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바나는 ‘사회를 바꾸는 나’의 약칭인 동아일보 출판국 컨버전스 뉴스랩으로, 대학생들의 기고도 싣습니다. <편집자 주>
코로나19가 대학생 알바(아르바이트) 일자리의 씨를 말리고 있다. 경희대생 최연평 씨(21·여·호텔경영학과 2학년)는 작년 6월부터 서울 명동 신세계백화점 면세점에서 알바 일을 해왔다. 올해 2월 코로나 탓에 고객 발길이 뜸해지자 면세점은 단축 영업에 들어갔다. 얼마 후 알바생 2명에게 해고 통지가 왔다.
최 씨는 “월 100만 원 정도의 안정적인 수입 중 60만 원을 생활비로 쓰고도 여유가 있어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을 사드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머니에게 돈을 타 쓰려니 민망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마저 코로나 탓에 무급휴직 상태가 되니 최 씨 마음이 급해졌다.
최 씨가 3월 한 달간 알바 모집 공고를 보고 연락한 곳은 10여 곳. 그중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3곳뿐이었고 그나마 모두 떨어졌다. 심한 곳은 경쟁률이 종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아졌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매장에서 알바생 1명을 모집한다는 것을 보고 연락했더니 무려 250명이 면접을 봤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수십 명이 면접을 보는 곳인데 코로나로 알바 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 최 씨는 거듭된 탈락에 낙심했지만 알바 모집 정보를 놓칠까봐 인터넷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 연세대생 박은평 씨(21·여·글로벌인재대학 2학년)는 그동안 장학금과 알바로 모은 돈으로 부모님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생활해왔지만 코로나 탓에 어려움이 크다. 박 씨는 작년 7월부터 일했던 서울 중구의 식당에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3월 해고됐다. 박 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직원이고 나 혼자만 알바생이어서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월 초에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저녁 시간에는 40개 정도의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식당인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5,6 테이블만 손님이 들었기 때문에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득이 끊긴 박 씨에게는 월세, 전기료, 전화료, 교통비 등 생활비 부담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처지가 됐다. 박 씨는 “다행히 과거에 알바를 했던 서울 마포의 가게에서 주말 일자리를 구해 월 4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버티는 중”이라며 “식사를 대충 때우다보니 요즘 같으면 멋진 외식을 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가 돼버렸다”고 털어놓았다.
4월 중순 구인구직사이트 ‘알바몬’에 올라온 전국 알바 일자리는 1월 중순에 비해 28%가 감소했다고 하지만 알바 현장에서는 절반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서는 비정규직, 서비스직, 월급 150만 원 미만의 노동자의 3분의 2가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변했다.
“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끼면 오히려 환자 취급을 했고 동양인은 더 쉽게 눈에 띄어 차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충격 속에 오래 준비해온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했다. 그동안 이것을 위해 노력했던 장면이 떠올라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을 겪고는 안전한 귀국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3월 중순 무사히 귀국한 L 씨는 자가격리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담담히 말하지만 ‘교환’ ‘프랑스’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찡하고 아쉽다.
