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대통령이 2월28일 경기 성남시 학생중앙군사학교에서 열린 2003년 학군장교 임관식에서 대통령상 수상자의 어깨에 계급장을 달아주며 축하하고 있다.
노무현 정권 출범 10여일, 청와대 주변에 변화의 흐름이 출렁거린다. 노대통령은 인사는 물론 관행 속에 숨어 있던 권위와 격식에 얽매인 업무수행, 의전 일체를 거부한다. 대신 이 모든 것을 노무현식 ‘실사구시’ 시각에서 재해석, 새로운 스타일을 만들어내고 있다. 그는 권위주의 정치 탈피와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하는 ‘노무현식 스타일’을 수시로 선보이고 있다.
이동중에도 어린이들에게 사인해줘
2월27일 청와대 본관에서 있었던 임명장 수여식. 신임 각료들과 개별 사진을 찍던 노대통령은 멀찍이 서 있는 고건 국무총리와 눈이 마주치자 “잘못하는 것 같다. 총리하고 찍어야 한다”며 촬영을 중단시켰다. 의아해하는 각료들에게 “이래야 (총리 밑) 장관의 소속이 분명해진다”라고 설명했다. 이미 대통령과 사진을 찍었던 일부 장관들은 고총리와 함께 다시 포즈를 취했다. 노대통령은 또 고총리에게 “내가 너무 앞서 나가면 중심을 잡아달라”는 묘한 주문도 했다. 권위를 파괴하는 노무현 스타일은 기자회견을 전후해서도 이어졌다.
같은 날 노대통령은 기자실이 있는 춘추관으로 이동하면서 신임 장관들과 함께 버스를 탔다. 이동 과정에서 청와대에 견학 온 어린이들에게 사인을 해주기도 했다. 경호원들은 통상 대통령의 이동중 정지를 터부시한다. 그러나 노대통령은 이런 경호팀들의 노심초사를 못 본 척했다. 대통령 동선에서 경호원들의 모습이 사라진 것도 노무현 정부 출범과 함께 나타난 현상이다. 통상 경호실장은 청와대 행사에 동행하는 것이 보통이지만 최근 이런 모습은 사라졌다.
이날 기자회견 후 노대통령은 춘추관 1층 기자실을 찾았다. 몇몇 기자들과 악수를 하다가 기자들이 마감시간에 걸린 것을 알고 철수를 결정했다. 그가 기자실을 떠나면서 남긴 마지막 인사말은 “바쁜 분들은 인사 못 드리고 그냥 갑니데이”였다. 2월28일 학군장교 임관식 도중 연설과 박수가 뒤섞이는 어색한 상황이 연출됐다. 이에 노대통령은 “미안합니다. 박수 치십시오. 제가 정치를 오래 했는데 아직도 박수 유도가 서툽니다”라고 말했다. 장내가 웃음바다가 된 것은 불문가지.
‘호칭 파괴’도 탈권위의 냄새를 물씬 풍긴다. 노대통령은 당선자 시절 어른 격인 김원기 정치고문을 ‘김고문님’, 2년 선배인 정대철 민주당 대표최고위원을 ‘정선배’ 혹은 ‘대철이형’으로 불렀다. 당선자 시절 정위원이 대선주자였던 점을 상기하며 “형, 솔직히 내가 부럽지”라는 말도 했다. 노대통령은 지금도 여전히 정감 넘치는 이런 호칭을 사용한다는 게 청와대 한 행정관의 설명이다. 386 비서관들에 대한 호칭도 여전히 ‘광재씨(이광재 상황실장)’ ‘갑원씨(의전비서관)’ 등이다. 경직된 관료문화 속에서 생활해온 관료들은 이런 ‘파격’에 입을 다물지 못한다는 후문이다.
노대통령은 토론과 합의를 중시하는 새로운 정치실험을 예고하고 있다. 일방적 지시나 상의하달보다 격의 없는 토론을 통해 생산적 합의를 이끌어내겠다는 의지가 남다르다. 노대통령은 2월26일부터 28일까지 사흘간 잇따라 수석ㆍ보좌관 회의를 주재했다. 과거 대통령이 참석하는 수석비서관급 회의는 일주일에 한 번 정도였다. 한 비서관은 이를 “토론 훈련을 시키기 위한 의도”라고 평가했다.
