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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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러도시’ 죽거나 확장하거나

美2사단 후방이동說 동두천 세대갈등 … 용산기지 이전說 평택은 땅값 꿈틀

  • 동두천·평택=송홍근 기자 carrot@donga.com

    입력2003-03-06 13:4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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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달러도시’ 죽거나 확장하거나

    동두천 미2사단 정문(큰 사진).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는 동두천시 보산동 기지촌(왼쪽 작은 사진).

    # 엇갈린 감정

    경기 동두천시 보산동에서 50년째 식료품점을 운영하고 있는 윤교주씨(76). 윤씨는 요즘 하루하루가 불안하다. 윤씨가 불안해지기 시작한 건 “동두천 미2사단 등 전방에 주둔한 미군기지가 한강 이남으로 이전할 것”이란 보도가 나오면서부터다. 윤씨는 여중생 사망사건 이후 대학생들과 시민단체 회원들이 몰려와 미군부대 정문 앞에서 항의시위를 할 때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고 했다.

    “두 여학생이 목숨을 잃은 것은 안타깝지만 반미시위는 잘못됐어. 미군이 떠나면 동두천 사람들은 다 죽어. 평생을 ‘달러장사’로 살아온 사람들인데…. 당장 뭘 해 먹고 살라고.”

    윤씨는 한국전쟁 때 의용군으로 끌려갔다 휴전 직전 탈출한 후 50여년 동안 기지촌에서 식료품을 팔며 생계를 유지해왔다. 그런 윤씨가 ‘벌벌 떨고’ 있는 이유는 비단 ‘장사 걱정’ 때문만은 아니다.

    “아양을 떨던 배고픈 고양이가 배를 채우면 바로 주인을 할퀴기 시작한다고, 내가 본 빨갱이들이 바로 그랬어. 원 참, 미군이 후방으로 간다니… 영 불안해.”



    윤씨의 식료품점 인근에서 장사를 하는 김모씨(39). 김씨는 IMF 외환위기 때 남편이 실직하자 호구를 위해 고향인 동두천에 다시 돌아왔다. 그는 지난해 미군기지 앞에서 서울과 의정부에서 온 시민단체 회원, 대학생들과 함께 ‘SOFA(한미주둔군지위협정) 개정’ ‘양키 고 홈(Yankee go home)’ 구호를 외쳤다. 강간 절도 방화 등 미군이 저지른 잔인한 범죄를 목격하면서 자란 터라 여중생 사망사건을 접하고 분노를 참을 수 없었단다.

    “고향이 어디냐고 물으면 늘 의정부라고 대답했지, 한 번도 동두천이라고 답한 적이 없습니다. 동두천 하면 떠오르는 단어가 매춘 양공주 미군범죄 음란물 같은 것들이에요. 동두천을 이 모양으로 만든 미군이 스스로 떠나겠다는데 남아달라고 애원할 필요가 있습니까?”

    김씨는 “동두천이 발전하지 못하고 있는 것도 모두 미군 때문”이라며 이같이 말했다. 그동안 동두천 경제는 미군을 상대로 한 상가와 미군 전용클럽에서 벌어들인 ‘군표’로 유지돼왔다. 미군 기지촌이 위치한 보산동이 활황이면 동두천 전체가 흥청거렸고, 반대로 보산동에 찬바람이 불면 동두천 경제는 얼어붙었다.

    그러나 김씨는 “미군이 주둔하지 않았더라면 지역이 훨씬 발전했을 것”이라며 “미군이 떠나고 한국군이 들어오면 지금보다 모든 면에서 훨씬 좋아질 것”이라고 말했다.

    ‘달러도시’ 죽거나 확장하거나

    미군기지 이전 소식에 하루하루가 불안한 윤교주씨.

    2월26일 오후 동두천시 보산동. 속칭 기지촌 거리는 오가는 행인이 없어 을씨년스럽다. 9·11테러, 여중생 사망사건 등 악재가 잇따르면서 기지촌 업소들은 사상 최악의 불경기를 겪고 있다. 보산동에 필리핀, 러시아 출신 접대부 100여명이, 광암동 ‘턱거리’에 접대부 40여명이 종사하고 있지만 이는 전성기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수준이다. 미군범죄수사대(CID) 관계자는 “미군이 이처럼 예민해져 있는 것을 본 적이 없다”며 “한총련 등이 벌인 시위 때문에 경제의 70% 이상을 미군에 의존하고 있는 동두천 시민들만 고생하고 있다”고 말했다.

