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간동아 1322

..

먹는 약으로 코로나19 퇴치할 수 있을까

[궤도 밖의 과학] 공포로 가득한 세상에 한 줄기 빛처럼 등장한 백신

  • 과학 커뮤니케이터 궤도 nasabolt@gmail.com

    입력2022-01-13 10:00:01

  • 글자크기 설정 닫기
    [GETTYIMAGES]

    [GETTYIMAGES]

    오래전 천연두라는 무시무시한 감염병이 있었다. 두창바이러스(Variola virus)로 인한 급성 발진성 질환인데, 기침이나 재채기로 전염될 수 있는 바이러스라 전염성이 굉장히 높았다. 초기엔 머리가 아프거나 고열에 시달리다 며칠이 지나면 얼굴과 팔다리에 납작한 붉은 반점이 생겼다. 반점이 고름으로 변했다 딱지가 돼 떨어지면 완치된 것이었으나 사망률은 30%가 넘었다. 다른 질병보다 훨씬 오랫동안 인류 곁에서 유행과 소강을 반복했다. 전 세계적으로 누적 사망자가 3억 명인 흑사병보다 3배 많은 참혹한 피해를 남겼다.

    한국도 1910년부터 50년 넘도록 매년 3000명 가까운 환자가 발생했다. 위대한 지도자였던 김구 선생도 유년 시절 천연두를 심하게 앓은 흔적이 성인이 돼서까지 남아 있었다. 하지만 1961년 이후로 환자가 발생하지 않았고, 1980년에는 세계보건기구(WHO)가 천연두의 완전한 종식을 공식적으로 선언했다. 왕족마저 대책 없이 죽는 병이라 ‘마마’라고 높여 불렀다는 설까지 있는 천연두는 어떻게 세상에서 완전히 사라지게 된 걸까. 수많은 사람을 외롭고 참혹한 죽음으로 몰고 갔던 공포의 존재를 물리친 건 바로 백신이다.

    면역학의 아버지로 불리는 영국 의학자 에드워드 제너는 근무 중인 마을에서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 여성에 관한 이야기를 들었다. 그녀는 우유 짜는 일을 하다 소에게서 우두(Cowpox)라는 질병이 옮았다. 그런데 그다지 위험한 증상 없이 자연 치유가 된 후 천연두에도 쉽게 감염되지 않았다. 제너는 한 번 우두를 앓은 사람은 시간이 흘러도 천연두에 걸리지 않는다는 사실을 최초로 확인했고, 1796년 인류 최초로 8세 소년에게 우두 환자의 고름에서 얻은 바이러스를 접종했다. 예상대로 소년은 약간의 미열 이후 금방 건강을 되찾았다. 라틴어 젖소(Vaccinus)에서 유래한 백신(Vaccine)이라는 단어는 이렇게 탄생했다.

    당시 기술로는 바이러스 존재나 백신 원리를 알 수 없었지만, 경험적으로 알아낸 방법은 현 백신과 같은 결과를 안겨줬다. 우리 몸은 바이러스나 세균처럼 외부 악당이 침입하면 면역체계라는 방어 시스템을 작동한다. 일반적 방식으로 일단 대응하는 선천 면역과 악당 특징에 맞게 항체를 만들어 대응하는 후천 면역이 있다. 후천 면역은 초기 대응 속도가 좀 느리지만, 일단 한 번 싸웠던 적을 기억한다는 훌륭한 장점이 있다. 그래서 바이러스를 적당히 비실비실하게 약화해 몸에 집어넣으면 항체들이 나서서 적당히 공격한 뒤 쓰러진 바이러스의 몽타주를 만들어 공유한다. 이제 얼굴이 팔린 채 다시 방문한 악당은 들어오자마자 적으로 인식돼 기억이 되살아난 항체들로부터 얻어터지고 백기를 든다.

