결혼정보업체를 통해 배우자를 찾는 30대 중반 김모 씨는 미국에서 경영학석사(MBA) 과정을 마치고 현재 아버지가 운영하는 중견기업에서 경영수업을 받고 있다. 주변에선 집안 좋고 학벌도 좋은 김씨가 얼마나 대단한 집안의 여성과 결혼할지 촉각을 곤두세웠지만, 정작 그가 찾은 상대는 집안이나 외모보다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이다. 최근 그는 국제변호사 자격증을 가진 30세 여성을 소개받아 만나고 있다. 그의 부모는 “결혼만 하면 변호사 사무실 개업은 물론이고 며느리의 사회적 활동을 얼마든지 지원할 의사가 있다”며 결혼 성사에 발 벗고 나섰다.
몸값 치솟는 골드미스
서울 강남에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수백억 원대 자산가 이모 씨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아들 셋 모두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해 평범한 학벌을 가졌지만 이씨는 장남과 차남을 결혼시키면서 최고 학벌인 S대 출신 며느리를 봤다. 현재 셋째 아들 신붓감을 구한다는 그는 “막내 며느리도 S대 출신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씨는 “자식들이 결혼하면 경제력은 얼마든지 뒷받침해줄 수 있다. 그런데 타고난 머리는 부모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 아니냐. 사실 아들도 나도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지만, 태어날 손주들을 위해 똑똑한 며느리를 고집하다 보니 최고 명문대 여성을 점찍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우먼파워’ 시대를 실감케 하는 지표가 속속 쏟아진다. 법무부가 최근 발표한 올해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에 따르면, 여성 비율이 41.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올해 행정고시 최종합격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43.8%를 차지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뿐 아니라 올해 외무고시 최종합격자 32명 가운데 여성 합격자는 17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법조인, 의사, 고위공무원 등 전문직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꾸준히 늘고 고학력 전문직 여성인 ‘골드미스’가 양산되면서 최근 결혼정보업체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결혼 풍속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중 두드러지는 점이 이른바 ‘역(逆) 열쇠 3개’ 현상이다. 과거 판검사, 의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남성을 사위 혹은 남편으로 맞으려면 여성 쪽에서 아파트와 자동차, 개업 사무실 등 열쇠 3개를 혼수로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의사와 변호사 등 소위 ‘잘나가는’ 직업군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혼 남성에겐 ‘사’자 직업이 더는 프리미엄을 보장하지 않는 반면, 여성의 경우 새롭게 프리미엄 직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사’ 자 여성을 아내나 며느리로 맞으려면 ‘열쇠 3개’에 해당하는 든든한 경제력으로 장차 며느리나 아내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이웅진 대표는 “요즘은 남성의 경우 결혼 상대를 찾는 데 과거보다 부모 입김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반면, 골드미스 쪽은 갈수록 부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전에 ‘사’자 직업 아들을 가진 부모가 자녀 결혼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사’자 딸 가진 부모가 파워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최근 달라진 결혼문화를 반영해 선우는 6월부터 경제력 있는 남성과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참가자 자격 조건은 남성의 경우 30대 초·중반 나이에 대기업 근무 이상의 직장 또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집안 재산이 최소 50억 원 이상 돼야 한다. 여성의 경우 30세 안팎 나이에 의사, 법조인, 약사, 변리사 등 소위 잘나가는 전문직으로 국한한다. 이 대표는 “남녀 회원들의 호응이 뜨거워 3개월에 한 번 열던 행사를 내년부터 매달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혼문화의 또 다른 변화는 남녀 모두 초혼 연령대가 높아지고 과거 외모와 학벌, 집안을 중시하던 분위기에서 직업과 경제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방의 ‘외모’보단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얼마나 잘생기고 예쁜가보다 얼굴에서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호감이 가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다.