연세대생 김혜리 씨(22·여·글로벌인재대학 3학년)도 아슬아슬한 상황을 경험했다. 1월초 스페인으로 떠날 때는 자격시험과 비자면접, 각종 서류작성 등 6개월에 걸친 힘들었던 준비도 멋진 추억으로만 여겨졌다. 현지 미술관에서 그림도 그려보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나날이 오래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꿈이 깨지는 데는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 ‘2주간 휴교’라는 학교 측 e메일을 받았는데 3일 후에 ‘코로나가 너무 심각하니 당장이라도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e메일이 왔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 교수가 ‘마스크는 아픈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말해 놀라기도 했지만 저녁 10시가 되면 주민들이 베란다에 나와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한참동안 박수를 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렵사리 예약한 귀국 비행기 편이 취소되는 바람에 애를 먹다가 대체 항공편 표를 구해 귀국할 수 있었다. 결국 교환 프로그램은 망가졌고 학교의 수강신청이 끝나고 빈자리가 없어 수강하기까지 또 다른 고생을 해야 했다. 김 씨는 “스페인 대학 풍경이 아른거리고 아쉬워 자료를 찾아보니 한 학기에 약 2만 명 이상, 연간 4만 3,000여 명이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간다고 한다”면서 “올해 교환 프로그램을 망친 전국의 학생들이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대학의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외국 대학생의 꿈도 코로나에 휘청거린다. 중국 샤먼대학의 박지흔 씨(21·여)는 9월에 교환학생으로 중앙대에서 강의를 들을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4월 중순 중앙대로부터 ‘교환 프로그램이 취소 또는 연기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기운이 쭉 빠졌다. SNS 위챗을 통해 연락한 박 씨는 “한국 대학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을 꿈꿔왔는데 연기라면 몰라도 취소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면서 “그동안 서류와 면접 준비가 헛수고로 끝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가 안정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국경을 넘나들기는 여전히 어렵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개강 전에 해외에 나가 있다가 발이 묶여 있다. 연세대생 이찬형 씨(21·글로벌인재대학 2학년)는 가족이 있는 요르단에서 겨울방학을 지내고 개강 직전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항공권을 며칠 연기했더니 요르단이 3월 중순 국경을 닫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 움직일 수가 없게 돼버렸다.
이 씨는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캠퍼스 생활도 맛보지 못한 채 지구 저편에서 한국 시간에 맞추느라 새벽 3,4시에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면서 “동기들과 만나 짜장면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다”고 하소연하기 일쑤다. 그는 1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여건이 좋아지면 2학기에나 캠퍼스를 밟게 될 것 같다.
중국 샤먼대 마케팅학과 2학년 박현경 씨(21·여)와 중국 지린대 법학과 2학년 송연림 씨(21·여)는 거꾸로 한국에 나왔다가 발이 묶인 경우다. 두 학생은 한국에 거주 중인 부모님과 함께 설을 쇠러 한국에 나왔고 새 학기에 맞춰 귀국할 계획이었으나 항공권이 취소되는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지금껏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서 중국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중이다.
박 씨는 “중국에 돌아가지 못한 친구가 10명은 되는 것 같다”면서 “빨리 귀국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 씨도 “현재 중국과 한국 간 항공편이 항공사별로 주1편뿐인데 겨우 표를 구했지만 얼마 후 취소되고 말았다”면서 “코로나에 감염을 피하는 것 외에도 코로나가 끼치는 여러 충격을 잘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
[GettyImages]
최 씨는 “월 100만 원 정도의 안정적인 수입 중 60만 원을 생활비로 쓰고도 여유가 있어 부모님에게 필요한 것을 사드리기도 했는데 이제는 어머니에게 돈을 타 쓰려니 민망하기만 하다”고 말했다. 어머니마저 코로나 탓에 무급휴직 상태가 되니 최 씨 마음이 급해졌다.
최 씨가 3월 한 달간 알바 모집 공고를 보고 연락한 곳은 10여 곳. 그중 면접을 보러 오라는 곳은 3곳뿐이었고 그나마 모두 떨어졌다. 심한 곳은 경쟁률이 종전에 비해 10배 가까이 높아졌다. 신세계백화점의 한 매장에서 알바생 1명을 모집한다는 것을 보고 연락했더니 무려 250명이 면접을 봤다고 했다. 평소 같으면 수십 명이 면접을 보는 곳인데 코로나로 알바 자리가 부족해지면서 사정이 더 나빠졌다. 최 씨는 거듭된 탈락에 낙심했지만 알바 모집 정보를 놓칠까봐 인터넷에서 눈을 떼지 못하고 있다.
