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시내를 걷다 보면 슬며시 접근해 이렇게 묻는 사람이 있다. “도(道)에 관심 있으십니까?”
도에는 관심이 있다. 도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도’ 운운하는 사람은 허풍쟁이고, 반쯤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도대체 도는 무엇인가?
‘단학선원’은 이승헌 한국인체과학연구원장(50)이 창설한 것으로 회원들을 ‘도우’(道友), 경영방법을 ‘도인경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 단체는 개천절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러왔고, 전국 초등학교에 단군상 보급운동을 펼쳤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 단체가 보급한 단군상의 목을 베어버림으로써 ‘목 잘린 단군상’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지하시인은 한때 단학선원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다 이원장과 단학선원을 비방하며 결별을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단학선원을 신흥 종교단체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자는 이미 사회적 집중도가 높아진 단학선원의 창시자 이승헌원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기와 도는 무엇이고 그가 지향하는 목표점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道人은 허풍쟁이? 신흥종교 교주?
이원장은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기를 설명했다. “지도력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지 특정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주눅이 들었기 때문에 지도력 행사를 포기하고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자신 있는 분야에서는 기가 살아 지도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리더십이 모두에게 있듯 기운도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운을 자신있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있게 쓰는 사람은 리더십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쓰는 사람은 도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인이 아니다.”
리더십 행사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원장은 이미 단군이 올바른 방향을 밝혀 놓았다고 말했다. “보통사람도 이기심이 발동하면 리더십을 행사한다. 눈앞에 자기 이익이 있으니 그 방향으로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이 들통나는 순간 이 리더십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따라서 이기심 없는 리더십, 모든 사람에게 고루 이익이 가는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철학인데, 이에 대해서 단군은 ‘홍익인간’이라고 방향을 밝혀 놓았다. 이렇게 올바로 제시된 방향이 있는데 왜 기독교나 불교 같은 외래 문화에서 방향을 찾으려고 하는가. 더 이상 단군을 신화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개천절을 만들어 단군을 국조(國祖)로 인정하지 않았는가.”
단군 부분에서 그는 한국학 육성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을 불교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좀더 일찍 이 땅에 들어왔다 뿐이지, 원칙적으로는 기독교와 같은 외래문화다. 이러다보니 한국적인 것은 ‘무당의 세계’ 샤머니즘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샤머니즘이 보통 강한 게 아니다. 불교도 명부전 등을 설치해 샤머니즘화한 한국 불교가 됐고, 기독교도 기복사상이 강조되었다. 이렇게 끈질긴 한국 문화를 언제까지 샤머니즘으로 처박아 둘 것인가. 동학이든 증산도든 이 땅에 출현한 모든 인간해방 사상은 단군이 말한 홍익인간 사상과 부합한다. 따라서 단군을 기점으로 한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도(道)이다. 단군을 신앙 차원이 아니라 국조 차원에서 부활시키자.”
여기서 “도인은 호풍환우하고 신통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답이다. “우리가 잘 때도 심장은 뛰고 있다. 밥을 먹으면 위장이 알아서 소화를 시켜준다. 만약 사람이 심장 박동과 위장 수축까지도 생각해야 했다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물주는 이런 일들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끔 이미 만들어 놓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물주는 바람불고 비오는 것은 우리가 고민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도인은 사람 마음을 바꾸려는 사람이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바꾸려는 이가 아니다. 단전호흡 등 기수련을 통해 영(靈)이 맑아지면 자연 변화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세상을 마음대로 바꾸는 신통력은 부릴 수 없다.”
그는 동학을 예로 들어 도를 설명했다. “양반과 상놈 구분이 심하던 조선조 때, ‘사람이 곧 하늘’ (人乃天)이라며 인간해방을 주장한 수운 선생이 바로 도인이다. 수운 선생은 이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며느리와 사위를 천민 중에서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민중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동학도가 ‘인간 해방’을 부르짖자 양반과 상놈을 구분한 체제 위에 존재해온 조선 정부는 너무 두려워, 외세까지 끌어들여 수운 선생을 처형했다.”
‘도란 인간해방이다.’ 이러한 이원장의 철학은 이미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 시대에 맞는 것일까. 이원장의 대답이다. “이데올로기는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믿는 자는 선(善), 그렇지 않은 쪽은 악(惡)으로 규정해 싸워왔다. 시와 때에 따라 바뀌는 이데올로기를 믿고 목숨을 걸며 싸워온 것이다. 물론 인민을 못살게 하는 북한 사회주의 이념은 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물신 숭배로 치닫는 우리의 자본주의도 옳은 대안은 아니다. 이제는 여럿이 잘 사는 ‘홍익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홍익 자본주의로 북한인민까지 한꺼번에 해방시키지 않고는 진정한 인간해방은 기대할 수 없다.”