경제력만 있으면 고졸 남성도 OK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이 미혼남녀 회원을 대상으로 1998년과 2012년 조사한 통계 결과를 비교, 분석해 내놓은 ‘결혼배우자의 조건 변화’ 자료에 따르면, 남녀 회원 나이가 1998년 남성 32.7세, 여성 29.8세였던 것이 2012년에는 남성 34.5세, 여성 31.2세로 모두 높아졌다. 이소민 행복출발 부장은 “연애에 실패하거나 일이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다가 뒤늦게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고, 학력이나 직업 등 웬만한 조건을 갖춘 뒤에 결혼을 생각하다 보니 초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과거 결혼정보업체에서 24~26세 여성회원 몸값이 ‘금값’이었다면 요즘은 30대 초반까지를 결혼적령기로 본다. 이뿐 아니라, 과거 30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초혼남을 배우자로 원하는 경우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탄탄한 전문직 여성이라면 40세가 넘어도 회원가입에 문제가 없다. 회원 가운데 조건에 맞는 남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남성의 경우 배우자의 학벌과 외모보다 직업과 성격을 중시하고, 여성은 배우자의 학벌과 직업보다 경제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남성의 경우 1998년 조사에서 상대 여성의 외모를 중시한 비율이 34.5%를 차지했지만 2012년에는 29.9%로 내려갔다. 반면 상대 여성의 직업을 중시하는 경우는 18.9%에서 23.5%로 높아졌다. 성격 역시 같은 기간 21.1%에서 22.5%로 높아졌다. 여성의 경우 상대 남성의 학벌을 중시하는 비율이 1998년 21.9%에서 2012년 19.5%로 줄어든 반면, 경제력은 22.3%에서 28.9%로 높아졌다. 또한 상대 남성의 직업을 중요하게 보는 여성은 28.5%에서 23.5%로 줄었다.
결혼을 결정하는 데 상대방의 학벌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통계에서도 드러난 것. 통계청에 따르면 대졸자 여성과 중고교 졸업 학력의 남성이 결혼한 경우가 30년 전엔 0.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0.3%로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결혼정보업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3세 문모 씨는 회원가입 상담에서 “외모는 그냥 인상 좋은 정도면 된다. 여자 재산은 필요 없다. 다만 2세를 위해 학벌 좋고 똑똑한 전문직 여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인 그는 예전 같으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력만 있으면 남성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1등 신랑감’으로 꼽힌다. 문씨가 ‘똑똑한 여성’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게 가능한 이유는 경제력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후 바텐더 자격증을 따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나선 그는 현재 자기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집 한 채를 사뒀고 저축한 돈이 3억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형 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33세 미혼여성 정모 씨는 나중에 병원을 차려 독립하는 게 꿈이다.
하지만 집안형편이 어려워 스스로 독립하기는 어렵다. 그 대신 정씨는 자신의 꿈을 뒷받침해줄 수 있는 ‘스폰서’ 신랑감을 찾는다. 경제력을 앞세운 남성과 직업을 앞세워 경제력 있는 남성을 찾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과거 외모나 학벌, 집안 등 외형적 조건을 따지던 풍토가 최근에는 실용적으로 바뀌는 것이다. 이소민 부장은 “최상류층은 여전히 학벌, 외모, 집안 등 전통적인 결혼조건을 따져 비슷한 부류끼리 만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 외 사람들은 결혼을 통해 서로 부족한 부분을 보완해줄 수 있는 배우자를 찾기 때문에 좀 더 실용적이고 합리적인 방향으로 결혼문화가 변화하는 추세”라고 진단했다.
결혼 당사자인 미혼남녀는 물론이고 부모까지 나서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신랑감, 신붓감을 찾다 보니 결혼정보업체의 회원가입 ‘체크항목’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는가 하면 같은 항목이라도 체크해야 할 부분을 좀 더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산’ 항목에서 과거에는 보유 부동산 정도만 쓰면 됐지만 지금은 ‘금융’ 자산은 물론이고 주식과 펀드, 저금 내역까지 적어야 한다. 부모와 당사자의 직업과 학력, 자산뿐 아니라 거주 지역이 어디고 집이 아파트인지 단독주택인지, 자가 소유인지 아닌지는 물론 평수까지 기록해야 한다. ‘가족사항’에서도 부모뿐 아니라 부모의 형제자매, 신랑 또는 신붓감 형제자매의 학력과 직업 등 상세한 프로필을 요구한다.
월간 독서량도 결혼정보 체크항목
최근에는 안경을 착용하는지, 해외유학은 어느 나라 어느 대학으로 다녀왔는지를 기록하는 난이 새롭게 추가됐다. ‘취미’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체크하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이웅진 대표는 “배우자가 될 사람의 성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기는 어렵다. 반면 서로의 생활패턴과 취향을 살펴 공통점이 있는지를 따져보면 자신과 어느 정도 맞는지를 알기 때문에 상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월간 독서량’ ‘주간 운동 횟수’ ‘가장 친한 친구 수’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체크항목에 추가했다. 이뿐 아니라 ‘희망 배우자’ ‘피하고 싶은 배우자’ ‘자기소개’ 난을 따로 마련해 기본적인 체크사항 외에 회원이 덧붙이고 싶은 사항을 직접 적게 하는 업체도 있다. 이소민 부장은 “예전과 달리 세세한 부분까지 입맛에 딱 맞는 배우자를 고르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체크항목이 늘 수밖에 없다. 특히 35세 이상 골드미스와 그 부모는 신랑감 조건을 무척 깐깐하고 까다롭게 따진다. 세세한 조건까지 부합하지 않으면 만남을 피하고 절대 자기 조건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회원을 상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경제력 있는 남성과 골드미스가 꼽는 ‘피하고 싶은 배우자’는 남성의 경우 여성의 직업이 아무리 훌륭하고 고소득이라도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이면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여성 키가 170cm 이상인 경우도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다. 여성은 남성 자산이 주택 포함 10억 원 미만, 부모 자산이 50억 원대 미만이면서 제조업 분야 사업가면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보다 비전 있는 유망 분야에서 사업하는 집안을 선호하는 것. 이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개천에서 용 난’ 스타일의 신랑감, 신붓감은 피하고 최소한 평범한 가정 출신을 원한다.