중국에서 온 유학생인 연세대생 박은평 씨(21·여·글로벌인재대학 2학년)는 그동안 장학금과 알바로 모은 돈으로 부모님의 지원 없이 독립적으로 생활해왔지만 코로나 탓에 어려움이 크다. 박 씨는 작년 7월부터 일했던 서울 중구의 식당에서 코로나가 기승을 부리던 올해 3월 해고됐다. 박 씨는 “함께 일하는 사람들은 모두 직원이고 나 혼자만 알바생이어서 불안한 마음이었는데, 아니나 다를까 3월 초에 ‘그만 나오라’는 말을 들었다”고 당시 상황을 전했다. 그는 “저녁 시간에는 40개 정도의 테이블이 꽉 찰 정도로 장사가 잘 되던 식당인데 코로나가 심각해지면서 5,6 테이블만 손님이 들었기 때문에 여건이 좋지 않았다”고 말했다.
소득이 끊긴 박 씨에게는 월세, 전기료, 전화료, 교통비 등 생활비 부담이 갑자기 무겁게 느껴졌고 ‘숨만 쉬어도 돈이 나가는’ 처지가 됐다. 박 씨는 “다행히 과거에 알바를 했던 서울 마포의 가게에서 주말 일자리를 구해 월 40만 원 정도의 수입으로 버티는 중”이라며 “식사를 대충 때우다보니 요즘 같으면 멋진 외식을 해보는 게 소원일 정도가 돼버렸다”고 털어놓았다.
4월 중순 구인구직사이트 ‘알바몬’에 올라온 전국 알바 일자리는 1월 중순에 비해 28%가 감소했다고 하지만 알바 현장에서는 절반 이상이 줄어든 것으로 느껴진다고 한다. 한 시민단체의 조사에서는 비정규직, 서비스직, 월급 150만 원 미만의 노동자의 3분의 2가 소득이 감소했다고 답변했다.
교환 프로그램도 묶인 캠퍼스의 봄
코로나는 대학생들이 1년 이상 공들여 준비해온 해외 교환프로그램 참여의 길도 막아놓았다. 이화여대 3학년생 L 씨(23)는 1월 교환학생으로 프랑스 노르망디 지역의 대학으로 갔다. 양측의 대학에 지원해 통과되는 과정은 물론이고 주한프랑스대사관에서 비자를 발급받는 것도 까다로웠다. 프랑스의 대학 수업과 일상을 경험하려던 순간 코로나가 닥쳤다. 그리고 모든 일이 틀어져 버렸다. 코로나 확진자가 2,800명이 넘은 3월 12일, 프랑스 정부는 어린이집부터 대학교까지 무기한 휴교령을 내렸다. L씨는 며칠 뒤 전국의 상점을 제외한 모든 시설이 폐쇄되고 마트의 파스타면은 동이 나버리는 광경을 목격하고 공포에 떨어야 했다.“오가는 사람들 대부분이 마스크도 착용하지 않았다. 마스크를 끼면 오히려 환자 취급을 했고 동양인은 더 쉽게 눈에 띄어 차별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충격 속에 오래 준비해온 교환학생 프로그램을 포기해야 했다. 그동안 이것을 위해 노력했던 장면이 떠올라 허탈한 마음뿐이었다. 며칠 사이에 이런 일을 겪고는 안전한 귀국만이 최선이라고 생각했다.” 그는 이렇게 회상한다. 3월 중순 무사히 귀국한 L 씨는 자가격리를 거쳐 일상으로 돌아왔다. 지금은 담담히 말하지만 ‘교환’ ‘프랑스’ 소리만 들으면 마음이 찡하고 아쉽다.
연세대생 김혜리 씨(22·여·글로벌인재대학 3학년)도 아슬아슬한 상황을 경험했다. 1월초 스페인으로 떠날 때는 자격시험과 비자면접, 각종 서류작성 등 6개월에 걸친 힘들었던 준비도 멋진 추억으로만 여겨졌다. 현지 미술관에서 그림도 그려보고 학생들과 어울리는 나날이 오래 갈 줄 알았다. 하지만 꿈이 깨지는 데는 단 며칠 밖에 걸리지 않았다.
