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굴 복원, 신원을 알려주마!](https://dimg.donga.com/egc/CDB/WEEKLY/Article/20/09/02/11/200902110500014_1.jpg)
그런데 만일 DNA 대조가 불가능할 정도로 시신이 훼손됐다면 어떻게 신원을 확인해야 할까. DNA 대조나 치아 분석, 현장에 남겨진 지문 감식처럼 법의학적으로 동원 가능한 신원 확인 방법이 한계에 다다랐을 때 사용하는 최후의 수단은 얼굴 복원이다.
얼굴 복원에서 결정적 단서를 제공하는 것은 얼굴뼈다. 사람마다 눈, 코, 입이 다 있지만 저마다 생김새가 다른 이유는 얼굴뼈가 다르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백인은 깊은 눈과 높은 콧날, 흑인은 펑퍼짐한 콧방울과 튀어나온 입술, 한국인을 비롯한 황인종은 넓적한 얼굴 등 인종마다 고유한 얼굴뼈를 지닌다. 그래서 얼굴뼈만으로도 인종을 추정할 수 있다. 또 치아로는 나이나 입술 두께, 눈두덩 뼈로는 눈의 돌출 정도나 쌍꺼풀 형태를 예측할 수 있다.
물론 이 예측이 100% 확실한 것은 아니다. 예외인 경우도 있다. 영화배우 장동건의 경우 얼굴뼈로만 인종을 추정한다면 한국인보다는 백인에 가깝다. 그의 깊은 눈과 높게 솟은 콧날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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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과정이 끝나면 컴퓨터를 이용하거나 찰흙 같은 재료를 사용해 수작업으로 얼굴을 재현한다. 미국의 과학수사 드라마 ‘CSI’에도 컴퓨터로 얼굴을 복원하는 장면이 가끔 등장한다. 이때는 해부학적 지식과 예술가의 직관력, 섬세한 손길이 필요하다.
클레오파트라의 피부는 까맸다
역사 속으로 사라진 인물의 얼굴을 재현할 때도 얼굴 복원 기술이 사용된다. 지난해 12월 영국 케임브리지대의 고고학자이자 이집트 연구가인 샐리 앤 애슈턴 박사는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을 복원했다. 클레오파트라는 초상화나 얼굴뼈가 남아 있지 않아 그동안 그의 실제 모습을 둘러싼 추측이 난무했다.
2007년 2월에는 영국 뉴캐슬대 연구진이 2000년 전 로마시대의 은화를 연구해 클레오파트라가 좁은 이마에 뾰족한 턱, 얇은 입술, 날카로운 코를 지니고 있어 소문만큼 뛰어난 외모는 아니었다는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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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뼈는 얼굴 복원에 결정적인 단서를 제공한다.복원된 클레오파트라의 얼굴은 백인 미녀의 표상과는 거리가 있다.
특히 “클레오파트라의 코가 조금만 짧았더라면 지구의 역사가 달라졌을 것이다”던 프랑스 철학자 파스칼의 말처럼 클레오파트라뿐 아니라 당시 이집트 지역 여인들의 콧등과 이마는 거의 일직선으로 연결돼 상당히 길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현재 백인 여성의 코는 대부분 오뚝하고 코끝이 위로 향해 있는데, 이는 진화론적 관점에서 대뇌 전두엽이 발달해 앞이마가 튀어나오고 그로 인해 코가 짧아지기 시작했기 때문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음악의 아버지’로 불리는 독일 작곡가 요한 제바스티안 바흐의 얼굴도 지난해 2월 복원됐다. 캐롤라인 윌킨슨 박사가 이끄는 영국 던디대 법의학 얼굴 복원팀은 바흐의 유품을 소장하고 있는 박물관 바흐하우스의 요청으로 바흐 얼굴을 재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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복원 과정을 거치면서 차츰 얼굴 윤곽이 드러난다. 바흐 얼굴 복원 과정.
윌킨슨 박사팀은 바흐하우스에 있는 바흐의 얼굴뼈를 복제한 청동상을 토대로 사망 당시 나이인 65세를 가정해 컴퓨터에서 3차원으로 그의 얼굴을 재현했다. 그 결과 바흐는 머리숱이 적고 짧은 백발이었다. 윌킨슨 박사팀이 바흐의 머리카락을 짧게 복원한 이유는 바흐가 살았을 당시 물로 전파되는 역병을 걱정해 머리 감는 것을 극도로 꺼려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으리라 추정했기 때문이다.
또 윌킨슨 박사팀은 바흐하우스로부터 바흐의 기록물과 바흐의 눈꺼풀이 아래로 처져 눈을 괴롭혔다는 의료기록도 제공받아 얼굴을 복원하는 데 이용했다. 복원된 바흐의 눈 부위를 자세히 보면 눈꺼풀이 아래로 많이 처져 있다. 바흐는 생전에 초상화를 위해 단 한 차례 포즈를 취했다고 알려졌는데, 이렇게 탄생한 18세기 바흐의 초상화는 가발을 쓰고 인자한 표정을 하고 있다. 하지만 윌킨슨 박사팀이 복원한 얼굴은 초상화보다 통통하면서도 다소 완고하고 근엄한 모습이다.
이 결과에 대해 바흐하우스 외르크 한젠 관장은 “생전에 바흐는 건장한 체격에 춤추고 노래 부르기를 즐기는 활동적인 성격이었다”면서 “실제 바흐의 모습을 보는 것 같아 초상화보다 친근감이 든다”고 평가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