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밤공기가 제법 쌀쌀하던 1994년 어느 초가을 날, 보리스님은 산속에 있을 게 아니라 직접 세상에 뛰어들어 사람들을 돕고자 탑골공원을 찾았다. 공원에 홀로 앉아 있던 한 노인과 밤새 이야기를 나누다 가진 돈의 전부였던 1500원으로 국밥 한 그릇을 대접했다.
“그때 비로소 제가 뭘 해야 할지를 깨달았어요. 그날로 당장 탁발을 시작해 시주금으로 공원 노인들에게 빵과 우유를 나눠드렸죠.”
스님 혼자 고생하는 게 안쓰러웠던지, 할머니 보살들이 하나둘 동참해 지금껏 든든한 동료가 돼주고 있다. 1998년 원각사를 열게 된 데도 이들의 도움이 컸다. 원각사의 무료 점심은 입소문을 타고 널리 알려져 이젠 자원봉사자들도 꽤 많이 찾아온다. 달력에는 날짜별로 찾아올 봉사팀의 이름이 빼곡히 적혀 있다.
“저는 별로 하는 게 없어요. 저 또한 자원봉사자 분들에게 밥을 얻어먹는 사람 가운데 한 명일 뿐이죠.”
사정을 잘 모르는 사람들은 원각사 무료 점심에 국가나 시민단체의 보조금이 지급되고 있다고 생각한다. 간혹 식사하러 온 노인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되레 큰소리를 치며 고자세를 보이기도 한다. 그러나 음식재료와 식기 등은 모두 자원봉사자들의 기부금으로 마련된다. 휴일, 명절에도 쉼 없이 점심 봉사를 해 힘든 순간도 많았을 법한데, 보리스님은 그저 행복할 따름이란다.
“식사하며 웃는 노인들의 얼굴을 볼 때 가장 보람돼요. 오래 하고 싶어요. 이분들 모두가 우리 아버지, 어머니들이니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