    동두천은 기지촌에서 벌어들인 ‘달러’로 성장한 도시다. 기지촌은 군사원조와 외화벌이에 목을 맨 정부가 접대부들에게 보건증까지 만들어주며 매춘을 ‘알선’, ‘육성’한 곳. 한국인 접대부들은 90년대 중반 이후 자취를 감췄고, 그 자리를 필리핀, 러시아 접대부들이 대신하고 있지만 ‘미군의 성(性)해방구’라는 오명은 여전하다.

    동두천엔 미 보병 2사단 산하 21개 캠프 중 6개의 캠프가 자리잡고 있다. 특히 2사단의 3개 전투여단 중 2개 전투여단이 주둔하고 있어 규모와 화력면에서 단일기지로는 동북아 최대 규모다. 또 유사시 적 공격로에 터를 잡아, 한반도에서 전쟁 발발시 미국의 자동 개입을 보장하는 ‘인계철선(trip wire)’ 구실을 해왔다. 상당수 전문가들은 2사단 재배치 문제가 한미 간의 갈등에서 비롯된 것으로 후방지역으로 이전할 경우 인계철선 역할이 퇴색하게 된다고 우려하고 있다.

    미군을 바라보는 동두천 시민들의 반응은 세대에 따라 엇갈린다. 대체로 중장년층은 “미군 없는 동두천은 상상할 수 없다. 경제 기반이 일거에 무너져내린다”고 우려한다. 그러나 젊은 세대들은 “미군이 오히려 동두천의 경제발전을 막고 있다. 부대에 의존하는 경제 체제를 극복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미군을 상대로 ‘밥벌이’를 하는 시민들에게 미군은 생계수단 그 자체다. 기지촌 외곽에 위치한 일반 상점에서 달러를 받을 정도로 시민들의 삶은 미군을 중심으로 이뤄져 있다. 시청 관계자는 “7만5000여명의 인구 중 3분의 1 이상이 미군과 직·간접적으로 관계를 맺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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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보산동 기지촌에서 일하는 러시아 여성들(오른쪽)과 미2사단 병사들. 미2사단은 규모와 화력면에서 동북아 최대를 자랑한다.

    부대 앞에서 시위를 벌이는 시민단체 회원들과 충돌을 빚기도 했던 기지촌 업주들은 하나같이 기지 이전이 구체화되면 미군철수(이전) 반대 시위에 나설 것이라고 말했다. 한 업소 주인은 “반미시위 때문에 미군들이 부대 밖으로 나오지 않는다”면서 “시위대를 몽둥이로 패주고 싶은 심정”이라고 토로했다. 또 다른 기지촌 업주는 “심심하면 부대 앞에서 항의시위가 벌어지니 미국이 2사단 병력을 후방으로 이전하겠다고 엄포를 놓는 것 아니냐”고 말했다.

    그러나 대다수 젊은 세대들에게 미군은 범죄를 일삼고 도시발전을 가로막는 ‘원한의 대상’일 뿐이다. 동두천민주시민회 관계자는 “젊은 세대로 갈수록 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강하다”면서 “젊은층들은 미군에 대해 강한 피해의식을 느끼고 있다”고 말했다. 김지현씨(33)는 “미군에 의해 억지로 붙여진 ‘기지촌(campside)’이란 이름 때문에 더 이상 무시당하고 살기는 싫다”면서 “장사를 그만두게 되더라도 미군이 다른 지역으로 옮겨갔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동두천시는 전체 면적의 3분의 2 가량이 각종 공여지를 포함한 군사시설보호구역으로 지정돼 있다. 이처럼 넓은 미군기지와 공여지는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51년 주민들을 내쫓고 조성된 것. 미군기지되찾기운동을 벌여온 전우섭 목사는 “노른자위 땅의 대부분을 차지하고 있는 미군 때문에 도시발전이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면서 “동두천이 ‘미군의 도시’가 아닌 ‘우리의 도시’로 거듭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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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오산공군기지 정문. 미군을 상대로 한 임대업에 나서면 평수에 따라 60만~120만원의 월세를 받을 수 있다.전방 미군부대의 평택 이전을 기대하고 있는 신장동 기지촌(위 왼쪽 부터 시계 방향으로).

