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동차 화학 등 굴뚝 산업은 공급망 변화 피할 수 없어, 중국 비중 작아지고 인도 중요도 커져
경제 민족주의는 국내 산업 고도화의 기회, 바이오와 통신 소프트웨어 중점 육성할 필요
부산 콘테이너 부두. [뉴스1]
지속 기간과 확산 범위, 강도에 따라 달라지겠지만 확실한 것은 코로나19가 글로벌 공급망 및 생산거점의 재편을 촉진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보인다는 점이다. 코로나19로 일부 국가의 생산과 교역 지연, 혹은 중단이 글로벌 가치사슬(Global Value Chain)을 통해 전 세계로 파급, 전이되면서 1990년대 이후 확장된 글로벌 네트워크의 위험성이 얼마나 높은지 확인했기 때문이다. 정치·군사적 위험은 완화됐지만 생물학적 위험, 국지적 대응 역량과 불확실성을 새롭게 고려하게 됐다.
글로벌 공급망 변화 가속화 계기
코로나19 사태에도 글로벌 공급망에서 비롯되는 국내 주요 산업의 생산 차질은 아직까지 심각하지 않은 편이다. 주요 조달원인 중국, 일본 등으로부터 수입은 부분적인 통관 및 물류 차질 외에는 원활한 편이고, 지난해 일본의 수출규제 이후 국내 업체들이 수입산 재고 수준을 다소 높여놓았기 때문이다. 자동차, 기계, 화학 산업은 국내 조달 비중이 비교적 크고 조선, 통신기기, 가전은 글로벌 조달 네트워크가 잘 구축돼 있어 리스크 분산이 용이하기도 했다. 좀 더 주요한 요인은 대내외 수요가 크게 위축되자 가동률을 조정함으로써 재고 부족이 현실화하지 않았다는 점이다. 그러나 국경이동 제한, 사회적 거리두기가 지속된다면 수입 의존도가 높은 핵심 부품, 소재, 장비의 조달 차질에 따른 영향이 불가피할 것이다.제조업에서 당장 나타나는 변화는 산업 활동 위축이다. 주력 산업인 자동차, 조선, 기계, 화학, 섬유, 디스플레이 등은 전반적으로 생산 및 수출이 크게 위축되고 있다. 반면 바이오와 진단기기가 급부상하고, 비대면 사업 혹은 가전, 통신기기, 반도체 등 위험지역에서 국내 제품으로 대체될 가능성이 높은 산업이 상대적으로 양호할 것으로 예상된다. 감염병 확산이라는 이슈가 산업별로 다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좀 더 근본적인 변화는 확장된 글로벌 네트워크의 불안전성과 불확실성을 회피하기 위해 코로나19 사태가 끝난 후에도 글로벌 공급망이 빠르게 변화할 것이라는 점이다. 기존에는 글로벌 공급망 구축 및 생산거점 배치에서 시장 접근과 비용 절감이 주요 결정 요인이었으나, 감염병에 의한 생물학적 위험과 이동 제약 가능성이 새로운 요인으로 등장했다.
코로나19는 중국 등 특정국에 집중된 글로벌 공급망을 다변화해야 한다는 인식을 높였으며, 이에 따라 한국, 베트남, 말레이시아, 인도네시아, 태국 등 신남방지역이 글로벌 가치사슬 재편에서 새로운 프런티어로 부상하고 있다. 글로벌 기업뿐 아니라 이를 활용해 자국 내 조달 및 생산기반을 확장하려는 주요국의 산업정책도 강화되고 있다. 전략 부문과 핵심 산업의 공급망 자립화, 생산기반의 리쇼어링, 디지털 전환과 산업지능화 등을 촉진하는 계기로 작용할 것이다.
