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인을 고르다 보면 와인대회 수상 스티커가 붙은 것들이 있다. 딱히 찾는 와인이 있지 않는 한 자연스레 상을 받은 와인에 손이 가게 마련이다. 품질에 대한 믿음 때문이다. 전 세계에는 다양한 와인대회가 있다. 그중 아시아 최대 규모의 국제와인대회가 바로 대전에서 열리는 ‘아시아와인트로피(Asia Wine Trophy)’다. 올해는 10월 24일부터 나흘간 진행됐는데, 심사위원 자격으로 진행 과정을 두루 살펴볼 수 있었다.
아시아와인트로피의 모체는 독일와인마케팅사(Deutsche Wein Marketing GmbH)가 주최하는 베를린와인트로피다. 이 대회는 세계 5대 와인 품평회 가운데 하나로 출품 와인 수만 1만 종이 넘는다. 아시아와인트로피는 2013년 독일와인마케팅사와 대전마케팅공사가 2600여 종의 와인으로 시작했다. 4회째인 올해는 출품 와인 수가 4000종이 넘었고, 세계 20여 개 나라에서 온 심사위원 수도 125명에 달했다.
심사는 국제와인기구(OIV)가 정한 기준에 따라 심사위원 한 명이 하루에 최대 50종까지 하게 돼 있다. 시각, 후각, 미각을 총동원해야 하는 와인 심사 특성상 하루에 50종이 넘으면 감각이 둔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와인은 병을 가린 채 심사위원에게 제공된다. 공정성을 기하고자 국가, 지역, 와이너리 이름 등은 철저히 비밀에 부친다. 심사위원이 받는 정보는 포도 품종과 생산연도뿐이다.
심사는 10개 항목에 걸쳐 이뤄지며 100점 만점 기준이다. 심사위원은 6~7명이 한 조를 이뤄 와인을 한 종씩 시음하고 심사표에 각자 점수를 매긴다. 조장은 심사표를 취합해 가장 낮은 점수와 가장 높은 점수를 뺀 나머지 점수의 평균을 낸다. 이렇게 해서 92점 이상 받은 와인은 그랜드 골드, 85점 이상은 골드, 82점 이상은 실버 메달을 받을 자격을 얻는다. 하지만 출품 와인의 상위 30%에만 메달을 수여하기 때문에 82점 이상 받아도 실버 메달을 받는다는 보장은 없다. 이번 아시아와인트로피에는 약 4000종의 와인이 출품됐으니 메달을 받는 와인 수는 최대 1200개다. 점수가 높은 순으로 나열했을 때 1200번째 와인이 84점이라면 83점이나 82점을 받은 와인은 실버 메달을 받을 수 없다.
이번 대회에서 그랜드 골드 메달은 총 18종의 와인이 차지했다. 독일 5종, 포르투갈 4종, 스페인과 이탈리아 각 2종, 오스트리아·헝가리·중국·루마니아·칠레가 각 1종이다. 그랜드 골드 메달은 한 조의 심사위원 모두에게 높은 점수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좀처럼 나오지 않는다. 간혹 그랜드 골드 메달을 받는 와인이 탄생하면 심사위원들이 기립박수를 쳤다. 명작을 만들고자 노력한 장인에게 보내는 축하의 박수다. 이번 대회에 출품된 와인들은 10월 28일부터 사흘간 열린 대전국제와인페어에서 관람객에게 무료 시음 와인으로 제공됐다.
와인대회는 품질을 인정받아 소비자에게 더욱 가까이 다가가고자 하는 와인이 도전하는 무대다. 따라서 출품 와인은 대부분 값비싼 유명 와인보다 마트나 와인숍에서 쉽게 접할 수 있는 것들이다. 나무랄 데 없는 품질의 와인들과 심사숙고하며 평가하는 심사위원들의 모습을 보니 국제대회 수상 스티커가 신뢰할 만한 가이드라는 생각이 들었다. 우리나라에서 열리는 아시아와인트로피가 앞으로도 아시아에서 중요한 국제와인대회로 굳건히 자리매김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