    백신과 치료제를 함께 개발·활용하는 이유

    인류에게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코로나19에 대한 백신도 근본적으로 보면 같은 원리로 개발됐다. 다만 기존 백신이 일반적으로 나약해진 항원을 몸에 주입하고 이를 통해 항체를 생성하는 원리라면, 코로나19 백신은 조금 다른 방식도 존재한다. 실제 바이러스를 사용하기에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의 변이 속도가 너무 빨라 안전하고 빠르게 대량생산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그 대신 나약해진 항체 역할을 할 수 있는 무언가를 몸 안에서 직접 만들어내자는 아이디어가 나왔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감염 경로를 여는 열쇠 역할을 하는 스파이크 단백질을 보유하고 있는데, 이걸 흔한 감기 바이러스가 온몸에 두르고 들어와 시비를 건다. 바이러스 벡터라고 칭하는데, 여기에 감염된 일부 세포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면 면역체계는 대응하는 항체를 형성한다. 이후 실제 신종 코로나바이러스가 들어오면 이미 몽타주를 기억하고 있던 항체들이 빠르게 공격해 감염을 예방할 수 있게 된다. 혹은 스파이크 단백질의 설계도에 해당하는 mRNA(Messenger RNA)를 직접 전달하는 백신도 있다. 체내에 들어온 설계도를 보고 세포가 스파이크 단백질을 만들어내고, 이를 지켜보던 면역체계는 역시 항체를 만든다. 이러한 시도들은 기존 방식보다 안전하고 빠르게 백신을 개발할 수 있게 하지만, 보관이나 유통 과정에 굉장히 손이 많이 간다.



    백신 접종은 바이러스라는 범인을 물리치기 전 미리 몽타주를 공유하는 행위라고 할 수 있다. 치료제 도입은 침입에 성공해 날뛰는 범인을 큰 피해 없이 잡을 수 있도록 특공대를 보내는 과정이다. 약물 재창출 혹은 재활용이라는 용어가 있다. 이미 임상시험을 통과했거나 안전성이 입증돼 판매 중인 약물을 새로운 감염병에 활용하는 방식을 말한다. 신약을 개발하려면 복잡한 여러 과정을 거쳐야 하므로 길게는 10년 이상 걸릴 수도 있다. 하지만 이미 존재하는 약물을 활용하면 그 기나긴 과정이 대폭 단축된다. 완전히 새로운 약물에 비해 위험성이 낮아 성공 가능성이 높아진다. 한마디로 현실적이고 경제적이다.

    물론 그렇게 개발된 치료제의 효능을 입증하는 게 쉽다는 말은 아니다. 임상시험 자체도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하며, 임상 결과가 목표한 성과에 도달하지 못하는 제약사도 많다. 하지만 그중 몇몇 치료제는 어느 정도 치료 효과가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코로나19에 감염된 환자는 증상 정도에 따라 치료 방법이 달라진다. 중요한 건 확진 후 초기에 증상이 심하지 않은 환자를 적절하게 치료해 더는 악화되지 않도록 관리하는 일이다. 증상을 완화하고 몸의 손상을 억제할 수는 있지만, 바이러스 자체를 근본적으로 없앨 수 있는 치료제는 현재 존재하지 않는다. 그 대신 세포 내 바이러스 침투를 막거나 최대한 무력화해 감염된 환자가 시간이 흘러 다시 일상으로 돌아갈 수 있을 때까지 도와준다.

    증상이 가벼운 환자부터 심각한 환자까지 넓은 범위의 환자에게 사용하는 렉키로나주는 정맥에 주사로 투여하는 치료제다. 알 수 없는 감염병이 등장하는 게임이나 영화에선 주로 선천적으로 면역력을 보유한 주인공의 혈액을 이용해 치료제를 개발한다. 이와 비슷하게 렉키로나주는 코로나19에 한 번 감염됐다 완치된 환자의 혈액에 존재하는 중화항체 유전자로 만든다. 몸속으로 들어온 바이러스와 결합해 세포 감염을 방해하는 역할을 하는 게 바로 중화항체다. 이제는 유전자 재조합 기술로 채취한 중화항체를 대량생산하는 것이 가능하다. 다만 신종 코로나바이러스는 표면에서 변이가 워낙 많이 일어나기 때문에 대응에 취약한 면이 있다.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오르는 렉키로나주, 렘데시비르, 팍스로비드(왼쪽부터). [뉴시스, 사진 제공 · 서울대학교병원, 사진 제공 · 화이자]

    코로나19 치료제로 떠오르는 렉키로나주, 렘데시비르, 팍스로비드(왼쪽부터). [뉴시스, 사진 제공 · 서울대학교병원, 사진 제공 · 화이자]

    잠재력 크지만 우려도 상존

    중증 환자에게 주로 사용하는 렘데시비르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복제를 억제한다. 애초 에볼라 유행 당시 임상시험용 치료제로 개발됐으나, 여러 RNA 바이러스에 효과가 있음이 확인된 후 계속 활용되고 있다.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역시 스스로 복제하기 위해서는 유기화합물이 필요하다. 몸속으로 들어온 렘데시비르는 바이러스가 필요로 하는 유기화합물과 비슷한 형태로 바뀌어 경쟁하며 복제를 막는다. 영양가 없는 먹이를 대신 줘 관심을 돌리고 굶겨 죽이는 셈이다. 변이 바이러스에 대한 효능을 확인하려면 지속적인 연구가 필요하다.

