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5월18일 부산지역의 한 지방신문은 진료비를 허위로 청구하거나 조작해 부당 이득을 챙긴 의사의 구속 소식을 짤막하게 보도했다. 요즘 의사와 약사의 부정과 형사 입건이 흔한 일이다 보니 비중 있는 기사로 취급되지 않은 것은 어떻게 보면 당연한 일이다. 하지만 몇 줄 짜리 기사의 이면에는 보험급여를 ‘내 돈’처럼 생각하는 의료계의 일그러진 관행과 이를 밝히려는 두 형사의 끈질긴 집념과 투혼이 녹아 있었다.
부산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서도석 경사(40)와 정영근 경장(36). 이들은 15년 넘게 사복 형사 생활을 해왔지만 지난 한해 동안은 정복 차림을 고집했다. 지난해 5월부터 사기혐의로 추적 수사해 온 의사와 약사에게 ‘무식한 형사’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위장환자 만들기, 진료일수 늘리기, 진료비 이중 청구, 환자 본인 부담금 뻥튀기기 등은 이들 형사가 보기에는 명백한 사기죄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그런데도 일부 의사와 약사는 “이는 관행일 뿐”이라며 도리어 형사들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했다. “검사나 판사도 못하는데 형사들이 우리를 잡을 수 있느냐”는 이들의 반응에 두 형사는 “어디 한번 해보자”며 승부수를 띄웠고, 결판이 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의사 10명, 한의사 3명, 약사 8명 등 모두 21명 형사입건. 이 중 의사 1명 구속. 올 들어 보험재정 누수가 사회문제화하면서 죽은 사람을 환자로 둔갑시키거나, 감기환자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보험급여를 타낸 ‘엽기 의사’들의 구속 사례보다 이들 형사의 실적은 초라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 ‘부산 투캅스’의 이번 수사가 의료계 내부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경찰에서 ‘이단의 영역’이던 의사와 약사의 비리를 파헤쳤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의료계에 전혀 문외한인 두 형사가 의사와 약사의 진료비 허위청구에 주목한 시점이 이미 의약분업 이전인 지난해 5월이었다는 점과, 검찰 등 대부분 사법기관의 수사가 보건복지부나 각 지방자치단체 등 다른 행정기관의 고발로 이루진 데 반해 이들은 자발적인 기획수사로 각종 관련 서류와 의학적 지식을 직접 뒷받침했다는 점이 주위를 놀라게 한 것. 더욱이 1년간의 수사기간과 21개 의료기관의 비리를 동시에 추적한 수사의 방대함은 보험급여 심사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들이 21명에 달하는 의사·약사의 범죄 혐의를 증명하기 위해 검찰에 제출한 증거서류만 수사서류와 각종 명세서를 포함해 3만8815장. 200쪽 분량의 책 200권에 달하는 양이었다. 21개 기관이 포탈한 보험급여, 본인 부담금만 모두 합쳐 약 1억2000만 원에 달했다. 4만여 건에 달하는 허위·부당 청구사례를 적발했지만 한 건당 청구액수가 수천 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액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이들 각 의료기관의 3개월(1/4 분기)치 진료비나 약제비만을 표본으로 추출해 수사한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송치한 사건이 부산지검 검사 4명에게 분산 배당되어, 기소 준비를 하였다는 대목에서 이들 형사가 1년간 벌인 수사의 방대함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서형사와 정형사, 이들 선후배 형사가 팀을 이뤄 부산에서는 제법 알려진 개인의원 10곳과 한의원 3곳, 약국 8곳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당시 주변의 만류가 만만치 않던 게 사실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문영역인 의사와 약사의 의료행위, 특히 진료비와 약제비 문제를 가지고 경찰이 형사처벌한 사례가 없고(의료사고 제외), 이를 수사한 형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한 짓을 한다” “그 시간에 강도 하나 더 잡지” “고발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강도 살인범만 잡은 너희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는 등 온갖 비아냥거림이 동료 형사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사실 그랬다. 이들은 폭력계와 강력계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지만 의료사건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특히 서형사는 부산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는 ‘조폭 킬러’로 소문이 자자한 ‘강력통’이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 역의 칠성파 두목 ‘준석’을 구속시킨(95년) 영화 속 서형사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그이고,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의 구속영장을 작성한 사람도 서형사다.
