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코어 카드에 평양골프장이라고 쓰여 있다(왼쪽), 평양골프장 캐디들.
필자는 10여 년 전 평양을 방문해 7박 8일간 머물면서 평양골프장(18홀)과 양각도골프장(9홀)에서 라운드를 한 적이 있다.
평양골프장은 파72, 18홀에 전장 6271m로 국제대회 규격을 갖췄다. 1987년 당시 김일성 주석의 75세 생일을 기념해 재일본조선인총연합회(조총련)가 기증한 것. 태성호 주변에 세워져 18홀 가운데 8개 홀이 호수와 접해 있다. 평양 도심에서 30km 떨어져 있는데 차로 40분 정도 걸린다.
클럽하우스 상점에서 파는 모자는 테일러메이드와 나이키 브랜드였다. 렌털 클럽은 주로 미국, 일본의 중고 클럽이었고 그린피는 비회원의 경우 100달러였다.
클럽하우스나 코스는 우리나라와 크게 다르지 않았지만 골프용어는 한글로 바꿔놓은 것이 많았다. 캐디(북한에서도 캐디라고 부른다)는 우리를 보자 “어서 오시라요! 반갑습네다, 동무! 막바로 운동 시작합세다”라며 활기차게 1번 타격대(티잉그라운드)로 안내했다. 밀차(카트)를 끄는 여성 동무에게 “예쁘다”고 하자 잘 알아듣지 못했다. ‘미인’이라고 부연설명하자 ‘곱다’라고 해야 통한다고 했다.
앞 출발대(전반 나인) 첫 홀에서 순서를 정하는데 붉은 줄이 그어진 대나무를 사용했다. 공알받침(티) 위에 공알(공)을 놓고 제일 긴 나무채(드라이버)로 라운드를 시작했다. 나무채 샷이 잘 맞으면서 긴장도 서서히 풀렸다. 캐디는 쇠채(아이언)를 갖다주며 “날래날래 치시라우요”라고 재촉했다. 역광에 공알이 잘 안 보여 똑바로 갔느냐고 묻자 “잔디구역(페어웨이)으로 잘 나갔시오”라며 안심케 했다. 3개 홀 연속 파를 잡자 “선상님, 골프를 아주 잘합네다”라고 칭찬했다.
북한에서도 파와 버디, 더블보기, 홀인원 등의 용어는 그대로 사용한다. 그 대신 발음이 일본식이다. 퍼터는 ‘빳다’, 롱홀은 ‘제일 긴 홀’ 또는 ‘롱그홀’이라고 한다. 캐디들은 영어가 유창하지는 않지만 소통하는 데는 지장이 없을 정도다. 경계선 밖(OB)으로 공알이 나가자 “어서 하나 더 치시라우요”라며 공알을 갖다줬다. 다시 친 공이 정착지(그린)에 올라갔다. 목이 타 “간이 매대(그늘집)가 몇 홀째 있느냐”고 묻자 “찬 단물(주스)을 갖다줄까요”라고 했다. 다른 접대원 동무가 물과 음료를 얼음상자에 넣어 왔다.
모래웅덩이(벙커)나 물 방해물(워터해저드)이 처음에는 있었으나 관리가 어려워 모두 없앴다고 한다. 7번 홀 정착지에서 오르막퍼팅이라 퍼터로 캬부(컵)에 좀 세게 치니 뒷벽을 때리면서 위로 치솟다 들어간다. 이런 퍼트를 몇 개 하고 나니 필자를 향해 “꽂아 넣기 전문”이란다. 또 “정착지에서 구멍에 넣으려면 올(오르막)경사와 내리경사를 잘 봐야 한다”는 조언도 곁들였다. 전반 홀을 마치고 클럽하우스에서 꼬부랑국수(라면)를 간식으로 먹으려 했으나 없어서 평양 밀면을 갖다줬다.
라운드 후 캐디에게 팁으로 10달러를 줬다. “고맙다”는 인사를 하고 헤어지면서 캐디는 투박한 북한말로 “다시 또 오시라우요”라 하고 총총걸음으로 사라졌다. 평양에서 다시 한 번 라운드를 할 수 있기를 고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