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5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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잦은 설사, ‘글루텐’ 탓 마세요

미 맥도날드사 감자튀김에 함유설 ‘시끌’ … 국내엔 거의 없는 ‘지방변증’ 환자에게만 악영향

  • 조비룡/ 서울대 의대 가정의학교실 교수

    입력2006-03-08 16:59: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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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생님, 감자튀김이 원인이었나요?”

    평소 변비와 잦은 설사로 고생해온 L 씨의 갑작스런 질문이었다. 자초지종을 물어보니, 얼마 전 ‘맥도날드사의 감자튀김에 심각한 설사병을 유발할 수 있는 알레르기 물질이 들어 있다는 사실을 회사 측이 숨기고 있었다’는 외신보도를 보았다는 것이다.

    자신은 감자튀김을 일주일에 한두 번꼴로 먹은 것 같은데, 이것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의 원인일 수도 있지 않겠느냐는 것이었다. 술을 끊으라는 필자의 권고에 따라 한 달째 금주하는, 술을 너무도 좋아해 끊기가 쉽지 않은 L 씨에게 ‘맥도날드사의 감자튀김’은 좋은 ‘희생양’이 될 법했다. 하지만 불행히도(?) 그럴 가능성은 매우 희박하다.

    필자가 외신을 살펴보니, 맥도날드사가 자사의 감자튀김에 밀 성분과 우유 성분이 함유됐을 수 있다고 2월15일 발표한 것으로 돼 있다. 밀 성분과 유제품은 미국인에게는 알레르기를 일으킬 수 있는 대표적인 두 가지 물질이다. 이러한 발표는 미국 식품의약국이 알레르기 유발 가능성이 있는 식품에 대해 해당 사실을 밝히도록 한 조처에 따른 것이라고 하는데, 문제는 이전까지는 맥도날드사가 자사의 감자튀김은 ‘글루텐(gluten)’이 들어 있지 않은 안전한 식품이라고 홈페이지를 통해 소개해왔다는 점이다. ‘소송의 나라’인 만큼 미국에서는 이미 이와 관련한 몇 건의 소송이 제기되었고, 그 소식이 우리나라에까지 전해진 듯하다. 갑자기 전문용어들이 나와 어리둥절해하는 독자들을 위해 보충 설명을 하면 이렇다.

    美 지방변증 환자들 소송 제기



    잦은 설사, ‘글루텐’ 탓 마세요

    빵의 재료로 흔히 사용되는 글루텐.

    미국에는 ‘실리악병(celiac disease)’ 또는 ‘지방변증’이라는 특이한 병을 앓는 환자가 상당히 많다. 이 병은 주로 밀과 보리 등에 함유된 글루텐이란 단백질에 대한 알레르기로 발생한다. 지방변증은 대부분 유전에 의해 발병하는데, 어려서부터 이 병에 걸린 사람이 밀과 보리 등을 통해 글루텐을 섭취하면(주로 미국인의 주식인 빵의 섭취에 의해) 글루텐 알레르기가 생긴다. 그런데 이 글루텐은 섭취한 사람의 소장을 파괴하고, 그 결과 소장의 흡수력이 저하되어 잦은 설사를 일으킨다.

    이 같은 소화불량과 설사가 계속되면 영양분의 흡수가 이뤄지지 않으므로 음식을 섭취해도 몸무게는 계속 빠지게 되고, 급기야 영양 부족으로 사망에까지 이를 수 있다.

    그러나 다행히도 이 병의 주원인이 글루텐에 대한 알레르기인 것으로 밝혀졌기 때문에 병에 걸린 사람이라 할지라도 평생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만 먹으면 아무런 문제 없이 건강하게 살 수 있다.

    이 때문에 서양에서는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은 음식에 대한 일반인의 관심이 매우 높고, 이런 식품을 따로 취급하는 곳도 상당수에 이른다. 맥도날드사도 이러한 경향에 발맞춰 자사의 감자튀김에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아 지방변증 환자도 안전하게 먹을 수 있다고 알려온 것이다. 그런데 갑자기 밀 성분이 감자를 튀기는 식용유의 향을 내기 위해 사용돼왔다고 밝히니 몇몇 발 빠른 지방변증 환자들이 맥도날드사를 상대로 소송을 제기한 것이다. 맥도날드사로서는 졸지에 환자까지 배려한 음식을 만들어내는 좋은 회사에서 거짓말하는 나쁜 회사로 전락할 위기에 놓이게 된 셈이다.