그렇다면 강력사건 전담형사일 뿐인 이들 ‘투캅스’가 그 숱한 비아냥거림 속에 ‘의료계 비리 척결’에 나선 이유가 뭘까. “아무도 하지 않았고,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무식한 형사도 공부만 하면 박사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 형사가 말하는 수사동기는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다. 그들은 지난해 5월 의약분업을 두 달 앞두고 언론에서 쏟아지는 의사·약사들의 리베이트와 허위청구 관련 기사를 보고 무작정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동안 이 사건만 전담했다. “관행은 무슨 관행입니까. 다른 사기꾼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게 하나도 없어요.” 두 형사는 그 길로 부산시를 찾아갔다. 지난 96년부터 99년 말까지 심평원의 서류 심사에서 허위청구나 과잉청구로 적발된 전체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현행 의료법에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허위청구가 적발되어도 금액을 회수하거나 며칠간의 면허정지로 그치는 관행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 형사처벌함으로써 차제에 잘못된 관행의 뿌리를 뽑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증거와 진술이었다. 먼저 그들은 피해자의 진술 확보를 시도했다. 심평원이 부산시로 내려보낸 허위청구 자료를 중심으로 수진자(환자) 진술 확보에 나선 것. 확인 결과는 ‘개판’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이미 죽었거나 입대한 사람이 환자로 둔갑했고, 가족 중 한 명이 진료 받으면 보험증에 기재된 8명의 전체 가족이 돌아가며 한 달에도 몇 번씩 진료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임산부가 방사선 진료를 받고, 보험 비급여항목인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수술비를 모두 받고도 이를 피부종양 적출술을 한 것처럼 속여 보험급여를 다시 청구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이사를 간 수진자를 찾는 데 몇 달을 허비하고 군인에게는 e-메일로 진료 명세서를 대조 확인하는 등 많은 고충이 따랐다. 이들이 이렇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피의자 진술을 확보한 사람만 150여 명.
하지만 정작 어려웠던 것은 수진자 진술이 아니라 의사의 피의자 진술 확보였다. 먼저 의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진술을 회피했다. 밤이면 밤, 공휴일면 공휴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시간을 맞춰줬지만 의료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과의 머리싸움에서 투캅스는 백전백패했다. 심지어 포경수술과 피부종양 적출술이 같은 것이라는 피의자 의사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다른 의사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 선후배, 친척 가릴 것 없이 모르면 묻고 해결했다. 의사들의 철저한 직능 보호의식 때문에 좀처럼 친한 사이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저가약을 주고 고가약을 신청한 경우에는 약품의 성분과 효능까지 조사했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항목을 조사하고, 수진자 부담항목과 보험급여항목을 따로 정리하고 외웠다. 그래도 안 되면 A피의자 의사에게 물어 이를 B피의자 의사에게 써먹는 방법도 이용했다.
그들의 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 생각한 것. 100명에게 가능했다면 1000명에게도 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두 형사는 21개 의원과 약국이 심평원에 제출한 보험급여 신청서류 모두를 수사키로 방침을 정했다. 심평원에 보관된 진료비 명세서와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부에 대한 대조작업을 통해 허위청구 명세서를 샅샅이 밝히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표본으로 제시한 3개월 분량의 명세서만 한 의원당 1000여 건에서 8000여 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에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이들 명세서가 복사되어 내려오는 데만 한 달에서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의료보험통합과 함께 모든 문서가 서울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심평원이 자체의 업무를 제쳐놓고 두 형사의 수사를 도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올 2월 급기야 서울 심평원으로 출장을 떠났다. 심평원의 명세서 보관창고를 직접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틀 밤을 새며 꼬박 복사해도 2000여 건이 고작이었다. 그 넓은 창고에서 해당의원의 해당시기 명세서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것을 복사하느라 손가락 밑에 가죽이 벗겨져 나가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청소부 아줌마들에게 점심과 뇌물(?)을 주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역부족이기는 마찬가지. 이후 2차례나 출장을 다니면서 이런 작업을 반복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일단 부산으로 철수한 이들 형사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의원 5군데의 진료비 명세서만 1만여 건에 다다랐고, 이를 정리해 범죄일람표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보험재정 파탄이 연일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지난 3월 경찰과 검찰에 의약비리 척결을 위한 특별단속계획이 하달되고,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이들의 출장을 안타까워한 심평원이 모든 자료를 원본 그대로 대여해 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 또 전산작업이 되어 있는 부분은 이를 모두 정리해 주는 성의를 보였다. 이때부터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모두 4만여 건에 이르는 진료비와 약제비 허위청구 사례를 모두 건별로 범죄일람표를 작성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지난 4월3일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 한 달 동안 사건을 재정리한 이들은 5월18일 21명을 형사입건하고, 이 중 죄질이 나쁜 1명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4명의 의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의사들이 도주의 우려가 없어 구속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검찰과 함께 계속 보강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투캅스’는 이제 강력사건전문 형사 에서 의료전문 형사로 변신해 있다. “아마 다음에 걸리는 의사는 정말 재수없을 것”이라고 크게 웃는 그들에게서 형사 특유의 승부욕을 느낄 수 있다. 집념의 ‘투캅스’는 자신들이 이번에 밝힌 의료 비리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고 말했다.