반면 이런 스타일 때문에 청와대 비서진은 죽을 맛이다. 노대통령이 주재하는 회의에서 토론할 만한 가치가 있는 안건을 찾는 것이 우선 부담이다. 노대통령은 ‘자유로운 대화’를 강조하고 있으나 노대통령의 화법 자체가 공격적인 데다 이따금 던지는 함정식 질문이 여간 부담스럽지 않다고 한다. 게다가 한번 걸려들면 변론 스타일로 조목조목 물고늘어지는 경우가 많아 공과 사를 구별하라는 노대통령의 청와대 근무수칙을 지키는 비서관들은 아직 드물어 보인다. 귀가시간을 늦추며 토론 준비를 해야 하기 때문이다.
2월27일 파격적인 조각을 끝낸 노대통령은 이제 관료사회에 칼을 들이댈 계획이다. 주문사항은 ‘발상의 전환’과 ‘적극적 사고’. 노대통령은 무사안일주의와 복지부동하는 모습을 극도로 싫어한다. 이런 모습을 보인 장관에게 불호령을 내리기도 했다. 지난 1월 말 ‘국민통합과 양성 평등사회 구현’을 주제로 한 국정 토론회장. 방용석 노동부 장관이 ‘동일 노동, 동일 임금’ 적용의 어려움을 내세우며 노동시장 유연화의 필요성과 국제경쟁력을 강조하자, 노대통령은 “그럼 노동부 장관은 하는 일이 뭡니까”라며 방장관을 정면으로 응시했다. “어렵다는 것은 알지만 길이 없으면 길을 만들어야 한다”는 것이 노대통령의 주문이었다. 이는 공직자 처신의 ‘바이블’로 떠오르고 있다. 노대통령은 공무원 사회의 변화를 이끌기 위해 스스로 그 선봉에 섰다. 토요일인 3월1일. 노대통령은 3ㆍ1절 기념식 참석 외에는 다른 일정을 잡지 않았다. 일요일인 2일에는 아무 일정도 없었다. 김대중 전 대통령이 평균 2~3개씩의 공식 일정을 소화한 것과는 대조를 이룬다. 주말엔 대변인 브리핑도 없었다. 필요한 경우 관계자들의 기자간담회로 대체할 계획이다. 김대중 정권 시절엔 토요일에도 청와대 수석회의와 공식 브리핑이 평일과 똑같이 진행됐다. 이정우 청와대 정책실장은 노대통령에게 “심심한 대통령이 되라”고 조언했다. 이것이 영향을 미쳤다는 얘기가 나온다.
노대통령은 새 정부의 ‘음주 가이드라인’도 제시했다. 2월23일 청와대 비서관들과의 워크숍에서 “청와대 수석과 비서관들은 앞으로 기자들에게 일절 술을 사지 말라”고 특별히 당부하고 뒤풀이 장소(포장마차)에서 이를 다시 구체화했다.
“꼭 양주를 마셔야 되는가. 소주를 마시면 안 되는가. 또 꼭 고급 음식점에 가야만 하나.”
관행처럼 이어진 접대문화에 대한 일침이었다. 한 비서관이 “오십세주는 괜찮습니까?”라며 우문을 던지자 노대통령은 “오십세주? 오십세주는 괜찮지 않겠나”고 받아주었다고 한다.
그러나 ‘노무현식’ 어법과 스타일에 대한 우려도 많다. 2월27일 잦은 장관 교체로 인한 폐단을 지적하자 “분위기 쇄신용 개각은 앞으로 하지 않겠다. 장관자리를 최소 2년은 보장할 것이다”고 말했다. 연한을 못박은 것은 대통령의 어법으로서 부적절한 것이라는 지적이다. 노대통령은 김진표 경제부총리를 가리켜 “내가 지금껏 봐온 공무원 가운데 가장 유능한 공무원”이라고 말했다. 이런 단정적 표현에 “그럼 다른 공무원들은 무능하다는 얘기냐”라는 항의성 반발이 뒤따른다.