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관악산 아래 고즈넉한 명당터에 자리한 온온사. 안영배 제공
경기도 유형문화재로 지정된 온온사는 조선 정조와도 인연이 깊다. 정조는 아버지 사도세자가 영면한 수원 현륭원을 참배할 때면 한강을 건넌 뒤 남태령 고개를 지나 온온사에서 하룻밤을 쉬어가곤 했다. 경치 좋고 편안한 이곳에 ‘평온한 집’이라는 의미를 담아 온온사(穩穩舍)라는 친필 현판을 하사하기도 했다.
사도세자 역시 온천욕을 하러 충남 온양으로 갈 때 이곳에 들러 머물렀다는 기록이 있다. 정조가 과천을 지날 때마다 아버지를 만난 백성들을 수소문해 아버지에 대한 일화를 수집했다는 이야기도 전해진다. 정조가 온온사에서 아버지의 흔적을 되짚으며 위로와 평안을 얻었을 수도 있다.
역사가 증명하는 명당터
온온사는 풍수적으로도 명당터에 해당한다. 사실 풍수에 대한 구체적인 지식이 없어도 명당을 알아채는 방법이 있다. 먼저 오래된 취락지인지 보는 것이다. 역사가 오랜 마을 혹은 고을은 사람이 살기에 편한 조건을 두루 갖춘 명당터라고 보면 거의 틀리지 않는다. 또 왕조시대에는 고을에서 가장 핵심 명당에 관아를 뒀다. 관아 터의 중심은 객사가 차지하곤 했다. 객사는 숙소인 동시에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신 곳으로, 고을 수령이 매달 초하루와 보름에 전패를 향해 배례를 올리는 성소 구실을 했기 때문이다. 그러니 조선시대 관악산 동쪽 자락의 중심 삶터였던 과천현에서 가장 중심에 자리한 관아 터 내 객사인 온온사는 역사가 증명하는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아쉽게도 현 온온사가 원형 그대로 보존된 건물은 아니다. 기존 온온사는 일제강점기에 과천면 청사로 사용되다가 1932년 헐렸다. 이후 원형이 바뀐 채 면사무소 건물로 쓰이다가 1986년 12월 복원됐다고 한다. 건물뿐 아니라 현 온온사 위치도 원래 자리가 아니다. 원래 터는 현 온온사 정면에서 직선으로 40m 거리에 있는 ‘과천시 건강가정지원센터’ 자리라고 전해진다.
보통 풍수에서는 원래 터에서 벗어난 곳에 새로 지은 건물을 귀하게 여기지 않는다. 지기(地氣)를 제대로 받지 못한다고 보기 때문이다. 그러나 온온사는 현재 터의 지기가 원래 터와 연결돼 같은 기운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쉽게 말해 과거 선조들이 온온사에서 느꼈던 감흥이나 현대인이 현 건물에서 느끼는 감흥이 크게 다르지 않다는 뜻이다.
온온사에는 넓은 잔디밭이 펼쳐져 있고 주변 경치도 아름다워 지역 주민들이 나들이 장소로 즐겨 찾는다. 필자가 방문했을 때도 한 마을 주민이 온온사 마루에 손주와 앉아 도란도란 이야기를 나누고 있었다. 절로 마음이 편안해지는 풍경이다.
이처럼 고즈넉한 온온사에서 즐길 수 있는 것이 또 있다. 곳곳에 심긴 나무들이다. 일단 온온사 입구에 들어서자마자 큰 은행나무가 눈에 띈다. 1982년 보호수로 지정된 수령 600여 년의 고목이다. 일설에는 조선 태조 이성계의 왕사(王師)였던 무학대사의 수제자가 과천 관아 터를 점지한 뒤 이를 기념하려고 은행나무를 심었다고 한다. 정조 등 역대 왕을 비롯해 숱한 역사적 인물들의 사연이 깃든 나무인 셈이다. 풍수적으로 수령이 몇백 년에 이르는 나무는 일단 명당터의 기운을 받고 있다고 보면 틀림없다. 명당이 아닌 터에서는 나무가 오랫동안 생명을 유지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수령 600년이 넘은 온온사 은행나무. 무학대사의 수제자가 심었다는 이야기가 전해진다. 안영배 제공
체질에 맞는 나무와 교감하기
이런 장소에서는 나무와 교감하는 것만으로도 건강에 도움이 된다. 나무와 교감하려면 먼저 나무를 잘 이해해야 한다. 나무는 생리 구조가 사람과 정반대다. 사람의 가장 중요한 부위인 머리는 하늘을 향하지만, 나무의 중심이 되는 뿌리는 땅속을 향한다. 사람의 팔과 다리는 아래를 향하는 반면, 나뭇가지는 위로 뻗어나간다. 사람은 산소를 들이마시고 이산화탄소를 배출하지만, 식물은 낮에는 광합성 작용을 통해 이산화탄소를 흡수하고 산소를 내뿜는다. 이처럼 사람과 나무는 정반대이기 때문에 서로 교류하면 음양의 조화를 이룰 수 있다.종종 건강에 도움을 받으려고 나무에 등을 기댄 채 탁탁 치거나 무작정 나무를 껴안고 쓰다듬는 이들이 있다. 나무의 기운을 온몸으로 받고 교류하려는 의도일 테지만, 실상은 나무를 괴롭히는 행위다. 나무를 생명체로 바라보자. 모르는 인간이 와서 함부로 자신의 몸(나무)을 두드리거나 껴안는 것에 좋게 반응할 수는 없을 테다. 나무는 당황스럽고 불쾌한 감정을 밖으로 드러낸다. 나무를 등으로 치다가 피부가 따끔거리고 찌릿한 느낌을 받은 뒤 “기가 통했다”며 좋아하는 이들이 있는데, 실은 나무가 뱉어내는 탁한 기운을 접한 것이다.