부산지방경찰청 기동수사대 서도석 경사(40)와 정영근 경장(36). 이들은 15년 넘게 사복 형사 생활을 해왔지만 지난 한해 동안은 정복 차림을 고집했다. 지난해 5월부터 사기혐의로 추적 수사해 온 의사와 약사에게 ‘무식한 형사’라는 인상을 주지 않기 위해서였다.
위장환자 만들기, 진료일수 늘리기, 진료비 이중 청구, 환자 본인 부담금 뻥튀기기 등은 이들 형사가 보기에는 명백한 사기죄에 해당하는 범죄였다. 그런데도 일부 의사와 약사는 “이는 관행일 뿐”이라며 도리어 형사들을 정신 나간 사람 취급했다. “검사나 판사도 못하는데 형사들이 우리를 잡을 수 있느냐”는 이들의 반응에 두 형사는 “어디 한번 해보자”며 승부수를 띄웠고, 결판이 나기까지 1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의사 10명, 한의사 3명, 약사 8명 등 모두 21명 형사입건. 이 중 의사 1명 구속. 올 들어 보험재정 누수가 사회문제화하면서 죽은 사람을 환자로 둔갑시키거나, 감기환자를 정신병자로 만들어 보험급여를 타낸 ‘엽기 의사’들의 구속 사례보다 이들 형사의 실적은 초라해 보인다. 그럼에도 이들 ‘부산 투캅스’의 이번 수사가 의료계 내부에 파장을 일으키는 것은 경찰에서 ‘이단의 영역’이던 의사와 약사의 비리를 파헤쳤다는 사실 그 자체 때문이 아니다.
의료계에 전혀 문외한인 두 형사가 의사와 약사의 진료비 허위청구에 주목한 시점이 이미 의약분업 이전인 지난해 5월이었다는 점과, 검찰 등 대부분 사법기관의 수사가 보건복지부나 각 지방자치단체 등 다른 행정기관의 고발로 이루진 데 반해 이들은 자발적인 기획수사로 각종 관련 서류와 의학적 지식을 직접 뒷받침했다는 점이 주위를 놀라게 한 것. 더욱이 1년간의 수사기간과 21개 의료기관의 비리를 동시에 추적한 수사의 방대함은 보험급여 심사기관인 건강보험심사평가원(심평원)조차 혀를 내두를 정도였다.
이들이 21명에 달하는 의사·약사의 범죄 혐의를 증명하기 위해 검찰에 제출한 증거서류만 수사서류와 각종 명세서를 포함해 3만8815장. 200쪽 분량의 책 200권에 달하는 양이었다. 21개 기관이 포탈한 보험급여, 본인 부담금만 모두 합쳐 약 1억2000만 원에 달했다. 4만여 건에 달하는 허위·부당 청구사례를 적발했지만 한 건당 청구액수가 수천 원에 지나지 않기 때문에 액수는 크지 않았다. 하지만 이것도 이들 각 의료기관의 3개월(1/4 분기)치 진료비나 약제비만을 표본으로 추출해 수사한 분량에 지나지 않았다. 특히 이들이 송치한 사건이 부산지검 검사 4명에게 분산 배당되어, 기소 준비를 하였다는 대목에서 이들 형사가 1년간 벌인 수사의 방대함과 노력을 엿볼 수 있다.