    최근에는 팍스로비드나 몰누피라비르 같은 경구용 치료제, 즉 조그만 알약 형태로 먹는 치료제에 관심이 높다. 당연한 이야기지만 병원에 가서 주사를 맞는 방법보다 훨씬 편리하기 때문이다. 제대로 자리 잡기만 한다면 코로나19의 근본적인 위험성 자체에 대한 두려움이 상당 부분 희석될지 모른다. 바이러스에 감염됐다는 것은 우리 몸에 들어온 바이러스가 유전 정보를 여기저기 전달해 자신의 세력을 키워나간다는 의미다. 이때 중간다리 역할을 하는 것이 RNA인데, 이곳에 적힌 유전 정보를 차근차근 읽고 해독해 단백질을 만들고 바이러스를 복제한다. 이때 단백질 분해 효소가 필요한데, 팍스로비드는 이걸 차단해 감염 초기 단계에 효과를 보는 치료제다. 지난해 3월 시작된 첫 번째 임상시험 이후 아직 임상이 진행 중이긴 하다. 중간 분석 결과에 따르면 증상이 발병하고 사흘 이내 복용할 경우 사망률이 꽤 많이 감소했다고 한다.

    몰누피라비르는 RNA에 슬쩍 끼어들어 돌연변이를 일으키는데, 그렇게 되면 유전 정보를 읽는 과정에서 제대로 정보가 전달되지 않아 문제가 발생한다. 스스로 사멸해버리는 것이다. 이런 방식은 많은 RNA 바이러스의 복제를 억제하는 효과가 있다. 미국 식품의약국(FDA) 자문위원회에서 진행한 긴급 사용 승인에 관한 투표 결과는 찬성 13표, 반대 10표로 나타났다. 바이러스에 무작위로 돌연변이를 일으키는 방식에 대해 찬반 의견이 팽팽하다는 것을 드러낸 사례다. 최근 발표된 연구 결과에 따르면 몰누피라비르는 사망 혹은 입원 위험이 절반가량 감소하는 효과가 확인됐다. 하지만 몰누피라비르를 세계 최초로 도입한 영국도 인간 세포의 DNA 복제에 영향을 끼칠 가능성을 고려해 임산부나 가임기 여성, 수유 중인 여성은 사용하지 않는 조건부로 승인했다. 예측 가능한 부작용에 관한 연구도 지속되고 있다.

    전쟁은 결코 일어나선 안 된다. 하지만 일단 시작된 전쟁이라면 아군 1명도 다치지 않고 전쟁을 끝내는 방법을 찾기는 매우 어렵다. 중국 고대 병법인 ‘손자병법’에도 살을 주고 뼈를 취한다는 표현이 나오는 것처럼 말이다. 바이러스와 전쟁에서 승리하기 위해 우리는 이미 오랫동안 많은 희생과 고통을 경험했다. 과거 세계적으로 유행한 신종플루(신종 인플루엔자)도 이제 독감 수준으로 관리할 수 있게 된 비결은 백신과 치료제가 동시에 사용됐기 때문이라는 사실을 기억하자. 백신이건, 치료제건 우리가 할 수 있는 모든 방법을 동원해 지금 시작된 전쟁을 승리로 이끌어야 한다. 그리고 더욱 발전한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앞으로 일어날 모든 전쟁에서는 살도, 뼈도 내주지 않고 이길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기대해본다.

    인류에게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백신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GETTYIMAGES]

    인류에게 최대 위협으로 떠오르고 있는 코로나19 예방을 위한 백신 연구가 이어지고 있다. [GETTYIMAGES]

    궤도는… 연세대 천문우주학과 학부 및 대학원을 졸업하고 한국천문연구원 우주감시센터와 연세대 우주비행제어연구실에서 근무했다. ‘궤도’라는 예명으로 팟캐스트 ‘과장창’, 유튜브 ‘안될과학’과 ‘투머치사이언스’를 진행 중이며, 저서로는 ‘궤도의 과학 허세’가 있다.



    댓글 0
    닫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