    그렇다면 서울 용산기지와 전방지역 미군부대의 이전 후보지로 거론되고 있는 경기 평택시의 분위기는 어떨까. 평택시엔 오산공군기지(Osan Airbase·K-55)와 캠프 험프리즈(Camp Humphreys·K-6) 등 5개의 미군기지가 455만평의 면적을 차지하고 있다. 이 기지들도 51년 주민을 내쫓고 조성돼 13차례의 확장공사를 거쳐 오늘에 이르고 있다. 특히 K-55기지는 국내의 전투기뿐만 아니라 일본 오키나와와 괌의 전투기까지 통제할 수 있는 주한미군의 핵심 군사시설이다.

    2월27일 오후 평택시 팽성읍 안정리 K-6기지 주변 유흥가. 이곳 기지촌도 썰렁하기는 마찬가지였다. 그러나 상인들은 용산기지의 평택 이전을 기정사실화하며 기대감으로 들떠 있었다. 화원을 운영하고 있는 김양규씨(47)는 “미군기지 이전은 평택 시민들의 숙원사업”이라며 “90년대 초반처럼 유야무야되지 않았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잡화상을 운영하는 정홍내씨(62)는 “미군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라도 내걸어야 할 것 같다. 어차피 현재 주둔중인 미군이 떠나지 않을 거라면 기지가 늘어나는 편이 훨씬 낫다”면서 기대감을 내비쳤다.

    안정리 신장동 등 기지촌엔 요즘 “용산기지가 안정리로 이전하기로 확정됐다”는 근거 없는 소문이 나돌고 있다. K-55기지 인근의 신장동 상인들은 “왜 용산기지가 안정리로 가느냐”며 공공연히 실망감을 나타내고 있을 정도. 신장동에서 옷가게를 운영하는 이모씨(35)는 “신장동 상인들은 ‘용산기지 이전은 어렵더라도 전방 미군부대들이 재배치될 때 일부는 신장동 쪽으로 오지 않겠느냐’는 기대를 하고 있다”고 분위기를 전했다.

    현지 부동산업자들에 따르면 안정리 일대의 집값과 땅값도 꿈틀거리기 시작했다. 미군을 상대로 임대업에 나서면 평수에 따라 60만~120만원 정도의 월세를 받을 수 있다고 한다. 현재 K-55기지의 병력은 5000여명, 민간인과 가족을 포함하면 1만1000여명이다. 여기에 3만7000여명의 현역병력을 비롯해 7만3000여명에 이르는 용산기지 인원이 이주하게 되면 미군기지 인구로만 소도시 규모에 육박하게 된다.

    미군 주둔으로 인해 그동안 평택 주민들이 떠안은 유무형의 피해도 만만찮다. 가장 큰 고통은 전투기 소음. 소음으로 인해 가옥이 흔들리고 어린이들이 경기를 일으키기도 한다. 외지에서 이사 온 어린이들은 정서불안 증세를 보이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재산권 행사와 개발에도 제한이 많고, 미군에 의한 환경오염 사건도 심심찮게 발생해왔다.

    사정이 이런데도 동두천과 달리 평택은 미군에 대한 거부감이 매우 적다. 미군과 직접적인 관련이 없는 시민들도 미군 주둔에 대해 비교적 우호적이다. 1월 말 K-55기지 정문 앞에선 보수적인 시민단체들이 중심이 돼 ‘미군철수 반대’ 집회가 열리기도 했다. ‘우리땅미군기지되찾기모임’ 간사로 일했던 이철형씨는 이에 대해 “미군 관련 사고가 상대적으로 적을 뿐더러 경제적으로 미군에 의존하는 사람이 많기 때문”이라고 분석했다.

    미군부대 인근 지역의 농민들도 미군기지 확장에 찬성하는 분위기다. 서탄면의 일부 주민들은 미군기지용으로 토지를 수용해달라고 국방부에 요구하기도 했다. 농사로는 미래에 대한 비전이 없는 데다, 미군기지로 인해 토지매매가 전혀 이뤄지지 않는 탓에 땅이라도 팔아 목돈을 마련하겠다는 농민들이 많은 것. 농민들이 미군부대 확장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를 내걸려다 지역 시민단체와 충돌을 빚은 적도 있다. 서탄면에 사는 농부 김모씨(63)는 “미군기지로 인해 지역주민들의 생활터전이 엉망이 됐다”면서도 “현실적으로 미군이 주둔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라면 미군을 더 유치해 주민들이 경제적 혜택을 누리는 게 훨씬 낫지 않느냐”고 반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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