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월 30일 유럽우주기구(ESA)는 ‘로제타(Rosetta)’ 공식 트위터를 통해 33개국 언어로 로제타의 임무 완수 소식을 알렸다. 로제타는 ESA가 13억 유로(약 1조6000억 원)를 들여 만든 첫 혜성 탐사선. 2004년 3월 하늘로 날아올랐다. 혜성 표면을 탐사할 로봇 ‘필레(Philae)’와 함께였다. 이후 12여 년간 임무를 마칠 때까지 로제타는 인류가 알지 못했던 우주의 여러 비밀을 파헤치며 무수한 이야깃거리를 쏟아냈다. 특히 우주 공간을 65억km나 날아간 끝에 2014년 시속 6만6000km로 움직이는 혜성 ‘67P/추류모프·게라시멘코(Churyumov-Gerasimenko, 67P·67P)’ 궤도에 안착한 것은 과학사에 기록될 만한 개가였다.
로제타가 풀어낸 우주의 미스터리
67P는 46억 년 전 태양계 형성 당시 모습을 유지하고 있는 것으로 분석된 혜성이다. 과학자들은 로제타가 이 혜성을 탐사해 자료를 보내오면 태양계의 진화 역사와 생명의 기원을 밝힐 실마리를 찾을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 로제타의 이름은 기원전 196년 고대 이집트에서 제작된 ‘로제타석’에서 따온 것이다. 인류에게 고대 이집트문명을 알려준 로제타석처럼, 이 우주선을 통해 인류가 초기 태양계와 혜성에 대해 이해할 수 있기를 바라는 마음을 담았다. 2014년 8월 6일 로제타가 마침내 성공적으로 67P 궤도에 진입했을 때 과학계는 머잖아 이 바람을 이룰 수 있을 것으로 기대했다.그러나 별 탈 없이 진행되는 듯하던 로제타 프로젝트는 이내 난항에 빠졌다. 로제타가 필레를 혜성 표면에 착륙시키는 데 어려움을 겪은 것이다. 필레는 중력이 지구의 10만 분의 1 수준으로 사실상 무중력 상태인 67P 표면에서 계속 튕겨져 나왔다. 그해 11월 12일, 여러 번 시도한 끝에 간신히 67P 표면에 안착한 뒤에도 곧 바닥으로 굴러 떨어졌다. 결국 로제타와 통신마저 끊기고 말았다. 7개월 뒤 극적으로 생환해 약 한 달간 67P의 구성 성분 등에 대한 정보를 보내온 필레는 지난해 7월 교신이 완전히 끊겨 어디에 있는지조차 파악할 수 없는 신세가 되고 말았다. 결국 혜성의 비밀을 탐사하는 임무는 온전히 로제타 몫으로 남았다.
로제타는 이후에도 67P 궤도에 머물며 혹시 다시 올지 모르는 필레의 통신신호를 잡고자 교신 시스템을 가동한 채 외로운 탐사를 계속했다. 이 과정에서 우주의 미스터리를 풀 여러 단초도 제공했다. 로제타가 한 가장 중요한 발견은 67P 대기에서 생명체 성분인 글리신과 인을 찾아낸 것이다. 글리신은 아미노산 가운데 하나로 생명체를 이루는 단백질을 만드는 성분이다. 인은 DNA와 세포막의 핵심 재료다. 그동안 과학계는 혜성이 지구와 충돌하면서 아미노산 등 생명체의 구성 요소를 지구에 전달했을 수 있다는 가설을 세워왔다. 로제타의 발견은 이러한 짐작을 뒷받침하는 것으로 과학계는 흥분했다.
로제타가 과학계의 기존 통설을 깨뜨린 것도 있다. 지구의 물이 혜성에서 온 것이 아니라는 사실이다. 로제타가 67P의 정보를 지구에 전송하기 전까지, 상당수 과학자는 물을 머금은 혜성이 지구에 충돌하면서 물이 흘러들어왔을 것이라고 믿었다. 하지만 로제타가 보내온 데이터를 분석한 결과 67P에서 발견된 물의 중수소 비율은 지구 물에 비해 매우 높았다. 이는 지구 물의 기원이 혜성일 가능성이 낮음을 의미한다.
