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서울 명동 상가에 시민들과 관광객들이 쇼핑을 하고 있다. 뉴스1
최근 서울 중구 명동의 한 화장품 매장. 종업원들이 영어, 중국어, 일본어를 유창하게 구사하며 외국인 손님을 맞고 있었다. 매장 안에는 국내 유명 화장품 브랜드 제품들이 진열돼 있었다.
“모든 제품이 정품이며, 정가보다 30~70% 저렴하다”는 안내문도 붙어 있었다. 매대에 있는 선크림 2개를 묶어 판매하는 기획세트를 기자가 살펴보니 올리브영 판매가 2만7900원인 상품을 1만8900원에 팔고 있었다. 직원에게 이유를 묻자 “세일 중이라서 그렇다”는 답이 돌아왔다. 그러나 이 제품 뒤편에는 “군 마트용 제품은 재판매 행위를 금하며, 위반 시 제재를 받을 수 있습니다”라는 문구가 또렷하게 쓰여 있었다. 옆에 있는 다른 제품에도 군 마트용임을 알리는 문구가 보였다.
“군 마트용 제품 재판매 행위 금지” 문구 선명

기자가 서울 명동의 한 화장품 가게에서 구입한 화장품 포장 상자에 군 매점용 제품임을 알리는 문구가 선명하다. 김윤정 인턴기자
4월 들어 기자가 찾은 명동과 남대문 시장에선 외국인 관광객을 겨냥한 꼼수 판매 정황이 여럿 확인됐다. 남대문 시장의 한 화장품 매장에는 ‘70% 할인 중’이라는 문구가 안팎에 부착돼 있었다. 이곳에서 판매 중인 보습 크림 가격은 1만5000원이었다. 해당 업체의 공식 홈페이지 판매가인 3만5000원의 절반에도 못 미치는 가격이다. “이 제품이 정품 맞느냐”고 묻자 종업원은 “여기서 20년 넘게 장사했다. 단골도 많으니 믿고 사도 된다”고 말했다.
그런데 기자가 이 매장에서 제품을 구매한 뒤 자세히 살펴보니 이른바 ‘상자갈이’(진짜 제품 상자에 가짜 혹은 다른 제품을 담는 행위)로 의심되는 흔적이 보였다. 외관은 진품과 다를 바 없었지만 단상자(개별 포장용 박스)에 붙여진 “사용 후 교환 및 반품이 어려울 수 있습니다”라고 적힌 스티커가 이미 뜯어져 있었다. 단상자 겉면에 표기된 사용기한(2027년 11월 19일)과 상자 안 제품 용기에 표기된 사용기한(2027년 1월 10일)이 서로 다른 점도 눈에 띄었다. 이 제품은 올해 1월 가품 유통으로 논란이 된 적이 있다. 제조사가 진품과 가품을 구분하는 방법을 소비자에게 알리며 주의를 당부했을 정도다.
해당 제품을 판매한 매장 측은 “외국인 손님들이 제품을 확인하느라 상자를 뜯는 경우가 종종 있다”며 “상자를 임의로 교체한 것은 아니다”라고 상자갈이 의혹을 부인했다. 그러면서 상자 겉면과 그 안에 들어있는 제품에 표기된 사용기한이 서로 다른 사실에 대해서는 “이상하다. 누군가 장난친 것 같다”며 얼버무리는 듯한 반응을 보였다. 소비자가 단상자에 기재된 정보만 믿고 제품을 구매했다면, 사용기한이 7개월밖에 남지 않은 제품을 14개월 남은 것으로 오인한 채 쓰게 되는 셈이다.
제조사 “판매처에서 재포장한 것으로 의심”

서울 남대문 시장의 한 화장품 매장에서 구입한 화장품 포장 박스 겉면에 표기된 사용기한(왼쪽 노란색 표시 안)과 제품 용기에 적힌 사용기한(오른쪽 노란색 표시 안)이 다르게 표기돼 있다. 김윤정 인턴기자
문제는 꼼수 판매로 소비자가 피해를 입었을 때 구제받기가 어렵다는 점이다. ‘할인 판매’를 내세우는 상당수 매장은 소비자에게 “교환, 환불이 불가능하다”는 조건을 내세우는 때가 많다. 게다가 제품을 직접 판매한 매장의 꼼수 판매로 피해를 볼 경우 그 책임을 제조사에 물을 수도 없다. 해당 제품 제조사 측도 “제품 자체의 결함이 아니라 판매처의 기만으로 발생한 소비자 피해에 대해서는 제조사 차원의 구제가 사실상 불가능하다”며 “공식 판매처를 통해 제품을 구매하라고 권장하는 이유”라고 설명했다.
명동의 또 다른 화장품 매장에서는 정가 2만8000원인 세럼을 1만9000원에 팔고 있었다. 사용기한은 2026년 10월 19일로 6개월 정도 남았지만, 매장 직원은 결제 순간까지 이 사실을 안내하지 않았다. 기자가 “이 제품 사용기한이 언제까지냐”고 묻자 그제야 직원은 “10월까지긴 한데 그전엔 충분히 다 쓴다”고 답했다. 그런데 이 제품 단상자에는 ‘개봉 후 사용기간’이 12개월임을 알리는 ‘12M’ 마크가 붙어 있었다. 화장품법 시행 규칙에 따르면 개봉 후 사용기간은 ‘개봉한 날부터 품질 변화 없이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는 기간’을 뜻한다. ‘화장품이 제조된 날로부터 적절한 보관 상태에서 품질이 유지될 수 있는 최종 기한’을 뜻하는 ‘사용기한’과는 다른 개념이다.
‘12M’이라고 적힌 제품은 개봉한 순간부터 12개월간 안전하게 사용할 수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실제 제품 사용기한이 6개월 남았다면 개봉 후 사용기간은 12개월이 채 되지 않는 셈이다. 한국어를 모르는 외국인 관광객이 단상자에 적힌 ‘12M’이라는 숫자를 보고 아직 1년이나 더 사용해도 되는 것으로 오해할 소지가 있는 것이다.
대다수 외국인 관광객은 이런 문제를 인지하지 못하고 제품을 구매하는 실정이었다. 현장에서 만난 이탈리아인 지네브라 씨(24)는 기자가 사용기한과 관련된 문제를 설명하자 “틱톡에서 이 매장이 올리브영보다 싸다고 해서 왔는데, 어떤 관광객도 이런 사실을 모를 것”이라며 당황한 기색을 보였다. 그는 “한국 화장품은 워낙 유명해서 검증됐다고 생각했다”며 “남자친구 어머니가 이탈리아에서 스킨케어샵을 운영하는데, 귀국해서 쓸 제품까지 수천 유로(수백만 원)어치 사가겠다는 것을 말려야겠다”고 말했다. 지네브라 씨는 방금 산 제품의 사용기한과 사용기간을 일일이 확인하느라 한참 동안 자리를 떠나지 못했다.
일본에서 온 또 다른 관광객도 “다른 외국인도 많길래 의심하지 않고 엄마와 여자친구 선물을 잔뜩 사갔는데, 일본에 돌아가서 보니 대부분 사용기한이 1년도 남지 않은 제품이었다”며 “교환, 환불도 할 수 없어 솔직히 정말 기분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