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형 항공모함 전투단 개념도. [사진 제공 · 해군]
한국형 항공모함 구상에서 가장 우려되는 부분은 바로 함재기다. 군 당국은 아직 어떤 함재기를 채택할지 확정하지 않았다고 하면서도 각종 홍보물과 보고서에는 수직이착륙형 전투기를 함재기로 명시하고 있다. 현 시점에서 채택할 수 있는 수직이착륙형 전투기로는 F-35B가 사실상 유일하다.
가격 비싼 기형적 모델
영국 해군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에서 이륙 준비중인 F-35B. [사진 제공 · 미 해병대]
비좁은 내부 무장창은 공대공 무장에도 악영향을 미친다. 공대공미사일 6발을 탑재할 수 있는 F-35A, F-35C에 비해 F-35B는 4발이 한계다. 이러한 문제 때문에 F-35B를 운용하는 국가에선 웃지 못할 기현상까지 생겨났다. 영국 해군은 항공모함 퀸엘리자베스를 실전 투입하고자 함재기 F-35B 기체 하단에 무장 장착대를 설치했다. 내부 무장창 공간이 부족하기 때문인데, 이럴 경우 스텔스 기능을 포기해야 한다.
그럼에도 군 당국이 F-35B를 한국형 항공모함 함재기로 고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주된 논리는 “함재기로 거론되는 F-35B는 이미 미국, 영국 등에서 운용해 성능이 입증됐다”거나 “일본, 스페인, 이탈리아, 싱가포르 등도 도입을 추진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미국과 영국의 F-35B 운용은 이제 초기 단계다. 성능을 제대로 입증할 정도의 데이터가 축적되지 못했다. 실전 경험도 중동 등지에서 경무장한 게릴라를 상대한 것이 전부다.
군 당국은 여러 차례 한국형 항공모함을 국가 전략자산으로 규정했다. 국가 차원의 전략적 임무 수행이 가능해야 한다는 말이다. 예컨대 적 방공망을 돌파해 고위력 폭탄으로 핵심 시설을 타격하는 임무 등을 수행해야 한다. 반면 해군 측이 거론한 F-35B 운용 국가들의 항모 도입 배경은 한국과 다르다. 이들 국가가 도입한 항모는 정규 항모라기보다 제해함(Sea Control Ship)에 가깝다. 가령 일본 이즈모(いずも)급은 호위대군 기함으로서 각 함대의 방공 태세를 강화하고자 도입됐다. 스페인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I)급, 이탈리아 카보우르(Cavour)급, 싱가포르 다목적상륙함(LHD) 모두 정규 항모가 아니다. 그렇기에 여기에 탑재되는 F-35B의 주된 임무도 함대방공 지원과 전술 수준의 지상·해상 타격에 국한된다. 반면 한국형 항공모함의 핵심 임무는 북한의 전략 표적 타격이다. 이러한 점을 고려하면 F-35B를 운용하는 항모의 장점은 ‘배 값’이 싸다는 것뿐이다.