    잦은 설사, ‘글루텐’ 탓 마세요

    한국인에게는 지방변증 유전인자가 거의 없어 밀가루로 만든 음식을 많이 섭취해도 건강에 별 문제가 없다.

    우리는 이 같은 사실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대처해야 할까. 우리나라에서도 맥도날드사의 감자튀김에 대한 문제 제기가 시작되고 있는 듯한데, 결론부터 말하면 글루텐으로 인한 문제는 남의 나라 일이므로 크게 걱정할 필요가 없다.

    이유는 다음과 같다. 첫째, 우리나라에서는 지방변증 환자를 거의 찾아볼 수 없기 때문이다. 글루텐이 들어 있지 않은 쌀이 주식이기도 하지만,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지방변증 유전인자 자체가 거의 없다. 따라서 우리는 글루텐을 섭취해도 아무런 문제가 생기지 않는다. 최근 아이들의 빵 소비가 크게 증가했는데도 문제가 되지 않는 이유는 바로 여기에 있다. 글루텐은 빵을 만드는 과정에서 이미 많이 사용돼왔다. 글루텐은 밀 속에 들어 있는 단백질 성분으로 그 끈적끈적한 조성을 이용하면 쫄깃쫄깃한 빵의 특성을 살릴 수 있기 때문이다.

    둘째, 앞의 글을 꼼꼼히 읽은 독자라면 이미 눈치 챘겠지만, 맥도날드사의 발표는 밀 성분을 사용했다는 사실을 밝힌 것이지 글루텐이 들어갔다고 한 것은 아니라는 점이다. 따라서 맥도날드사의 주장대로 밀은 사용했으되, 글루텐은 없을 수도 있다. 또한 밀 성분이 들어간 것은 감자를 튀기는 기름인데, 설사 여기에 글루텐이 있었다손 치더라도 감자를 튀기는 정도의 고온에서는 대부분 파괴되기 때문에 알레르기를 유발할 가능성은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실제로 미국 지방변증학회에서도 맥도날드사의 감자튀김이 지방변증을 유발할 가능성은 매우 낮을 것으로 추정된다고 발표했다. 다만 아직 명확히 밝혀진 사실이 아니므로 지금까지 감자튀김을 한 번도 먹은 적이 없는 지방변증 환자라면 앞으로 계속 먹지 말고, 섭취해도 설사 등 부작용이 없었던 사람은 계속 먹어도 무방할 것이라는 공식적 견해를 덧붙였다.

    셋째, 튀김 기름에 고기 향을 넣었다는 이유로 거액을 배상해야 했던 맥도날드사가 일부러 오일에 글루텐을 넣었으리라고 생각되지는 않는다는 것도 한 이유다.

    결국 우리나라 사람들이 글루텐 때문에 감자튀김의 섭취를 걱정할 필요는 없는 것이다. 속이 더부룩하고 변비와 설사가 번갈아 나는 것은 다른 이유 때문일 가능성이 크다. 스트레스, 비만, 과음, 흡연, 운동 부족 등이 과민성 대장증후군을 유발하는 가장 큰 이유다.

    하지만 앞서 말한 L 씨의 경우는 다른 이유로 감자튀김 같은 패스트푸드의 섭취를 자제하는 것이 좋다. 비만이라 체중 감량을 해야 하는데 칼로리와 지방의 함량이 많은 튀김은 좋지 않기 때문이다. 또한 시중에서 파는 대부분의 튀김에는 몸에 좋지 않은 트랜스지방산이 많이 들어 있어 고지혈증과 동맥경화를 촉진하고 노화를 앞당긴다. 그러므로 감자튀김 대신 섬유소와 각종 비타민, 미네랄이 풍부한 방울토마토나 오이, 사과 등 과일과 채소의 섭취를 늘려야 한다. 식이섬유소와 운동, 충분한 수분 섭취는 더부룩한 속을 치유할 수 있는 가장 좋은 처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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