이원장은 청산유수처럼 대답을 이어갔는데, 누차 “홍익인간 철학이 한반도의 모순을 해결한다면 장차 세계의 모순까지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에게 많은 학자들은 과학이 인류를 위기로부터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해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인격 홀대하고 과학만 키워서야…”
“과학은 결국 쓰는 것이고, 쓰는 주체는 인격이다. 인격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면서, 과학만 열심히 키워서 어쩌자는 것인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보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이가 도인이고, 우리는 이러한 도인부터 집중 육성하자는 것이다.”
이원장이 정의한 도는 전혀 신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변혁을 바라는 사회과학에 가까웠다. 이러한 그에게 김지하와의 결별 이유를 묻자 “홍익인간 세계를 향해 가는데 그가 기여해야 할 부분이 끝났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떠나간 것”이라고 대꾸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중국 공안 당국은 기수련단체인 파륜궁(法輪功)의 수련자들을 대거 검거했다. 동학도도 봉건제를 유지한 조선조의 탄압을 받아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한 사회운동들은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천시(天時)가 맞지 않아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봉건제가 완전히 무너졌고, 통일을 앞두고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천시가 어디 있겠는가. 아까 도인은 리더십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천시도 선택하는 것이 도인이다”
단군 사상으로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도인’ 이승헌의 모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 해답은 동학도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도에는 관심이 있다. 도사가 어떤 사람인지도 궁금하다. 그러나 ‘도’ 운운하는 사람은 허풍쟁이고, 반쯤은 이상한 사람이라는 선입견이 있다. 도대체 도는 무엇인가?
‘단학선원’은 이승헌 한국인체과학연구원장(50)이 창설한 것으로 회원들을 ‘도우’(道友), 경영방법을 ‘도인경영’이라고 부르고 있다. 수년 전부터 이 단체는 개천절 행사를 대대적으로 치러왔고, 전국 초등학교에 단군상 보급운동을 펼쳤다. 일부 기독교인들이 이 단체가 보급한 단군상의 목을 베어버림으로써 ‘목 잘린 단군상’이 사회문제가 되기도 했다.
김지하시인은 한때 단학선원과 같은 길을 걸었다. 그러다 이원장과 단학선원을 비방하며 결별을 선언해 눈길을 끌었다. 단학선원을 신흥 종교단체로 보는 사람도 적지 않다. 기자는 이미 사회적 집중도가 높아진 단학선원의 창시자 이승헌원장을 만나 그가 말하는 기와 도는 무엇이고 그가 지향하는 목표점은 무엇인지 들어보았다.
道人은 허풍쟁이? 신흥종교 교주?
이원장은 리더십이라는 단어로 기를 설명했다. “지도력은 누구나 갖고 있는 것이지 특정 사람만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보통 사람들은 생활 속에서 주눅이 들었기 때문에 지도력 행사를 포기하고 따라갈 뿐이다. 하지만 자신 있는 분야에서는 기가 살아 지도력을 행사한다. 이처럼 리더십이 모두에게 있듯 기운도 모두에게 있는 것이다. 문제는 이 기운을 자신있게 쓸 수 있느냐는 것이다. 자신있게 쓰는 사람은 리더십이 있는 것이고 그렇지 않은 사람은 없는 것이다. 리더십을 행사할 수 있을 정도로 기운을 쓰는 사람은 도인이고. 그렇지 않으면 도인이 아니다.”
리더십 행사에는 방향성이 중요하다. 이원장은 이미 단군이 올바른 방향을 밝혀 놓았다고 말했다. “보통사람도 이기심이 발동하면 리더십을 행사한다. 눈앞에 자기 이익이 있으니 그 방향으로 사람을 끌고 가려고 하는 것이다. 그러나 이기심이 들통나는 순간 이 리더십은 여지없이 무너져 내린다. 따라서 이기심 없는 리더십, 모든 사람에게 고루 이익이 가는 리더십을 행사해야 한다. 이것이 철학인데, 이에 대해서 단군은 ‘홍익인간’이라고 방향을 밝혀 놓았다. 이렇게 올바로 제시된 방향이 있는데 왜 기독교나 불교 같은 외래 문화에서 방향을 찾으려고 하는가. 더 이상 단군을 신화로 여겨서는 곤란하다. 이미 우리 사회는 개천절을 만들어 단군을 국조(國祖)로 인정하지 않았는가.”
단군 부분에서 그는 한국학 육성을 강조했다. “많은 사람들은 한국적인 것을 불교에서 찾고 있다. 그러나 불교는 좀더 일찍 이 땅에 들어왔다 뿐이지, 원칙적으로는 기독교와 같은 외래문화다. 이러다보니 한국적인 것은 ‘무당의 세계’ 샤머니즘에서나 겨우 찾아볼 수 있게 되었다. 그런데 샤머니즘이 보통 강한 게 아니다. 불교도 명부전 등을 설치해 샤머니즘화한 한국 불교가 됐고, 기독교도 기복사상이 강조되었다. 이렇게 끈질긴 한국 문화를 언제까지 샤머니즘으로 처박아 둘 것인가. 동학이든 증산도든 이 땅에 출현한 모든 인간해방 사상은 단군이 말한 홍익인간 사상과 부합한다. 따라서 단군을 기점으로 한 한국학을 발전시키는 것이 우리가 가야 할 도(道)이다. 단군을 신앙 차원이 아니라 국조 차원에서 부활시키자.”