서형사와 정형사, 이들 선후배 형사가 팀을 이뤄 부산에서는 제법 알려진 개인의원 10곳과 한의원 3곳, 약국 8곳에 대한 수사에 착수할 당시 주변의 만류가 만만치 않던 게 사실이다. 당시까지만 해도 전문영역인 의사와 약사의 의료행위, 특히 진료비와 약제비 문제를 가지고 경찰이 형사처벌한 사례가 없고(의료사고 제외), 이를 수사한 형사도 없었기 때문이다.
“괜한 짓을 한다” “그 시간에 강도 하나 더 잡지” “고발도 들어오지 않았는데 왜 긁어 부스럼을 만드느냐” “강도 살인범만 잡은 너희가 그런 일을 어떻게 할 수 있느냐” 는 등 온갖 비아냥거림이 동료 형사들의 입에서 흘러 나왔다. 사실 그랬다. 이들은 폭력계와 강력계에서 뼈가 굵은 베테랑 형사지만 의료사건과는 전혀 인연이 없었다. 특히 서형사는 부산 조직폭력배 사이에서는 ‘조폭 킬러’로 소문이 자자한 ‘강력통’이다. 영화 ‘친구’에 나오는 유오성 역의 칠성파 두목 ‘준석’을 구속시킨(95년) 영화 속 서형사의 실제 주인공이 바로 그이고, 희대의 탈주범 신창원의 구속영장을 작성한 사람도 서형사다.
그렇다면 강력사건 전담형사일 뿐인 이들 ‘투캅스’가 그 숱한 비아냥거림 속에 ‘의료계 비리 척결’에 나선 이유가 뭘까. “아무도 하지 않았고, 하려 들지 않았기 때문이죠” “무식한 형사도 공부만 하면 박사들을 처벌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두 형사가 말하는 수사동기는 간단하면서도 직설적이다. 그들은 지난해 5월 의약분업을 두 달 앞두고 언론에서 쏟아지는 의사·약사들의 리베이트와 허위청구 관련 기사를 보고 무작정 수사를 시작했다고 한다. 그리고 1년 동안 이 사건만 전담했다. “관행은 무슨 관행입니까. 다른 사기꾼들보다 더하면 더했지 덜할 게 하나도 없어요.” 두 형사는 그 길로 부산시를 찾아갔다. 지난 96년부터 99년 말까지 심평원의 서류 심사에서 허위청구나 과잉청구로 적발된 전체 의료기관에 대한 수사에 착수하기 위해서였다. 그들은 현행 의료법에 형사처벌 조항이 없어 허위청구가 적발되어도 금액을 회수하거나 며칠간의 면허정지로 그치는 관행에 대해 사기죄를 적용, 형사처벌함으로써 차제에 잘못된 관행의 뿌리를 뽑기로 결심했다.
문제는 증거와 진술이었다. 먼저 그들은 피해자의 진술 확보를 시도했다. 심평원이 부산시로 내려보낸 허위청구 자료를 중심으로 수진자(환자) 진술 확보에 나선 것. 확인 결과는 ‘개판’이라는 말이 딱 어울렸다. 이미 죽었거나 입대한 사람이 환자로 둔갑했고, 가족 중 한 명이 진료 받으면 보험증에 기재된 8명의 전체 가족이 돌아가며 한 달에도 몇 번씩 진료를 받은 것으로 기록되어 있었다. 그 뿐이 아니었다. 심지어 임산부가 방사선 진료를 받고, 보험 비급여항목인 포경수술을 받은 사람에게 수술비를 모두 받고도 이를 피부종양 적출술을 한 것처럼 속여 보험급여를 다시 청구하는 등 가능한 모든 방법을 동원하고 있었다. 이사를 간 수진자를 찾는 데 몇 달을 허비하고 군인에게는 e-메일로 진료 명세서를 대조 확인하는 등 많은 고충이 따랐다. 이들이 이렇게 일일이 찾아다니며 피의자 진술을 확보한 사람만 150여 명.
하지만 정작 어려웠던 것은 수진자 진술이 아니라 의사의 피의자 진술 확보였다. 먼저 의사들이 바쁘다는 핑계로 진술을 회피했다. 밤이면 밤, 공휴일면 공휴일, 그들의 입맛에 맞게 시간을 맞춰줬지만 의료 지식으로 무장한 전문가 집단과의 머리싸움에서 투캅스는 백전백패했다. 심지어 포경수술과 피부종양 적출술이 같은 것이라는 피의자 의사의 이야기를 곧이곧대로 믿었다가 다른 의사에게 비웃음을 사기도 했다.
