주연까지는 아니어도 중요 경기에서 꾸준히 선택받기에는 PSG의 상황이 녹록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였다. 더구나 이강인 영입이 새롭게 부임한 루이스 엔리케 감독의 선택이 아닌 구단의 ‘픽’이라는 점과 상대적으로 이적료가 낮은 점을 고려하면 분명히 일리 있는 의견이었다. 프로 스포츠 세계에서는 이적료가 높은 선수가 우선시되는 경향이 있지 않은가.

    크바라츠헬리아 영입에 이강인 입지 직격탄

    현재 PSG에서 이강인이 처한 상황을 보면 우려가 점차 현실화하는 분위기다. 첫 시즌이었던 지난 시즌만 해도 이강인이 확고한 주전인지 여부를 놓고 평가가 엇갈렸지만, 최근 들어 입지가 심상치 않다는 견해가 우세하다. 특히 엔리케 감독 부임 2년 차인 이번 시즌 겨울 이적시장을 보내면서 생긴 PSG 선수단의 변화에 이강인이 직격탄을 맞았다. 그간 엔리케 감독은 이강인을 측면 미드필더, 중앙 미드필더, ‘가짜 9번’ 최전방 스트라이커 등 다양한 포지션에 기용하며 우선순위에 놨다. 확실한 포지션 없이 너무 잦은 이동이 걱정됐지만 주전으로 나서는 경기가 많았다. 이강인의 능력이 빼어나기에 엔리케 감독의 선호도가 높다는 긍정적 평가가 많았다.

    하지만 겨울 이적시장을 전후로 오른쪽 윙포워드였던 우스만 뎀벨레가 9번 위치에 자리 잡았다. 여기에 SSC 나폴리에서 왼쪽 윙포워드로 뛰던 흐비차 크바라츠헬리아가 오면서 새로운 공격진 퍼즐이 맞춰졌다. 크바라츠헬리아가 올 때만 해도 그가 왼쪽에서 뛰는 선수라 오른쪽에 서는 이강인에 영향이 미칠 줄은 몰랐다. 그런데 엔리케 감독은 왼쪽에 고정됐던 브래들리 바르콜라를 오른쪽으로 이동시키거나 크바라츠헬리아도 오른쪽으로 보냈다. 바르콜라와 크바라츠헬리아를 공존하게 한 것이다. 스트라이커 곤살루 하무스가 부상에서 복귀함에 따라 뎀벨레를 다시 오른쪽 윙포워드로 보내는 선택도 가능해졌다. 프랑스 축구의 새로운 별인 2005년생 데지레 두에까지 오른쪽 윙포워드와 중앙 미드필더로 기용되는 빈도가 늘었다. 중앙 미드필더를 3명 배치하는 포메이션에서 가운데는 이미 비티냐, 주앙 네베스, 파비안 루이스가 자리해 주전 윤곽이 또렷한 상황이다. 게다가 백업 자리에 두에가 치고 올라오면서 몇 달 사이 PSG의 주전 경쟁이 극심해진 것이다.

    경기를 더 간결하게, 공수 전환을 더욱 빠르게 가져가려는 엔리케 감독의 전술 기조도 이강인의 장점과는 대척점에 있다. 이강인의 능력은 공을 소유하면서 경기를 직접 통제하고 운영할 때 극대화된다. 하지만 지금 PSG는 선수들이 부품처럼 각자 위치에서 역할을 정확히 나눠 갖는다. 특정 선수 위주로 경기가 운영되지 않고 모두가 ‘조연 같은 주인공’인 느낌이다. 이런 분위기는 공격과 수비 모두 마찬가지다. 이강인이 출전할 때 현지 언론에서 경기 속도나 박자 문제를 거론하는 것도 같은 맥락에서다. 이강인은 2월부터 3월 8일까지 PSG가 치른 11경기 가운데 9경기에 출전했고 그중 4경기에서만 선발로 기회를 얻었다. 평균 출전 시간은 44.78분이었다. 꾸준히 선발 출전하면서 계속 기량을 뽐내야 하는 이강인에겐 부족한 시간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