이웅진 대표는 “최근 신랑감과 신붓감 궁합을 보는 사람은 많이 줄어든 반면 종교를 따지는 경우가 늘었다. 미신인 궁합보다 현실적인 종교가 결혼 후 부부나 집안 화합에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결혼정보업체를 도입한 이 대표는 “20년 전과 비교할 때 최근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학벌우선주의와 지역주의가 퇴화했다는 점이다. 그 대신 결혼조건의 중심축이 ‘여성 직업’ ‘남성 경제력’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
몸값 치솟는 골드미스
서울 강남에 건물 여러 채를 소유한 수백억 원대 자산가 이모 씨는 슬하에 3남을 뒀다. 아들 셋 모두 서울 중위권 대학을 졸업해 평범한 학벌을 가졌지만 이씨는 장남과 차남을 결혼시키면서 최고 학벌인 S대 출신 며느리를 봤다. 현재 셋째 아들 신붓감을 구한다는 그는 “막내 며느리도 S대 출신이어야 한다”고 못 박았다. 이씨는 “자식들이 결혼하면 경제력은 얼마든지 뒷받침해줄 수 있다. 그런데 타고난 머리는 부모가 어떻게 해줄 수 없는 것 아니냐. 사실 아들도 나도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지만, 태어날 손주들을 위해 똑똑한 며느리를 고집하다 보니 최고 명문대 여성을 점찍게 된 것”이라고 말했다.
요즘 우리 사회 곳곳에서는 ‘우먼파워’ 시대를 실감케 하는 지표가 속속 쏟아진다. 법무부가 최근 발표한 올해 사법고시 합격자 명단에 따르면, 여성 비율이 41.7%로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다. 행정안전부가 발표한 올해 행정고시 최종합격자 가운데 여성 비율이 43.8%를 차지했는데, 이는 지난해보다 5%포인트 상승한 수치다. 이뿐 아니라 올해 외무고시 최종합격자 32명 가운데 여성 합격자는 17명으로 절반을 넘었다.
법조인, 의사, 고위공무원 등 전문직 분야에서 여성 비율이 꾸준히 늘고 고학력 전문직 여성인 ‘골드미스’가 양산되면서 최근 결혼정보업체를 중심으로 우리 사회 결혼 풍속도가 빠르게 바뀌고 있다. 그중 두드러지는 점이 이른바 ‘역(逆) 열쇠 3개’ 현상이다. 과거 판검사, 의사, 변호사 등 소위 ‘사’자 직업을 가진 남성을 사위 혹은 남편으로 맞으려면 여성 쪽에서 아파트와 자동차, 개업 사무실 등 열쇠 3개를 혼수로 준비해야 했다. 그런데 최근 의사와 변호사 등 소위 ‘잘나가는’ 직업군의 시장경쟁이 치열해지면서 미혼 남성에겐 ‘사’자 직업이 더는 프리미엄을 보장하지 않는 반면, 여성의 경우 새롭게 프리미엄 직업으로 떠오른 것이다. 다시 말해 ‘사’ 자 여성을 아내나 며느리로 맞으려면 ‘열쇠 3개’에 해당하는 든든한 경제력으로 장차 며느리나 아내를 지원할 수 있어야 한다.
결혼정보업체 ‘선우’ 이웅진 대표는 “요즘은 남성의 경우 결혼 상대를 찾는 데 과거보다 부모 입김이 많이 줄어든 것처럼 보이는 반면, 골드미스 쪽은 갈수록 부모가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한다. 예전에 ‘사’자 직업 아들을 가진 부모가 자녀 결혼에 영향력을 발휘했다면 지금은 반대로 ‘사’자 딸 가진 부모가 파워를 발휘한다”고 말했다.
