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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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 가지 비밀 털어놓는 기막힌 사연

  • 홍승찬 /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

    입력2003-03-05 11:25: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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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세 가지 비밀 털어놓는 기막힌 사연
    ”여러분 안녕하십니까? 오늘 이 자리를 통해 여러분을 알게 돼 얼마나 기쁜지 모르겠습니다. 게다가 이처럼 여러분 앞에 서서 말할 수 있는 기회까지 얻었으니 이 순간만큼은 세상의 그 누구도 부럽지 않습니다. 그래서 여러분 모두에게 감사하는 마음에서 지금까지 누구에게도 말하지 않았던 저의 비밀 세 가지를 털어놓을까 합니다.

    한때 저는 영어로 출판된 책을 우리말로 번역하는 일로 생계를 꾸렸습니다. 그런데도 영어를 듣고 이해하거나 영어로 말하는 것이 너무나도 서툽니다. 이것이 바로 저의 첫번째 비밀입니다. 두 번째 비밀은 조금 더 심각합니다. 여러분도 아시다시피 저는 지금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에 몸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소위 무용을 가르치는 학교의 교수로 있다는 사람이 춤을 출 줄 모릅니다. 정말이지 기가 막힐 노릇이지요.

    “영어 번역으로 먹고산 사람이 아직도 서툰 영어”

    이제 마지막 비밀을 말씀드리겠습니다. 아마도 첫번째 비밀은 진땀을 흘리며 더듬거리고 있는 저를 보시면서 짐작하셨을 테고 두 번째 비밀은 무용에는 전혀 어울리지 않는 제 체격에서 이미 다 드러났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이제 말씀드릴 마지막 비밀만큼은 아무도 눈치챌 수가 없을 뿐더러 누구도 쉽게 이해하지 못할 저만의 고민입니다. 벌써 제 나이가 불혹이라는 마흔을 훌쩍 뛰어넘었는데 아직도 저는 꿈을 좇아 살고 있는 몽상가입니다. 그래서 아직도 존 레논의 ‘Imagine’이라는 노래를 들으면 가슴이 두근거립니다. 그리고 중학교 때 영어 문법책에서 읽었던 에드가 앨런 포우의 시를 지금도 가슴속에 담아두고 삽니다.

    Once, there was a girlliving everydayexpecting tomorrowto be different from today.



    정말이지 언제 봐도 제 영어 실력이나 정신연령에 딱 맞는 시라는 생각이 듭니다. 이왕 제 비밀을 다 털어놓았으니 여러분 모두를 제 상상과 꿈의 세계로 초대할까 합니다. 우리 모두 한마음으로 있는 힘을 다한다면 세상에 불가능한 일은 없다고 생각합니다. 여러분이 원하는 세상을 매일매일 꿈꾸고 믿으십시오. 그리고 그런 세상이 이루어지도록 노력하고 또 노력하십시오. 2002년 월드컵 대회에서 대한민국 사람들 모두가 외쳤듯이 반드시 ‘꿈은 이루어집니다’.

    눈을 감고 저에게 손을 내밀어주십시오. 이제 그 손을 저의 가슴에 대겠습니다. 저도 제 손을 여러분 가슴에 얹겠습니다. 여러분의 생각과 느낌이 저에게 전해지고 있습니다. 여러분도 틀림없이 저의 사랑과 믿음을 읽고 계실 것입니다. 아, 그렇군요. 제가 영어를 듣고 말하지 못해도 여러분과 이렇게 마음을 터놓고 이야기할 수 있는 방법이 있군요.

    이렇게 서로 마음이 통하고 서로를 이해하게 된다면 우리 모두 손을 맞잡고 춤을 출 수 있지 않을까요? 여러분에게 다 털어놓고 보니 제 비밀이라는 것이 별로 숨길 것도 아니었군요. 그렇다면 이제 여러분의 비밀을 들어보도록 하지요. 아마 들어보나마나 여러분의 비밀이라는 것도 그리 대수롭지 않을 것 같군요. 그래요. 이렇게 알고 보면 서로 다 같은 것을 무엇이 그렇게 다르다는 것인지 이해할 수가 없군요.

    제 말이 너무 길어졌군요. 마지막으로 건배를 하면서 장황한 이야기를 마무리하도록 하겠습니다. 두서없는 제 말을 끝까지 들어주신 여러분 모두에게 다시 한번 감사드립니다. 지구상에 사는 모든 사람들, 그리고 살아 숨쉬는 모든 생명체의 진정한 교감과 영원한 평화를 위해 건배!”

    위의 글은 영어가 서툰 필자가 혹시나 해서 미리 만들어서 수첩에 적어둔 영어 문장을 우리말로 옮긴 것이다. 외국인들과 함께 하는 만찬이나 행사가 많아지면서 만약의 상황을 대비하기 위해 준비한 것이지만 아직까지 한 번도 써먹을 기회는 없었다. 늘 새롭게 각오하면서도 잘 지키지 못하는 것이지만 스스로 부끄러운 일까지 남들 앞에 내놓기를 주저하지 않으려고 한다. 그리고 그것을 어떻게든 고치려고 최선을 다하고 그런 자신을 자랑스럽게 생각하기로 했다. 올해는 다른 무엇보다 영어 공부를 열심히 할 생각이다. 혹시 이렇게 내놓고 떠벌리지 않으면 마음이 약해질까봐 스스로의 결심을 만천하에 공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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