국내 생산기반 보존 시급
코로나19 사태로 재무 상황이 취약해진 기업들의 경영 악화와 휴폐업 방지를 위한 대출 연장, 세금 감면, 납부 유예 및 고용 유지, 기업 지원금 지급 등 다각적인 대책이 계속 발표되고 있다. 이러한 지원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바로 시기다. 일단 기업들이 해고와 폐업을 하면 국내 생산기반이 무너지고, 다시 복원하는 데 많은 자원과 시간이 소요되기 때문이다. 이 경우 코로나19 사태 진정 국면에서 예상되는 국내외 수요 증가에 대응하기 어렵다.아울러 국내 기업들의 최소 생산 활동을 유지하기 위한 내수를 적극적으로 창출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에 따른 큰 애로는 매출 감소이므로 자동차, 가전 같은 소비재뿐 아니라 선박, 기계 등 자본재와 관련해서도 내수 확대책을 모색해야 한다. 현재 정부 차원에서 뉴딜정책이 추진되고 있지만 노후 LNG(액화천연가스) 운반선의 교체, 친환경 선박 지원금을 확대한다면 노후 선박의 조기 폐선 및 신조 물량을 확대할 수 있다. 또한 환경과 안전시설에 대한 파격적인 지원을 통해 기계산업의 가동률을 높이는 실질적인 조치도 필요하다.
신속한 통관 및 해외 마케팅 지원을 통한 글로벌 이동성의 복원과 수출 차질 최소화를 위한 지원은 계속되고 있다. 적극적으로 수입 소재부품 등의 조달, 원활한 수출을 위한 통관 지원이 이뤄지고 있지만, 나아가 국내 기업의 해외 생산거점 및 주요 수출지역 국가에 대한 정부 간 협력 강화가 긴요하다. 출입국 제한 조치 하에서 비즈니스 목적 인력의 원활한 이동 지원, KOTRA 무역관, 현지 전문가를 활용한 비대면 상담과 계약 지원, 대체 수출선 발굴 지원 및 신남방 FTA(자유무역협정) 협상에서 무관세화 조기 추진 등이다. 온라인 판매(체험) 플랫폼 구축을 통한 해외 마케팅 지원도 이에 해당한다.
중장기적 관점에서는 포스트코로나 시대의 성장 산업과 유망 기술을 적극적으로 발굴하고 적기에 육성해야 한다. 코로나19 사태를 겪으며 수요 창출 혹은 확대 가능성을 보인 산업에 대해서는 성장 기회를 선점해야 한다. 무엇보다 온라인 기반의 비즈니스 인프라 확충이 중요하며, 비대면 산업과 원격 헬스케어 부문의 기반 확대도 필요하다. 감염병 뿐 아니라 고령화, 만성질환에 대응하는 바이오헬스 분야의 의료 장비와 서비스도 있다. 다음으로 항바이러스 및 건강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면서 수요가 늘어날 바이오 메디컬 섬유, 의료용 소재, 공기 정화, 건강 가전 등 헬스케어 관련 제품의 국내 공급 역량을 강화해야 한다. 여기에 재택근무 확대, 생활방식 변화로 스마트 가전, 가정대용식(Home Meal Replacement) 등 경험 소비에 의해 시장이 확대된 품목들도 있다.
비대면 비즈니스 가속화될 것
울산석유화학공단. [뉴스1]
다음으로 스마트 제조 전환과 국내 산업 생태계의 고도화가 필요하다. 국내 생산기반 확충으로 공급망의 글로벌화에서 오는 위험성을 낮추려면 제조 전문기업의 육성과 제조공장의 국내 유턴을 지원하는 인프라가 확충돼야 한다. 핵심 부품과 기자재의 해외 의존도를 낮추기 위한 라이선스 생산, 생산공장 유치 또는 조인트 벤처가 활성화될 필요가 있다.
나아가 산업지능화와 연계되는 새로운 제조업으로 전환을 가속화해야 한다. 이를 위해 2019년 6월 정부가 발표한 제조업 르네상스 전략의 추진력을 강화해야 하며, 국내 산업 생태계의 강건성과 복원성을 높여야 한다. 또한 산업지능화에 대한 투자를 활성화하고 인적 자본을 확충해야 한다. 이를 위해 노사 협력 여건을 조성하고, 디지털 교육을 확대하며, 산업지능화와 연계된 5G 통신설비, 로봇, 3D 프린터, 웨어러블 디스플레이, 2차전지, 센서, 시스템 반도체 등의 국내 공급 역량도 확보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