최근 달라진 결혼문화를 반영해 선우는 6월부터 경제력 있는 남성과 능력 있는 전문직 여성의 만남을 주선하는 행사를 열고 있다. 참가자 자격 조건은 남성의 경우 30대 초·중반 나이에 대기업 근무 이상의 직장 또는 직업을 가져야 하고 집안 재산이 최소 50억 원 이상 돼야 한다. 여성의 경우 30세 안팎 나이에 의사, 법조인, 약사, 변리사 등 소위 잘나가는 전문직으로 국한한다. 이 대표는 “남녀 회원들의 호응이 뜨거워 3개월에 한 번 열던 행사를 내년부터 매달 열 계획”이라고 밝혔다.
결혼문화의 또 다른 변화는 남녀 모두 초혼 연령대가 높아지고 과거 외모와 학벌, 집안을 중시하던 분위기에서 직업과 경제력을 중시하는 분위기로 바뀌고 있다는 점이다. 또한 남녀를 불문하고 상대방의 ‘외모’보단 ‘느낌’을 중요하게 여기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다. 얼마나 잘생기고 예쁜가보다 얼굴에서 전체적으로 풍기는 분위기가 호감이 가는지 아닌지를 따지는 것이다.
일등 신붓감을 만나려고 결혼정보업체에서 상담을 하는 모자(오른쪽).
결혼정보업체 ‘행복출발’이 미혼남녀 회원을 대상으로 1998년과 2012년 조사한 통계 결과를 비교, 분석해 내놓은 ‘결혼배우자의 조건 변화’ 자료에 따르면, 남녀 회원 나이가 1998년 남성 32.7세, 여성 29.8세였던 것이 2012년에는 남성 34.5세, 여성 31.2세로 모두 높아졌다. 이소민 행복출발 부장은 “연애에 실패하거나 일이 너무 바빠서 연애할 시간이 없다는 이유로 결혼을 미루다가 뒤늦게 결혼정보업체 문을 두드리는 사람이 많고, 학력이나 직업 등 웬만한 조건을 갖춘 뒤에 결혼을 생각하다 보니 초혼 연령이 갈수록 높아지는 것 같다”고 분석했다.
과거 결혼정보업체에서 24~26세 여성회원 몸값이 ‘금값’이었다면 요즘은 30대 초반까지를 결혼적령기로 본다. 이뿐 아니라, 과거 30대 중반을 넘긴 여성이 초혼남을 배우자로 원하는 경우 결혼정보업체에 가입하기도 힘들었지만, 지금은 탄탄한 전문직 여성이라면 40세가 넘어도 회원가입에 문제가 없다. 회원 가운데 조건에 맞는 남성을 찾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남성의 경우 배우자의 학벌과 외모보다 직업과 성격을 중시하고, 여성은 배우자의 학벌과 직업보다 경제력을 중시하는 방향으로 바뀌고 있다. 남성의 경우 1998년 조사에서 상대 여성의 외모를 중시한 비율이 34.5%를 차지했지만 2012년에는 29.9%로 내려갔다. 반면 상대 여성의 직업을 중시하는 경우는 18.9%에서 23.5%로 높아졌다. 성격 역시 같은 기간 21.1%에서 22.5%로 높아졌다. 여성의 경우 상대 남성의 학벌을 중시하는 비율이 1998년 21.9%에서 2012년 19.5%로 줄어든 반면, 경제력은 22.3%에서 28.9%로 높아졌다. 또한 상대 남성의 직업을 중요하게 보는 여성은 28.5%에서 23.5%로 줄었다.
결혼을 결정하는 데 상대방의 학벌을 크게 중시하지 않는 분위기가 통계에서도 드러난 것. 통계청에 따르면 대졸자 여성과 중고교 졸업 학력의 남성이 결혼한 경우가 30년 전엔 0.4%에 불과했지만 지난해에는 10.3%로 증가했다.
이러한 현상은 최근 결혼정보업체에서도 확인할 수 있다. 23세 문모 씨는 회원가입 상담에서 “외모는 그냥 인상 좋은 정도면 된다. 여자 재산은 필요 없다. 다만 2세를 위해 학벌 좋고 똑똑한 전문직 여성을 만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고졸 출신인 그는 예전 같으면 결혼정보업체를 통해 원하는 배우자를 만나는 게 거의 불가능했다. 하지만 최근 경제력만 있으면 남성 학벌을 중요하게 생각지 않는 여성이 많아지면서 ‘1등 신랑감’으로 꼽힌다. 문씨가 ‘똑똑한 여성’을 조건으로 내세우는 게 가능한 이유는 경제력이 탄탄하기 때문이다. 고교 졸업 후 바텐더 자격증을 따고 일찌감치 사회생활에 나선 그는 현재 자기 업소를 운영하고 있다. 그는 “집 한 채를 사뒀고 저축한 돈이 3억 원 정도 된다”고 말했다.