북한은 주요 군사시설을 지하화하고 있다. 사진은 북한이 2018년 폐쇄한 함북 길주군 지하 핵실험장. [동아DB]
항모 가격 낮아진다지만…
짧은 거리에서 뜨고 내릴 수 있는 F-35B는 내구성·내열성이 보장된 비행갑판만 있으면 별 다른 보조장비 없이도 운용할 수 있다. 덕분에 항모 건조 가격 자체는 저렴해진다. 반면 무거운 전투기를 마치 새총 쏘듯 발사하는 사출기(Catapult)나 짧은 거리에서 착륙할 수 있게 하는 착륙제동기어(Arresting Gear)를 장착하면 항모 가격은 크게 오른다. 그렇다면 이착함 보조장치 가격은 얼마나 비싼 것일까. F-35B의 낮은 성능과 비싼 가격을 감수할 정도인가.2021년 12월 22일 미국 국방부 산하 국방안보협력국(DSCA)은 프랑스가 요청한 전자식 항공기 발진 시스템(Electromagnetic Aircraft Launch System·EMALS) 3기와 신형강제착함장치(AAG) 패키지 판매를 대외군사판매(FMS) 형태로 승인한다고 발표했다. 해당 패키지 최대 가격은 13억 달러(약 1조5430억 원)로 알려졌다. 대개 DSCA가 공표하는 가격은 협상 개시 당시 가격이며 실제 가격은 50~80% 수준이다. 프랑스는 1조 원 안팎 가격으로 해당 패키지를 구입할 가능성이 높다. 미국의 최신형 항모 제럴드 R. 포드급에 장착되는 EMALS는 91m라는 짧은 거리에서도 45t 항공기를 이륙시킬 수 있다. F-35C 최대이륙중량은 연료와 무장을 만재해도 31.8t가량이다. 이번에 EMALS 세트를 구입한 프랑스는 차세대 항모 PANG에 해당 장비를 장착할 예정이다. 2025년 건조되기 시작하는 PANG는 원자력 추진 방식의 대형 항모로 길이 306m, 만재배수량 최소 7만5000t 이상인 ‘슈퍼 캐리어’다. 4면 고정식 위상배열레이더와 차세대 원자로 2기, 차세대 근접방어무기와 중거리 함대공미사일은 물론, EMALS까지 싣는 ‘풀 옵션’ 대형 항모지만 프랑스가 책정한 건조 비용은 45억 유로(약 6조 원)에 불과하다.
한국군과 조선업계가 밝힌 3만t급 항모 사업에서 순수한 함정 가격은 2조 원이다. 제원은 배수량 3만~4만t, 갑판 길이 265~270m, 폭 40~45m로 예상된다. 이러한 함체에 EMALS 2기와 AAG를 장착하는 가격은 6000억~8000억 원에 불과할 것으로 보인다. 이 정도 가격만 더 들이면 F-35B가 아닌 F-35C를 운용할 수 있는 항모를 보유하게 된다. 항모 성능 개선에 필요한 6000억~8000억 원은 F-35B 채택에 따른 전투기 가격 상승을 상쇄하고도 남는다.
주변국 먹잇감 될라
미 국방부가 밝힌 14차 저율초도생산(LRIP 14) 계약 기준 F-35B 가격은 1억130만 달러(약 1202억 원), F-35C는 9440만 달러(약 1120억 원)다. 2021년 미 국방부의 대외군사판매 제반 비용을 포함하면 가격은 F-35B 1억4486만 달러(약 1719억 원), F-35C 1억3499만 달러(약 1602억 원) 수준이다. 문제는 FMS 행정비용과 후속 군수 지원, 예비부품, 무장 등을 모두 합친 최종 견적이다. 영국은 F-35B 48대를 91억 파운드(약 14조5000억 원)에 샀고, 싱가포르는 12대를 27억5000만 달러(약 3조2630억 원)에 구입하려고 협상 중이다. 특히 F-35C의 획득비용과 유지비가 감소하는 것과 달리 F-35B 가격은 더 높아질 공산이 크다. 영국은 당초 도입하기로 한 F-35B 분량 90대를 취소했고, 미 해병대도 구조 개편에 따라 도입 물량을 줄일 전망이다. F-35C와 F-35B의 실제 비용 차이는 앞으로 더 커질 것으로 보인다.한국형 항공모함은 함정은 해군이, 함재기는 공군이 구입하고 운용하는 합동자산이다. 해군과 공군이 쓸 돈 모두 대한민국 국방예산이다. 배를 싸게 사겠다고 그 배에서 운용할 전투기를 비싸게 사는 것은 어불성설이다. 동급 대비 성능이 크게 떨어지는 전투기라면 더더욱 그렇다. 최근 영국은 한국에 항모 건조 기술을 전수해주겠다며 협업을 제안했다. 그러한 영국은 기존 스키점프대 방식의 자국 항모 퀸엘리자베스를 개조해 EMALS를 탑재할 계획이다. 한국형 항공모함은 아직 구체적 설계조차 시작하지 않았다. 귀중한 혈세를 들여 진정 전략 항모를 만들지, 아니면 주변 국가의 먹잇감이 될 ‘표적’ 항모를 만들지 신중하게 판단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