이처럼 과학 발전에 큰 공을 세운 로제타에게 죽음(임무 완수)의 그림자가 드리운 건 목성 주위를 도는 67P가 점차 태양과 멀어지면서부터다. 태양에너지를 이용해 전력을 생산하는 로제타가 임무를 이어가기 어려운 상황이 된 것이다. ESA는 로제타가 끝내 우주 쓰레기가 될 것이라 판단하고, 그런 상황이 오기 전 로제타를 67P에 추락시키기로 결정했다. 이는 로제타를 혜성에 최대한 접근하게 해 더 많은 정보를 수집하기 위한 결정이기도 했다.
로제타는 그동안 67P 궤도에 머물렀을 뿐 표면 가까이에 이른 적은 없었다. 결국 혜성 추락은 로제타에게 부여된 최후 임무이기도 했다. 로제타는 최대한 천천히 67P에 접근하며 고해상도로 혜성 표면을 촬영하고, 화학성분을 분석한 자료를 충돌 직전까지 지구에 전송했다.
이 과정에서 다시 한 번 극적인 일이 일어난다. 혜성과 충돌하려고 다가가던 중 그동안 위치를 알 수 없던 필레를 찾은 것이다. 필레는 공교롭게도 햇빛이 들지 않는 바위 아래 있었다. 로제타에 탑재된 카메라 오시리스(OSIRIS)를 개발한 세실리아 투비아나 ESA 연구원은 “이제야 필레와 왜 이렇게 통신이 안 됐는지 알았다”며 “혜성 충돌을 앞두고 필레를 찾게 돼 정말 기쁘다”고 심정을 전하기도 했다. 결국 로제타는 11만6000장의 사진과 데이터를 지구로 전송한 뒤 9월 30일 최후를 맞았다. ESA의 로제타 프로젝트 총책임자인 패트릭 마르탱은 이날 “안녕, 로제타, 네가 할 일은 끝났다”며 “우주과학 역사상 최고의 순간”이라는 소감을 밝혔다. 로제타는 그렇게 필레와 함께 혜성에 잠들었다.
2030년 인류가 화성에 닿을까
로제타는 최초 혜성 탐사선으로 역사에 기록됐다. 또 로제타가 이룬 많은 성과는 혜성 탐사뿐 아니라 심우주 탐사도 충분히 가능하다는 것을 입증해 보였다. 미국항공우주국(NASA)은 로제타 프로젝트가 성공한 뒤 우주의 소행성을 탐사하려는 ‘오시리스-렉스(OSIRIS-REx)’ 계획을 실행 중이다. 9월 발사된 오시리스-렉스 탐사선은 지구에 접근하고 있는 소행성 ‘101955 베누’의 표본을 채취해 2023년 귀환할 예정이다.
NASA는 최근 화성에 사람을 보내겠다는 이른바 ‘유인 탐사 계획’을 발표하기도 했다. 구체적으로 2030년대 최대 4명까지 탈 수 있는 오리온 우주선을 화성에 보내겠다는 청사진도 내놓았다.
민간기업 스페이스X 역시 현재 화성 유인 탐사에 쓰일 거대 로켓을 개발 중이다. 로켓에 사용할 엔진 일부는 지난해 시험까지 마친 상태다. 특히 스페이스X의 화성 탐사 계획은 우주탐사 역사에서 로제타 프로젝트만큼이나 한 획을 그을 것으로 전망된다. 스페이스X가 발표한 ‘행성 간 이동 시스템(ITS)’ 계획에 처음으로 시도하는 기술이 다수 포함돼 있기 때문이다. 가장 주목할 것은 로켓 재사용 기술이다. 신기술이 너무 많아 학계에서 허무맹랑하다는 이야기까지 나오지만, 스페이스X이기에 실현할 수 있다는 의견도 많다. 옥호남 한국항공우주연구원 발사체기술개발단장은 스페이스X의 실현 가능성을 긍정적으로 내다봤다.
수십 년간 꾸준한 투자로 얻어낸 우주탐사 성과물이 이제야 빛을 발하기 시작했다. 조금씩 발전시켜온 우주선이나 발사체 기술 등은 궁극적으로 우리가 모르던 우주의 탄생 비밀과 초기 태양계의 모습을 밝혀줄 것이다. 더 멀리, 더 안전하게 우주로 나아갈 인류의 모습이 기대되는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