한편 대형 병원 정형외과 의사인 33세 미혼여성 정모 씨는 나중에 병원을 차려 독립하는 게 꿈이다.
결혼정보업체의 회원가입 체크항목. 달라진 결혼 풍속도를 엿볼 수 있다.
결혼 당사자인 미혼남녀는 물론이고 부모까지 나서서 서로를 보완할 수 있는 신랑감, 신붓감을 찾다 보니 결혼정보업체의 회원가입 ‘체크항목’은 시간이 갈수록 늘어나고 있다. 과거에 비해 새로운 항목이 추가되는가 하면 같은 항목이라도 체크해야 할 부분을 좀 더 세분화하고 구체화하는 것이다. 예를 들어 ‘자산’ 항목에서 과거에는 보유 부동산 정도만 쓰면 됐지만 지금은 ‘금융’ 자산은 물론이고 주식과 펀드, 저금 내역까지 적어야 한다. 부모와 당사자의 직업과 학력, 자산뿐 아니라 거주 지역이 어디고 집이 아파트인지 단독주택인지, 자가 소유인지 아닌지는 물론 평수까지 기록해야 한다. ‘가족사항’에서도 부모뿐 아니라 부모의 형제자매, 신랑 또는 신붓감 형제자매의 학력과 직업 등 상세한 프로필을 요구한다.
월간 독서량도 결혼정보 체크항목
최근에는 안경을 착용하는지, 해외유학은 어느 나라 어느 대학으로 다녀왔는지를 기록하는 난이 새롭게 추가됐다. ‘취미’뿐 아니라 라이프스타일을 체크하는 것도 과거와 달라진 점이다. 이웅진 대표는 “배우자가 될 사람의 성격을 짧은 시간에 파악하기는 어렵다. 반면 서로의 생활패턴과 취향을 살펴 공통점이 있는지를 따져보면 자신과 어느 정도 맞는지를 알기 때문에 상대의 라이프스타일을 파악하는 것을 중요하게 여긴다”고 설명했다.
이외에 ‘월간 독서량’ ‘주간 운동 횟수’ ‘가장 친한 친구 수’ 등 시시콜콜한 부분까지 체크항목에 추가했다. 이뿐 아니라 ‘희망 배우자’ ‘피하고 싶은 배우자’ ‘자기소개’ 난을 따로 마련해 기본적인 체크사항 외에 회원이 덧붙이고 싶은 사항을 직접 적게 하는 업체도 있다. 이소민 부장은 “예전과 달리 세세한 부분까지 입맛에 딱 맞는 배우자를 고르려는 사람이 많다 보니 체크항목이 늘 수밖에 없다. 특히 35세 이상 골드미스와 그 부모는 신랑감 조건을 무척 깐깐하고 까다롭게 따진다. 세세한 조건까지 부합하지 않으면 만남을 피하고 절대 자기 조건을 양보하지 않기 때문에 회원을 상대하기가 점점 힘들어진다”고 고충을 털어놨다.
경제력 있는 남성과 골드미스가 꼽는 ‘피하고 싶은 배우자’는 남성의 경우 여성의 직업이 아무리 훌륭하고 고소득이라도 프리랜서 등 비정규직이거나 계약직이면 직업이 안정적이지 않다는 이유로 싫어한다. 여성 키가 170cm 이상인 경우도 ‘너무 크다’는 이유로 기피 대상이다. 여성은 남성 자산이 주택 포함 10억 원 미만, 부모 자산이 50억 원대 미만이면서 제조업 분야 사업가면 만남 자체를 기피하는 경우가 많다. 제조업보다 비전 있는 유망 분야에서 사업하는 집안을 선호하는 것. 이뿐 아니라 공통적으로 ‘개천에서 용 난’ 스타일의 신랑감, 신붓감은 피하고 최소한 평범한 가정 출신을 원한다.
이웅진 대표는 “최근 신랑감과 신붓감 궁합을 보는 사람은 많이 줄어든 반면 종교를 따지는 경우가 늘었다. 미신인 궁합보다 현실적인 종교가 결혼 후 부부나 집안 화합에 더 중요하다고 보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국내 최초로 결혼정보업체를 도입한 이 대표는 “20년 전과 비교할 때 최근 가장 두드러진 변화는 학벌우선주의와 지역주의가 퇴화했다는 점이다. 그 대신 결혼조건의 중심축이 ‘여성 직업’ ‘남성 경제력’으로 이동했다”고 진단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