명상 수련서인 ‘5계절 5체질 생명 법칙’에는 나무와 잘 교류하는 방법이 소개돼 있다. 이에 따르면 나무와 건강한 에너지를 교류하는 방법은 이렇다. 먼저 나무와 약 30cm 떨어져 등을 진 채 앉거나 긴장을 푼 자세로 선다. 이때 마음속으로 “나무와 내가 서로 사랑의 에너지를 주고받아 내 몸과 마음과 존재가 온전히 충만해졌음에 감사합니다”라고 말한 뒤 나무와 교감한다. 이렇게 하면 사람과 나무 사이에 에너지가 교류하는 생명 현상을 체험할 수 있다고 한다. 고대 수행자들은 잠재 능력을 깨우거나 깊은 명상에 들고자 이런 방법을 즐겨 사용했다.
온온사에는 은행나무 외에도 느티나무, 벚나무, 향나무, 호두나무, 회양목, 소나무, 대나무 등 다양한 나무가 자라고 있다. 각 나무마다 명찰이 달려 있어 쉽게 구분할 수 있다. 이때 나무는 품종에 따라 목(木)·화(火)·토(土)·금(金)·수(水) 오행 중 특정 에너지가 발달돼 있다는 점도 기억해두면 좋다.
나무에 오행을 배치한 기록은 조선 후기 실학자 홍만선(洪萬選·1643~1715)이 지은 ‘산림경제(山林經濟)’에서 찾아볼 수 있다. “동쪽(목 기운 터)에는 복숭아나무와 버드나무를 심고, 남쪽(화 기운 터)에는 매화와 대추나무를 심으며, 서쪽(금 기운 터)에는 치자나무와 느릅나무를 심고, 북쪽(수 기운 터)에는 능금나무와 살구나무를 심는다”라는 구절이다. 저자는 동서남북 각 방위의 기운에 어울리는 목·금·화·수의 특정 조경수를 거론하고 있다.
만일 특정 방위에 결함이 있을 경우 그 방위에 맞는 나무를 심으면 비보(裨補)가 갖춰져 집터의 좋은 기운을 북돋워준다고도 했다. 예를 들어 복숭아나무나 버드나무는 동쪽에 해당하는 목(木) 기운이 강하므로 동쪽이 허(虛)할 경우 이들 나무를 심으면 부족한 기를 채울 수 있다는 식이다.

다양한 나무가 어우러져 자라는 온온사 풍경. 나무마다 명찰이 달려 있어 수종을 확인할 수 있다. 안영배 제공
이를테면 봄체질(입춘(2월 4일쯤)~입하(5월 5일쯤) 사이에 태어난 사람)은 봄 기운인 목 성질을 가진 벽오동나무와 잘 교감할 수 있다. 가을체질(입추(8월 8일쯤)~입동(11월 8일쯤)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 가을 기운인 금 성질을 가진 향나무, 자작나무와 잘 어울린다. 겨울체질(입동(11월 8일쯤)~입춘(2월 4일쯤) 사이에 태어난 사람)에는 겨울 기운인 수 성질을 가진 등나무나 수양버들이 적합하다.
여름체질(입하(5월 5일쯤)~하지(6월 20일쯤) 사이에 태어난 사람)의 경우는 여름 기운인 화 성질을 지닌 은행나무와 체질적으로 잘 어울린다. 은행나무는 나무 속성이 화(火)지만, 약의 원료로 쓰이는 노란 은행나뭇잎은 토(土) 기운을 갖고 있어 늦여름체질(하지(6월 20일쯤)~입추(8월 8일쯤) 사이에 태어난 사람)에게도 맞는다.
‘수령 360년’ 넘는 나무는 모두와 조화 가능
한편 온온사 은행나무처럼 60갑자(60년)가 6번 지난 세월, 즉 360년 넘는 수령의 나무들은 이미 오행 기운을 골고루 체험하면서 초월적 차원에 도달했기 때문에 굳이 체질 구분을 할 필요 없이 모든 이와 조화를 이룰 수 있다고 한다. 이는 한의학에서 음양 기운이 조화돼 어느 한쪽으로 치우치지 않은 이상적 체질을 뜻하는 ‘음양화평지인’과 같은 의미다. 따라서 나무의 오행 성질이나 자기 체질을 잘 모른다면 수령이 360년 이상 되는 나무를 선택해 교감하면 된다.아담한 경내에 여러 수종의 나무가 자라는 온온사는 명당터에서 나무들과 교감하며 휴식을 즐길 수 있는 명소다. 자신이 살고 있는 주변을 잘 살펴보면 온온사처럼 역사적 공간이면서 건강에 도움을 줄 만한 곳이 적잖을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