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2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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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의 ‘입’ 때문에…

  • 입력2006-06-27 13:41: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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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그놈의 ‘입’ 때문에…
    1964년 도쿄올림픽 마라톤에서 동메달을 딴 일본의 쓰브라야 선수는 68년 멕시코올림픽을 9개월 앞두고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그가 남긴 유서는 간단했다. “더 이상 뛸 수 없다.” 선수가 경기를 앞두고 얼마나 큰 압박감을 받는지를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일화다.

    한 유명 농구인은 선수 데뷔 첫 경기에서 긴장한 나머지 자기편 골에 슛을 했다. 70년 멕시코월드컵 아시아지역 최종예선 호주와의 경기에서 임모 선수는 페널티킥을 실축했다. 이 역시 무거운 책임감 때문이었다.

    과신이나 자만도 가끔 실책을 유발한다. 72년 한국축구는 말레이시아에 덜미가 잡혀 뮌헨올림픽 축구 본선행이 좌절됐다. 말레이시아팀을 만만하게 보았기 때문이다.

    스포츠경기 중계방송 아나운서에게도 낯뜨거운 일이 종종 일어난다. 세시를 네시로 말하거나 장충체육관을 잠실체육관으로 둔갑시키는 일은 애교에 가깝다. 선수나 팀의 이름을 바꿔 부르기도 하고, 배구경기를 중계하면서 ‘스파이크’를 ‘강슛’이라고 소리높여 외치는 아나운서도 있다. 잘해 보려는 욕심이 빚은 실언이다.

    연륜이 쌓이고 경험이 붙으면 방송시간에 늦는 일이 생기기 시작한다. 딴청피우다 결정적인 장면을 놓쳐 허둥대는 경우도 있다. 생방송 중계를 오래한 사람도 ‘오프사이드’를 ‘핸들링’이라 하고 누가 골을 넣었는지 몰라 우물쭈물할 때가 있다. 지나친 부담도 탈이지만 업신여겨도 일을 그릇치는 법이다.



    한 경기의 중계방송을 하며 담배 한갑을 사르는 필자에게 혹자는 그만큼 여유가 있어 그런 것 아니냐고 하지만 오히려 그 반대다. 사람이 못나서인지 지금도 마이크를 들면 가슴이 뛰고 손에서 땀이 난다. 변명 같지만 담배는 순전히 신경안정용이다.

    필자는 1996년 애틀랜타올림픽에서 육상 전종목을 중계방송한 적이 있다. 육상경기의 꽃이라는 남자 100m 결승 때의 일이다. 내로라 하는 세계의 준족들이 출발신호와 동시에 뛰쳐나갔다. 10초 안팎에 끝나는 경기여서 한 발을 떼었다 싶었는데 벌써 너댓명의 선수가 나란히 골인했다. 모두가 흑인이었고 유니폼도 대부분 검은색이었다. 누가 누구인지 구별이 잘 되지 않았다.

    그렇게 경기는 막을 내렸다. 세계 신기록을 수립하며 선두로 들어온 선수는 캐나다의 베일리였다. 그러나 필자는 어이없게도 4위를 한 미국의 미첼을 우승자라고 계속 떠들어댔다. 잘못된 방송이었음을 알게 된 것은 한참 뒤였다. 어떻게 그런 착각을 하게 됐는지 아직도 어안이 벙벙하다. 방송 전 나이나 경력, 준결승 기록을 미리 검토한 뒤 미첼의 우승이 틀림없다고 단정한 데 따른 결과가 아닌지 짐작될 뿐이다. 아니면 함성과 열기에 덩달아 들떴거나 세계적인 경기에 주눅이 들었던 때문이 아닌지 모르겠다. 필자의 방송생활 중 다시 생각하기도 끔찍한 최대의 실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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