김 씨는 “당시 ‘2주간 휴교’라는 학교 측 e메일을 받았는데 3일 후에 ‘코로나가 너무 심각하니 당장이라도 자국으로 돌아가라’는 e메일이 왔다”고 긴박했던 상황을 전했다. 그는 “한 교수가 ‘마스크는 아픈 사람들이 쓰는 것’이라고 말해 놀라기도 했지만 저녁 10시가 되면 주민들이 베란다에 나와 코로나와 싸우는 의료진을 위해 한참동안 박수를 치는 장면을 보고 가슴이 뭉클하기도 했다”고 말했다.
김 씨는 어렵사리 예약한 귀국 비행기 편이 취소되는 바람에 애를 먹다가 대체 항공편 표를 구해 귀국할 수 있었다. 결국 교환 프로그램은 망가졌고 학교의 수강신청이 끝나고 빈자리가 없어 수강하기까지 또 다른 고생을 해야 했다. 김 씨는 “스페인 대학 풍경이 아른거리고 아쉬워 자료를 찾아보니 한 학기에 약 2만 명 이상, 연간 4만 3,000여 명이 교환학생으로 해외에 간다고 한다”면서 “올해 교환 프로그램을 망친 전국의 학생들이 모두 나와 같은 심정일 것”이라고 덧붙였다.
한국 대학의 교환 프로그램에 참여하려는 외국 대학생의 꿈도 코로나에 휘청거린다. 중국 샤먼대학의 박지흔 씨(21·여)는 9월에 교환학생으로 중앙대에서 강의를 들을 생각에 마음이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4월 중순 중앙대로부터 ‘교환 프로그램이 취소 또는 연기될 수 있다’는 연락을 받고 기운이 쭉 빠졌다. SNS 위챗을 통해 연락한 박 씨는 “한국 대학 생활을 경험해보는 것을 꿈꿔왔는데 연기라면 몰라도 취소된다면 너무 아쉬울 것 같다”면서 “그동안 서류와 면접 준비가 헛수고로 끝나게 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한국 등 일부 국가에서는 코로나가 안정세를 보이기도 하지만 국경을 넘나들기는 여전히 어렵다. 적지 않은 대학생들이 개강 전에 해외에 나가 있다가 발이 묶여 있다. 연세대생 이찬형 씨(21·글로벌인재대학 2학년)는 가족이 있는 요르단에서 겨울방학을 지내고 개강 직전 한국으로 돌아올 계획이었다. 그러다 한국의 코로나 확진자 수가 크게 늘어나는 바람에 항공권을 며칠 연기했더니 요르단이 3월 중순 국경을 닫는 강력한 조치를 취해 움직일 수가 없게 돼버렸다.
이 씨는 카카오톡 등 SNS를 통해 “캠퍼스 생활도 맛보지 못한 채 지구 저편에서 한국 시간에 맞추느라 새벽 3,4시에 온라인 강의를 듣다가 잠이 들기도 한다”면서 “동기들과 만나 짜장면도 먹고 수다도 떨고 싶다”고 하소연하기 일쑤다. 그는 1학기 내내 온라인 강의를 듣고 여건이 좋아지면 2학기에나 캠퍼스를 밟게 될 것 같다.
중국 샤먼대 마케팅학과 2학년 박현경 씨(21·여)와 중국 지린대 법학과 2학년 송연림 씨(21·여)는 거꾸로 한국에 나왔다가 발이 묶인 경우다. 두 학생은 한국에 거주 중인 부모님과 함께 설을 쇠러 한국에 나왔고 새 학기에 맞춰 귀국할 계획이었으나 항공권이 취소되는 상황을 여러 차례 겪었다. 지금껏 오도 가도 못하고 집에서 중국 대학의 온라인 강의를 들으며 공부하는 중이다.
박 씨는 “중국에 돌아가지 못한 친구가 10명은 되는 것 같다”면서 “빨리 귀국해 안정된 생활을 하고 싶다”고 말했다. 송 씨도 “현재 중국과 한국 간 항공편이 항공사별로 주1편뿐인데 겨우 표를 구했지만 얼마 후 취소되고 말았다”면서 “코로나에 감염을 피하는 것 외에도 코로나가 끼치는 여러 충격을 잘 피하는 것도 매우 중요해졌다는 것을 알았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