여기서 “도인은 호풍환우하고 신통력을 발휘하는 사람이 아니냐”고 물어보았다. 그의 답이다. “우리가 잘 때도 심장은 뛰고 있다. 밥을 먹으면 위장이 알아서 소화를 시켜준다. 만약 사람이 심장 박동과 위장 수축까지도 생각해야 했다면 머리가 너무 복잡해져 일을 할 수 없었을 것이다. 조물주는 이런 일들은 고민하지 않아도 되게끔 이미 만들어 놓았다. 이와 마찬가지로 조물주는 바람불고 비오는 것은 우리가 고민하지 않아도 그렇게 되도록 만들어 놓았다. 도인은 사람 마음을 바꾸려는 사람이지 이러한 자연 법칙을 바꾸려는 이가 아니다. 단전호흡 등 기수련을 통해 영(靈)이 맑아지면 자연 변화를 예측할 수는 있어도 세상을 마음대로 바꾸는 신통력은 부릴 수 없다.”
그는 동학을 예로 들어 도를 설명했다. “양반과 상놈 구분이 심하던 조선조 때, ‘사람이 곧 하늘’ (人乃天)이라며 인간해방을 주장한 수운 선생이 바로 도인이다. 수운 선생은 이 사상을 실천하기 위해 며느리와 사위를 천민 중에서 얻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사상은 민중으로부터 큰 지지를 받았던 것이다. 동학도가 ‘인간 해방’을 부르짖자 양반과 상놈을 구분한 체제 위에 존재해온 조선 정부는 너무 두려워, 외세까지 끌어들여 수운 선생을 처형했다.”
‘도란 인간해방이다.’ 이러한 이원장의 철학은 이미 민주주의가 정착된 이 시대에 맞는 것일까. 이원장의 대답이다. “이데올로기는 영구불변의 진리가 아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데올로기를 믿는 자는 선(善), 그렇지 않은 쪽은 악(惡)으로 규정해 싸워왔다. 시와 때에 따라 바뀌는 이데올로기를 믿고 목숨을 걸며 싸워온 것이다. 물론 인민을 못살게 하는 북한 사회주의 이념은 더 잘못된 것이다. 그러나 물신 숭배로 치닫는 우리의 자본주의도 옳은 대안은 아니다. 이제는 여럿이 잘 사는 ‘홍익 자본주의’를 해야 한다. 홍익 자본주의로 북한인민까지 한꺼번에 해방시키지 않고는 진정한 인간해방은 기대할 수 없다.”
이원장은 청산유수처럼 대답을 이어갔는데, 누차 “홍익인간 철학이 한반도의 모순을 해결한다면 장차 세계의 모순까지도 해결하는 방안이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이러한 그에게 많은 학자들은 과학이 인류를 위기로부터 구원하는 방법이라고 지적해 오지 않았느냐고 묻자, 이렇게 대답했다.
“인격 홀대하고 과학만 키워서야…”
“과학은 결국 쓰는 것이고, 쓰는 주체는 인격이다. 인격을 키우는 데는 소홀하면서, 과학만 열심히 키워서 어쩌자는 것인가. 전체를 볼 줄 알아야 한다. 전체를 보고 바른 방향으로 이끄는 이가 도인이고, 우리는 이러한 도인부터 집중 육성하자는 것이다.”
이원장이 정의한 도는 전혀 신비적이지 않았다. 오히려 사회변혁을 바라는 사회과학에 가까웠다. 이러한 그에게 김지하와의 결별 이유를 묻자 “홍익인간 세계를 향해 가는데 그가 기여해야 할 부분이 끝났기에 그는 자연스럽게 떠나간 것”이라고 대꾸했다.
마지막으로 “얼마 전 중국 공안 당국은 기수련단체인 파륜궁(法輪功)의 수련자들을 대거 검거했다. 동학도도 봉건제를 유지한 조선조의 탄압을 받아 실패하지 않았느냐”고 물어보았다.
“그러한 사회운동들은 방향이 틀렸기 때문이 아니라 천시(天時)가 맞지 않아 실패했다. 그러나 지금 한국은 봉건제가 완전히 무너졌고, 통일을 앞두고 새로운 사상을 필요로 하는 시기가 되었다. 이보다 더 좋은 천시가 어디 있겠는가. 아까 도인은 리더십을 선택한 사람이라고 말했는데, 마찬가지로 천시도 선택하는 것이 도인이다”
단군 사상으로 우리 사회를 변혁시키려는 ‘도인’ 이승헌의 모험은 과연 성공할 것인가. 그 해답은 동학도의 경우처럼 우리 사회가 어떤 선택을 하는지에 따라 결정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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