이때부터 그들은 의학 공부를 시작했다. 친구, 선후배, 친척 가릴 것 없이 모르면 묻고 해결했다. 의사들의 철저한 직능 보호의식 때문에 좀처럼 친한 사이가 아니면 해줄 수 없는 이야기가 대부분이었다. 저가약을 주고 고가약을 신청한 경우에는 약품의 성분과 효능까지 조사했다. 수술에 필요한 검사항목을 조사하고, 수진자 부담항목과 보험급여항목을 따로 정리하고 외웠다. 그래도 안 되면 A피의자 의사에게 물어 이를 B피의자 의사에게 써먹는 방법도 이용했다.
그들의 수사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이들 사례는 빙산의 일각일 뿐이라 생각한 것. 100명에게 가능했다면 1000명에게도 가능하다는 게 그들의 믿음이었다. 그래서 두 형사는 21개 의원과 약국이 심평원에 제출한 보험급여 신청서류 모두를 수사키로 방침을 정했다. 심평원에 보관된 진료비 명세서와 의사가 작성한 진료기록부에 대한 대조작업을 통해 허위청구 명세서를 샅샅이 밝히기로 한 것이다. 하지만 문제는 간단치 않았다. 표본으로 제시한 3개월 분량의 명세서만 한 의원당 1000여 건에서 8000여 건. 보건복지부와 심평원에 협조공문을 보냈지만 이들 명세서가 복사되어 내려오는 데만 한 달에서 두 달의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7월 의료보험통합과 함께 모든 문서가 서울로 올라가 버렸기 때문이기도 했지만, 심평원이 자체의 업무를 제쳐놓고 두 형사의 수사를 도울 수만은 없는 일이었다.
그들은 올 2월 급기야 서울 심평원으로 출장을 떠났다. 심평원의 명세서 보관창고를 직접 뒤지기 시작한 것이다. 이틀 밤을 새며 꼬박 복사해도 2000여 건이 고작이었다. 그 넓은 창고에서 해당의원의 해당시기 명세서를 찾는 것도 어려웠지만, 그것을 복사하느라 손가락 밑에 가죽이 벗겨져 나가는 고통까지 감내해야 했다. 일주일 동안 옷도 갈아입지 못했다. 청소부 아줌마들에게 점심과 뇌물(?)을 주고 도움을 받기도 했지만 역부족이기는 마찬가지. 이후 2차례나 출장을 다니면서 이런 작업을 반복했지만 성과는 미미했다.
일단 부산으로 철수한 이들 형사는 자포자기 상태에 빠졌다. 의원 5군데의 진료비 명세서만 1만여 건에 다다랐고, 이를 정리해 범죄일람표를 만들 자신이 없었다.
그러나 하늘은 스스로 돕는 자를 돕는다고 했던가. 보험재정 파탄이 연일 사회문제로 등장하면서 지난 3월 경찰과 검찰에 의약비리 척결을 위한 특별단속계획이 하달되고, 사회적 관심이 쏠리면서 이들의 출장을 안타까워한 심평원이 모든 자료를 원본 그대로 대여해 주는 파격적인 결정을 내린 것. 또 전산작업이 되어 있는 부분은 이를 모두 정리해 주는 성의를 보였다. 이때부터 수사에 탄력이 붙었다. 모두 4만여 건에 이르는 진료비와 약제비 허위청구 사례를 모두 건별로 범죄일람표를 작성하는 데 성공했다.
결국 지난 4월3일 검찰의 수사지휘를 받아 한 달 동안 사건을 재정리한 이들은 5월18일 21명을 형사입건하고, 이 중 죄질이 나쁜 1명을 구속하는 데 성공했다. 4명의 의사에게 구속영장을 신청했지만 재판부의 판단은 ‘의사들이 도주의 우려가 없어 구속의 필요가 없다’는 것이었다. 섭섭한 마음도 있었지만 그들은 검찰과 함께 계속 보강수사를 진행하고 있다.
‘투캅스’는 이제 강력사건전문 형사 에서 의료전문 형사로 변신해 있다. “아마 다음에 걸리는 의사는 정말 재수없을 것”이라고 크게 웃는 그들에게서 형사 특유의 승부욕을 느낄 수 있다. 집념의 ‘투캅스’는 자신들이 이번에 밝힌 의료 비리가 “빙산의 일각’일 뿐이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