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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경련이 요청해와 냈다”
검찰은 해당 재벌 총수를 검찰청사로 불러 참고인 조사를 했다. 이들이 출연금을 낸 경위와 이 과정에서 박 대통령이나 안종범 전 대통령비서실 정책조정수석 등 권력자의 ‘강요가 있었는지’, 또한 ‘대가성이 있었는지’ 등을 밝히는 게 목적이다. 검찰 조사에서 재벌 총수는 한결같이 ‘자발적 기부’라고 진술했다. 물론 ‘대가성이 없었다’고도 한다. ‘살아 있는 권력’에 불리한 증언을 했다 나중에 어떤 보복을 당할지 모르는 일이니, 재벌들이 그렇게 주장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할 바는 아니다. 하지만 ‘대가성이 없는 자발적인 기부였다’고 주장하는 재벌 총수들의 강변은 몇 가지 점에서 ‘자가당착’에 빠질 공산이 크다.첫째,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이 설득력을 가지려면 미르·K스포츠재단이 재벌들이 ‘자발적’으로 만든 재단이거나 ‘정부 혹은 공공기관이 설립’한 재단이어야 한다. 재벌들이 국민 경제를 위해 스스로 설립한 재단에 돈을 냈다면 칭찬받아 마땅한 일이다. 하지만 이 두 재단은 재벌이 만든 재단도, 정부나 공공기관이 만든 재단도 아니다. 설립 주체가 불분명한 민간재단일 뿐이다. 그럼에도 18개 재벌이 줄을 서서 돈을 냈다는 것은 설명이 안 된다. 재벌들은 “전국경제인연합회(전경련)가 요청해와 냈다”고 하지만, 검찰 조사 결과 이들 재단에 출연금을 내기 전 재벌들과 전경련이 수차례 회의를 한 것으로 드러났다. 이 재단의 성격이나 배후를 충분히 알 수 있었다는 얘기다. 이승철 전경련 상근부회장도 검찰에서 “안 전 수석의 강요가 있었다”는 취지의 진술을 했다.
둘째,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은 스스로 ‘탈세’ ‘횡령’ ‘배임’ ‘주주 권익 침해’는 물론, ‘뇌물공여’ 같은 경제적 범죄를 저질렀음을 시인하는 꼴이다.
공금인 회사 돈을 쓰려면 반드시 근거가 있어야 하고, 그 비용을 회계상 정당하게 처리해야 한다. 기업 관계자들은 ‘기부금’이나 ‘사회공헌기금’ 등으로 회계처리를 했다고 주장하지만, 상당수 기업은 두 재단에 낸 자금의 출처가 불분명하다. 이에 대해 세무조사를 할 필요도 있다.
또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은 ‘횡령’ ‘배임’으로 이어질 수 있다. 회사 공금 수십억 원을 지출하는 과정에서 이사회 결의조차 없었다면 이는 심각한 대목이다. 일부 기업은 “회사 내규상 기부금은 이사회 결의사항이 아니다”라고 주장하지만, 이는 정상적 기부일 때 적용되는 얘기다.
‘주주 권익 침해’도 문제가 될 수 있다. 사내자금이 유출되면 투자자 처지에서는 그만큼 자신이 얻을 수 있는 배당금 등의 기대수익을 상실하게 된다. 정당한 사회공헌에는 이의를 제기하기 어렵지만, 부당한 사외 유출은 명백한 주주 권익 침해다.
‘자발적 기부’라는 주장의 가장 큰 문제는 ‘뇌물공여’ 부분이다. 사실 ‘뇌물죄’가 성립하려면 ‘대가성’이 분명해야 한다. 하지만 ‘불이익을 받지 않고자 금품을 제공하는 행위’도 ‘포괄적 뇌물’이다. 그것이 공무원이나 권력기관이 연루된 사안일 경우 ‘선의의 기부’라고 의미를 축소할 수 없다. 더욱이대통령과 대통령비서실 수석까지 개입됐다면 ‘포괄적 뇌물’일 개연성이 높고, 이들에게 돈을 준 쪽은 ‘포괄적 뇌물공여’에서 벗어나기 어렵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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넷째, 민간재단에 불과한 미르·K스포츠재단 출연금 모금에 박 대통령과 안 전 수석 등 권력자가 개입한 것이 합법적인가 하는 부분이다.
선의로 도와주신 기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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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섯째, 당초 두 재단에 출연 사실이 들통났을 때 대다수 재벌은 피해자라고 주장했다 검찰 조사에서는 ‘자발적 기부’로 태도를 바꿨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출연 이유를 ‘재단 취지가 좋아서’라고 했다. 이런 주장이 가능하려면 두 재단의 성격이나 운영 등을 명확히 파악했다는 근거가 있어야 한다. 하지만 대다수 재벌은 두 재단의 정체를 거의 알지 못하는 상황이다. 최순실 씨 등이 이 재단의 실질적인 소유자라는 사실을 문제가 불거진 뒤에야 알았다는 게 재벌들의 설명이다. 재단 설립 취지가 좋아서 기부금을 냈다고 주장하는 재벌들의 설명은 앞뒤가 맞지 않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