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2월 2일 서울 중구 한국프레스센터에서 열린 ‘2021 가정평화포럼’. [지호영 기자]
“나 혼자 산다”.
한국 가족의 현실을 간명하게 표현한 말이다. 지난해 여성가족부(여가부)가 실시한 제4차 가족실태조사 결과는 ‘1인 가구 급증’ ‘비혼·비출산 긍정 평가 증가’로 요약할 수 있다. 지난해 기준 1인 가구 비중은 30.4%로, 2015년(21.3%)보다 9% 이상 늘어났다. 성별을 살펴보면 여성(53%)이 남성(47%)보다 많고 50대 이상 고령층이 과반(61.1%)을 차지했다. 홀로 사는 이유는 △학업·직장 및 취업 준비(24.4%) △배우자 사망(23.4%) △자신이 원해서(16.2%) 순이었다. 같은 실태조사의 ‘삶의 방식·가족 가치관 설문’에 따르면 2015년 대비 비혼 독신(32.4→34%), 비혼 동거(21.1→26%), 무자녀(21.3→28.3%), 비혼 출산(9.5→15.4%)에 대해 ‘긍정적으로 생각한다’는 비율이 증가했다. 특히 20대의 경우 비혼 독신(53%)과 무자녀(52.5%) 삶의 방식에 대한 긍정 평가가 절반을 넘었다.
이에 대해 19대 국회의원을 지낸 황인자 한국외대 미네르바교양대학 초빙교수는 “호주제 등 가부장적 제도 폐지 후 다양한 형태의 가족이 출현하고 있다. 이에 따라 정부의 가족정책도 전향적·포용적으로 변하고 있다”며 “1인 가구의 급격한 증가에 발맞춘 여가부의 제4차 건강가정기본계획, 법무부의 친족 상속 관련 민법 개정이 대표적 사례라고 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건강가정기본계획은 ‘건강가정기본법’에 따라 여가부가 5년마다 내놓는 국가 차원의 가족정책 방향이다. 이번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의 핵심은 △기존 혼인·혈연·입양 중심의 가족 개념 확대 △미혼부(父)가 자녀 출생신고를 할 수 있는 등 ‘아동의 출생 등록될 권리’ 보장 △다양한 가족 구성에 대한 정책적 지원 등이다. ‘가족 다양성’을 추구하는 것으로, 법무부의 민법 개정(독신자의 자녀 입양 허용)과 일맥상통한다.
황 전 의원은 “이른바 ‘정상 가족’과 ‘비정상 가족’을 나누는 기준은 무엇이냐는 비판적 논의가 오랫동안 제기됐다. 9월 정부가 최초로 비혼 동거 실태를 조사하면서 ‘결혼해야 가족인가’라는 화두를 던진 일도 이런 시대상을 반영한 것”이라며 “어느 형태까지 가족으로 인정할지에 대해 앞으로 더 활발할 사회적 논의가 있어야 한다”고 짚었다.
“한부모지원센터 지원 절실”
“대한법률구조공단의 도움을 받아 아이 아빠를 법원 감치조치까지 했지만 실질적 성과는 없었어요. 아빠 의지로 양육비를 지급하지 않으면 소용이 없습니다. 일부 선진국처럼 국가가 양육비를 먼저 지급해주되 생계급여에서 차감하지 않았으면 좋겠습니다.”(한부모가정 가장 A씨)“4년 전 이혼했고 요즘 우울증으로 무척 힘들어요. 다른 사람 눈치 보지 않고 마음 편히 상담받고 싶습니다. 한부모지원센터에서 개인상담이나 가족치료를 지원해줬으면 합니다.”(한부모가정 가장 B씨)
최근 사단법인 한국한부모가정사랑회가 실시한 “한부모가정을 위해 가장 필요한 정책 지원이 무엇이냐”는 설문조사에 돌아온 당사자들 답변이다. 한부모가정은 부(父)나 모(母) 한 사람이 자녀와 함께 사는 가정을 뜻한다.
두 번째 발제를 맡은 황은실 한국열린사이버대 상담심리학과 특임교수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을 한부모가정 정책 중심으로 분석했다. 여가부 통계에 따르면 국내 한부모가정은 152만9000가구(9.6%). 이 중 모자(母子)가정이 114만5000가구, 부자(父子)가정이 38만4000가구다. 이들이 겪는 가장 큰 어려움은 무엇일까.
황 교수는 “한부모가정은 이혼·사별·별거 등에 따른 가족 분리와 상실로 생겨난다. 그로 인해 경제적 빈곤은 물론, 심리적 혼란과 자녀 양육 스트레스를 겪기 십상이다. 사회의 편견 어린 시선에 좌절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이처럼 한부모가정이 겪는 고통이 입체적임에도 정부 지원은 일부 저소득층에 대한 경제지원에 국한된다. 이에 따라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미혼부(모)의 자녀 출생 신고 및 모성(母姓) 승계 절차 간소화 △만 5세 이하 자녀 인당 월 10만 원 추가 지원 등 현금 지원 일부 확대 △양육비 미지급 시 운전면허 정지처분 등 조치를 내놨다.
이에 대해 황 교수는 “4차 건강가정기본계획은 한부모가정이 차별받지 않을 권리를 강조하고 경제적 지원을 일부 늘리는 등 성과가 있었으나, 정신건강 돌봄 측면에서 한계가 있다”며 “전국 주요 도시에 한부모가정지원센터를 설치해 심리·정서적 지원은 물론, 건강 증진을 위해 다양한 프로그램을 제공할 필요가 있다”고 지적했다.
“저출산 극복, 결혼율 증가 핵심”
두 번째 날 포럼에서는 ‘한국 가족정책의 이론적 맥락’을 주제로 한 발제가 이어졌다. 마지막 발제자로 나선 유경명 패밀리피스아카데미 원장은 “영국 역사가 에드워드 기번이 명저 ‘로마제국 쇠망사’에서 로마제국 몰락의 근본 원인을 ‘가정 붕괴’에서 찾은 것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며 “가정은 인류가 오랜 역사에서 종교, 인종, 국적을 초월해 보편적으로 경험한 가치이자 삶에 반드시 필요한 육체적, 정서적, 영적 요소를 제공하는 가장 기초적인 사회 단위”라고 강조했다.유 원장은 “한국이 저출생 문제라는 도전에 직면했으나 효과적으로 대응하지 못하고 있다. 출산율 하락의 근본 원인은 혼인률 감소”라고 지적했다. 한국보건사회연구원, 한국경제학회 등 추산에 따르면 국내 20~49세 기혼 여성의 합계출산율은 2000년 1.4에서 2015년 2.4로 오히려 늘었다. 출산율이 줄어든 이유는 혼인 자체가 감소한 탓이라는 것. 한국의 결혼 건수는 2012년 이후 9년 연속 감소했고 지난해 통계 작성 이래 최저치를 기록했다. 유 원장은 “저출생 문제를 해결하려면 부부를 대상으로 한 정책을 마련하는 것뿐 아니라, 결혼율을 높이려는 노력을 병행해야 한다”며 “결혼율 자체를 높이려면 우리 사회의 종교 전통과 바람직한 가치를 지키는 시민단체들이 힘을 모아야 한다”고 지적했다. 이번 가정평화포럼은 유튜브를 통해서도 볼 수 있다.
“결혼·출산 가치 소중… 가족정책 꾸준한 토론장 마련”
조인범 가정평화협회장
가정평화포럼 준비위원회의 여러 협력단체를 대표해 조인범 위원(가정평화협회장·사진)은 가정평화포럼 개최 의도에 대해 이렇게 밝혔다. 포럼이 끝난 후 조 회장에게 가정평화포럼을 통해 지향하는 바람직한 가족상과 포럼의 발전 방향에 대해 물었다. 다음은 그와 나눈 일문일답.
여러 패널이 ‘가정 위기’를 짚었는데.
“오늘 포럼에서 오간 논의 중 특히 아픈 대목이 있었다. 어느 패널이 말한 ‘요즘 젊은이는 결혼과 출산을 희생으로 여겨 꺼린다’는 지적이었다. 가정을 이루는 것이 큰 고통이 돼버린 세태의 심각성을 새삼 절감했다. 젊은이의 어려운 현실에 공감도 했다. 그러나 개인의 인격과 정체성이 형성되는 곳은 바로 가정이다. 행복의 보금자리여야 할 가정의 위기는 곧 사회 위기로 이어지기에 우려스럽다.”
가족정책의 가장 큰 문제는 무엇인가.
“최근 가족정책의 가장 큰 변화는 기존 가족 개념의 재설정 및 확대다. 결혼이나 혈연, 입양을 매개로 이뤄진 기존 가족 개념에 ‘생계와 거주를 함께하는 사람도 가족’이라는 개념을 포함하려 하고 있다. 이미 일부 서양 국가에서 시행된 정책 방향과 유사한 것으로 보인다. 가령 프랑스에 ‘팍스’(PACS: 시민연대계약)라는 제도가 있다. 1999년 도입된 제도로, 결혼이 아닌 이른바 ‘연대계약’ 형태로 동거가족을 구성하는 것이다. 이를 우리가 참고할 모범 사례로 보는 경우가 있으나 20년이 지난 지금 그 구성원, 특히 아이들의 행복도에 대해서는 제대로 평가한 바가 없다. 한국에서도 건강가정기본법 개정안을 비롯해 비슷한 움직임이 있다. ‘가족 형태를 다양화해야 한다’는 답을 미리 정해놓고 추진하는 것으로 보여 우려된다.”
다양한 형태의 가족을 인정해야 하지 않나.
“부모가 숨지거나 이혼하는 등 변화에 아이들은 큰 상처를 입고 정체성에 혼란을 느낀다. 그러한 상처를 치유하려면 오랜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다. 가족 구성원이 서로를 책임감 있는 사랑으로 보듬을 수 있게 하는 것이 핵심이다. 책임감 없는 가족관계가 건강하고 행복하기는 쉽지 않다. 각 가족 구성원, 특히 아이는 국가나 사회의 실험 대상이 아니다. 가족정책은 가정이 건강하게 유지·성장할 수 있도록 지원하는 것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이른바 가족 다양성을 지상 목표로 여겨서는 안 된다. 특정한 가족 모델만 정답이고 나머지는 비정상이기에 비난하자는 것이 결코 아니다. 다름을 인정하고, 소수자를 배려하면서 우리에게 필요한 정책을 찾되, 모두가 지향해가야 하는 건강한 가족은 무엇인지 대화해야 한다는 얘기다.”
향후 포럼 운영 방향은?
“비판을 위한 비판이 아닌, 열린 대화의 장이 됐으면 한다. 그리고 그것이 실천으로 이어지길 바란다. 일회성 행사가 아니라 여러 시민과 전문가가 모여 소통하고 건강한 가족정책을 제언하는 창구로 발전해나갈 것이다. 우리 주변에 소외받는 가정이 없도록 하고, 모든 사람이 근본적으로 건강하면서 행복한 가정을 누릴 수 있도록 돕는 역할을 하고자 한다.”
김우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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